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 편지 읽는 여자, 요하네스 페르메에르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Johannes Vermeer (1632~1675), 네덜라드인
창이 활짝 열려 있다.
행간을 읽어야 할 편지인가 보다.
빛은 편지에 가득하고
안쪽 커튼에도 슬며시 스며들었다.
뼈 속까지 닿을 듯 깊은 램브란트의 빛
반질반질 코팅하는 소로야의 빛,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호퍼의 빛,
숨쉬는 유기체 같은 모네의 빛,
현란한 쇼를 펼치는 노멜리니의 빛...
(내게 느껴지는) 같은 광선 다른 느낌의 빛들이다.
베르메르의 빛은
폴리가 흉내 낼 수 없는 비단 같이
격조 높은 광택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연하게 스며든 빛이다.
여자는 편지를 빨리 읽고 싶었나 보다.
교체된 식탁보가 툭 던져지고
그 위에 자리를 잡지 못한
쟁반 속 과일들이 쏟아질 것만 같다.
기다렸던 편지긴 하지만
(아래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불길한 내용이 있을까 염려하는 듯하다.
편지를 든 팔에도 힘이 없어 보인다.
사랑의 시는 아닌 모양이다.
※ 세상이 다 아는 그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페르메에르의 그림들은 편안하다. 모델은, 그려지고 있는 걸 모르고 있는 듯한, 즉 연출자의 강요나 의도 없이 그저 루틴을 하는 모습이다. 혹시 머리속에 저장된 모습을 그린 걸까 아님 훔쳐 보며 그렸나? (비록 일하는 사람이라도)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듯 기품있는 표정과 몸짓들로 그려진다.
그의 그림들에선 자극 없이 조화로운 색조 그리고 비춘다기 보다는 공간에 녹아든 빛의 표현에서 신비 체험을 하게 된다.
※ 아래, 매우 비슷한 장면의 그림 하나,
역시 식탁보를 정리하다 말고 편지부터 읽는다.
편지 들고 있는 팔에 힘이 느껴지고
흐믓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소녀에게 집중된 빛이 마음을 보여준다.
A Reading a Letter, 1665
Gerard ter Borch the younger (1617–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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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페르메에르의 편지 작품 하나 더
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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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처음으로 편지란 걸 받고 위 그림 처럼 역시 창가에 서서 편지 읽던 내모습도 소환된다.
상상이나 환상을 자극할 내용은 1도 없는 조금은 지루한 일상 이야기였으나, 귀찮다고 무시하기엔 (어린 마음에도) 그 정성이 가상하여 답문을 보낸 것 같다. 은근히 답장도 기다려졌다.
편지랍시고 쓴 건 아마 6학년 어버이날이 최초일듯. 비록 선생님의 강요에 의해 썼지만 엄마아빠는 충분히 감동하셨던 거 같다. 이후 스승의 날과 함께 연례행사였다. 라떼엔 ‘사랑’은 연애용 단어이고 부모님과 스승님에겐 겨우 '은혜에 감사한다'고 쓰는데도 참 쑥스러운 수행과제였다. 것도 담임의 검열을 받아야 하니...ㅎ 강요된 편지는 또 있었는데, 바로 위문편지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국군장병아저씨께'의 왁구로 한통씩 써야 했다. 실체도 없는 존재를 감동시켜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렇게 중1 여중생의 영혼 1도 없었을 편지도 위문 꾸러미에 담겨 보내졌을 터인데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우리 반에 배달된 유일한 답장인데다 그 두툼한 부피에 놀랐다. 미지로부터의 편지라니 신기방기한듯 애들이 몰려들어 보고 싶어 했으나, 개봉치 않고 집에 가져와 창가의 위 여자처럼 진지하게 봤던 거 같다.
곡성출신이고 전남대 다니다 전방에 왔으며 병장이라고 했다. 헉~그럼 나이가? ‘중딩 눈높이 맞춤’은 커녕 유우머나 위트는 눈씻고 봐도 없었지만, 장장 석 장 분량에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잘 쓴 필체였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거나 마냥 굴러다니게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기에 답장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 번의 편지 교환이 더 있었지만 흑심이나 요즘 유행의 가스라이팅은 없는, 아주 담박한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후 가타부타 말없이 소식이 끊겼다. (아마 전역했거나 제한적 소재로 흥미 상실?)
그는 왜 목적도 없는 편지를 보냈을까? 얼굴도 모르는 아이한테 장문의 편지를 보낼만큼 쓰기에 진심이었을까. 위 그림에서 보듯 '동작 그만 편지 부터~'읽는 받은 자의 마음 처럼 쓰는 자도 가장 자기 자신에 충실한 시간이지 않을까.
편지 중단 이후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게 살짝 변화가 일었다. 일기를 쓰게 되었다. 전과 달리 쓰는 일이 귀찮지 않았다. 지금 잡글이라도 쓸 수 있는 건 순전히 그 군인 아저씨의 공헌인 셈이다.
돌이켜 보면 연애 편지도 참 많이 썼고 업무상 편지도 간간이 썼던 거 같다. 이젠 카톡 등 디지털 신호로 바로 소통한다. 편리한 소통이고 이모티콘을 남발들 하며 마음을 전하지만 어차피 축약스타일이니 건조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손편지의 진정성을 대체하진 못하는거 같다. 아날로그일 때 마음이 더 '찐'하다.
콘스탄틴 마코프스키, 러시아인, 사실주의
Breton Girl Reading a Letter
Konstantin Makovsky (1839–1915)
The Love Letter, 1913
John William Godward(186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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