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의 충고
내가 가진 절반 이상이 내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내가 소유하고 있어도 실제로 사용하려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요즈음 먹는 것도 입은 것도 텔레비전 채널을 선택하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내 삶까지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삶이 변해 가며, 삶의 가치나 아름다움까지도 이루어진다.
퇴직 후 집안에서 생활이 길어질수록 의지대로 되는 것이 드물다. 먹는 것은 내 입맛과는 상관없이 텔레비전이나 책 속에 나오는 소위 몸에 좋다는 것이어야 한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정수기에서 나오는 것이나 아니면 생수란 이름을 달고 있는 플라스틱(plastic)병에 든 것이어야 한다. 입는 옷도 내 체형과 기호와는 달리 유행하는 디자인이나 유명 상표를 달아야 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바지나 윗도리처럼 편안한 옷은 입을 수 없다.
아침저녁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초겨울이다.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외투를 사려갔다. 아내가 집에 있는 것은 낡았으니 한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하잔다. 나는 올겨울에 외투를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아내의 강요로 옷가게에 갔다. 옷은 내가 입어야 하는데 아내는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와 자꾸 입어보란다. 귀찮기는 했으나 나를 위한 배려라 생각하며 이것저것 입었다 벗기를 반복했다. 매장에는 좋은 외투가 많았다. 디자인도 다양했다.
아내 마음에 들고 점원이 좋다고 추천하는 옷을 샀다. 집에 와서 아내가 다시 입어보란다. 좋다고, 잘 어울린다고 해 사 오기는 했으나 정말 내게 어울리는지 궁금했다. 옷을 입었다. 모습이 어딘지 어색하다. 몸에 큰 것 같기도 하고 나이에 맞지 않은 차림 같기도 하다. 잘못 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옷 입은 모습을 보고 흉이나 보지 않을까. 너무 젊어 보인다고 하지 않을까. 지난해까지 입던 옷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헌 옷을 찾았다. 다림질이 되지 않아 구김이 많기는 해도 편안하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옷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헌 옷을 입고 팔을 돌려보고 허리도 굽혀 본다. 참 편하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외투를 두고 왜 새 옷을 사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보기 싫다면서 벗으라 한다. 한참을 더 입고 있다가 벗었다. 새로 산 옷을 다시 입었다. 아무래도 어색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옷을 사는데 내 의견은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다. 아내와 점원이 하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만 웃고 있었다.
옷장 속의 외투를 본다. 아직은 추위가 오지 않아 입고 나들이를 할 일이 없다. 손님 모시듯 정중하게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괜히 추위가 다가올까 걱정이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미리 하고 있다. 옷 하나 입는 것까지 내 마음대로 못 하고 아내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나. 내 중심의 삶은 어디로 갔을까. 이러다 남을 위한 삶만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외투가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듯하다. 앞쪽은 보랏빛을 띤 다색이며 뒤쪽은 검은색이다. 속에는 무슨 짐승의 것인지는 모르나 털이 들어 가볍다. 손에 닿는 느낌도 따뜻하다. 주머니가 깊숙해 손을 넣으면 보온이 충분히 될 수 있겠다. 물건이 흐르지 않게 지퍼도 있다. 목 뒷부분에 찬 바람을 막아줄 모자까지 달렸다. 겨울 추위를 이길 여러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고민하지 말란다. 자신을 선택한 것이 잘 못 되어 후회할지라도 추위가 왔을 때 입어보고 하란다.
그렇다. 추위도 오지 않았는데 걱정이 많았다. 외투도 추위가 와 입고 나들이할 때까지 잘 샀다 못 샀다 할 일이 아니다. 살 때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건 적게 되었건 불평할 일도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도 너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나 외에는 아무도 내가 새 외투를 입은 것을 본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성공 여부나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걱정은 하지 말자. 내 미래의 즐거운 삶을 가로막는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추위가 올 때까지 새로 산 외투를 입어보지 않을 작정이다. 외투의 가격이 싼지 비싼지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방한이 잘 될지 안 될지도 평가하지 않을 테다. 날씨가 추워져 새 외투가 “나를 입고 바깥나들이 하세요” 할 때 입고 다녀본 후 그 가치를 종합적으로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 자신의 성찰, 관리, 계발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되기 위해서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과 겨루기나 싸움이 있어야 하듯 자신의 성찰, 관리, 계발을 위해 좀 더 삶에 적극성을 보여야겠다. 내가 입는 옷 하나 고르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니 삶의 폭이 참 좁고 무성의하다. 안타깝다. 겨울 외투의 선택에 웃음으로 마음을 위장할 일이 아니다. 지금껏 작은 것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한 옷 고르기에도 적극성을 가져야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택에 숨어 있는 행복을 찾아야겠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