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삼상15:10-35
서 론
“사울”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하였다 함”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피택되었으니 그는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연로하고 그 두 아들은 그 사역(事役)을 봉행함에 합당한 행위와 정직한 성격이 없고 인근열국(隣近列國)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해하고 압제하려는 형편(形便)인고로 (삼상8:1-3, 20,13:12) 이스라엘 장로들이 일체로 사무엘에게 와서 정치의 형식을 변경하고 목전(目前)에 나타나는 왕을 세워서 그 근방에 있는 제(諸)왕국들과 같이 백성을 인도하여 원수들을 승리할 수 있게 하여 달라 하였습니다(삼상8:4-5, 19-20).
그 때에 베냐민 사람 기스가 나귀를 잃고 그 아들 사울을 보내매 나귀를 찾게 하였는데 사울은 당시에 약35세된 사람이요 다른 사람보다 키가 어깨에서 머리가 하나 더 큰 사람이었습니다.
3일간 나귀를 찾다가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종이 말하기를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를 찾아가면 저가 지시 할 수 있다 라고 사울에게 권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성찬을 준비하였다가 접대한 후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고 몇날 후에 정식(正式)으로 민중 앞에 내세우고 왕됨을 선포(宣布)하니 이가 곧 이스라엘 나라의 제1대왕 사울이었습니다(삼상9:10)
사울이 이렇게 왕으로 피선되고 온 국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이 된 후 그의 태도가 그리 아름답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행위를 하나 하나 이제 생각해 볼 때에 나와의 비교를 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왕 등급 전의 사울 (삼상9:1-4)
첫째, 그는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삼상9:3)에 “사울의 아비“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를 찾으라 하매” 사울이 암나귀를 찾아 나선 것은 그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특별히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리고 사울에게 그 나귀들을 찾아 오라고 하자 사울은 아버지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결코 그는 다른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나귀들을 찾는 것이 비록 사사로운 일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찾아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두 말 않고 복종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효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모님 말씀에 두 말 않고 순종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사울은 자식된 도리를 부모에게 다하였습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효도라는 것은 사울이 있었던 시대와 동일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효도하는 것도 바뀌지는 않습니다. 자녀된 모든 자들은 부모님께 순종함에 있어서 결코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에게 맡은바 일에 성심껏 한 자입니다.
나귀들을 찾아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사울은 결코 그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닐 수 있는 대로 다 돌아다녀서 나귀를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과 사알림땅과 그리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찾아 다녔지만 나귀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울이 나귀들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가지 일에 있어서도 열심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심껏 하는 자세가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나만의 안일함을 위하여 게으름이 있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하찮고 작은 일이라도 그 일에 충성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셋째,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사울이 나귀를 찾으려 다녔는데 그가 돌아다닌 것은 성격이 세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곳만 대충 본 것이 아니라 다리가 아프고 부르틀 정도로 꼼꼼하게 나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돌아 다닌 것입니다.
가정을 다스리는 자가 나라 또한 잘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가정 일을 세심하게 잘 돌보았으므로 역시 나라의 왕이 된다면 나라의 일도 세심하게 돌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사울과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건장한 청년인 사울은 사실 집안 일보다는 자신의 일에 더 신경을 쓸 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을 통해 새로워진 사울
(삼상10:9)에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로 다 응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여 사울로 하여금 새로운 인격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왕과 구원자가 되기에 필요한 영적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위해 한 인간을 부르실 때 그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음으로써,
첫째, 소명의식이 새로워졌던 것입니다.
부모 밑에서 부모에게만 순종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즉 이스라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려야 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살아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자임을 확실히 발견할 때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사울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사명에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영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삼상10:10)에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사울은 무의식에서나 황홀한 상태에서 성령을 체험한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즉 생활 방식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을 받아야 새 일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힘입어야 새 시대에 힘차게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룰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저는 마음도 새로워 졌던 것입니다.
영혼이 새로워지는 일은 새 사람이 되는 시작입니다. 은혜 받으면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밉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지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인간이 불쌍히 보이고 너그러운 용서와 평화스러운 생각이 샘솟는 심리적 변화입니다. 영은 새로워진 체험을 했는데 마음이 신앙으로 교만하고 날카로워지고 경멸하고 있으면 새 사람은 아직 멀리 있는 것입니다.
넷째, 생활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영혼의 새로움과 마음의 새로움은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울에게 (삼상10:7)에 “기회를 따라 행하라”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고 다짐하지만 현실 생활에서는 새롭게 행동하기가 어려워 새로워진 영과 마음이 다시 더럽혀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새영 새마음 새생활을 하기 위해 사울 같이 성령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연소하며 사사로써 나라의 전반적인 업무를 다하지 못함을 아시고 사울에게 은혜를 주시어 일을 하기 위해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3. 사무엘로 왕으로 세움 받은 자(삼상10:17-27)
사무엘이 백성들을 길갈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하며 새국가 탄생을 선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사들에 의해서 통치되어 오던 것을 종지부 찍고 이제 왕 제도에 의한 국가 통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들 앞에 사울을 나아오게 하고 그에게 왕관을 씌워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왕 제도의 시작이며 사울이 바로 초대왕으로 봉함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며 축제를 올렸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는데 있어서 아무도 이의가 없었으며 모두 기뻐한 것은 무엇보다도 암몬대군을 선멸한 공이 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울이 일반적으로 왕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자라고 여겨지는데 그 일들을 생각해 보면
첫째, 자격과 소질을 구비한 자이다.
(1) 체격이 준수했던 것입니다(삼상9:2). 늘씬한 키 건장한 체구 우아한 용모는 호감을 살만 했습니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2) 생업에 성실한 사람입니다(삼상9:13).
(3) 부모에게 효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삼상9:4)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나설 정도로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국가를 위해 큰일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4) 아래 사람의 의견을 존중히 여긴 자입니다.
사환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지자를 방문한 것도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5) 교양과 예절이 있는 자였습니다. 선지자에게 드릴 선물까지 염려했습니다. 사울은 심지가 깊은 사람이며 도량이 넓은 사람이며 사회적 관심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삼상10:16).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뽑으셨고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둘째,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않았던 자
미스바에 모인 무리들이 사울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때 사울은 행구사이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회피하려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이 행구에 몸을 숨긴 것은 소명에 대한 불순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부끄러워 하는 송구함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접견하던 첫날 두사람이 주고 받은 대화의 내용을 보면(삼상9:20-21) 그후 사울의 실수에 대하여 사무엘의 경책한 말씀을 보면 적어도 이때의 사울이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 중의 가장 작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사실 인간은 아무리 낮아져도 결코 지나친 겸비가 되지는 않습니다.
셋째, 겸비한 마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작게 여기는 자를 크게 여기시며 스스로 밉게 보는 자를 어여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눈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행구사이에 몸을 숨기다가 왕으로 세워졌을 때 그의 키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는 더 크게 보였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스스로 낮아지는 사람이 남의 눈에는 높게 보여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감에 차있는 사람보다 그늘 속에서 오늘의 부조리와 자신의 불만에 떨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4. 사울왕의 망령된 행위(삼상13:8-14)
(삼상13:8-13)에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 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드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사울왕은 왕으로써 제사드린 것이 그렇게 과중(過重)한 죄인 줄은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사울은 헌제를 왕이 하는 것이 아마도 임시변통성(臨時變通性)있는 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웃시야”왕도 역시(亦是) 이 죄로 문둥병자가 되어서 죽는 날까지 별궁(別宮)에 거하다가 죽었는데(대하26:18-23) 사울왕과 웃시야왕의 과소평가(過小評價)가 과대(過大)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사울왕의 신앙적 실패(失敗)(삼상15:20-23)
사울왕은 무술(武術)과 정치에는 능하나 신앙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첫째 실패는 제사장이 아닌 자가 제사 행위를 한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그것입니다.
(1) 아말렉 인명과 짐승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삼상15:1-3)어기었고,
(2)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아니했고,
(3) 우양의 좋은 것을 가져옴과,
(4) 저의 핑계였습니다(삼상15:20-21).
사울은 민중이 우양의 좋은 것을 가져온 것은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구실 뿐이었습니다(삼상15:15).
이때 사무엘은 책망하였는데 (삼상15:22-23)“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 이를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받고 회개함이 마땅하였으나 책임을 민중에게 전가(轉嫁)하고 사울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사죄를 구하였습니다(삼상15:24).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형식적 회개에 불과하였습니다.
셋째, 저는 시기심이 강했습니다.
(삼상18:7)에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란 여인들의 이말 한마디로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고 시기(猜忌)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울 대 다윗이 아니라 악귀(惡鬼)대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기회 있는대로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그 반면에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윗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사단의 지배하에 최악(最惡)의 심리상태로 변하였습니다. 그의 적은 원래 블레셋이었으나 이제 와서는 다윗을 적으로 알고 백방으로 죽일 연구만 하는 중 사울이 앞에서 맏딸 “메랍”을 다윗의 아내로 주기로 하였는데 그를 타인에게 주고,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미갈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사울이 장녀(長女)메랍을 아내로 주겠다는 것은 현상(懸賞)으로, 다윗을 블레셋과 싸우게 하여 자수(自手)로 죽이는 것보다 전사로서 민중에 대한 오해를 면하려는 심산이었습니다(삼상18:17-27). 그후 둘째 딸 미갈을 주겠다는 약속하에 블레셋 사람의 양피(陽皮)백미(白梶)를 요구하였는데 그 목적(目的)도 사울이 원수 갚는데 있지 않고 다윗의 전사에 있었던 것입니다.
(삼상19:1-7)을 보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이 12차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심리상태는 가련하였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친절하고 어떤 순간에는 관용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발작적 살기(發作的殺氣)가 충만하여 악마의 지배자가 되곤 하였습니다.
5.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
사울왕은 출발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5:11)에 “내가 사울을 세워 왕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버림을 당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첫째, 사울의 교만 때문입니다.
(삼상15:12)에서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저가 이 기념비를 세운 배경을 보면 (삼상15:1-9)에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공격하여 진멸하라는 명령을 주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사울은 아말렉왕 “아각”을 생포하고 적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갈멜 지방에 자신의 승전을 기념하는 승전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이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도 승전이나 전적비를 도처에 세우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경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기념비를 세운 것은 승리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술과 전략이 뛰어났고 용맹이 작용해서 승리했다고 여겼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을 뿐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은 교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개인이나 권력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탐욕과 거짓 때문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돌아오는 사울 진에서 양과 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 양의 소리는 어찜이뇨” 사울의 대답은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의 잘못을 밝힌 다면
(1) 욕심에 끌려 살찌고 좋은 양과 소를 죽이지 않고 끌어왔고,
(2) 양이나 소를 끌어온 것은 자기가 아니라 무리이고 백성이라고 책임을 전가했고,
(3) 양과 소를 전리품으로 끌어다가 착복하려는 흉계를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끌어 왔다는 것으로 위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탐욕과 거짓으로 자신의 행위를 위장하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루하루의 먹고 마시는 생존 문제만 해결되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가진 자와 누리는 자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울왕에게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말렉 왕과 소떼를 착복하려다가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된 것입니다.
셋째, 경솔한 처신 때문입니다.
(삼상13:13-14)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울의 처신에 잘못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1)자신의 왕권을 과대평가 했습니다.
사울은 왕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번제와 제물을 “이리 가지고 오라”하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즉 왕이 못할 것이 무엇이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권하에 있는 것입니다.
(2) 그는 인내심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