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연인
이정환
‘불멸의 연인’을 보았다. 베토벤 탄생 2백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불멸의 연인』. 베토벤의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과 연인에 대한 열정을 밀도 높게 그리고 있다.
베토벤은 일생을 두고 세 여인을 사랑했다. 줄리아 갈렌버그, 안나 마리, 그리고 조안나. 그런데 죽기 전 써 둔 유언장엔 모든 것을 ‘영원한 연인’ 앞으로 남긴다고 했다. 영원한 연인, 불멸의 연인은 대체 누구란 말일까.
베토벤과 사랑에 빠져 함께 사랑의 도피를 꿈꾸었던, 그러나 폭풍우 속에서 마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끝에 종내 영원한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불멸의 연인’은?
같은 나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는 루 살로메가 있었다. 열네 살이나 연상인 여류 문필가 루 살로메. 그를 만난 릴케는 훗날『그대의 축제에』라는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담은 시집을 낸다. 불꽃과도 같은 신비주의적인 언어로 표현해낸 한 권의 시집을.
우리의 시인 소월의 시 전편을 꿰뚫고 흐르는 정한의 세계, 그 수면 아래엔 역시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 밟고 간 여인의 진다홍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어 그 애절함을 더하지 아니 하던가.
예술가의 가슴에 제각기 하나씩의 분화구가 있다고 가정해 볼 때 그 분화구에 불길이 치솟을 수 있도록 불씨를 던져 넣는 일은 온전히 연인의 몫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글거리는 불길이 끊임없이 치솟는 활화산, 그 활화산이 마침내 빚은 예술의 높은 봉우리.
이렇듯 꺼질 줄 모르는 불을 지핀 연인들. 실로 그들이 있었기에 불후의 명작이 빛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혹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뛰어난 예술가라면 내면 깊숙이 물어보라. 당신의 안에 은밀히 자리 잡고 있는 불멸의 연인은 과연 누구일까 하고. 불타오르는 영감의 발원지가 대체 어디인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