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8일차] #21 마을 선생님 OT, 김순금 어르신 댁 방문「요즘 사람들은 왜 바쁜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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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복지관에 출근하자마자 민지 선생님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마을 선생님 포스터를 보고 신청해주신 분들이 네 분이나 돼요!"
여자아이들 4명이 고맙게도 신청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접 활동을 개발하는 마을 선생님에 참여시키고자 했으나 문득 한참 전부터 연 만들기 재료를 예쁘게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신 백기호 어르신이 생각났습니다.
백기호 어르신과는 원래 12일, 기획단 아이들과 방문해 연 만들기 메뉴얼을 제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기획단 아이들이 속해있던 지역아동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버려 계획이 무산되는 바람에 다시 기획단을 구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백기호 어르신은 저번 방문때 말씀하셨습니다.
"나무가 말라가고 있어. 말라서 버석버석 부서져. 빨리 연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그러면 이제 풀칠해도 안붙어."
아이들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신지, 날짜까지 손수 골라주시던 어르신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관련한 소식을 전하며 연락을 돌렸습니다.
아이들 모두 일정은 달랐지만 겨우 조율해 은찬이와 주주는 두 시까지, 수빈이와 수영이는 두시 반까지 복지관에 방문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재빨리 ot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백기호 어르신이 아이들을 호명하실때 '야!' 보다는 '수영아'가 좋을 거 같아서 명찰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당장 2시에 방문이 어려운 수영이와 수빈이의 명찰만 저희가 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주인노릇 시켜주고 싶었지만 아쉬웠습니다. '내 명찰을 내가' 만드는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데요. 다른 역할만큼은 꼭 쥘 수 있게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2시, 은찬이가 도착했습니다. 사실 1시 50분 정도에, 밥을 먹자마자 도착한 손님입니다. 그 부지런함이 너무 예뻐서 자리에 앉혀놓고 ot 마지막 준비를 끝냈습니다. 연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하고, 바로 명찰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2시까지 오기로했던 주주가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서 30분이 오로지 은찬이의 몫입니다. 낯선 선생님 2명이 어색할 법도 한데, 은찬이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명찰을 만들어줍니다.
"어르신 성함이 뭐라고 하셨었죠?"
"백기호 선생님이셔."
"백기호 선생님..."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자고 했더니 바로 적어내려 갑니다. 연을 태어나서 딱 한 번 날려본 은찬이는 연 만들기가 좋다고 했습니다. 어서 예쁜 연을 만들어 날려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백기호 선생님께 이 아이의 마음이 닿아야 할텐데요.
#3
수영이와 수빈이가 도착한 후에 정적이 가득 찼습니다. 수영이와 수빈이도 낯을 가리는 편이고 은찬이도 낯을 가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 모두가 게임을 할까?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게임도 골라주었습니다. 너무 낯설어하는 거 같아 선생님들도 함께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수영이와 수빈이는 자매입니다. 그래서 은찬이가 주눅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당차게 해결합니다.
은찬이는 예쁜 아이입니다. 셋이 게임을 하다가 실수한 사람이 다른 아이여도 굳이 따지지 않고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그 아이를 지목했다가도 결국 손가락을 거둡니다. 사소한 감정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배려심이 많은 그런 예쁜 아이입니다.
수영이와 수빈이도 그렇습니다. 낯을 많이 가려 걱정했는데 게임에 열심히 참여해줍니다.특히 수영이는 묵묵히 게임 정리를 하고 수빈이는 입고온 패딩을 예쁘게 개어놓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착합니다. 어쩜 이런 아이들만 모여주는 걸까요?
친목을 다지기 위해 한 게임을 끝내고 뒤늦게 온 두명에게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연'을 배우러 가는데 '연'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게 얼마나 아까운일일까요? 아는게 있어야 질문이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연은 무엇인지, 무슨 종류가 있는지. 어떤 형태로 생겼는지. 주로 언제 나는지. 작고 사소하지만 연을 날린다면 알아야하는 내용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에 질문지 작성을 시작하니 술술 뱉어 나옵니다. 이제 어르신을 만날 준비가 끝났습니다.
#4
"아이고, 연 날리다가 네가 날아가겄다."
어르신이 문을 열자마자 서있는 작은 아이들을 보면서 웃으셨습니다. 그 다정한 목소리가 참 좋습니다. 네 명이 서있는 걸 보고선 그래도 좋아하십니다. 적어도 주인잃은 연 재료들이 귀여운 아이들은 만났다는 사실을 반가워 하십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 한참을 이야기 하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현관에서 아이들이 간단하게 인사만 드리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방패연 아니고 가오리연. 방패연은 니네들이 만들기에 너무 어려워."
"너네가 우리 손주보다 낫다. 이 녀석은 내가 움직여도 비켜주질 않어."
어르신 나름의 호탕하고 다정한 표현이 저는 참, 정감이 갑니다. 진짜 저런 어른이 나의 이웃이라면 늘 웃음지어질텐데, 하는 기분이 듭니다.
"빵이 6개가 되나...?"
대충 알려주면 되지! 뭘 그래. 퉁명스럽게 말씀하시지만 저희가 간다고 하니 냉장고에 가셔서 빵 갯수부터 확인하십니다. 아이 셋, 어른 셋. 빵 개수가 여섯개가 되나? 라면서요. 아이들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환한 얼굴로 받아듭니다. 서로 조금 낯설어도 괜찮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성현동 이웃이니까요. 우리는 '연'을 만들며 '연'을 만들어갑니다.
아이들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그게 어른의 일이니까요. 은찬이의 손을 꼭 잡고 데려다주는 길 제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땠어요?"
"솔직히 조금 무서웠어요."
"정말?"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좋으신 분 같아요."
낯설어도 온기만큼은 전해집니다. 성현동 <마을 선생님-연만들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5
오후 4시에는 밀가루를 들고 김순금 어르신 댁에 방문했습니다. 희빈 선생님과 저를 보시고는 "뭘 이렇게 많이 데려왔어!" 라고 말하시면서도 의자를 내어주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조금 불편한 의자를 찾으시면서도 저희에게 만큼은 좋은 의자를 내어주십니다.
"나이 먹고 나서는 사진 안찍어. 찍지말어."
희빈 선생님께 제 자신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어르신이 고개를 저으십니다. 사진이 싫으시답니다. 고우신 얼굴이신데, 어르신은 부담스러우시답니다. 김순금 어르신께서는 90살이 넘으셨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은 물론이고 컴퓨터도 하십니다. 카톡도 하시고 유튜브도 보시고, ATM기도 이용하십니다. 어떤 90세 어르신이 이렇게 인터넷과 친하실까요?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왜 바쁜지 모르겠어. 나는 기저귀가 어디있어. 다 손빨래였는데."
"저희는 기저귀 입혔다가 벗기면 끝이죠."
"그래. 그렇게 편한데 요즘 사람들은 왜 바쁜지 모르겠어."
"..."
"이렇게 행복한 세상이 어디있다구."
그렇게 어르신의 추억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6시 미사에 꼭 참석하시는 어르신의 부지런함은 젊었을때 기인한 습관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연탄 불을 조절해야하다보니 생긴 습관이라고.
"이 나이 드니까 조금 후회가 들어."
"..."
"길거리에 나가서 빵이라도 팔아볼 걸. 하고 말이야."
"..."
"젊은 세월 버리지 말고 몸을 움직여. 움직여야해, 사람은 말이야."
그렇게 어르신의 힘든 옛 시절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눈물을 보이시는 어르신께 휴지를 건네드리는 순간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제가 힘들다, 힘들다... 할 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정말 그 말에 부끄럼 한 점이 없었을까요?
어르신의 말을 듣는 내가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잠도 어르신보다 훨씬 많이 자고 활동량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힘들다고 하고 다닌 걸까요?
더 열심히 살아야지. 살아 있는 이 순간 만큼은 매사에 노력해야지. 필사적으로 살아야겠음을 또 다짐했습니다.
"사람의 혓바닥이 말이야. 10cm도 안돼."
"..."
"근데 먹으면 다 대소변으로 나오잖아."
"..."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고. 쌓아두면 다 썩어버려. 독이 돼."
인생의 대선배님께서 하는 모든 말씀이 저에게는 의미있는 말이었습니다.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말들을 오늘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르신들을 더 많나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의미있게 하루,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