※ 수식관 (數息觀) 마음
공부를 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산란심이다. 그 산란심을다스리고 조복 받는 법은 수식관이다. 좁은 의미의 수 식관이라 함은숨쉬는 것을 세는 것이고 넓은 의미의 수식관은 육묘문(六妙門 :數·隨·止·觀·還·淨)을 포괄한다.
범어로는아나파나사티(anapanasatti) 라고 하며 한자로 안반 수의(安般守意)로음역(音譯)하였다. 아나(ana, 安)는 숨을 들이쉬는 것이고 아파나(apana,般)는 숨을 내쉬는 것이며, 사티(satti, 守意)는 집중의 뜻이다.
숨을들여 마시고 내쉬는 것을 1호흡이라고 한다. 그 법은 결가부좌나반가부좌로 앉아서 숨을 천천히 들여 쉬고 또 내쉬고는 하나, 반복해서둘 ……, 이렇게 열까지 센다. 열까 지 세고는 다시 하나부터 반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30분 동안만 하여도 어지러운 생각이 고요히잠자고 마음이 안정되어진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계속하면 정신통일경지에 이르게 된다. 《아비달마론 阿毘達摩論》의 <수식관>에 보면부처님도 여러 가지 마음 수련법을 닦다가 최후에 정신통일로금강정(金剛定) 에 들려고 할 적에 수식관을 닦았다고 하였으며 옛적많은 도인(道人)들도 세속의 5욕경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부정관>을닦 고 정신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식관>을 닦았다.
육묘문(六妙門)이란 넓은 의미의 수식관(數息觀)으로수(數)·수(隨)·지(止)·관(觀)·환(還)·정(淨)이다.
1) 수(數)는숨쉬는 것을 세는 것이니 먼저 말한 바와 같다.
2) 수(隨)는 숨쉬는 것을따라다니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니 들이쉴 적엔
들이쉬는 것을 따라 가며생각하고 내쉴 적엔 내쉬는 것을 따라가며 생각하는 것이다.
3) 지(止)는그렇게 숨쉬는 것만 따라가며 생각하면 밖으로 반연하는 생각이 다 쉬게된다. 그것을 止라고 한다.
4) 관(觀)은 밖으로 모든 반연하는 생각이쉼과 동시에 안으로 어떤 이 법(理法)을 관하는 것이다. 관은 심성이밝으 므로 어떤 이법의 대상 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의 진리〕
5) 환(還)은 중생심을 돌이켜견도(見道)에 들어감이다..
6) 정(淨)은 본디 청정한 심성의 본체가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수식관을 일심으로수련하여 그 공부가 성숙하면삼명육통(三明六通)이 다 성취된다고 하였다.
1. 三明
1)숙명명(宿命明) : 중생들의 과거세의 일을 아는 능력.
2) 천안명(天眼明): 중생들의 미래세의 일을 알고 공간적으 로 우주의 모든 곳을 볼 수있는 능력.
3) 누진명(漏盡明) : 모든 번뇌가 다해 생사를 초월 하는 능력.
2. 六通 ― 위의 三明에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신족통(神足 通) 을 더한 것.
4)천이통 :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할 소리를 듣는 능력.
5) 타심통 : 다른중생의 생각을 아는 능력.
6) 신족통 : 마음대로 몸을 변화하거나 이동할수 있는 능력.
2) 아라한(阿羅漢) 소승(小乘)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聲聞)의 수행자들이 얻는 네가지 성위 가운데 최고의 경지. 다시는미망(迷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생(不生)이라고 하며, 그릇된것을 떠났다는 뜻에서 이악(離惡)이라고도 한다 .
우리나라 불교는 크게보아 대승불교의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특별히 아라한을 신봉하는습속(習俗)이 유행하지 않았으나, 오대산의 신행결사 때 아라한을 그려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또 스님들의 조석예불문(朝夕禮佛文)에 아라한을칭송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아라한을 주로 <석가모니에게직접 배운 제자들>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십대제자를비롯해서 석가모니 당시에 감화를 받았던 여러 제자들을 가리킨다. 특히,제일결집 때 왕사성에 모였던 500명의 장로들을 숭배하는 관습이 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수하였다는 사상적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우리나라의 절에는 대부분 나한전이 건립되어 있 어서 십육나한이나오백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3) 연각(緣覺) 불교에서 수행자를 3종으로분류한 삼승(三乘) 가운데 하나. 벽지불 또는 독각이라고도 한다. 삼승은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3가 지 수행부류를 말한다.
연각은 부처님의가르침을 듣고 도를 깨닫는 성문과는 달리 외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스스로 인연 의 법칙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자>이다. 그리고남을 구제하는 부처와는 달리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삼아 산림(山林)에 은둔하여 세상 사람들을 지도하거나 제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一衣又一鉢 옷 한 벌 바리때 하나여 出入趙州門 조주의 문을 들며날며 했구나. 踏盡千山雪 천 산의 눈을 다 밟은 뒤에 歸來臥白雲흰구름에 누워 돌아온다. ― 碧松智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