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교과의 성 평등 수업을 수사의뢰한 광주시교육청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4개월이다. 남구의 H중 2학년 학생 일부가 수업시간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과 수업자료 영상이 주는 불편과 수치심을 이유로 광주시교육청에 신고하였으며, 시교육청은 학생 10여명의 설문응답을 근거로 교사를 남부서에 고발하고 수사개시를 이유로 직위해제를 통보한 것이다.
해당 교사는 수업 중 부적절한 발언은 고의적인 음해성 왜곡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수업자료로 선택한 11분짜리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가 주는 불편함은 이해하지만 성차별 성폭력의 현실을 발견하는 불편함과 수치심이 성희롱의 맥락과 비교될 수 없는 것으로 현실의 비판적 성찰과 소통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러한 불편함은 교사-학생의 의사소통을 통해 해결될 문제이지 이를 수사의뢰하는 시교육청의 처사는 교권탄압이며 교육활동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한다.
전교조광주지부와 해당 교사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는 이렇듯 수업의 불편함만을 가지고 교사를 수사의뢰한다면 성 윤리 성 평등 관련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크게 위축될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해당 수업을 포기할 것이라며 염려한다. 실제 지역의 교사들과 시민들은 100여 일 동안 교육청의 처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9월 이후 광주지역의 3500여 교사들과 전국의 교사 2천여 명이 광주시교육청의 사과와 직위해제 취소를 요청하는 서명에 동참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해외 교원단체의 교사들의 청원서명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통해 지역사회가 정말 심각하게 발견하는 문제는 교사의 수업이거나 학생의 민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광주시교육청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의 무기력함이다.
첫째, 장휘국 교육감은 전교조광주지부장의 거듭된 면담요청을 거부하고, 전교조본부 위원장의 면담요청도 계속 회피하고 있다. 학생들의 민원을 스쿨미투로 확정하고 집행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몰이해와 불필요한 여론이 지속된다면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교육감이 당당히 만나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에 대한 지역사회의 토론요청도 수사를 이유로 회피하기보다는 행정의 논리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교육청의 입장을 공식적인 보도자료나 입장문을 통해 지역사회에 안내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전국의 중앙일간지나 지역일간지에서 그렇게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수많은 지성의 칼럼이 던져짐에도 불구하고 시교육청의 번번한 입장글 하나를 접하기 힘들다.
둘째, 많은 이들은 수업내용에 대한 최초 사실 확인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교육청은 여느 교사의 수업발언이라 해도 ‘설마?’라고 반응했을 충격적인 교사발언에 대해 인권과 성평등의 실천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던 해당교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사실여부를 늦게라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학교를 대상으로 다수 학생을 조사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위안부는 스스로 몸팔러 갔다.’라거나, ‘여자를 꼬시다가 안되면 강간하면 된다.’라는 발언에 대해 10여명의 신고학생 말고 나머지 110여명의 학생들의 기억은 어떠한지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관은 그 어디도 아닌 시교육청 밖에 없다.
셋째, 교사의 발언이나 수업자료 영상이 법령에 근거한 도덕과 교육과정과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것도 교육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교육감이나 고위간부의 사사로운 느낌이 아닌 공식적 심의절차를 통해서 해당 교사의 수업이 사사로운 일탈인지 아니면 필수적인 학습활동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교육청의 수사의뢰가 다수 교사에게 확산되는 불안감이 필연적인지 아니면 과장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 심의를 진행했다는 것을 밝힌 적이 없다.
넷째, 수업자료 영상의 불편함을 들어 ‘발달단계상 부적합한 자료’라는 언급이 있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한 판단이다. ‘발달단계’는 누가 판단하며,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야 하는가? 그것이 교육감이나 성인식개선팀의 장학사 개인의 사견으로 판단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의 현실을 중학생은 어느 수준에서 이해하고 어느 수준에서 개념화하는 것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도덕교과 전문가와 성평등 교육의 전문가들의 적절한 심의절차를 통해 심의되고 결정될 때 행정의 공신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이 또한 경찰이나 검찰,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은 자신의 역할을 전혀 집행하지 않고 있다.
다섯째, 성평등교육을 포함하여 민주시민교육은 매우 논쟁적인 학습이다. 시민교육의 중요 원칙으로 언급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주입을 금지하며, 논쟁을 재현하고, 학생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실천적 참여-라는 3원칙을 제시하였고 요즘 국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통일’,’성평등’,’기후변화’,’노동의 정의’,’과거사문제’등과 같은 숱한 논쟁적 주제들은 공교육의 성찰적 개입이나 수업을 통한 담론화가 학생에게 꼭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교사는 좌우를 막론하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명백히 예측되는 바이다. 최근의 인헌고 일부학생들이 ‘반일파시즘교육’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이나, 2017년 서울의 최현희 교사의 성평등교육을 ‘동성애 교육’으로 학부모단체가 검찰에 고발했던 사실을 보더라도 불필요한 고민을 노파심으로 들먹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학생들의 불편함 호소는 성교육의 엄숙주의, 보호주의, 통제주의와 같은 보수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것인데, 이렇듯 편향적인 문제제기를 앞세워 교사를 처벌하는 쪽으로 교육청의 행정이 기울어지는 것을 학교현장의 교사들은 걱정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공교육 교사의 민주시민교육 전개원칙과 이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방침과 방도에 대해 시급히 판단해야 한다.
글 마무리를 위해 정리하자면 광주시교육청은 지역사회와 민주적 소통을 외면했으며, 신고된 수업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집행하지 않았고, 해당수업의 교육과정 관련성이나 발달단계에 대한 전문적 심의라는 교육청의 고유의 책무를 집행하지 않았다. 더불어 민주시민교육을 집행하는 공교육 교사에 대한 보호의 책무와 방도를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 광주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것을 성찰하고 돌이켜 자신의 역할을 시급히 회복할 것을 간청한다.
※이 기고문에 대한 반론문을 투고하면 지면에 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