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고 싸우고 버티며 산 자들
- 노동 문제를 다룬 <산 자들>(장강명)을 읽고 나눈 책 대화 기록2 보고서
김민지/광동고 2학년 3반 2번 julia119289@gmail.com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의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이것은 한국 최초로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카트>에 나오는 대사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 탓에 그 속에 허술하게 쌓여 있거나 빈틈들이 여러 개 있다. 그 속에서 생겨난 문제들로 사회 구조가 생기고 사람들은 갈등을 갖는다. 우리가 직접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갈등을 <산 자들>을 접하게 되면 조금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치열한 삶 속에서 버티는 자들, 싸우는 자들, 결국 밀려난 자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쩌면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등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지적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더 처절한 느낌이 들게 했다. ‘우리의 현실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이 났다. 우리 모둠은 우리의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보든지 간에 ‘희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선택과 결정은 ‘나를 위해서’
학교에서는 성적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교훈을 내세워 공부와 성적을 강요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연봉을 기준으로 좋은 삶, 불행한 삶을 나눠 ‘돈 잘 벌어야 잘 먹고 잘산다’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서게 된다. 우리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겪은 치열한 삶과 그들의 결정적인 선택이 무엇이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사건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서 대화를 했다.
민지: 이 소설에서는 총 10가지의 이야기를 나오잖아? 여러 이야기들 중에 어떤 인물이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결정적인 선택이 뭐라고 생각해?
질문이 어려웠는지 다들 눈치만 보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지는 질문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민지: 나는 ‘대외 활동의 신’을 선택했어. ‘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세상 보는 눈을 키우며 자신을 어디에 가두지 않고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선배들과 말 한마디라도 섞고, 조언을 얻기 위해 수입이 적더라도 아르바이트 대신 대외활동을 했지. 만약 그가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은 기회를 잃고 허송세월했을 것 같아.
동성: 얘들아 미안하지만, 나는 이 질문에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아.
서린: 나는 ‘대기발령’에서 연아가 선배가 쓴 글에 댓글을 단 것에 대한 반성문을 쓴 것이 떠올랐어. 연아는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냥 윗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반성문을 썼잖아. 그런데 만약 연아가 그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티앤티로 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중훈처럼 대기발령 상태로 오래 버티거나 이직을 했겠지. 그런데 연아는 티앤티로 간 후에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직했잖아. 그래서 반성문을 썼든 안 썼든 결국 결과는 같았을 것 같아.
성현: 나도 대기발령의 주인공 연아를 선택했어. 연아가 후반부에 사퇴를 하는데 이 선택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만약 곧바로 사퇴를 하지 않았더라도 앞서 보여준 연아의 생각과 행동들, 그리고 그 후에 나온 남편과의 대화를 보면 결국 언젠가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금방 퇴사했을 것 같아.
서린이와 성현이는 같은 인물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처럼 친구들도 지금까지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순간이 궁금해졌다.
민지: 서린이랑 성현이 둘 다 ‘대기발령’에 나오는 연아의 선택이 달라져도 결과는 결국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너네도 혹시 이 소설처럼 어떤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니? 만약, 원래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그 일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성현: 나는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지에 관해 고민을 했어. 만약 다른 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다면 그곳에는 내가 아는 친구들이 지금보다 더 적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 그래서 지금보다도 더 학교 가는 일이 싫고 버거웠을 것 같아.
서린: 나도 고교 진학에 관해 고민하기도 했어. 게다가 2학년에 올라오기 전에는 문과와 이과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좋을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던 것 같아. 최선의 선택을 위해 조언을 많이 구하기도 했어. 그런데 무엇보다 나에 대해 많이 되돌아보면서 나의 꿈에 가까운 이과를 선택하게 된 거야.
동성: 서린이랑 나는 좀 비슷한 것 같아. 난 선택과목을 택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내가 진짜 원하고 도움이 되는 과목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말이야.
민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어학연수에 다녀온 적이 있었어. 낯선 나라에서 홀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어학연수를 갈지 안 갈지 많이 고민했었지. 짧은 기간이였지만 어학연 수를 통해 독립심과 새로운 문화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만약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 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다. 그 선택과 고민의 끝은 바로 ‘나’라는 점은 모두 같았다. 선택과 과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모두가 다르게 생각해도,
학교나 회사 등 그것이 어떤 조직이 됐든 피하기 어려운 것이 가치관의 대립이다. 이 소설에서도 대립하는 가치관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민지: 그럼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관 대립이 나타나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내가 먼저 말해볼게. 나는 ‘대기발령’ 부분에서 일방적인 대기발령을 내리는 회사와 치열하게 살아남으려는 부서원의 가치관이 대립한다고 생각했어. 이익추구가 목적인 회사와 생계가 걸린 부서원의 보이지 않는 대립상황에 마음이 아팠어.
서린: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서 기준과 호웅의 가치관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알 수 있어. 기준이는 학교의 급식 비리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반면 호웅이는 어른들의 일이라며 학생인 자신들은 할 만큼 했다고 이야기하잖아. 겉으로 보면 호웅이의 가치관은 이기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오히려 나는 호웅이의 가치관이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들었어.
성현: ‘알바 자르기’에 나온 사장과 성혜미라는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사장은 회사의 운영자로서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분하려는 인물로 보이고, 성혜미는 본인이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으려는 인물로 인식됐어. 작가는 절대 악은 없고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
동성: 3부 버티기에 ‘모두 친절하다’에서 컴퓨터 AS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내는 아내와 그를 바라보기만 하고 가만히 있던 남편의 가치관이 대립한다고 생각해.
10가지의 소설을 읽을 때 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가치관의 대립은 존재하였고, 이들의 가치관 대립으로 사건은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필요는 있다. 모두가 다르게 생각해도, 우리는 이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가치관 대립을 옳은 방향으로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점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현실에 부딪쳐 나를 돌아보기
학교에서 문학에 관해 배울 때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도 혹시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다.
서린: 나는 ‘현수동 빵집 삼국지’를 읽고 집 앞에 미용실이 3개가 생겼던 일이 떠올랐어. 특히 그 중 두 가게는 한 가게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어서 굉장히 걱정했던 기억이 나.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을 읽는 내내 이 세 미용실이 떠오르면서 이 미용실 사장님들도 같은 고충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이 경험과 그리고 단편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같은 업종의 가게가 생기는 것을 법률적으로 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성현: 나는 경험보다는 인물이 나였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얘기를 해볼게. 내가 만약 ‘대외활동의 신’에 나오는 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나는 외부 활동이라도 하며 노력하기보다는 신의 대학동기들처럼 발전하려는 마음과 하는 것 없이 지금에 안주하며 허송세월만 보냈을 듯해.
민지: ‘현수동 빵집 삼국지’ 를 읽으면서 예전에 티비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왔던 ‘만두전쟁’편이 생각났어. 같은 음식을 팔며 가격경쟁까지 펼치다 보니 서로가 죽일듯한 원수가 되어버린 이야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지금도 흔히 벌어질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었어.
작가의 끝맺지 않은 결말, 갈등의 해결이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는 마치 우리의 연속된 삶 속의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았다.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도 발생하고 있고 어쩌면 우리도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우리의 삶,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민지: 그런데 왜 제목을 ‘산 자들’이라고 지었을까? 그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좀 말해볼까?
서린: 이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산 자들’의 의미가 ‘살아남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책에는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보다 잘리고 쫓겨나고 불이익을 당하는 등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많았어.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인 ‘산 자들’의 의미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해.
동성: 책에서는 해고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을 산 자들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도 그 표현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진짜 목숨이 붙어있는 게 아니면 심장이 뛰고 있는 그 생물학적으로 산 자들이 아닌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본인의 삶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그 사람들이 진정 산 자들이라고 생각해.
성현: 해고당하지 않은 직원들을 산 자들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해고당한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고 또 산 자들 또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경고와 살아남은 이들의 안도의 의미로 다가왔어. 결국 파업상태가 계속되어 협상이 결렬되고 모든 직원이 실업하여 산 자들은 모두 없어져 그 경고는 실현되었어.
민지: 역시 다들 제목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이 책에서는, 직원들은 ‘해고’를 살인으로 생각했기에 고장에서 해고된 이들은 ‘죽은 자들’과 다름없었고, 해고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산 자들’로 표현되었어. 망해가는 공장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된 ‘죽은 자들’은 억울하고 화가 난 반면에 해고되지 않은 ‘산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망한 회사에서 어떻게 서든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느라 힘들다 생각해. 결국에는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이나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모두 괴롭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책의 제목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서는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우리는 ‘ 나만 유독 힘든 건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넘친다. 어쩌면 우린
모두 살아 있으되 죽은 것만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둠은 우
리 자신에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