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용식 동기의 자녀 박지윤씨의 소식이 조선일보에 실렸기에 이에 옮겨왔습니다.
까탈스러운 디즈니도 제 목소리에 반했대요
[애니 '겨울왕국' 주인공 안나의 한국말 목소리, 성우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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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박지윤(36)은 요즘 극장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스타다. 그녀가 주인공 '안나' 역을 맡은 미국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최초로 8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몰이 중이다. 관객 중 40% 이상이 우리말 더빙판을 찾아오는 이례적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 더빙판을 본 300만이 넘는 관객은 박지윤에게 '갓(God)지윤'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줬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해 화제가 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넛잡'에 등장하는 다람쥐 '앤디' 목소리의 주인공도 그다.
박지윤은 '겨울왕국'에서 목소리 연기뿐 아니라 노래에도 도전했다. 한국어 더빙판의 인기가 높아지자 제작사인 디즈니가 계획에 없던 한국어 버전 OST를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안나' 역을 맡기 위해 이미 목소리 테스트를 통과한 박지윤은 이후 추가로 노래 오디션을 치렀다.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서는 목소리 연기만 하고 노래는 다른 가수가 불렀거든요. 그런데 개봉하고 보니 둘이 음색이 잘 맞지 않아 한 캐릭터 같지 않았어요. 속상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안나'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다 소화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캐스팅 까다롭기로 유명한 디즈니지만 성악을 전공한 그의 노래를 듣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냈다.
애니메이션‘겨울왕국’에서 주인공 안나를 연기한 성우 박지윤. 사인 요청이 신기하고 반갑다는 그는“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에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고 했다. 그가 성우가 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연기와 노래를 좋아해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객석 앞에 설 숫기는 없었다. 그래서 졸업 후 1년간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노래를 가르쳤다. 그에 앞서 무엇보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전두환을 빼닮은 외모 때문에 5공 시절 고초를 겪고,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전두환 역을 맡은 배우 고(故·2013년 8월 별세) 박용식씨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남들 앞에서 절대 노래 부르지 말라'고 하셨어요. 주위에서 '가수 하라'고 바람 잡을까 봐 걱정이셨던 거죠.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방송국에서 성우 지원서를 갖고 오신 거예요. 저도 '남들한테 주목받지 않고 연기할 수 있으니 이건 딱이다' 싶었죠." 그는 "다섯 번 낙방하고 2005년 KBS 공채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다"고 했다.
성우 10년 만에 처음 받는 대중의 관심이 그는 "싫지 않다"고 했다. '더빙은 원작만 못하다' '성우들 목소리는 부자연스럽다'는 편견에 성우들의 입지는 계속 좁아져왔다. 그나마 남은 애니메이션 더빙마저 아이돌이나 개그맨들에게 넘어가는 상황에서 지금의 인기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란다. "인기 연예인이 더빙하면 홍보 차원에서 무리하게 유행어를 넣게 돼요. 목소리 연기는 캐릭터와 함께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미묘한 감정을 잘 잡아내야 해요. 관객들이 제 연기를 보고 '전문 성우도 나쁘지 않네'라고 말해주면 만족해요."
박지윤은 더는 무대 뒤에서 목소리로 남고 싶어 하지 않았다. "팬클럽 가진 성우들이 부러워요. 더 많이 주목받고 사랑받아서 후배 성우인 남편(KBS 정형석)이 질투도 좀 느꼈으면 좋겠네요."<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