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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문경읍 이화령에서 문경읍 관음리 하늘재까지 걸었다.
제18차 백두대간
1) 일시 : 2016.11.18일
2) 어디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조령3관문~마패봉~북암문~동암문~탄항산~하늘재
....17.47km..(백두대간 누계 355.74km)
3) 누구와 : 나 , 강쌤
4) 산행이야기 : 오늘은 배꽃고개 이화령에서 하늘재까지 걸었다.이번에도 이틀간 산행을 할 계획이며 이제 겨울산행은 잠시 중단하기 때문에 이번 산행이 2016년 마지막 백두대간 산행이다. 추운 겨울은 피하고 내년 3월쯤 다시 이어 갈 참이다. 어제밤 광주를 출발하여 경상북도 문경읍내까지 아내의 차량을 타고 왔으며 문경읍내에서 숙박하고 오늘 새벽 아내는 우리를 이화령까지 대려다 주었다.우리가 이틀간 걷고 나면 내일 부리깃재 아래 밖마을에서 만나 광주로 내려 갈 참이다. 산이 좋아 백두대간을 걷는 남편을 위해 운전을 해 준 아내가 고맙다.우리가 산행을 하는 동안 아내는 서울에 있는 딸들에게 들렸다가 내일 오후 다시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다.오늘은 이화령에서 조령산(1,026m)에 올라 신선암봉(神仙巖峰 937m)을 거쳐 깃대봉을 지나면 조령제 3관문에 이른다. 새도 쉬어 날았다는 문경세제 조령 3관문에서 감로수에 목을 축이고 마패봉(925m)을 올라 내려가면 산성길에 북암문과 동암문이 나온다. 그후 다시 산성길를 따라 걷다가 부봉삼거리를 거쳐 주흘산(1,079m)삼거리에서 급좌하여 평천재와 탄항산를 거쳐 모래산을 넘어 하늘재로 하산 할 계획이다. 하늘재의 서쪽마을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이고 동쪽 마을은 경북 문경읍 관음리을 연결하는 고개인데 미륵세계와 관음세계을 이어주는 고개마루 하늘재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새벽 5시 이화령에서 하늘길 하늘재을 가기 위해 어둠속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2016년 11월 17일 늦은 오후 6시 광주에서 출발하여 장성에 있는 친구 강쌤에게로 간다.
그리고 오늘은 아내와 같이 출발했다. 광주에서 300여 km를 달려 문경읍내 온천단지 모텔에서
숙박을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근처 편의점에서 호박죽으로 간단한 식사를 한다.
산행을 위한 간식과 물을 준비하고 아내와 함께 이화령으로 출발 했다.
새벽 5시 이화령 대간표시석 앞에 도착한다.오늘의 안전 산행을 다짐하고 출발!
(이화령 돌탑 앞에서 아내와 한컷!)
(이화정자 앞에서)
아내는 두딸을 만나러 서울로 출발하고 우리는 하늘재를 향하는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이화령고개에 있는 이화정자 옆길이다.
어둠속 헤드라이트 빛은 아주 뚜렸하고 밝았으며 융단처럼 깔린 겨울낙엽을
밟는 느낌은 포근하고 새벽공기는 시리도록 차가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세상의 모든것이 잠든듯한 조용한 어둠속 숲길를 걷는데
누군가가 정성스레 돌탐을 쌓아 올려 놓았다.
(소박한 돌탑)
돌탑은 제법 큰 소나무 숲 아래에 있었으며 크기는 50cm 정도의 아담한 높이였다.
나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반사 되어 돌탑에서 빛이 나는듯 했다.
이 돌탑을 쌓은이는 이는 어떤 기도을 올렸을까?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달빛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밤에 산길을 걷는 우리에게 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친구가 되고,힘이 되어주는 달빛이다.
이슬에 젖은 낙엽과 숲에서 나는 나무향기는 정신을 맑게 하고 정갈하게 할 것이다.
백두대간을 시작하여 이어 걷는동안 어차피 꼭 지나야 할 산들 이지만
이런 야심한 새벽에 산을 찾아 온 것이 한 없이 즐겁다.
전라도 광주에서 300km가 떨어진 이곳 문경시 이화령까지 달려와
새벽 5시 산을 넘겠다고 어둠속 숲길을 헤치고 걷는 두사내
제 정신인지 분간이 안가는 모습일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마냥 즐겁다.
조용한 이 새벽도 즐겁고 소나무 향기 나는 숲길도 좋고 걷다보면
후근 달아 오르는 가슴의 열기와 두근거림, 그리고 아마에 흐르는 땀도 기쁘다.
이화령에서 시작한 산행은 조령산(1,017m)을 향해 오른다.
조령산으로 가는 중턱 소나무 우거진 곳에 작은 샘터가 있었다.
(조령샘)
조령샘!
사랑하나 풀어내어 한방울의 샘물을 내리고
길손의 넋두리 벗삼아 그리움을 담아내어
오늘도 내일도 길손을 기다리며 살아 가리라.
조령산 조령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글귀였다.
조령샘은 지나는 길손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였고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쓴 글귀 또한 귀한 아름다움이였다.
조령샘를 지나 한참을 걷는데 단아하고 단단한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 아래는 이곳의 농산물 안내선전까지 곁들여 이쁘고 친절하다.
(조령산 정상표시적)
여명이 시작 할 무렵 조령산(1,017m) 정상 돌탑이 보인다.
속리산 국립공원지역은 이화령에서 내려 놓고 이제는 월악산 국립공원 지역의 시작이다.
우리의 백두대간 산행은 지리산 국립공원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국립공원 덕유산을 종주하고 다시 국립공원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을 넘었다.
이제는 국립공원 월악산으로 들어 간 것이다.
국립공원 월악산 산군들은 바위가 많고 뾰쪽하며 거친 비탈이 많아 속칭 악산이다.
그동안 걸었던 길보다 힘들것 같았지만 아직은 부드러운 산길이다.
어느덧 하늘이 열리고 어둠이 걷힐무렵 조령산(1,017m)에 오른다.
조령산 정상마루 한쪽에 여성 산악인 지현옥! (1959~1999)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잠시 묵념한다.
(여성 산악인 지현옥의 추모비)
조령산 자락 월악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보이는곳에 님의 혼이 편히 쉬기를 바라는 후배들의 마음이였을 것이다.
그녀는 1993년 한국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로 선발되어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등정에 성공하였다.
1998년에는 가셔브롬 제 2봉(8,035m)을 무산소 등정하였으며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을 성공하고 하산하다 실종되고 만다 .
당시 나이 40세로 불꽃같은 짧은 생을 마감하고
그녀는 그토록 사랑했던 하얀 설산에 영원히 잠든다.
이곳의 추모탑은 그녀의 후배 산악인들이
그녀가 평소에 사랑했던 언덕에 추모탑을 세웠다.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있는 추모탑 모습)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마련 된 그녀의 추모돌탑이다.
나는 지난 2016년 5월 17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에 갔었고 이 추모석에 묵념 올렸다.
(좌로부터 마패봉,부봉 주흘산 모습)
조령산 정상을 벗어 나는데 건너편 먼 하늘에 여명이 시작하여
하늘의 빛깔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 빛에 가린 산 그림자는 실루엣으로
확실한 산 마룻길 능선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는 능선은 좌로부터 마패봉,부봉,주흘산이며 오늘 걸어야 할 산마룻길이다.
아이구야 ! 갈 길은 까마득 하지만 널 만나러 온나 기꺼이 저 산을 넘으리라 다짐하며 지난다.
조령산을 넘으면 암릉 지대가 시작하며 오르 내림이 심한 비탈이다.
그러나 보이는 전경은 가히 절경이다.내가 경험하고 내가 오르내린 산들과 비교하면 어찌보면
월출산을 닮았고 다시 보면 설악산군을 닮았으나 설악산보다 위세는 작다.
그러나 월악산의 신선암봉과 삼형제봉 구간은 어디에 내 놓아도 아름다움으로
빠지지 않을 만큼 멋진 산세를 가진 구간 코스였다.
신선암봉은 좌우로 두개의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봉우리를 삼형제봉이라 부르고 두 봉우리를 넘다 보면 절경에 취하고
마지막 세봉우리 넘으면 심한 구간에 탈진할 듯 취했다.
세봉우리는 멋진 절경을 만들어 낸 만큼 억! 소리나게 힘든 난코스였다.
그러나 다시 오고 싶은 구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꼭 한번 오고 싶다.
조령산을 넘어 신선암봉을 향하는 길은 가파른 비탈인데
다행히 최근에 나무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편하게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경사도가 80~90도쯤 되어 보였다. 아침 7시 일출을 본다.
날마다 뜨는 아침 해 지만 이른새벽 1,000m급의 산 위에 올라
걷다가 보는 아침해는 뭔가를 소원하면 잘 들어 줄 듯하다.
그래서 잠시 나의 가족과 농장과 여러가지를 소원하고 한참을 바라다 보았다.
조령 1~2관문 방향의 안부계곡을 내려다 본다. 깊은 계곡은 아직 밤인듯 조용하다.
다시 걷다가 내려다 본 경치는 멋진 선경이다.
설악산 어디 일부을 닮은 바위산이기도 하지만
월악산 나름의 매력이 있는 모습이다.
(신선암봉에 오르는 밧줄구간)
신선암봉을 오르는 구간은 밧줄구간이 반복 되는데 빗길이나
눈길이였다면 위험한 구간이기도 했다.
신선암봉(937m)은 가히 신선이 구름 타고 놀러와서 바둑 한판을 두고
막걸리 한사발 들리키고 다시 손오공 구름타고 시원하게 날으는 모습을 상상했다.
친구야! 옆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일세 ! 조심하게나 ! 신선암봉에 올랐다.
카메라 조작 실수로 빛이 많은 사진이 찍힌줄 모르다가
한참을 지난후에 알게 되어 좋은 사진 몇 컷을 버렸다.
이제 삼형제 마지막 봉우리를 향하여 걷다가 바위틈에 외롭게 서 있는 고사목을 본다.
이 땅 이 바위의 주인이었을 저 나무는 죽어서도 한참을 더 서 있을듯 하다.
(신선암봉을 바라 보고 있는 나)
(바위틈으로 지나는 산행길)
(바위틈 길)
신선암봉을 지나 여러개의 암릉 밧줄 구간을
오르고 더듬 더듬 내리다가 바위틈 구멍길을 만난다.
바위틈으로 이어지는데 좁은 바위 터널길이다.
몸 상체가 큰 나는 낑길것 같은 좁은 틈 길이다.
채구가 작은 강쌤은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나도 쉽게 갈 수 있을까?
나는 먼저 베낭을 벗어 던져 넣어 나의 몸통을 줄인다음 옆으로 걸어 겨우 통과 할 수 있었는데
잘못하면 바위틈에 낑겨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고 혼자 웃었다.
그리고 바위틈에 낑기지 않아 다행이다.11시 깃대봉 입구 갈림길에 다 다른다.
깃대봉은 마루길 약간 옆으로 비켜선 봉우리여서 패스하고 조령 제3관문으로 하산 한다.
우리는 오전 내내 8.5km의 짧은 거리를 6시간 동안 헤멘 셈이다.
경치에 취해 오래도록 앉아 쉬기도 했지만 암릉구간의 오르고 내림이 심하여
늦은 더듬이 속도였고 때로는 위험구간들이 있어서 최대한 안전하게 걸었다.
(문경세제 제 3관문 앞에서서)
문경세제 제 3관문에 도착한다. 문경새제라 부르는 조령관문은 제1~3관문인데
백두길은 제 3관문을 지난다. 조령고개는 조선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였다. 추풍령 고개는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풍기의 죽령은 죽죽 미끄러진다
하여 문경세재를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조령관문에 관한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조령관문은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이 성을 지키러 갔던 신립장군이
조령관문을 포기하고 탄금대로 후퇴하여 배수의 진을 치고 대항하였으나 전멸하고 만다.
신립이 조령관문을 포기하고 탄금대에 진을 쳤던것은 꿈에 나타난 처녀의 말를 믿고 탄금대 배수의 진을 쳤는데 그 처녀는 신립를 사모 했으나 신립이 연정을 받지 않은것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신립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복수심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여자가 시기 질투하면 이토록 무서운것이다.
(윤재학 저, "산은 사람을 기른다" 참고)
"무대포"라는 말이 있다.우리는 "무대포 정신 "이라거나 또는 어리석은 행동을 두고
사용하는 말이지만 어원은 썩 좋은 의미가 아니다.
일본의 조총에 맞선 신립을 보고 일본 장수가 한 말이다.
아무런 준비나 계획없이 총이나 포도 없이 조총에 맞섬을 보고 한 말이 "무뎃뽀"정신이니
부끄러운 말이다. 나는 수년전에 제 1관문에서 여기 3관문까지 걸었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3관문 아래에는 옛날 주막같은 비닐하우스 휴게실이 있었다.
주막에 들러 친구와 문경 세제주 한잔을 건배했다.
그리고 잔치국수로 점심을 해결하는데 꿀맛이다.
언제 다시 이런 기분을 맛볼까 몰라 최대한 서서히 문경세제주를 음미했다.
(문경새재 주막에서 잔치국수와 탁주 한사발)
(마패봉 정상석 920m)
30여분 쉬었다가 다시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관문위에 걸어 놓았다는 마패봉(920m)이다.
마패봉은 제3관문 에서 멀지 않았으며 그리 높지도 않았다.
이제 하늘재까지는 다소 편한 길이이지만 거리가 8.5km로 족히 4시간 이상 걸릴것이다.
어느덧 바위는 드물고 부드러운 흙을 밟는 구간이 나타난다.
기묘하게 생긴 소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한준 .윤서 아빠의 백두대간 종주 "리본을
보기도 하며 걷는다.
부봉 갈림길을 지나 960봉을 아래 큰 바위을 우회하여 지나는데 후두둑 가을비가 내린다.
아이구야 ! 비가 온다.오후 3시 30분경 아직 두시간 가까이 더 가야 하는데
비가 오니 마음이 다급하고 초초하다.
다행이 빗줄기는 가늘어 비옷은 안입어도 될 듯하여
그냥 걷는데 가파른 내리막이 반복되어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더디다.
아직 4km는 더 걸어야 하는데 심히 걷는데 불편한 비다.
내린비를 맞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환추기경님이 우리의 인생과 삶을 간결하게 표현한 "우산"이란 시(詩)가 있다.
그 시(詩)말중에 "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 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다"
라는 글귀가 있다.
그래 비 맞은걸 즐기자. 약간의 이슬비 같은 비를 맞는게 대수인가?
비를 맞는거 보다 비옷을 입고 벗는게 더 번거롭겠다.
이제 거리도 얼마 안 남았으니 그냥 내리는 비 맞고 걸었다.
"우린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다" 라고 하고 싶었지만
덕분에 속옷까지 빗물에 졎어 들고 있어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괜한 멋부리다 얼어죽는다는 속담처럼....
(가랑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걸었다)
이제 백두대간 탄황산(炭項山)이다.
하늘재를 지척에 두고 흑산도의 해안 모래사구 처럼 검은 모래가 쌓여 언덕진 모래산을 만난다.
신기한 모습이다.어찌보면 불에 탄 연탄가루 같기도 하지만 모래을 더 닮은 언덕이다.
면적이 넓지는 않으나 산 정상에 모래 언덕이 있다는건 신기했다.
이제 하늘재는 2km남짓 남아 문경택시 기사님과 전화통화를 하여
하늘재로 마중 나오시라 약속을 하고 우리는 오후 4시30분 하늘재에 도착했다.
하늘재라는 이름은 참으로 이뻤다.그러나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비내리는 하늘재는 슬펐다.
나는 미륵리와 관음리 사이의 하늘재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으나
인생의 멋을 내다가 가랑비에 젖어 불편하였고 마침 문경택시 기사님은 도착 해
기다리시는 중이여서 곧장 택시에 몸 실었다.
바람과 내리는 비가 아니였으면 미륵리쪽으로 좀 더 내려 갔다가 오고 싶었고
시간을 두고 하늘재의 분위기에 스며들고 싶었지만
나 혼자만의 기분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없었다.
오늘 새벽 5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4시30분에 도착 했으니
11시간 30분 걸었다(휴식시간 포함)
오늘 나는 처음 온 월악산에서 우아한 절경에 취했고 신선암봉을 오르는 행운을 누렸으며
산상에서 일출을 보고 기도를 하였고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한껏 인생의 멋을 부렸다.
오늘 월악산행은 만추(滿秋)가 진한산행이였다.
택시를 타고 문경 종합온천으로 향하는데 내리는 빗줄기 더 굵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의 산행이 무리일것 같다.
결국 내일의 산행은 포기하기로 하여 서울릐 딸들에게 간 아내에게 연락을 하였다.
우리는 문경온천에서 씻고 저녁 식사후 아내가 올 때까지 커피숍에서 기다렸다가
서울에서 출발한 아내을 만나 문경을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하니 새벽 3시다.
오늘은 참으로 바쁘고 긴 하루였다.
2016년 11월 18일(금)걷고 11월 23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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