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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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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Agalmatolite Reliquary from the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from Seongnamamsa Temple Site, Sancheong
국보 제233호 전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2014년 국보 동산 앱사진)
유물 / 불교공예 / 사리장치 |
1점 |
1986.10.15 |
부산 남구 유엔평화로 63, 부산시립박물관 (대연동,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
공유 |
부산시립박물관 |
문화재 설명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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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국보233_영태2년명납석제호_이미지_전체1_경상남도_미술.jpg시대통일신라연대766년(혜공왕2년, 당(唐) 대종(代宗) 영태(永泰)2년)유형함명·향완명크기사리호 크기 높이 14.5cm, 입지름 9.0cm, 몸지름 12.3cm소재지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부산박물관서체행서(行書)찬자 /각자 /서자미상 / 미상 / 미상지정사항국보연구정보 바로보기 다운로드
국립문화재연구원이(가) 개방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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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이 조상기(造像記)는 혜공왕(惠恭王) 2년(766)에 조성되었다. 본 자료는 경남 산청군(山淸郡) 삼장면(三壯面) 내원리(內源里) 산등성이의 암자터에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상(石造毘盧遮那佛像)의 대좌(臺座)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1947년 경에 원 절터에는 석조 연화대좌(蓮花臺座)만 남고 불상은 절터에서 반출되어 6·25후 산 서남쪽 계곡에 있는 내원사(內院寺)에 이안(移安)되었다고 한다. 그 불상의 대좌 속에서 6·25 직후 주민들에 의해 사리호(舍利壺)가 발견되었고 이는 여러 경로를 거쳐 한참 후에 부산시립박물관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본 자료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만든 조상기(造像記)인데, 불상에 사리를 모시기 위해 대좌 속에 본 자료를 새긴 납석제 사리호(舍利壺)를 봉안하고 다시 그 안에 청동제 사리용기(舍利容器)를 넣어 사리장치를 이루었다. 사리호의 크기는 높이 14.5cm 입지름 9.0cm 몸지름 12.3cm인데, 호의 몸통을 돌아가며 15행에 걸쳐 모두 136자의 행서체 명문(銘文)을 새기고 호의 저면(底面)에도 4행 21자의 명문을 새겼다. 자료의 찬자와 서자는 미상이다.본 조상기는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을 조성한 사실과 불상을 조성하며 서원(誓願)한 발원문(發願文)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본 자료는 766년에 제작된 석조비로자나불상을 기록으로 보여줌으로써 세계 최고(最古)의 비로자나불상 제작례를 확인해준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된다(姜友邦). 그리고 이 시기에 드물게 보이는 많은 이두자를 새로이 보여주어 국어학적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자료이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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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문 정병삼
영태(永泰) 2년 병오 7월 2일에 석 법승(法勝)과 석 법연(法緣) 두 승은 함께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石造毘盧遮那佛)을 이루어 무구정광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사(石南巖寺)의 관음암(觀音巖)에 둔다. 원하여 바라는 것은 두온애랑(豆溫愛郞)의 영신(靈神)이나 두 승려나 이것을 본 사람이나 향하여 정례(頂禮)한 사람이나 멀리서 들은 사람이나 수희(隨喜)하는 사람이나 그림자 가운데를 지나간 이나 불어서 지나간 바람이 지나간 곳의 모든 곳에 있는 일체의 중생이나 일체 모두의 삼악도(三惡道)의 업이 소멸하여 스스로 비로자나불인 것을 깨닫고 세상을 뜨도록 다짐하는 것이다.호(壺) 안에 있다. 이것은 은혜를 항성(恒性)으로 삼는 것이다. 두 개 반의 약은 도로 꺼내어 병을 쫓을 것.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판독문 남풍현
永泰二年丙午七月二日」석法 勝法緣二僧并」 內 奉過去爲飛賜豆溫哀」 郞願爲石毘盧遮那佛」 成內無垢淨光陀羅尼幷」 石南巖藪觀音巖中」 在內如 願請內者豆溫」 愛郎靈神賜那二僧等那」 若見內人那向厼頂禮爲那」 遙聞內那隨喜爲內那」影中逕類那吹厼逕風」 逕所方處一切衆生那一切」 皆三惡道業滅厼自毘盧」 遮那是等覺去世爲厼誓」 內之」 (底面) 內物是在之」 此者恩等恒性爲」 二個反藥者還」 病口爲逐」
판독문 정병삼
(表面) 永泰二年1丙午七月二日」 釋法勝法緣二僧幷2」 內3奉過去爲飛賜4豆溫哀5」 郎6願爲7石毘盧遮那佛」 成內8無垢淨光陀羅尼幷9」 石南巖10 藪11 觀音巖12 中13」 在內如14 願請內者15豆溫」 愛郞靈神16 賜那17 二僧18那」 若19 見內20人那向厼21 頂禮爲那」22 遙聞內那隨喜爲內那」 影中逕類23那吹厼逕風24」 逕所方處一切衆生那一切」 皆三惡道25業滅厼26自毘盧」 遮那是27术覺去世爲厼28誓」 內之29」 (底面) 內物是在之30」 此者恩术恒性爲31」 二介反32藥者」 還病▨爲33逐」
판독문 황수영
永泰二年丙午七月二日」 釋法勝法緣二僧并」 內奉過去爲夫豆溫哀」 郞願爲石毗盧遮那佛」 成內無垢淨光陀羅尼并」 石南巖藪觀音巖中」 在內如願請內者豆溫」 愛郞靈神那二僧木那」 若見內人那向尔頂禮爲那」 遙聞內那隨喜爲內那」 影中𨒬䫉那吹尔𨒬風」 𨒬所方處一切衆生那一切」 皆三惡道業滅尔自毗盧」 遮那是等覺去世爲尔誓」 (底面) 內物是在之」 止者思木博推爲」 ▨▨反藥者」 ▨▨▨▨▨」
판독문 박경원 ·정원경
永泰二年丙午七月二日」 釋法勝法緣二僧并」 內奉過去爲兂豆溫哀」 郞願爲石毗盧遮那佛」 成內無垢淨光陀羅尼并」 石南巖藪觀音巖中」 在內如願請內者豆溫」 愛郞靈神那二僧术那」 若見內人那向尓頂礼爲那」 遙聞內那隨喜爲內那」 影中𨒬䫉那吹尓𨒬風」 𨒬方一切象生那一切」 皆三惡道業滅尓自毗盧」 遮那是等覺去世爲尓誓」 內之」 (底面) 內物是在之」 止者思木博推爲」 ▨▨反藥者」 ▨▨▨▨▨」
판독문 박경원
永泰二年丙午七月二日」 釋法勝法緣二僧并」 內奉過去爲豆溫哀」 郞爲石毗盧遮那佛」 成內無垢淨光陁羅尼并」 石南巖藪觀音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