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현재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으로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두 뼈대를 이루고 있다. 뉴턴의 고전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통계역학이 더해진 고전물리학 체계는 19세기까지 정립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고전물리학 이론 체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새로운 실험 측정 자료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19세기 말부터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흑체복사, 광전효과, 원자분광선 등을 들 수 있다.
흔히 양자역학은 흑체복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막스 플랑크가 새롭게 도입한 고전물리학의 개념에서 벗어난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얘기한다. 이제부터 그렇게 시작된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흑체복사(black body radiation)라는 물체가 빛을 복사하는 현상은 20세기가 되기 전 실험적으로 확인됐지만 아무도 측정 자료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 측정 자료에 대해 특정한 가정을 세워 처음 설명한 사람이 막스 플랑크이다.
빛의 에너지가 진동수에 비례하는 특정한 양의 정수 배로 주어진다는 이른바 플랑크의 양자가설(quantum hypothesis)이 바로 그것이다.
1900년 12월의 일이다. 플랑크의 가장 큰 업적이다.
그러나 그는 왜 그런 가정이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못했고 단지 그렇게 가정하면 측정 자료들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을 뿐이다. 물론 이 설명도 단숨에 나온 것은 아니고 2달 전인 10월에 데이타 곡선을 정확히 맞추는 식을 고심 끝에 찾아냈는데 다시 두 달 가까이 더 노력 끝에 그런 식을 주는 가정, 즉 양자가설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정은 그때까지의 고전물리학 이론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 업적으로 플랑크는 현재 모국 독일에서 수십 개의 모든 기초과학연구소들에 그의 이름이 붙는 추앙을 받고 있다. (아인슈타인? 노우.)
그 가정을 설명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역시 그때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던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 현상을 플랑크의 양자가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설명하였다.
즉 빛은 알갱이(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알갱이 하나하나의 에너지가 바로 플랑크가 가정한 기본 양으로, 빛의 진동수에 플랑크가 도입한 상수를 곱한 양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때까지 지배하고 있던, 영의 이중슬릿에 의한 간섭효과에 의해 실험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던 빛의 파동설에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즉,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라는 실험적 증명이 엄연한데도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연히 누구도 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광전효과 현상의 측정 결과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이론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치하였다.
참으로 불가사의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이미 행한 다른 실험적 업적으로 차후 노벨상을 받았던 미국의 밀리칸은 1914년 본인이 직접 모든 실험결과치가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이론치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음을 확인한 후에도 그의 공식은 맞지만 그의 설명은 말이 안되는 엉터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입자성과 파동성은 일반 상식으로는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입자는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할 수 없지만, 파동은 여러 개의 문들도 동시에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는 말로 하는 학문이 아니고 논리가 성립된다고 해서 다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바로 자연현상과 일치해야 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수학은 '과학'이 아니다.
논리에 모순이 없으면 수학은 독립된 이론체계로 얼마든지 인정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클리드 기하와 리만 기하는 서로 공리가 달라 서로 다른 주장도 둘 다 맞다. 평행선이 만날 수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물리학 더 나아가 과학에서는 자연현상과 어긋나는 즉시 그 이론은 힘을 잃는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은 밀리칸의 실험적 정밀 확인에 힘입어 광전효과 설명의 공적으로 1921년 노벨상을 받았고, 밀리칸은 (광전효과의 정밀측정에 더해) 그전에 행한 전하의 기본단위를 실험적으로 정밀하게 측정한 업적으로 1923년 노벨상을 받았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이때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 1919년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측에 의한 빛의 휘어짐 현상 확인으로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는 여전히 미심쩍어 좀 더 확실한 광전효과로 상을 주었다. 이후로도 아인슈타인은 그의 정말 큰 두 업적,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다른 몇 사람이 노벨상을 2개 이상 받은 경우들도 있지만. 아마도 너무 큰 업적은 바로 알기가 힘든 모양이다. 진짜 크고 높은 산은 가까이서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각설하고, 아무튼 이런 연유로 광전효과를 설명했음에도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빛의 입자성은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물리는 물리다.
1923년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컴프턴이 실험을 하다가 빛이 알갱이처럼 행동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다른 실험에서도 확인되었고, 컴프턴은 이 업적으로 수년 후(1927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의 전환인데 바로 우리가 아는 한 서로 상치되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빛의 경우에는 둘 다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양자역학 개념의 등장이다. 우리의 기존 상식을 뒤엎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이런 일은 이미 1905년에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이 무너질 때도 벌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