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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Taze Russell
차알즈 태이즈 럿셀
In 1870, as an 18-year-old businessman in Allegheny, Pennsylvania, Charles Taze Russell, together with his father Joseph and some friends formed a class for Bible study.49 The group was formed as an outgrowth of Russell’s contacts with some of the former Millerites mentioned above, especially Jonas Wendell, George Storrs, and George Stetson. Wendell, a preacher from the Advent Christian Church in Edenboro, Pennsylvania, had visited Allegheny in 1869, and by chance Russell went to one of his meetings and was strongly impressed by Wendell’s criticism of the hellfire doctrine. Russell had been brought up a Calvinist, but had recently broken with this religious background because of his doubts in the predestination of the 2,520 years and hellfire doctrines. He was in a serious religious crisis at this time and even questioned if the Bible really was the word of God. His meeting with Wendell and his subsequent reading of Storrs’ magazine, the Bible Examiner, restored his faith in the Bible. Articles published in this magazine seem to have been regularly discussed in Russell’s study group. Although Russell knew that some Adventists, including Jonas Wendell, expected Christ in 1873, he himself rejected the whole concept of time settings and fixing of dates. Then, in 1876, he began to alter his position: It was about January, 1876, that my attention was specially drawn to the subject of prophetic time, as it relates to these doctrines and hopes. It came about in this way: 1870년, 펜실베이니아 앨러게니에서 18세의 사업가인 찰스 태이즈 러셀은 그의 아버지 조셉과 몇몇 친구들과 함께 성서연구모임을 결성하였다.49 이 모임은 러셀이 위에서 언급한 몇명의 전 밀러파 사람들, 특히 조나스 웬델, 조지 스토어스, 조지 스톤과 접촉하면서 결성되었다. 1869년 펜실베이니아 에덴보로 어드벤트 크리스천 교회의 전도사인 웬델은 알레게니를 방문했고, 우연히 러셀은 그의 모임 중 한 곳에 갔고, 지옥불 교리에 대한 웬델의 비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러셀은 칼뱅주의자로 자랐지만, 2,520년의 예정과 지옥불 교리에 대한 회의 때문에 이 종교적 배경에서 결국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심각할 정도로 신앙의 위기에 처했으며,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의심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웬델과의 만남과 스토어스의 잡지인 <성서 검토자>를 꾸준히 독서한 결과 성경에 대한 그의 믿음은 회복되었다. 이 잡지에 실린 기사들이 러셀의 연구 그룹에서 정기적 토론의 주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러셀은 조나스 웬델을 포함한 몇몇 재림주의자들이 1873년에 예수의 재림을 기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자신은 연대 설정이나 바뀌는 연대교리에 대한 모든 것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 후 1876년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1876년 1월쯤, '예언된 때'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쏠린 것은 그것이 이러한 교리와 희망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I received a paper called The Herald of the Morning, sent by its editor, Mr. N. H. Barbour?50 Russell states he was surprised to find that Barbour’s group had come to the same conclusion as his own group about the manner of Christ’s return—that it would be “thieflike, and not in flesh, but as a spirit-being, invisible to men. 나는 아침의 전령이라는 신문을 받았다. 편집자 넬슨 H. 바버씨가 보낸 것이었다.50 러셀은 바버의 그룹이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의 방식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서 놀랐다.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적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도적 같이" 온다는 것이었다. Russell at once wrote to Barbour about the chronology, and later in 1876 he arranged to meet him in Philadelphia where Russell had business engagements that summer. 러셀은 즉시 바버에게 연대기에 대해 편지를 썼고, 1876년 후반기에 러셀은 그해 여름에, 사업 계약을 했던 필라델피아에서 바버를 만나기로 했다. Russell wanted Barbour to show him, “if he could, that the prophecies indicated 1874 as the date at which the Lord’s presence and ‘the harvest’ began.” “He came,” says Russell, “and the evidence satisfied me.”51 러셀은, "만약 가능하다면, 성서의 예언들은, 1874년이 주의 계시와 '추수'가 시작된 날짜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바버가 자신에게 증거를 제시하여 주기를 원했다. 바버를 만난 후, "그분이 오셨다." "그리고 그 증거는 나를 만족시켰다"라고 럿셀은 말했다.51 It is apparent that during these meetings Russell accepted not only the 1874 date but all of Barbour’s time calculations, including his calculation of the Gentile times.52 While still in Philadelphia, Russell wrote an article entitled “Gentile Times: When do They End?” which was published in George Storrs’ periodical the Bible Examiner in the October 1876 issue. Referring to the “seven times” of Leviticus 26:28, 33 and Daniel 4 on page 27 of the Examiner, he determines the length of the Gentile times to be 2,520 years which began in 606 B .C.E. and would end in 1914 C.E.—precisely the same dates Barbour had arrived at and had begun publishing a year earlier, in 1875. 이 만남에서 러셀은 1874년 연대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때에 관한 바버의 모든 연대 계산을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다.52 필라델피아에 있는 동안 러셀은 "이방인의 때, 언제 끝나는가?": 1876년 10월호 조지 스토어스의 정기 간행물에 실린 <성서 검토자> 27면의 레위기 26:28, 33, 다니엘 4장의 "7 때"를 언급하며, 그는 기원전 606년에 시작하여 서기 1914년 정확히 같은 날짜에 끝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1875년 초에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
Looking forward to 1914
1914년을 고대함
What, exactly, would the end of the “Gentile times” mean for mankind? Although monumental events relating to Christ’s return were proclaimed to have taken place in 1874, these were all said to be invisible, occurring in the spirit realm unseen by human eyes. Would 1914 and the termination of the Gentile times be the same, or would it bring visible, tangible change for the earth and for human society on it?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는 것은 인류에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의 돌아오심과 관련된 기념비적인 사건들이 1874년에 일어났다고 선언되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곧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땅과 인간 사회에 가시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In the book The Time is at Hand, published in 1889 (later referred to as Volume II of Studies in the Scriptures), Russell stated that there was “Bible evidence proving” that the 1914 date “will be the farthest limit of the rule of imperfect men.” What would be the consequences of this? Russell enumerated his expectations for 1914 in seven points: 러셀은 1889년에 출판된 《때는 가까왔다》라는 책에서 1914년의 연대가 불완전한 인간 통치의 맨 마지막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인가? 러셀은 1914년에 대한 그의 기대를 7가지 점으로 열거했다: Firstly, That at that date the Kingdom of God ... will have obtained full, universal control, and that it will then be ‘set up,’ or firmly established, in the earth.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날에...우주적이며 완전한 통치권을 얻게 될 것이며, 그 다음 땅에 '설립'되어 확고히 세워질 것이다. Secondly, It will prove that he whose right it is thus to take dominion will then be present as earth’s new ruler ... 둘째, 그렇게 해서 통치권을 갖는 권리를 가진 자가 지구의 새로운 통치자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Thirdly, It will prove that some time before the end of A. D. 1914 the last member of the divinely recognized Church of Christ, the ‘royal priesthood,’ ‘the body of Christ,’ will be glorified with the Head ... 셋째, 서기 1914년이 끝나기 직전에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몸'이 머리와 더불어. . .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점이 증명될 것이다. Fourthly, It will prove that from that time forward Jerusalem shall no longer be trodden down of the Gentiles, but shall arise from the dust of divine disfavor, to honor; because the ‘Times of the Gentiles’ will be fulfilled or completed. 넷째, 그 무렵부터, 이방인의 때가 차서 완료될 것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더는 이방인들게 짓밟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어설 것이다. . . Fifthly, It will prove that by that date, or sooner, Israel’s blindness will begin to be turned away; because their ‘blindness in part’ was to continue only ‘until the fulness of the Gentiles be come in’ (Rom. 11:25) ... 다섯째는, 머지 않아 그날까지 이스라엘의 눈멈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언이 입증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분적 눈멈'은 오직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롬 11:25) . . . Sixthly, It will prove that the great ‘time of trouble such as never was since there was a nation,’ will reach its culmination in a worldwide reign of anarchy . . . and the ‘new heavens and new earth’ with their peaceful blessings will begin to be recognized by trouble-tossed humanity. 여섯째, 그것은 '나라가 있었던 이래로 없었던 환난의 때'가 전세계적인 무정부 상태에서 절정에 이를 것이고, 평화로운 축복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은 환난에 시달린 인류에 의해 감사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것이다. Seventhly, It will prove that before that date God’s Kingdom, organized in power, will be in the earth and then smite and crush the Gentile image (Dan. 2:34)—and fully consume the power of these kings.53 일곱째, 그것은 권능으로 조직된 하나님의 나라가 그 날이 오기 전에 지상에 세워지게 될 것이며 이방인의 이미지는 무찔러지고 짓밟혀 사라지게 될 것이다(단 2:34).- 이 열왕들의 힘은 완전히 소모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53 These were indeed very daring predictions. Did Russell really believe that all these remarkable things would come true within the next twenty five years? Yes, he did; in fact, he believed his chronology to be God’s chronology, not just his own. In 1894 he wrote of the 1914 date: 이러한 예측들은 정말로 매우 대담한 것이었다. 러셀은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이 다가올 25년 안에 실현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는가? 아마 그럴 수도 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연대기를 단지 자신의 연대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연대기라 주장하였다. 1894년 그는 1914년 연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We see no reason for changing the figures—nor could we change them if we would. They are, we believe, God’s dates, not ours. But bear in mind that the end of 1914 is not the date for the beginning, but for the end of the time of trouble. 54 우리는 연대의 수치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ㅡ뿐만 아니라, 우리가 변경시키고 싶어도 변경시킬 수도 없다. 그 연대는 하나님의 시간이지 우리가 정한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1914년의 끝은 시작을 의미하는 연대가 아니라, 문제의 때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4 Thus it was thought that the “time of trouble” was to commence some years before 1914, “not later than 1910,” reaching its climax in 1914.55 In 1904, however, just ten years before 1914, Russell altered his view on this matter. In an article in the July 1, 1904 issue of Zion’s Watch Tower, entitled “Universal anarchy—just before or after October, 1914 A.D.,” he argued that the time of trouble, with its worldwide anarchy, would begin after October, 1914: 그러나 1914년이 오기 10년 전인 1904년에, 러셀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55 1904년 7월 1일자 시온의 파수대 기사에서, 그는 "전세계적인 무정부상태(Universal anarchy - 1914년 10월 전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세계적인 무정부상태와 함께, 환난의 때가 1914년 10월 이후에 시작될 것이라고 이렇게 주장했다: We now expect that the anarchistic culmination of the great time of trouble which will precede the Millennial blessings will be after October, 1914 A.D.—very speedily thereafter, in our opinion— ‘in an hour,’ ‘suddenly,’ because ‘our forty years’ harvest, ending October, 1914 A.D., should not be expected to include the awful period of anarchy which the Scriptures point out to be the fate of Christendom.56 우리는 이제 천년기의 축복이 도래하기 전의 사건인 큰 환난의 때의 절정인 무정부주의적 상태는 서기 1914년 10월 이후ㅡ그 후, 우리의 생각으로는 매우 빨리, '한 시간 안에', ' 갑자기'ㅡ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하면 서기 1914년 10월에 끝나게 되는 성서가 지적하는 그리스도교국의 운명인 끔찍한 무정부 상태의 기간이 40년 간의 추수기에 포함된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56 This change caused some readers to think that there might be other errors in the chronological system, too—one reader even suggesting that Bishop Ussher’s chronology might be more correct when it dated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s having happened in 587 B.C.E. rather than in 606 B.C.E. This would end the 2,520 years in about 1934 instead of 1914. But Russell strongly reaffirmed his belief in the 1914 date, referring to other claimed “time parallels” pointing to it: 이러한 변화는 일부 독자들에게 연대 계산에 다른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한 독자는 심지어 기원전 606년이 아닌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을 때 우셔 주교의 연대기가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것은 1914년 대신에 약 1934년에 2,520년의 기간이 만료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러셀은 1914년 연대에서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재확인하면서 다른 주장인 "때의 평행점"을 언급하였다: We know of no reason for changing a figure: to do so would spoil the harmonies and parallels so conspicuous between the Jewish and Gospel ages. 57 우리는 그 연대를 변경시킬 정당한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한다면, 유대인과 복음 시대 사이의 너무나 뚜렷한 조화와 평행성을 망치게 될 것이다. 57 Answering another reader, he said: 의문을 가진 다른 독자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The harmony of the prophetic periods is one of the strongest proofs of the correctness of our Bible chronology. They fit together like the cogwheels of a perfect machine. To change the chronology even one year would destroy all this harmony,—so accurately are the various proofs drawn together in the parallels between the Jewish and Gospel ages.58 연대에 관한 예언의 조화는 성경 예언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 그것들은 마치 완벽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꼭 맞아 떨어진다. 연대기를 1년이라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조화를 파괴할 것이다.ㅡ유대인 시대와 복음 시대 사이의 평행성에서 다양한 증거들이 함께 정확하게 그려지고 있다.58 These arguments were further backed up by articles written by the Edgar brothers of Scotland.59 이러한 논증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에드거 형제에 의해 쓰여진 기사에 의해 더욱 뒷받침되었다.59 |
Growing doubts
의문이 증가하다
So in 1904 Russell was still as convinced of his dates as he was in 1889, when he wrote that the understanding of these time features was the “sealing of the foreheads” mentioned at Revelation 7:3.60 그래서 1904년 러셀은 1889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데이터를 확신하고 있었는데, 이때 그는 때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요한계시록 7:3에서 언급된 "이마의 인침"이라고 기록했다.60 As the 1914 date drew nearer, however, Russell became more and more cautious in his statements. Answering an inquiring Bible student in 1907, he said that “we have never claimed our calculations to be infallibly correct; we have never claimed that they were knowledge, nor based upon indisputable evidence, facts, knowledge; our claim has always been that they are based on faith.”61 그러나 1914년이 가까와지면서 러셀은 점점 그의 연대 발표에 신중해졌다. 1907년 한 성서 연구생의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는 결코 우리의 계산이 틀릴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우리는 결코 그것들이 지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들이 명백한 증거, 사실,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항상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해 왔다.61 The dates no longer seemed to qualify as “God’s dates,” as he had stated thirteen years earlier; now they might be fallible. Russell even considered the possibility that 1914 (and 1915) could pass by with none of the expected events having occurred: 13년 전에 그가 말한 것과는 달리, 그 연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시간표"로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이제 그것은 틀릴지도 모른다. 러셀은 심지어 1914년 (그리고 1915년)이 예상한 사건이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했다: But let us suppose a case far from our expectations: suppose that A.D. 1915 should pass with the world’s affairs all serene and with evidence that the ‘very elect’ had not all been ‘changed’ and without the restoration of natural Israel to favor under the New Covenant. (Rom. 11:12, 15) What then? Would not that prove our chronology wrong? Yes, surely! And would not that prove a keen disappointment? Indeed it would! . . . What a blow that would be! One of the strings of our ‘harp’ would be quite broken! However, dear friends, our harp would still have all the other strings in tune and that is what no other aggregation of God’s people on earth could boast. 62 그러나 우리의 기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서기 1915년에 '택하신 자'가 '변화'되었다는 증거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세상이 고요하게 지나가며, 새 계약 아래서 육적 이스라엘이 은혜를 입어 회복되지 않는다면 (롬11:12, 15),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 우리의 연대기가 틀리지 않았는가? 물론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뼈아픈 실망감을 주지 않겠는가? 정말 그럴 것이다!... 정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우리 '하프'의 줄 중 하나가 완전히 끊어진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프의 다른 줄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다른 집단이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62 Another point of uncertainty was whether a year 0 (between 1 B.C.E. and 1 C.E.) was to be included in the calculation or not. This matter had been brought up by Russell as early as 1904, but gained in importance as the year 1914 approached. 또 다른 불확실한 점 한 가지는 0년(기원전 1년과 1년 사이)을 계산에 포함시킬지 여부였다. 이 문제는 1904년 러셀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1914년이 다가옴에 따라 더 중요해졌다. The 1914 date had been arrived at simply by subtracting 606 from 2,520, but gradually it was realized that no year 0 is allowed for in our present calendar of era reckoning. Consequently, from October 1, 606 B.C.E. to the beginning of January, 1 C.E. was only 605 years and 3 months, and from the beginning of January, 1 C.E. to October 1914 was only 1913 years and 9 months, making a total of 2,519 years, not 2,520. This would mean that the 2,520 years would end in October 1915, rather than October 1914.63 But when the war broke out in Europe in August 1914, it apparently seemed ill-timed to correct this error. It was allowed to stand. 1914년 연대는 단순히 2,520에서 606을 빼서 도출되었지만, 점차적으로 현재의 연대 계산 달력에서 0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기원전 606년 10월 1일부터 서기 1년1월 초까지는 605년 3개월에 불과했고, 1년 1월 초부터는 1914년 10월 초까지는 1913년 9개월에 불과해서, 도합 2,520년이 아닌 2,519년이 되었다. 이는 2,520년이 1914년 10월이 아니라 1915년 10월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1914년 8월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에, 이 오류를 시정할 연대가 1914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해는 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By 1913, with 1914 on the doorstep, the cautiousness regarding that year had increased. In the article “Let Your Moderation Be Known,” which appeared in the June 1, 1913 issue of The Watch Tower, Russell warned his readers against spending “valuable time and energy in guessing what will take place this year, next year, etc.” His confidence in his earlier published scheme of events was no longer evident: “This is the good tidings of God’s grace in Christ—whether the completion of the church shall be accomplished before 1914 or not.”64 He expressed himself still more vaguely in the October 15 issue of the same year: 1913년이되어, 1914년이 1년 후로 문턱에 바짝 가까이 다가오게 되자, 그 해에 대해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러셀은 파수대1913년 6월 1일자에 실린 "여러분, 절제의 성품을 나타내십시오!"라는 글에서 독자들에게 "올해, 내년 등에 일어날 일을 추측하는 데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64 그는 같은 해 10월 15일자에서 더 이상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1914년 이전에 교회의 완성이 이루어 질 것인지의 여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좋은 소식일 것이다."64 그는 같은 해 10월 15일자 파수대에서 여전히 이렇게 모호한 표현을 했다: We are waiting for the time to come when the government of the world will be turned over to Messiah. We cannot say that it may not be either October 1914, or October 1915. It is possible that we might be out of the correct reckoning on the subject a number of years. We cannot say with certainty. We do not know. It is a matter of faith, and not of knowledge.65 우리는 세계의 정부가 메시아에게 넘어갈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1914년 10월이나 1915년 10월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그 주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우리가 벗어나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른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65 Earlier, 1914 had been one of “God’s dates,” and “to change the chronology even one year would destroy all this harmony.” But now they “might be out of the correct reckoning on the subject a number of years,” and nothing on the matter could be said “with certainty” This was truly a volte-face! If it was indeed “a matter of faith,” one can only wonder in what or in whom that faith was to be based. 일찍이 1914년은 "하나님의 시간표" 중 하나였으며 "연대를 1년이라도 변경시키는 것은 이 모든 조화를 파괴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몇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다"며 태도를 바꾸었다. 이것은 정말 180도 변화된 태도였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믿음의 문제'였다면, 그 믿음이 무엇 또는 누구에게 기초해 있었는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다. Russell’s own tottering faith in his chronology was further brought to light in The Watch Tower of January 1, 1914, in which he stated: “As already pointed out, we are by no means confident that this year, 1914, will witness as radical and swift changes of dispensation as we have expected, “66 The article “The Days Are At Hand” in the same issue is especially revealing: 연대기에 대한 러셀 자신의 갈지자 걸음의 믿음은 1914년 1월 1일자 파수대에서 더욱 드러났고, 그는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는 올해 1914년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급진적이고 신속하며 은혜로운 변화를 목격할 것이라고 결코 확신하지 않는다."66 하지만 같은 호에서 "그 날은 가까이 다가왔다"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If later it should be demonstrated that the church is not glorified by October, 1914, we shall try to feel content with whatever the Lord’s will may be. . . . If 1915 should go by without the passage of the church, without the time of trouble, etc., it would seem to some to be a great calamity. It would not be so with ourselves. . . . If in the Lord’s providence the time should come twenty-five years later, then that would be our will. . . . If October, 1915, should pass, and we should find ourselves still here and matters going on very much as they are at present, and the world apparently making progress in the way of settling disputes, and there were no time of trouble in sight, and the nominal church were not yet federated, etc., we would say that evidently we have been out somewhere in our reckoning. In that event we would look over the prophecies further, to see if we could find an error. And then we would think, Have we been expecting the wrong thing in the right time? The Lord’s will might permit this.67 나중에 1914년 10월까지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의 뜻이 무엇이든 간에 . . . 만족하려고 할 것이다. 1915년이 교회의 완성 없이, 환난의 때가 없이 지나간다면, 어떤 이에게는 큰 실망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의 섭리에 따라 25년 후에 온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따라야 할 뜻일 것이다. 1915년 10월이 지나 우리가 여전히 우리 자신을 이곳에 있음을 보게 되고, 세상사가 현재와 같이 진행되고, 세상은 분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진전을 이루고 있으며, 큰 환난의 때가 오지 않으며, 명목상의 교회는 여전히 연합되지 않았으며, 등 . . . 예측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추정한 어딘가에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예언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어디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올바른 시기에 잘못된 것"을 예상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주의 뜻이라면 이를 허락할 것이다.67 Again, in the May 1, 1914 issue—forgetting his earlier statements about “God’s dates” and of “Bible evidence proving” that the predicted developments would occur in 1914—Russell told his readers that “in these columns and in the six volumes of STUDIES IN THE SCRIPTURES we have set forth everything appertaining to the times and seasons in a tentative form; that is to say, not with positiveness, not with the claim that we knew, but merely with the suggestion that ‘thus and so’ seems to be the teaching of the Bible.”68 1914년 5월 1일자 파수대에서, 러셀은 다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시간표"와 1914년에 예측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적 증거에 대한 그의 이전의 진술을 잊어버리고, "이 칼럼과 6권의 <성서 연구>에 우리는 시기와 때에 관련된 모든 것을 명시했다"고 말했다. 즉, 적극적인 긍정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주장도 아니라, 단지 성경의 가르침인 것으로 보이는 것에 '의해서' 제시하였다는 것이다.68 Two months later Russell seemed to be on the point of rejecting his chronology altogether. Answering a colporteur, who wanted to know if the Studies in the Scriptures were to be circulated after October, 1914, “since you [Russell] have some doubts respecting the full accomplishment of all expected by or before October, 1914,” Russell replied: 두달 후, 러셀은 그의 연대기를 완전히 폐기할 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러셀은 1914년 10월 이후 <성서 연구>가 회람될 것인지 알고자 했던 한 콜포처가 "당신 [러셀]이 1914년 10월 또는 10월 이전에 기대했던 모든 것의 성취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It is our thought that these books will be on sale and read for years in the future, provided the Gospel age and its work continue. . . . We have not attempted to say that these views are infallible, but have stated the processes of reasoning and figuring, leaving to each reader the duty and privilege of reading, thinking and figuring for himself. That will be an interesting matter a hundred years from now; and if he can figure and reason better, he will still be interested in what we have presented. 69 복음 시대와 그 사업이 계속된다면, 이 책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 판매되어 읽혀질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들이 틀릴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추리와 판단의 과정을 말함으로써, 각 독자들에게 읽고, 생각하고, 스스로 이해하는 의무와 특권을 맡겼다. 그것은 지금부터 100년 동안, 흥미로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더 잘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다면, 그는 여전히 우리가 제시한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69 Thus, by July 1914, Russell now seemed ready to accept the thought that the 1914 date probably was a failure, and that his writings on the matter were going to be merely of historical interest to Bible students a hundred years later! 그러므로, 1914년 7월까지, 러셀은 이제 1914년 연대가 아마도 실패일 것이고, 그 문제에 대한 그의 글은 100년 후에라도 성경 연구생들에게 단지 역사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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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Actually, Barbour hinted at the calculation already in the June, 1875 issue of Herald of the Morning, by stating that the Gentile times began with the end of reign of Zedekiah in 606 B.C., although he did not directly mention the terminal date (p. 15). In the July issue, he stated that the Gentile times would “continue yet forty years.” Although this seems to point to 1915, it is clear from the subsequent issues that Barbour had the year 1914 in mind. The August issue contains an article on “Chronology” (pp. 38–42), but the Gentile times are not discussed. The 1914 date is directly mentioned for the first time in the September, 1875 issue, where the following statement is found on page 52: “I believe that though the gospel dispensation will end in 1878, the Jews will not be restored to Palestine, until 1881; and that the ‘times of the Gentiles,’ viz. their seven prophetic times, of 2520, or twice 1260 years, which began where God gave all, into the hands of Nebuchadnezzar, 606 B.C.; do not end until A.D. 1914; or 40 years from this.” A lengthy discussion of the calculation was then published in the issue of October 1875, pp. 74–76.
48 비록 바버가 이방인의 때의 완료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는 1875년 6월호 <아침의 전령>(Herald of the Morning) 15면에서 기원전 606년 시드기아 왕조가 끝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미 연대 계산을 암시했다. 7월호에서 그는 이방인의 때가 "아직 40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이것이 1915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버가 1914년을 염두에 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들로부터 분명하다. <연대기> 8월호에는 (38~42면)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지만, 이방인의 때는 논의되지 않는다. 1914년 연대는 1875년 9월호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52면에서 "복음 시대의 은혜가 1878년에 끝나지만, 유대인들이 1881년까지 팔레스타인으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원전 606년, 느부갓네살에게 모든 것을 주신 때로부터 '이방인의 때'는 1260년의 두배인 2520년에 해당되는 일곱 때가 차는 해인 1914년이 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기 1914년, 또는 그로부터 40년이 지나야 비로소 이방인의 때가 만료된다는 것이다.' 계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1875년 10월호, 74-76면에 실렸다.
49 Charles’ parents, Joseph L. and Ann Eliza (Birney) Russell, were both of ScottishIrish descent. They had left Ireland during the great Irish famine of 1845–1849, when one and a half million people starved to death and another million emigrated abroad. Joseph and Eliza settled in Allegheny in 1846, where Charles was born in 1852 as number two of three children. As Eliza died in about 1860, Joseph had to take care of the upbringing of the children. As a youngster, Charles spent most of his leisure time in his father’s clothing store, and at an early age he became Joseph’s business partner. Their successful company, “J. L. Russell & Son, Gents’ Furnishing Goods,” finally developed into a chain of five stores in Allegheny and Pittsburgh.—For additional biographical notes on Russell, see M. James Penton, Apocalypse Delayed. The Story of Jehovah’s Witnesses (Toronto, Buffalo, London: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85, 1997), pp. 13–15.
49 찰스 태이즈 럿셀의 부모 조셉 L. 럿셀과 앤 엘리사(버니) 러셀은 둘 다 스코틀랜드 혈통이었다. 아일랜드 기근 때인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아일랜드에서 150만 명이 굶어 죽었고 또 다른 백만 명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 그때 그들 조셉과 엘리자베스는 아일랜드를 떠나 1846년 앨리게니에 정착했고, 찰스는 1852년 세 자녀 중 두 번째로 태어났다. 어머니 엘리사가 1860년경에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 조셉은 아이들의 양육을 돌봐야만 했다. 젊은 시절, 찰스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아버지의 옷가게에서 보냈고, 어린 나이에 조셉의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 그들이 성공한 사업체인 "J. L. Russell & Son, Gents' Furnishing Goods"는 마침내 앨러게니와 피츠버그에 있는 5개의 체인 상점으로 발전했다.—러셀에 대한 추가 전기는 Apacialisse Delayed M. James Penton을 참조하라. 여호와의 증인 이야기 (토론토, 버팔로, 런던: 토론토 대학교 출판부, 1985, 1997), 13-15면.
50 Zion’s Watch Tower, July 15, 1906, pp. 230, 231 (= Reprints, p. 3822).
50 시온의 파수대, 1906년 7월 15일 230, 231면(= 재판, 3822 면).
51 Ibid. In a two-page “Supplement to Zion’s Watch Tower,” sent out “To the readers of ‘Herald of the Morning” with the first issue of Zion’s Watch Tower and Herald of Christ’s Presence of July 1,1879, Russell gives an account of his meeting with Barbour and his associate John Paton in 1876 and their subsequent collaboration for the following three years in spreading the “Harvest message,” and explains why he had to break with Barbour in 1879 and start his own paper.
51 같은 책. 러셀은 1879년 7월 1일자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 지와 함께 <아침의 전령> 독자들에게 2페이지 분량의 '시온의 파수대 추가자료를 통해 바버와 그의 동료 존 패튼과의 만남과 그 이후의 3년 간의 협력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은 "추수에 관한 메세지"를 퍼뜨리고, 1879년 바버와 결별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글을 시작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52 This is also indicated by Russell himself who states: “ . . . when we first met, he had much to learn from me on the fulness of restitution based upon the sufficiency of the ransom given for all, as I had much to learn from him concerning time.” — Zion’s Watch Tower, July 15, 1906, p. 231 (= Reprints, p. 3822).
52 러셀 자신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가 연대에 대해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 기여한 충분한 대가를 고려하여 나에게서 보상받을 것이 많았다." —시온의 파수대, 1906년 7월 15일 231면(= 재판, 3822면).
53 C. T. Russell, The Time is at Hand (= Vol. II of the Millennial Dawn series; later called Studies in the Scriptures), Pittsburgh: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1889, pp. 77, 78. Some of the predictions were slightly changed in later editions.
53 C. T. 럿셀의, 때는 가까왔다(= 천년기 새벽 시리즈 II 권; 나중에 <성서 연구>라 불림), 피츠버그: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77, 78면. 일부 예측은 이후 판에서 약간 바뀌었다.
54 Zion’s Watch Tower, July 15, 1894 (= Reprints, p. 1677).
54 시온의 파수대, 1894년 7월 15일 (= 재판, 1677면).
55 Ibid., September 15, 1901 (= Reprints, p. 2876).
55 같은 책, 1901년 9월 15일(= 재판, 2876면)
56 Ibid., July 1, 1904, pp. 197,198 (= Reprints, p. 3389).
56 같은 책, 1904년 7월 1일(= 재판, 3389면).
57 Ibid., October 1, 1904, pp. 296, 297 (= Reprints, pp. 3436, 3437).
57 같은 책, 1904년 10월 1일, 296, 297면(= 재판, 3436, 3437면)
58 Ibid., August 15, 1904, pp. 250, 251 (= Reprints, p. 3415). Emphasis added.
58 같은 책, 1904년 8월 15일, 250, 251면(= 재판, 3415면). 강조점이 추가됨
59 Ibid., November 15, 1904, pp. 342–344; June 15, 1905, pp. 179–186 (= Reprints, pp. 3459, 3460, 3574–3579).
59 같은 책, 1904년 11월 15일 342–344면; 1905년 6월 15일 179–186면(= 재판, 3459, 3460, 3574–3579면).
60 C. T. Russell, The Time is at Hand, p. 169.
60 C. T. 러셀의, <때는 가까왔다> 169면.
61 Zion’s Watch Tower, October 1, 1907, pp. 294, 295 (= Reprints, p. 4067).
61 시온의 파수대, 1907년 10월 1일 294, 295면(= 재판, 4067면)
62 Ibid.
62 같은 책
63 The Watch Tower, December 1, 1912 (= Reprints, pp. 5141, 5142). As the First World War broke out in 1914 and that year was retained as the end of the Gentile times, the starting point of those times needed to be moved back one year from 606 to 607 B.C.E. in order to preserve a total of 2,520 years. Although some of the Society’s adherents had pointed this fact out very early (see, for example, the footnote on page 32 of John and Morton Edgar’s Great Pyramid Passages, 2nd ed., 1924) this necessary adjustment was not made by the Watch Tower
Society until 1943, when it was presented in the book,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on page 239. See also the book, The Kingdom is at Hand, 1944, p. 184. For additional details, see next chapter, page 79.
63 파수대, 1912년 12월 1일호 (= 재판, 5141, 5142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 해는 이방인의 때의 기간이 끝나는 시기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총 2,520년이라 기간에 맞기 위해서는 기원전 606년에서 607년으로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비록 협회의 일부 지지자들이 이 사실을 매우 일찍 지적했지만(예를 들어, 존과 모튼 에드거의 <대 피라미드의 통로>, 1924년 2판 각주 참조), 이 필요한 조정은 워치타워 협회에 의해 1943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23면에 발표되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책, <왕국이 가까왔다>, 1944년, 184면을 참조하라.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 79면을 참조하라.
64 The Watch Tower, June 1, 1913, pp. 166, 16 (= Reprints, p. 5249).
64 파수대,1913년 6월 1일호, 166, 16면 (= 재판, 5249면).
65 Ibid., October 15, 1913, p. 307 (= Reprints, p. 5328). Emphasis added.
65 같은 책, 1913년 10월 15일호, 307면(= 재판, 5328면) 강조점이 추가됨.
66 Ibid., January 1, 1914, pp. 3,4 (= Reprints, p. 5373).
66 같은 책, 1914년 1월 1일호, 3, 4면(= 재판, 5373면).
67 Ibid., pp. 4,5 (= Reprints, p. 5374). Emphasis added.
65 같은 책, 4, 5면(= 재판, 5374면) 강조점이 추가됨.
68 Ibid., May 1, 1914, pp. 134, 135 (= Reprints, p. 5450). Emphasis added.
68 같은 책, 1914년 5월 1일, 134, 135면(=재판, 5450면). 강조점이 추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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