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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을 가기위한 준비 여정
실크로드를가다
04. 차는 돌고 돌아 란주에 도착
2004. 09. 17 흐림.. 그리고 비. 란주 맑음
밤새 달린 기차는 사람들을 뒤척이게 하더니
05:00 불이 켜지며
잠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한다.
벌써 차는 서안을 쫓아 들어 가는 듯하다.
대장과 나는 잠자리를 정리하고
일행들이 있는 특실로 갔다.
부시시 일어나는 일행들과 합류하니,
창 밖의 풍경은
북경과 같은 시각을 써도
거의 1시간의 편차가 있는지라 어둠이 가득하다.
계속 달리는 차와 시간 속에
세상은 여명을 준비하고
드디어 아침 안개속에 서안에 들어선다.
진시황을 생각케 하는 서안.
병마총이 있어서인가?
여행자에게는
참으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기차표를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좋지 않은 인상이 많은 곳이다.
진시황과 모택통은
전생과 후생의 윤회적 인물로 많이 회자된다.
중국을 통일하고,
백성을 먹여 살리고,
지식과 문화를 말살하고··
역사반복의 평가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우리의 기차는 달린다.
서안을 벗어나기 위해서.
출출한 초행길인 덕원대원을
훈련이라는 명목아래
뜨거운 물을 얻어오게 해서
사발면으로 해결하고,
바오지에서
과일을 사서 나눠 먹으며 아침을 보낸다.
차는 점심때를 지나면서
란저우를 가기 위해
황하를 이리 저리 건너며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을 수없이 지난다.
누런 황토물이 많지도 않게 흐르는 황하.
이 강이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하문명을 발생시켰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 곳에서 문명이 생겼든 말든
강은 유유히 말없이 산천을 적시며 흐르고 있다.
2000m대 고지를 기차는 넘어
서서히 고도를 낮춰드니,
멀리 란주로 진입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 황하 제1도시 란저우.
14시 40분 플렛폼에 도달하니
서둘러 짐을 챙겨 내린다.
여러 객차안에서 만난 만남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여행은 만남의 연속이다.
참 佛家적인 모습이다.
우리 인생은
끝없이 새로운 만남으로 이루어 진다.
같은 이를 만나도
그 역시 새롭게 변화된 만남이다.
여하튼 란저우에 내려
매표실로 들어가 짐을 풀고
내일 떠날 둔황 표를 구입하기 위해
게시판을 점검하고,
대장과 함께 매표 줄을 선다.
매표원과 1대1대面 써 놓은 메모를 주며
밍티엔 둔황 잉워 뤼우거런 해본다.
上,中,下푸를 섞어서는 없고
上푸만 6장.
커이커이해서 표를 구입하고
역앞의 화리엔빈관의
3인실 2개를 check-in했다.
여장을 풀고 작년에 와서 먹어보니
괜찮은 듯 했던 집으로
일행을 모시고 가서 밥을 시켜 먹는다.
마침 맛있는 식사를 하는 손님이 있어
그 분들 음식과 더불어
일반적 음식을 시켜 먹으니
초행길 대원들이 중국체질이라며 맛있어 한다.
일단 고마운 일이다.
늦은 점심식사후 시장구경하고
우리 4명은 TAXI를 타고
백탑사와 중산교를 구경간다.
운전사가 재미있다.
서로 연신 딩부동 을 외치며
되지 않는 얘기를 하며 지나니 벌써 백탑사아래.
회교도와 문화혁명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절로 올라
탑에서 내려보니
바로 황하강과
황하 제1교인 중산교가 한눈에 보인다.
진짜 누렇다. 온~ 강이··.
부라부랴 돌아와
모든 대원과 합류하여 시장으로 가서
만두 등으로 저녁식사를 먹고 돌아와 휴식.
05. 란저우를 둘러보고
2004년 9월 18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경 모두 모여
시내로 아침식사를 먹으러 나간다.
란저우 역앞엔
수없이 많은 택시들이 진을 치고 있고,
인구 많은 중국의 아침거리는 무척이나 분주하다.
전기버스, 버스, 택시, 승용차, 오토바이,
그 많은 자전거 행렬,
그리고 인도 위의 바쁜 사람들.
그 사이를 우리는 유유자적 걸어서
시장의 죽집에 들러
녹두죽, 팥죽 그리고 반찬으로
짠지 한 접시를 시켜 먹었다.
간단하고 좋다.
우리네는 왜 그렇게
집에서 밥 못 먹어 안달인지?··.
싸고 간단한 식단의 아침식사가 거래된다면
우리 경제에 그 만큼 이익이 될 것인데.
자유시간을 가지고
보인, 보안, 나는 란저우 대학을 구경갔다.
전산자격시험이 있어서인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와 있다.
강의실로 들어간다.
깐수성의 제1대학-란저우대학.
공원화 된 교정.
곳곳에는 많은 노인과 기성 세대들이 나와
태극권, 무당검, 맨손체조,
그리고 구기운동 등으로
다양하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서로를 도와주면서··
언제 와서 봐도
중국에서 가장 부러운 모습이다.
종합운동장이 궁금해
이리저리 교정을 헤메이며 출입구를 찾아 드니
학군단 학생들이 사열연습에 바쁘다.
그 주변에 많은 노인과 학생들이
달리기에 여념이 없다.
역시 건강한 모습이다.
야외 탁구장을 지나다 보니
탁구대가 사천대학에서 본 것처럼
시멘트 탁구대에서
神技에 가깝게 게임을 하고 있다.
서로 신기해 하며 탁구 최강의 이유를 논한다.
후문으로 나오니 학생식당街.
저렴한 음식이 즐비하고
때늦은 아침을 먹는 학생들이 있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
학교 담장아래에
양봉통이 어림잡아 50여개는 넘어 보인다.
시내 한 복판에 왠 양봉!
학교에 꽃밭이 많던데
그것이 蜜原인가? 재미있는 일이다.
무작정 더 걸어 보니 백화점이 나온다. 저녁기차에서 먹을 것도 필요하고 해서
들어가 구경한다.
보인 대원은 중어사전(간자체)을 사고
우리는 과일과 빵, 쨈을 샀다.
중국 빵은 맛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방부제가 들지 않아서다.
한국의 굴욕적인 식량외교는 언제나 끝나
신선한 밀가루를 우리 백성이 먹을 수 있을는지?
참 환장할 노릇이다.
숙소로 돌아와 팀과 합류하여
때늦은 check-out을 하고
점심식사. 양고기 요기가 아주 맛있다.
다시 화리엔빈관으로 와서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역으로 가서
우선 표를 각자 2元씩에 사서
먼저 객차로 가 짐 놓는 선반을 확보해서
짐 정리를 하니
일반 여객들이 탑승을 한다.
오늘은 모두 3층(上푸)침대다.
조금씩 잠자리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차는 정시 출발하고
란저우를 지난 기차는
황하를 낀 산악지대로 접어든다.
철로는 꺼얼무로 향하는 노선을
점점 멀리 보내며
황룡이 꿈틀거리는 황하를 따라 오른다.
먼 산에 아주 큰 부처님이
입상으로 황하를 내려본다.
서역의 모든 여행자의 안위를 지켜주듯이.
자꾸 고도를 높인 차로 결국 2865m까지 올랐다.
빗속의 철길 평행선을
쏜살같이 내달려 어둠 속으로 간다.
더 이상 어둠에 가려
밖의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어서야 침상으로 오른다.
첫 중국 여행길인 보인은
주변 중국인들에게
중국어 발음을 배우느라
기차 내 사람들을 재밌게 한다.
참 적극적이다.
보인 대원의 참 좋은 자세이다.
다른 모든 일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다.
조금은 이른 잠을 청한다.
내일은 돈황(둔황)이 없는 돈황역에 도착하겠지·.
06. 둔황도착.. 명사산가다..
2004년 9월 19일 일요일
새벽 3시 30분.
뒤척이던 잠을
생리현상 때문에 그나마 벅차고 일어난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아래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볼일을 보고
다들 잠든 객차 복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에 접어든다.
창 밖의 풍경은 산은 없어지고
사막 황무지의 지평선이
어둠 속에 어렴풋이 느껴진다.
서역의 땅에 들어서는 것이다.
5시가 넘자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누에가 허물을 벗듯이 빠져 나온다.
업이 그래서인지
다들 좌선을 우선들 한다.
5시 30분이 넘어
아침 바쁜 일들을 하고
차장이 바꿔주는 표를 받아 들고
배낭을 매려 지기 좋게 정렬하니
먼 곳에 플랫폼 불빛이 보인다.
벌써 지평선이 있는 곳이라
예상보다 돈황역에 늦게 도착한다.
6시 30분.
기차에서 내려 역내로 향해 걷는다.
싸늘하다.
일교차가 심한 사막날씨.
20일에 떠날 투루판 기차표를 예매하고
미니버스로 가서 값을 알아보니
1인당 15元.
일찍 출발하지도 않을 차에
우리들의 짐이 큰 관계로
일찌감치 지붕에 짐을 올리고 좌석에 앉는다.
역시나 7시30분에 올라타서 기다리니
9시에 사람을 버스 하나 가득 채워서 출발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른 여행자들은 2시간 이상 기다렸다던데..
점점 황무지를 지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고비사막의 일부를 아침 태양을 가르며 달린다.
곧게 남쪽으로 난 신작로 길을..
중간 중간 그 곳에 잠시 세워 지나며
꽤나 열심히 씩씩거리며 간다.
멀리 푸르름이 엿보인다.
점점 가까워지니
미루나무 숲과 그 나무사이에 있는 밭에는
탐스럽게 피어나
수확을 기다리는 목화가 밭을 가득 채우고 있다.
머리와 얼굴을 차도르로 가린 여인들이
바구니 가득 목화를 담아 내고 있다.
목화와 하얀 차도르 여인들이
한데 어울려 꽃과 사람이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겠지.
누구의 노래처럼··ㆍ
11시경 시장입구에 차가 서고
우리도 짐을 찾아 돈황땅에 걸음을 내밀었다.
페이티엔(비천)빈관을 물어가며 찾아가서
3인실 2개를
각30元씩 180元에 잡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
자유시간을 보내고 난 시장구경을 했다.
고기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양고기가 많아 졌다.
양치는 유목민들이 위구르족 아닌가?
신장땅에 들어가는
마지막 오아시스 도시 - 둔황(돈황).
불교 굴예술의 극치
- 막고굴(마오카오쿠)이 있는 곳.
3시 20분.
대장을 제외한 우리 5명은
3번 버스를 타고 명사산으로 간다.
10분 탔나? 산이 보이고 주차장이다.
비싼 매표(80元/1인)를 해서 들어가니
거대한 모래산들이
연속 우리를 덮칠 듯 위용있게 서있다.
신발들을 벗어 들고 모래산을 오른다.
정말 고운 모래다.
한국의 건축업자가
더없이 좋아 할 건축자재이다.
어째 생각이 좀 썰렁한가?
대 자연의 위용이 어마어마해서 농 한번 했다.
산을 서서히 올라 한 마루점에 오르니
월아천이 보인다.
정말 초생달 모양이다.
옛날 돈황이 갑자기 사막으로 변해서
이를 슬퍼하는 선녀가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모여 샘이 되었단다.
후에 선녀가 샘 안에 초생달을 던져
빛을 찾게 되었으며
그래서 월아천의 모양은 초생달이라 한다.
아름다운 전설이다.
명사산은
한국일보사에서 보았던
어느 사진 작가의 명암대비가
분명한 사막사진전처럼
해의 위치에 따라
흑백으로 능선을 구분시키며
칼날 같은 경계를 보인다.
아름답다.
나의 사진 기술이 부족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구비 저구비 넘어 돌아 남서쪽면에 이르니
월아천 조망이 아주 좋다.
급경사면에는
많은 관광객이 모래썰매를 타느라
즐거운 비명이다.
해는 서쪽땅 끝으로 점점 향하고
산은 더욱 더
흑백의 선을 분명히 하며 석양빛으로 간다.
아름답다.
참 잘 왔다는 말을 연발하며
출입구로 향하는 발걸음이 싫다.
참 좋은 구경했다.
다시 3번 버스를 타고 시장에 내려서
밥과 반찬통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성대한 만찬을 했다.
돼지 다리살, 상추, 고소, 배추잎,
마늘, 생강, 양파 와 밥을 곁들인 쌈밥.
그리고 하미과와 포도의 디저트 음식.
환상적인 사막의 만찬은 펼쳐진다.
내일은 막고굴을 가야한다.
07. 막고굴 다녀오다
2004년 9월 20일 월요일
5시경에 함께들 빠르거니, 늦거니 일어나
좌선들을 하면서 아침을 맞는다.
북경시를 표준으로 쓰기에는 무리인 듯
날이 사막 고원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더디 밝는다.
7시에 전식구가
페이티엔(비천) 빈관 맞은편 작은 식당에서
만두5판, 죽6그릇을 시켜 맛있게 잡순다.
입맛들이 좋다는 것은 여행자에겐 행복이다.
숙소로 돌아와 짐정리해서
프런트에 보관시키고
빵차 많은 지역으로 이동.
돈황 마우카우쿠(막고굴) 왕복요금을 협상해 본다.
80元 부르른 것을
50元부터 협상가를 시작해서
결국 60元에 낙찰.
여섯식구가 차에 올라타고
차는 둔황시내를 벗어난다.
역시 시 외곽은
목화밭에 목화가 만발하였다.
보안대원이
이곳 이불은 솜이 많아 그런지 따뜻했다고 그런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이 지역은 목화재배와 양치는 것이
생업의 주종인 듯 싶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그나마 은혜로운 일일 것이다.
명사산 뒷자락을 감아 돌아 차는
막고굴 주차장에 도착하고
만날 시간을 운전사와 약속하고서는
매표 (100元/1인)해서 짐 맡기고
(2元/1인) 입구에 들어가
중국어 가이드를 기다렸다가 관람을 시작한다.
부처님 본생담이 있는 석굴부터 보기 시작한
우리의 순례는
그 규모와 채색미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훼손된 정도가 심함에 안쓰러워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우리가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종교관, 이데올로기,
그리고 제국주의의 약탈에
우리는 너무 나약하고 서로를 공존치 못한다.
앞으로라도
서로 인식의 자가 화합과 공존으로 바뀌어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존해 주며
약탈치 않는 문명사가 되었으면 한다.
와불이 모셔진 동굴은 참으로 장엄하다.
부처님의 열반에 즈음하여
각계사부대중이 슬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규모도 규모지만 그 섬세함에 놀란다.
대형으로 조성된 좌불이 모셔진
두 동굴을 대면했을 때
그 압도적이면서도 자비로운 자태와
조성의 지혜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조성들이
경전에 근거해
어그러짐이 없이 표현하려고 한 모습들에
그들의 겸허함을 느낀다.
이 동굴들을 조성하고 지키며 살았던
모든 삼보님과 인연들에게 감사 할 따름이다.
11시 30분경 관람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오기 위해 빵차를 탔다.
다들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존다.
나도 마찬가지·.
시내로 들어와 60元을 지불하고
시장으로 가서 일제 대원이 사는
양고기 육개장과 밥을 먹으며
해장국 같다며 맛을 칭찬한다.
간단한 윈도우 쇼핑을 하고
류위엔으로 가기 위해 2시 표를 끊고
맡겨둔 짐을 찾아
숙소 직원들과 작별의 인사를 했다.
차에 오르니 어제 들어올 때 운전사다.
서로 반가워하고
차는 무미건조한 한 낮의 사막 지대를 달린다.
식곤증까지 겹쳐 다들 잔다.
맛있는 午睡를 즐기다 보니
돈황역에 가까워지고
차는 결국 역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시장구경을 갔다.
차오추미엔을 발견하고
그 면은
만드는 아가씨의 손놀림에 반해
작은 그릇 하나 시켜서
세 사람이 나눠 먹으며
그 집 주인들과 안 되는 한담을 나눠 본다.
참 해 맑은 사람들이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짐에
막고굴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이
역사 안에 들어선다.
반가워 어디가냐고 물으니 투루판이란다.
잘 됐다고 즐거워하며 여행얘기를 나눈다.
정시에 차에 타서 출발한다.
차내에는 신장 지역답게 혼혈이 많다.
저들이 섞이듯
우리 인류도 화합으로 섞였으면··
조금도 좋은 잉줘에 앉아
밤을 지새워야 한다··..
내일 투루판.
07. 투루판 관광
2004년 9월 21일 화요일
밤새 만원 기차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니 별 상관은 없다.
준비해 간 바이주를 나눠 마시고
일찍 앉은 채로 잠을 청했다.
그 만큼 빨리 새벽에 일어났고,
동료들과 대화도 나누고,
주변 중국인들과도 교감하는 동안
기차는 투루판역에 도착했다.
시간은 5시 40분경.
5시15분경부터
짐정리하고 내릴 준비를 서두르니
도착시간에 무난히 잘 챙겨서 내렸다.
짐을 맡기고 움직일까 해서
짐보관소를 찾아도 없어
한국 젊은이들과 같이
봉고차를 16元씩에 빌려 투루판 시로 향했다.
중국은 한나라는 정신에서 시차가 북경시다. 그래서 이 곳은
실제로 2시간 이상 차이가 남에도
우리는 6시 50분경에 시내에 들어섰지만,
적막강산이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결국 교통빈관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방을 잡았다.
젊은이들은 우루무치로 가기로 해서
짐만 같이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나는 밀린 일지를 쓰고
터미날로 가서
카스카르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9시30분경에 시장으로 가서
만두와 죽으로 아침을 먹고 투어에 들어간다.
차는 시내를 빠져나와 화염산을 지나
천불동으로 간다
완전히 회교도들에게 파괴되어진 천불동.
사막의 황막함에 폐허를 보는 맛은
참으로 씁쓸하다.
회족들은
불상을 파괴하고 이 곳에 자리를 잡고
현재는
목에 불상을 호신불로 걸고 들어온
한족들에게 지배당하고
윤회의 악순환·
화염산이나 이런 곳은
미국의 캐년 지역을 본 나로서는 큰 감흥이 없다.
양이 끄는 수레가 있어 사진으로 담는다.
법화경에 양이 끄는 수레가 나온다.
소승과 대승의 변별을 위한 비교.
어쨌든 재밌다.
고창고성을 보고 투루판 포도국으로 간다.
야! 정말이지 광활한 포도밭이다.
포도는 공짜다.
점심을 먹는 사람에게는
준비가 늦은 관계로
우리는 이곳 저곳 구경을 했다.
난을 만드는 아저씨.
VCD음악에 맞춰 춤추는 어린 여자애.
이런 저런 볼거리가 많다.
실컷 포도를 먹고 감탄사를 연발하여
점심을 마치니 시간은 3시대다.
이 포도밭이 생길 수 있게
물을 끌어온 대역사를 보러 갈 차례이다.
가얼징
이 황막한 사막으로 물을 끌어 오기 위해
이 곳 사람들은
수백킬로 떨어진 우루무치..
천산 꼭대기 천지로 갔다.
그 곳에서부터 지하 수로를 파서
물의 증발을 막고 낙차를 이용해
이 곳 투루판까지 물을 지하로 끌고 왔다.
과연 장비도 없던
그 시절에 가능했을까 싶다.
그래서 중국의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정말 그 일부를 직접 대하고 보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수로는 관리하기 좋게 잘 정돈 되어 있고
그 섬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투루판에 와서
이 가얼징을 보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숙소로 돌아와
봉고차 대여비를 지불하고 올라오니
젊은이들은 우루무치로 간다고 샤워를 한다.
그들을 배웅하고
청년로를 장식한 포도 넝쿨을 구경하고
포도로 시대 대로를 덮어버린 곳은
아마 세계에서 이 곳 뿐일 것이다.
인민공원街의 야시장에 이르러
다른 대원들과 만나 파티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