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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또 다른 일탈자
주무와 진달, 양춘을 비롯한 산채 사람들의 눈물 어린 전송을 받으며 소화산을 떠난 사진(史進)은 관서로 가는 큰길을 잡아 걸었다.
연안부에 있는 스승 왕진(王進)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차림은 그럴듯 했으나 가진 것은 칼 한 자루에 괴나리봇짐 하나뿐인 나그네라 지난날 사가장의 젊은 주인으로 보여 주었던 위풍(威風)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사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밤에도 새벽별이 질때까지 걷기를 보름이나 했을까, 사진(史進)은 그럭저럭 위주에 이르렀다.
멀리 성문을 바라보면서 사진은 중얼거렸다.
'이곳에도 경략부(經略府)가 있으니 혹시 스승님도 여기 계실지 모르겠구나. 한번 알아보기나 해야겠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사진(史進)은 걸음을 빨리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위주도 다른 큰 고을처럼 육가(六街) 삼시(三市)가 있었는데, 그 한 길목에 있는 작은 찻집이 먼저 사진의 눈길을 끌었다.
목도 마르려니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그곳에서 스승 왕진(王進)을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진(史進)이 그 찻집으로 들어가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주인이 와서 물었다.
"손님, 무슨 차를 드시겠습니까?"
"포차(泡茶)를 주시오."
사진(史進)이 그렇게 대답하자 오래잖아 주인은 포차를 끓여 내왔다.
사진이 찻잔을 들며 주인에게 물었다.
"경략부(經略府)는 어디 자리 잡고 있소?"
"이 앞으로 얼마 안 가면 나옵니다."
주인이 그렇게 알려 주었다.
그가 경략부를 잘 아는 것 같아 사진(史進)이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 더 물읍시다. 그 경략부 안에 동경에서 온 교두 왕진(王進)이란 분이 안 계십니까?"
그러자 주인이 그건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저 경략부 안에는 왕씨 성을 쓰는 교두(敎頭)만도 서넛이 넘지요. 그런데 어느 왕 교두가 왕진인지는 모르겠소."
그런데 미처 주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몸집이 몹시 큰 사내 하나가 성큼성큼 찻집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사진(史進)이 보니 어딘가 군관 같은 모습이었다.
사진은 웬지 그에게 마음이 끌려 가만히 살펴보았다.
머리에는 삼으로 꼰 만자정(卍字頂) 두건을 쓰고 윗도리에는 푸른 전포를 걸쳤는데, 허리에는 문무를 아울러 나타내는 띠를 두르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고 귀가 컸으며, 코는 곧고 입이 네모졌다.
거기다가 여덟 자 키에 한 아름은 될 듯한 허리가 한눈에 힘꼴이나 쓰는 장사로 보였다.
그 사내가 자리를 찾아 앉는 걸 보고 찻집 주인이 사진에게 말했다.
"손님, 왕 교두를 찾으시려면 저분 제할(提轄, 하급 군관) 께 물어 보시지요. 저분이라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그 사내에게 마음이 끌리던 사진(史進)은 얼른 몸을 일으켜 예를 표하며 은근히 청했다.
"저어...우리 자리를 함께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라도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만...."
그러자 그 사내가 말없이 사진을 살펴보앗다.
그도 사진의 크고 떡 벌어진 몸이나 씩씩한 얼굴 생김이 마음에 드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예(禮)를 표했다.
그런 그를 한 번 더 청해 자리를 함께하게 된 사진(史進)이 물었다.
"하찮은 게 간은 커서 묻는 걸 어려워할 줄 모릅니다. 관인(官人)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사내가 별로 못마땅해하는 기색 없이 일러 주었다.
"내 성은 노(魯)가요, 이름은 달(達)이외다. 그런데 형씨는 뉘시오?"
"저는 화주 화음현 사람으로 성은 사씨(史氏)요, 이름은 진(進)입니다. 제가 관인께 묻고 싶은 것은 제 스승인 왕진(王進)이란 분입니다."
"동경에서 팔십만 금군의 교두(敎頭)를 지내신 분인데 혹시 이 경략부 안에는 안 계십니까?"
사진(史進)이 숨김없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스승의 일을 물었다.
노 제할(魯 提轄)이 반가운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아니, 그렇다면 형씨는 바로 그 유명한 사가촌의 구문룡(九紋龍) 그사람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사진(史進)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는 게 고마워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노 제할(魯 提轄)도 황망히 몸을 굽혀 답례한 뒤 다시 물었다.
"백 번 그 이름을 듣는 것보다 한 번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낫다더니 과연 그렇구려. 그럼 형씨가 찾는 왕 교두란 분은 바로 동경에서 고 태위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그 왕진(王進)이란 분이 아니시오?"
"예, 바로 그렇습니다."
"나도 그분의 이름을 들었소. 그러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소이다. 들으니 연안부의 노충 경략 상공께 가 있다던가.....이곳 위주는 소충(小种, 여기서는 충사도를 말함) 경략 상공이 맡아 지키고 있소."
"그건 그렇고 형씨가 바로 그 사 대협(史 大俠)이라면 그 또한 내가 많이 들은 이름이오.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저쪽 큰 술집에 가서 술이나 같이 들며 이야기합시다."
사진(史進)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그사람이란 걸 확인한 노 제할(魯 提轄)이 대뜸 그렇게 나왔다.
그리고 사진의 손목을 끌듯 찻집을 나서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주인에게 소리쳤다.
"찻값은 내가 갚아 드릴 테니 그리 아시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노 제할님이라면 어떻게 하셔도 좋습니다."
주인이 허리까지 굽신하며 아첨하듯 말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