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정」[유호인]
岳陽亭-兪好仁- |
Akyangjeong Pavilion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작품/문학 작품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
조선/조선 전기 |
최석기 |
[정의] 1490년경 유호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정여창의 은거지 악양정을 두고 읊은 차운시. [개설] 「악양정(岳陽亭)」은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뇌계집(㵢溪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일두집(一蠹集)』 권3의 시장(詩章)에 수록되어 전한다. 「악양정」의 서문을 보면, 정여창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근무할 때 함께 세자를 모시고 강의를 하였다고 하였으니, 유호인도 세자시강원의 직책을 맡고 있었던 듯하다. 정여창이 세자시강원설서가 된 것은 1490년(성종 21) 12월이었으니, 「악양정」을 지은 시기도 그때쯤일 것이다. 정여창은 벼슬에서 물러나 자신의 은거지인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심경을 토로하며 두보(杜甫)[712~770]의 「복거(卜居)」에 차운하여 시를 짓고, 유호인에게 화답시를 요구하였다. 이에 유호인이 화답시로 「악양정」을 지은 것이다. 유호인의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뇌계(㵢溪),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경상남도 함양 출신으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이 되고,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奉常寺副奉事)를 거쳐 1478년(성종 9) 사가독서한 뒤 1480년(성종 11)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 공조좌랑을 지내고, 1486년(성종 17)에 검토관을 거쳐 이듬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홍문관교리로 있다가 1488년(성종 19) 의성현령으로 나갔다. 시를 잘 지어 글을 좋아하는 성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94년(성종 25) 사헌부장령을 거쳐 합천군수로 재직 중 병으로 사망하여 경상남도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술로 『뇌계집』이 있다. 정여창은 유호인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이며, 동향의 벗이다. 39살 때인 1488년 섬진강 가에 악양정을 짓고 살다가 이후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천거로 출사하였다. 악양정은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정여창의 은거지를 가리킨다. [구성] 칠언 율시의 구성법에 맞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악양정」 앞에 긴 서문이 있는데, 유호인이 세자시강원에 근무할 때 악양정 주위의 경치와 함께 정여창이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뜻을 듣고서 정여창의 시에 차운해 짓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유호인은 악양정에 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정여창으로부터 악양정의 풍경에 대해 듣고서 그 산수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벗 정여창이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미련의 ‘서연(書筵)’은 세자시강원의 강연을 말하는 것으로, 하루에 세자가 세 번씩 만나기를 재촉하기 때문에 정여창은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저버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여창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악양정에는 빈 배에 달빛만 가득할 것이라고 읊은 것이다.
‘두곡(杜谷)’은 당나라 때 두씨(杜氏)가 살던 섬서성 장안현에 있는 종남산 기슭을 말한다. 두씨가 종남산 기슭에서 대대로 살아 붙여진 이름인데, 산수가 아름다워 묻혀 살 만한 곳의 대표적인 장소로 일컬어졌다. 또 ‘망천(輞川)’은 당나라 때 시인 왕유(王維)[699~759]가 은거하던 산수가 빼어난 곳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의 대명사로 쓰인다.
[내용]
일국귀심천진두(一掬歸心天盡頭)[하늘 끝 맞닿은 곳으로 돌아가고픈 한 줌 마음]
악양무처불청유(岳陽無處不淸幽)[악양은 한 곳도 맑고 그윽하지 않은 데 없다지]
운천력력편공흥(雲泉歷歷偏供興)[운무에 덮인 산수 깨끗하여 자꾸 흥을 돋우건만]
헌면유유야기수(軒冕悠悠惹起愁)[벼슬길에 있다 보니 근심만 꾸역꾸역 일어나네]
두곡림당춘일난(杜曲林塘春日暖)[두씨 살던 종남산 숲 속 연못 봄날이 따뜻했고]
망천연우모산부(輞川烟雨暮山浮)[왕씨 망천은 안개비 속에 저무는 산이 솟았네]
서연매피최삼접(書筵每被催三接)[서연에서 하루에 세 번 만나길 매번 재촉하니]
고부정전월만주(辜負亭前月滿舟)[뜻이 어긋나 악양정 앞엔 달빛만 빈 배에 가득]
[특징] 두보의 칠언 율시 「복거」에 차운한 시이므로, ‘두(頭)’, ‘유(幽)’, ‘수(愁)’, ‘부(浮)’, ‘주(舟)’를 운자로 그대로 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악양정」은 정여창이 은거지 악양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악양정의 풍경을 상상해 노래한 유호인의 차운시로, 정여창과 악양정의 정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정여창, 『일두집(一蠹集)』(『한국문집총간』15, 한국고전번역원)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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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甫卜居注音版
卜居
[作者] 杜甫 [朝代] 唐
浣花流水水西头,主人为卜林塘幽。
已知出郭少尘事,更有澄江销客愁。
无数蜻蜓齐上下,一双鸂鶒对沉浮。
东行万里堪乘兴,须向山阴上小舟。
卜居
[作者] 杜甫 [朝代] 唐
归羡辽东鹤,吟同楚执珪。
未成游碧海,著处觅丹梯。
云障宽江左,春耕破瀼西。
桃红客若至,定似昔人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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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정여창]
岳陽-鄭汝昌- |
Akyang by Jeong Yeochang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작품/문학 작품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
조선/조선 전기 |
윤호진 |
[정의] 1489년 정여창이 자신의 은거지인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의 정경을 읊은 한시. [개설] 「악양(岳陽)」은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문집인 『일두집(一蠹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정여창은 1489년(성종 20) 4월 14일부터 4월 28일까지 15일 동안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동행하여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일손이 “큰 산을 둘러보았으니 악양으로 가서 큰 강물을 보고 싶다”고 하니, 이에 정여창은 자신의 은거지가 있는 하동군의 악양으로 길을 잡아 함께 동정호를 구경하였다. 「악양」은 이때 하동군 악양으로 가며지리산을 둘러 본 감회를 읊은 것이다. 이때의 유람은 김일손의 「속두류록(續頭流錄)」에 전한다. [구성] 칠언 절구의 구성법에 맞게 지은 한시이다. 기구에서는 강가의 부들 풀이 살랑살랑 가볍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광경을 묘사하였고, 승구에서는 초여름 계절적 배경과 함께 화개 땅에 보리가 이미 누렇게 익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구에서는 자신이 악양에 이르기 전에 이미 두류산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보았음을 말하였고, 결구에서는 앞으로의 추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내용]
풍포범범롱경유(風蒲泛泛弄輕柔)[부들 풀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리는데]
사월화개맥이추(四月花開麥已秋)[사월 화개에는 보리가 벌써 익었네]
간진두류천만첩(看盡頭流千萬疊)[두류산의 수많은 골짜기 모두 돌아보고]
고주우하대강류(孤舟又下大江流)[외로운 배로 또 큰 강을 내려오네]
제1구의 ‘풍포(風蒲)’는 부들 풀에 바람이 부는 것을 말하고, ‘범범(泛泛)’은 다른 곳에서는 ‘엽엽(獵獵)’이라 되어 있기도 한데, 모두 바람이 약하게 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제2구의 ‘화개(花開)’는 하동에 있는 마을 이름이며, ‘맥이추(麥已秋)’라는 것은 보리가 이미 가을 풀이 누렇게 시들듯이 익어 있다는 말이다. 제3구의 ‘두류(頭流)’는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두류산을 말하고, ‘천만첩(千萬疊)’은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를 뜻한다. 제4구는 화개에 이르러 배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악양까지 내려가는 과정을 말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악양」은 표면적으로는 두류산을 구경하고 하동군의 화개를 거쳐 악양에 이르러 지은 유람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면에는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크고 넓은 세계로 향하는 학문적 구도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일두집』 속집의 다른 시가 알려지기 전까지 정여창의 유일한 한시로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정여창의 내면의 학문적 경지를 보여 주는 한시로서 유학자가 지은 시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정여창의 「악양」은 동행자였던 김일손을 비롯하여, 이후 지리산 청학동으로의 유람 시 하동 악양에 이르렀던 수많은 유학자들의 차운시를 남기게 하였다.
[참고문헌] 『일두집(一蠹集)』 최석기 외,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돌베개, 2000) 강정화 외, 『지리산 한시 선집, 청학동』(보고사, 2009) 강정화 외, 『지리산, 인문학으로 유람하다』(보고사, 2010)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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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纓先生文集續上 / 詩○七言絶句 / 與鄭伯勖 汝昌 同遊頭流。歸泛岳陽湖。己酉
성종 | 20 | 1489 | 기유 | 弘治 | 2 | 26 | 4월, 藍溪에 가서 鄭汝昌을 방문하고 함께 頭流山을 유람하다.〈頭流紀行錄〉 |
滄波萬頃櫓聲柔。滿袖淸風却似秋。回首更看眞面好。閒雲無跡過頭流。
附
風蒲獵獵弄輕柔。四月花開 地名 麥已秋。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鄭伯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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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蠹先生遺集卷之三 / 附錄 / 詩章
花開洞。憶先生遺跡。盧禛
行趁淸和綠正柔。睡翁來往幾經秋。斜陽立馬尋頹址。山自盤回水自流。
화개동(花開洞)에서 선생의 자취를 보고 그리움이 일어 [노진(盧禛)]
나들이 간 청명한 날 푸른 잎 부드러운데 / 行趁淸和綠正柔
수옹이 거닐던 시절은 몇 해나 흘렀던가 / 睡翁來往幾經秋
해거름에 말을 세우고 선생의 유허를 찾으니 / 斜陽立馬尋頹址
산은 저대로 굽이돌고 물은 저대로 흐르는구나 / 山自盤回水自流
玉溪先生文集卷之一 / 詩○七言絶句 / 花開洞口。憶一蠧先生。因用其韻。附元韻
行趁淸和綠正柔。睡翁來往幾經秋。斜陽立馬尋頹址。山自盤迴江自流。
睡翁鄭先生自號之一。而嘗卜居于是故云。
風蒲泛泛弄輕柔。四月花開麥已秋。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
一蠧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