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임란 때 소실된 장륙전 중창 원력을 세운 대중들이
백일기도를 마치기 전날 밤,
대중은 일제히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주지와 대중은 들으라.
내일 아침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화주승으로 삼아라.』라는 부촉을 받았다.
☆☆☆
회향일인 이튿날 아침 큰방에 모인 대중은 긴장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려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었으나 한결같이 흰 손이 되곤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주지 계파 스님뿐.
스님은 스스로 공양주 소임을 맡아
백일간 부엌일에만 충실했기에 아예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
이게 웬일인가,
계파 스님의 손에는 밀가루 한 점 묻지 않았다.
스님은 걱정이 태산 같아
밤새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너무 걱정 말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청하라.』
간밤 꿈에 만났던 그 백발의 노승이
다시 나타나 일깨워 주었다.
☆☆☆
새벽 예불 종소리가 끝나자
주지 스님은 가사장삼을 수하고 산기슭 아랫마을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한 계파 스님은 초조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 내가 한낱 꿈속의 일을 가지고….』
씁쓰레 웃으며 마지막 마을 모퉁이를 돌아설 때,
눈앞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기쁨에 넘친 스님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님은 남루한 거지 노파의 모습에 이내 실망했다.
그러나 백발노승의 말을 믿기로 한 스님은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
눈이 휘둥그래진 거지 노파는 모둘 바를 몰랐다.
『아니 스님, 쇤네는….』
그러나 스님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소승의 소망은 불타 없어진 절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절을 지어 주시옵소서.』
『아이구, 나같이 천한 계집이
스님에게 절을 받다니 말이나 되나 안되지 안돼.』
총총히 사라지는 주지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파는 결심했다.
『다 늙은 것 주지 스님께 욕을 뵈는 셈이니
이젠 죽는 수밖에 없지. 난 죽어야 해.
아무 데도 쓸데없는 이 하찮은 몸,
죽어 다음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도록 부디 문수 대성은 가피를 내리소서.』
할멈은 그 길로 강가로 갔다.
짚신을 바위 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강물에 투신자살을 했다.
☆☆☆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자 스님은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됐다.
『아, 내가 허무맹랑한 꿈을 믿다니.』
스님은 바랑을 짊어진 채
피신 길에 올라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
그로부터 5∼6년 후.
창경궁 안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는 공주를
큰길에 다락을 지어 가두라는 왕명이 내렸다.
『폐하, 노여움을 푸시고 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듣기 싫소, 어서 공주를 다락에 가두고 명의를 불러 울음 병을 고치도록 하라.』
이 소문을 전해들은 계파 스님은
호기심에 대궐 앞 공주가 울고 있는 다락 아래로 가 보았다.
이때 묘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울기만 하던 공주가 울음을 뚝 그쳤다.
황후는 방실방실 웃어대는 공주를 번쩍 안으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아니, 공주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웃사옵니다. 폐하!』
『허허! 정말 그렇구나.』
황제와 황후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폐하! 저기 저 스님을 가리키고 있사옵니다.』
『응, 스님을?』
☆☆☆
모든 사람의 시선이 계파 스님에게 쏠렸다.
주위를 의식한 스님이 그만 자리를 떠나려 하자
공주는 또 울기 시작했다.
『여봐라, 저 스님을 모시도록 하라.』
황제 앞에 부복한 스님은 얼떨떨했다.
『폐하, 죽어야 할 몸이오니 응분의 벌을 주시옵소서.』
스님은 지난날의 일을 낱낱이 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멈춘 공주는 달려와 스님에게 매달렸다.
그리고는 태어날 때부터 펴지 않던 한 손을 스님이 만지니
스스로 펴는 것이 아닌가.
손바닥엔 「장륙전」이란 석 자가 씌어 있었다.
☆☆☆
이 모습을 본황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 일찍이 부처님의 영험을 알지 못하고 크고 작은 죄를 범하였으니,
스님 과히 허물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소승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
『공주가 스님을 알아보고 울지 않는 것은
필시 스님과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음을 뜻함이오.
짐은 이제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스님을 도와 절을 복구할 터인즉 어서 불사 준비를 서두르시오.』
숙종대왕은 '장륙전' 건립의 대원을 발하고
전각이 완성되자 「각황전」이라 이름했다.
왕이 깨달아 건립했다는 뜻이다.
이 건물이 바로 숙종 25년에 시작하여
28년에 완성된 2층 팔각지붕의 국보 제 67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