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승려의 속삭임*②
그날의 수영은 대변환의 시작이었다. 감지하기 힘들 만큼 몸은 더디게 회복됐지만,
내 믿음과 즐거움과 희망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내 안에는 파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음을 알았다. 내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4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나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끈적끈적한 열대의 무더위를 뚫고 질주했다. 시계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구불구불한 자갈길을 위태롭게 질주하면서 혹시라도 떨어질세라 로빈의 허리를 두 팔로 꽉 감싸 안았다. 태국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날이었다.
우리는 폭포 아래에 숨겨진 사원을 찾아가고 있었다. 로빈은 듀크 대학에서 만난 친구다. 오전 8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크레이크헤드 박사의 이상심리학 과목을 수강하다 만났다.
나는 부지런한 신입생이었고,/ 로빈은 ‘거침없는’ 2학년생이었지만, 우리는 죽이 척척 맞았다. 심리학, 남자 친구, 삶의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듀크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런던에서 근무하던 로빈이 전화를 걸어 네팔과 태국으로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는데 나도 합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수 세기 동안 마음챙김 수련이 이뤄진 곳으로 절친과 모험을 떠날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단박에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흐르는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웠지만, 로빈은 폭포 사원으로 가는 길을 표시한 작은 표지판을 용케 발견했다. 허리부터 휘감은 사롱과 슬리퍼 차림으로 벌레를 쫓아가며 우거진 숲길을 뚫고 나가는 게 쉽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기어이 찾아갔다.
햇빛에 반사된 무지갯빛 폭포수가 굉음을 내며 쏟아졌다. 폭포 너머에 사원이 있었다. 우리는 이끼로 덮인 미끄러운 돌계단을 기듯이 내려갔다. 밑에 도착하자 황색 승복을 걸친 승려 한 분이 서 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우리를 반기더니 함께 명상하자고 청했다.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초라한 석조 건물로 다가가자 진한 향내가 풍겼다.
덩굴로 뒤덮인 돌벽 안쪽에 작은 불상과 촛불 하나로 꾸며진 수수한 제단이 보였다. 제단 주변엔 명상용 방석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진짜 승려에 진짜 사원에 진짜 명상용 방석이라니!’ 감격할 새도 없이 명상이 시작되었다.
눈을 감자 순식간에 몸과 호흡이 확장되었다. 어떤 느낌인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누비이불에 감싸이듯 마음이 편안하고 명료하고 차분해지면서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술받은 지 거의 4년 만에 처음으로 내 몸이 편하게 느껴졌다. 통증이 사라지고 두려움도 싹 가셨다. 내 몸의 경계가 스르르 녹아내리며 세상 만물과 하나로 연결된 것 같았다.
명상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로빈이 손목시계를 들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한 시간이나 지났어!” 나한테는 그 시간이 한순간처럼 느껴졌다. 행복감에 들떠 사원을 나서려는데 승려가 내 눈을 유심히 쳐다보며 속삭였다. 단 두 마디 말이었지만, 울림은 그 어떤 조언보다 강력했다.
“계속 수행하세요.”
일주일 뒤, 승려의 속삭임에 힘입어 나는 태국의 한 사원에 가서 처음으로 명상 수련회에 참여했다. 승려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했고, 나는 태국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폭포 사원에서의 경험도 있고 마음챙김이 현재에 머무는 것임을 알기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얼른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첫날 아침, 우리는 널찍한 명상실에 모였다. 연꽃으로 가득한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는데, 첫 명상 수련회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멋진 곳은 없을 듯싶었다. 어눌한 영어로 주어진 지침은 쉽고 간단했다. 코로 들이쉬고 내 쉬는 호흡을 느끼라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시작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정신이 흐트러졌다. 얼른 가다듬고 다시 호흡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젠장! 정신이 또 흐트러졌다. 그때까지 마음 챙김에 대한 내 연구는 대부분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실전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폭포 사원에서 맛봤던 평온하면서 힐링 된 경험과 유사할 거라 기대했지만, 정신을 현재에 붙잡아두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때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 그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면서 과거로 흘러가거나, ―――하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 때 난 뭘 어떻게 할까? 라고 미래로 훌쩍 내달았다.
억지로 마음을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음 챙김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자주 접했던 ‘몽키 마인드’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원숭이가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듯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마음이 어수선했다. ‘완백한’ 장소에서 ‘완백한’ 명상 수련회를 맛보려던 희망은 무너졌다.
언어 장벽에다 묵언 명상회여서 승려들에게 내 어려움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내 멋대로 자기 판단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넌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니? 이럴 거면 여기 왜 있어? 정신적으로 성숙한 줄 알았는데 순 엉터리였구나.’ 설상가상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 심지어 승려들까지 판단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여기 왜 앉아있는 거야? 뭐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다행히 다음 날 영어를 구사하는 승려가 런던에서 날아왔다. 나는 그 승려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그리고 내 마음챙김 수행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얘기하자 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맙소사, 당신은 마음챙김을 수행한 게 아니라 판단력과 조바심과 좌절감을 수행했군요.” 그 승려가 뒤이어 한 말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뭐든 실천할수록 강화됩니다.”
승려는 당시 신경과학자들이 막 발견하기 시작한 뇌의 근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가 순간순간 실천하는 것은 뭐가 됐든 우리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