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울산 작은 돌 사랑
신 진 기
이런 말이 있다. 꽃은 달력이고, 바람은 손님이다. 새 달력의 활자들이 웃으며 하얗게 꽃으로 피는 봄날이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도 불쑥 들어서는 손님 같은 바람이 바위 뒤에 숨어 운다. 울산에 살다 보니 풍경 모두가 기쁨으로 다가온다. 문수산에서 출발한 바위는 금강산으로 가려다 설악에 머물러 오늘도 흔들흔들 울산 자랑을 하고 있다. 반구대 절벽에 한 땀 한 땀 격 높은 침선 솜씨로 고래 그림 그려놓고, 천전리 각석에 선사시대 필법으로 고대 문자 새겨놓고, 그 정기 이어져서 신선이 노닐던 선바위 잉태했나 보다.
울산바위 전설은,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부른 데서 시작한다.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이라,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울산바위는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는 얘기다. 설악산 유람 길에 나섰던 울산 고을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울산 소유인데 신흥사가 차지했으니, 그 대가로 세를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울산은 돌과 사람이 하나가 된 지 어림잡아 수천 년 넘는다. 돌과 유서 깊은 고장 울산, 신석기 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유곡과 대곡의 공룡 발자국,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인구 비율 비로 수석 즐기는 사람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울산의 젖줄 태화강은 영남 알프스의 고산준령에서 시작하는데 첫 줄기는 최고봉 가지산에서 내려오는 언양천, 또 한 줄기가 백운산에서 시작하는 대곡천이다. 두 발원지 물과 만나 구르고 굴러 지천에 갖가지 형태를 빚어냈다. 집채만 한 돌, 절묘한 크기의 수석, 피부가 부드러운 만짐 돌, 어머니 지 담을 때 쓰는 누름돌, 책 읽고 글 쓸 때 가까이 두는 문진도 있다. 사연, 입암, 진목에 남한강, 농암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형. 질. 색이 조화를 이룬 특이한 작품이 많다. 남산사에 오면 수마가 절정에 다다른 소품 수석이 있다. 작은 돌이 옹골지다.
석단 선생의 지론은 나이 들어 한 손으로 쉽게 옮길 수 있고, 연출이 자유롭고, 부대 물도 간편한 작은 돌을 좋은 수석이라 했다. 돌이 나를 부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돌은 다스리는 것이 참 수석인의 자세란 얘기다. 작은 것은 크게 보고 큰 것은 작게 보는 것이 수석 감상의 한 방법이다. 옮기기 쉽고 갈무리하기 편하고 면적 작게 차지하는 작은 돌이야말로 현실에 적합한 수석 수집의 기본이 아닐까 여겨진다. 작은 것은 대충 생기면 멋이 없어 보통 수준 이상이라야 수집가의 손에 들어온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것이 작은 돌이다. 작다고 천하게 대접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선비의 문 방 오우가 붓, 벼루, 먹, 종이. 수석이 아닌가. 그분들은 마당에 정원석을 드려오고 여러 가지 돌을 모아 석가산도 만든다. 빼어난 작은 돌은 도포 자락에 넣어 봄꽃 꽃비가 흩뿌린 매화나무 아래 벗을 불러 매화 음 마시며 석담을 나눈다. 지금도 회원들이 이즈막에 새로 들어온 수석이 있으면 석우를 초청해 토론도 하고 자랑한다. 술값만큼 돌 가치 올라간다.
낙동 정맥 끝자락 남암 정맥에 이르러 활활 끓든 용암을 주전 정자에 보내 금사(金沙)와 만나고 물과 내통해 만물상 만들었다. 해일 일고 속 파도치면 인간 세상 구경하려 한도 없이 올라온다.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다듬어져 나머지 인생을 즐기듯 다양한 형태로 우리 품에 안긴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꽃바람 불면 서정적으로, 찬바람 불면 서사적으로, 태풍 불면 혼합형으로, 쉼 없이 밀고 당겨 걸작품 만든다고 오늘도 야단법석이다. 파도는 자는 날이 없다.
전국 석우들이 울산 수석 산지를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녀갔다. 지금은 단속한다. 팔십 년 대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사람들이 어항이나 장식용으로 자루에 담아 밀반출하다 보니 몽돌 보호 차원에 감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견물생심이라, 일반인도 마음이 동해서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봉지에 담아 간다. 단속 대상이다. 한두 점 때로는 빈손으로 오는 멋있고 여유가 있는 수석인은 예외다. 울산 작은 돌 사랑은 소유에서 벗어나 즐기는 석우, 인격 높은 수석인, 나를 내려놓는 사람들의 몫인가.
수석인은 동면이 없다. 아침저녁 온도 차가 많을수록 속 파도가 많이 친다. 겨울은 하루 평균 아침저녁 온도가 칠도 이상 차이가 난다. 북서풍 부는 계절도 십이월에서 이월사이다. 연중 많은 돌이 물 밖으로 나오는 시기도 겨울철이다. 날씨는 차갑지만, 확률이 높은 시기라, 경향 각지에서 울산 작은 돌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일박 이일은 기본이다. 덤으로 울산 수석인은 바빠진다. 찾아오는 벗에게 장소 안내, 먹거리 안내, 숙박 안내, 석실 탐방까지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그 멋은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버스 전세 얻어 가족과 회원이 섣달그믐에 와서 탐석하고 거나하게 한잔하며 지난 얘기를 나눈다, 새해 첫날 동해의 찬란한 일출을 보고 작은 돌 찾는다. 어떤 단체는 정기 탐석을 주전과 정자 지역으로 정해 자주 찾는다. 판매하는 가게 문지방도 자주 넘나든다. 촉박한 시간 때문이다. 어디까지 취미이니 많은 시간을 쏟아 붓지 못한다. 대신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것을 염탐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돈 아닌가.
울산 작은 돌 사랑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세세연년 이어져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다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고 싶은 거창한 곳이요, 신출 기묘한 예술가요. 어머니 품이다. 그곳에서 출몰한 작은 명품은 우리의 자식이 아닐까.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소임이 아닐지, 울산 작은 돌 사랑 끝이 어디 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