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비숍 (1831 ~ 1904) - 조선의 아픔을 함께 한 영국 여인
이사벨라 비숍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자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조선을 답사합니다. 당시 조선은 64세 노년의 여성에게는 너무나도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은둔의 나라였습니다.
비숍여사는 ‘몽골리안 민족들의 국가와 지리, 민족적 특징을 연구하는’ 자신의 학문적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자 1893년 조선 여행을 계획하고 그 이듬해 1894년 2월말 서울에 도착합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준비를 마친 4월 중순, 한강진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산성 산줄기를 돌아 뱃길 따라 단양으로 향합니다. 조랑말을 타고서 금강산의 절경을 두루 찾아본 후 원산까지 갔어요. 원산을 떠나 증기선을 타고 부산을 거쳐 제물포에 도착하였으나 동학 농민전쟁과 청일전쟁 때문에 만주로 피신했다가,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해 간 조선인들을 만난 후 일본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여행 기간 비숍은 프로젝트에 충실하게 동식물의 분포, 기후 변화, 조선인들의 생활 모습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정확하고 철저한 조사, 놀랍도록 풍부하고 정확한 기억력, 생생한 묘사는 대단하였습니다.
1895년 1월 일본에서 다시 조선에 온 비숍은 조선 주재 영국 총영사 힐리어와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의 주선으로 네 차례에 걸쳐 고종과 민비를 알현하며 왕비와는 서로 존경과 우정을 나눈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2월 중국, 6월 일본으로 옮겨 답사하고 있던 10월, 민비의 시해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비숍은 급히 서울에 와 고종을 알현합니다. 그리고는 힐리어 주한 영국 총영사와 함께 두 달에 걸쳐 을미사변이란 ‘비극적 사건’을 취재하면서 미국인 군사 고문관 다이(Dye) 장군과 왕실 경호원인 러시아인 사바틴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일본 히로시마 법정에서 일본인 낭인들에 대한 재판을 직접 참관했어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는 판결을 보고 분노하며 비숍은 민비 시해 참변의 배후가 일본 정부라는 사실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에 자세히 서술했고, 화장터 사진을 동판화로 만들어 게재하기도 하였습니다.
비숍은 명성황후 시해 참변 취재를 마친 후 서울을 출발해 개성, 황주, 평양 일대를 답사했다. 중국으로 떠났던 그녀는 1896년 10월 제물포로 들어와 조선의 무속신앙과 정치적 상황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 1897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출판했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선의 국왕과 왕비 그리고 민간인의 삶, 교육 및 대외 무역, 무당과 기생 심지어는 무속신앙의 귀신 간 서열까지 최선을 다해 취재한 결과가 담겨 있었다.
이사벨라 비숍 사진
KOREA AND HER NEIGHBORS 표지
120년 전 조선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