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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경 봉황대 다시 무너지다.
○ 어떤 사유로 붕괴 되었는가.
연화지에 있는 김산 봉황대에는 김산군수 이능연(李能淵,1782~)이 1838년 봉황대를 중수하고 기록한 봉황대중수상량문(鳳凰臺重修上樑文)이 걸려 있다. 1792년 재건된 봉황대가 왜. 어떤 연유로 불과 40년도 되지 않아 다시 중수해야 했던 것일가.
▲봉황대중수상량문(鳳凰臺重修上樑文) 1838년 김산군수 이능연(李能淵) 撰
다행히 김천향토사연구회에서 <김천 누정의 편액>이란 제목으로 2024년도에 발간한 책자에 이능연(李能淵)이 지은 ‘봉황대중수상량문(鳳凰臺重修上樑文)’의 탈초문과 번역본이 있어, 그 대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능연이 지은 ‘봉황대중수상량문’은 행을 사용한 방식이 일반적인 글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봉황대를 중수하는 사유에 대해 기술한 상량문 구절을 살펴보자.
嗟八角之歲久腐爛, 奄一瞬之風吹倒顪. 神鞭鬼斧 造物之壞斯 倏然蜃樓虛影, 天旋地斡 氣數之變易 浩乎桑溟劫塵
아! 팔각정이 세월이 오래되어 썩어 문드러지더니, 문득 일순간에 바람이 불어 넘어졌네. 신이 힘쓰고 귀신이 만든 것 같은 건물이 이처럼 무너지니 홀연 신루(蜃樓)의 허영과 같고, 하늘과 땅이 돌며 기수(氣數)가 변하니 넘실거리는 동쪽 바다의 겁진이었다.
*신루(蜃樓) : 바닷가에 살면서 신선술을 터득한 개씨(介氏 갑각류(甲殼類)의 족속이 만든 상상의 누각. *기수(氣數) : 길흉(吉凶)ㆍ화복(禍福)의 운수. *상명(桑溟) : 동쪽 바다. 조선을 칭함 *겁진(劫塵) : 불교 용어로, 말세에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겁화(劫火)를 말한다.
伏願上樑之後 狂瀾退而石礎無傾 遥雨捲而粉牆不添.
엎드려 원하오니 상량한 후에는,
거친 물결 물러나 초석이 기울지 않고,
장마가 그쳐 회칠한 담장 더럽혀지지 않게 하소서.
‘문득 일순간에 바람이 불어 넘어졌네.’‘거친 물결 물러나 초석이 기울지 않고, ’라는 구절의 축원 내용으로 미루어 봉황대가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로 기초가 파여 무너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집중호우로 인해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구읍마을 일대에 홍수 피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지금은 복개되어 하천 흔적을 외관상 쉽게 확인할 없지만, 향교가 있는 교동 마을과 촌락이 있는 삼락동 마을 사이를 가르는 작은 하천이 범람하였고, 그 여파로 봉황대의 기초가 무너졌다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여하튼 19세기 초반 김천 지역에는 여러번 홍수를 겪게 된다. 그만큼 자연환경이 재해에 취약했던 점을 반영한다. 한 예로 1814년 7월에 발생한 김천 지역의 홍수 기록은, 감천 수계 지역에 홍수가 발생하면 그 인근 지역이 어떻게 침수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일성록> 순조 14년 갑술(1814) 7월 28일(병진)
김산군(金山郡)은 감천(甘川)이 크게 불어서 평지가 강으로 변하고, 물가의 전답은 모두 침수되었으며, 하신기(下新基)의 가게는 다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 언제 붕괴 되었는가
봉황대가 수해로 무너진 시기는 이능연의 중수상량문에 있는 다음의 구절로 확인할 수 있다.
不幸傾頹之適在我時 其復修葺之果云誰責.
불행하게도 무너진 것이 내가 이곳에 있을 때인데. 그것을 다시 고치는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이능연은 봉황대가 무너진 것이 ‘내가 이곳에 있을 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능연 재임시기를 통해 그 시기를 추론 할 수 있다.
김산읍지에 기록된 이능연의 재임기간은 1834년 12월부터 1839년 6월까지 이다. 중수기는 1838년 4월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봉황대가 수해를 입은 시기는 1835년에서 1837년 사이로 압축된다.
○ 왜 다시 지어야 했는가
봉황대를 여러번 중수하는 사유에 앞서 봉황대가 김산군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설물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792년 김산객관의 중수와 더불어 다시 지은 봉황대는 이때부터 연화지와 함께 지방민의 단순한 휴식공간에서 김산군의 공식적인 공공시설물로 기능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빈이 방문하면 연회장소로 사용되고, 지방관과 지역 사대부의 회합장소로 이용된 것은, 앞서 살펴본 시문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그뿐 아니라 봉황대의 기능이 단순한 유희의 장소가 아니라, 향사당의 구성원들과 지방관이 시회를 통해 학문을 점검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장소로 활용되고,연화지와 더불어 김산군민의 휴식공간으로서 기능 또한 더욱 부각 되었을 것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연화지가 고을을 지키는 방어시설물이자, 저수지로의 기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김천역도를 오가는 여행객들에게는 봉황대는 높은 건물로 지었기에 이정표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기능을 가진 시설물로서, 중수기에서는 ‘팔도의 승람에 별업(別業)으로 기록되어 있다.' 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蓋玆金陵爲邑 分符浙郡 勢鎭嶠州. 曰高城黃嶽 錢塘鏡湖 山川之形勝無比 若湧金拱星風月 琴簫樓閤之壯麗可觀. 按八域之椉圖 寔爲大海東別業, 玩百里之風景 無愧小江南嘉稱
대저 이곳 금릉(金陵邑)은 읍이 되어, 절군(浙郡)의 부절을 나누어 교주(嶠州)를 진압하는 형세이다. 고성산과 황악산 전당과 경호라 말하는 산천의 형승은 비할 곳이 없고, 마치 금이 솟아나듯 뭇별과 풍월에 거문고 퉁소 울리는 누대의 장려함은 볼만하다. 팔도의 승람을 살펴보면 이것은 해동의 별업이요, 백리(百里)의 풍경을 완상하면 작은 강남의 아름다움이라 칭함에 부끄럽지 않다.
이처럼 봉황대는 김산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기능을 수행하던 공간이자 김산읍민의 정원이었지만, 봉황대에 대한 설명문은 이전 원인과 기능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채, 군수가 독단으로 봉황대를 경치 좋은 곳으로 옮겼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고 봉황대를 권세있는 자들이 풍류나 즐기는 그런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어 안타깝다.
연화지와 봉황대는 김산군의 상징이자, 김산 군민의 휴식 공간이었다. 더불어 민관이 소통하는 장소였고, 학문 전수의 장소였다. 김산에 부임하는 지방관이 봉황대에 걸린 글을 통해 김산군민의 자존심을 이해하게 하고, 목민관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였음을 설명하는 것이 연화지와 봉황대의 또 다른 서사가 아닐까.
이능연이 중수상량문에 표현한 봉황대의 서사는 다시금 연화지와 봉황대를 돌아보게 한다.
矧乎追臺之名鳳兮 猗歟古人之取象者. 出於東方君子之國 知所止焉 儀于南薰聖人之時 宜其祥也. 越百年創建之謀畫卓爾而後人嘉尙何如. 歷二公重繕之名蹟 韙然於是邑 光色不少
더군다나 대(臺)를 이루는 이름이 봉(鳳)이라 하니,
아름다운 게 고인이 취한 형상이다.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멈출 곳을 알았고,
훈훈한 바람 부는 성인(聖人)의 시대를 본받으니 마땅히 그 상서로움이 있다.
백 년을 넘어서 창건할 계획이 뛰어나니 후인들이 가상하지 않은가.
과거 두 분께서 중수하여 드러난 자취가 이 고을에 우뚝하니
모양이 초라하지 않았다.
○ 다시 짓는 마음가짐
온 마을이 타는 화재뒤에 재건했던 봉황대, 이번엔 수해에 무너졌던 봉황대를 재건하여 고을의 부흥을 도모하고자 했던 김산군수 이능연(李能淵,1782~)과 김산군민의 마음가짐은 어떠했을까. 상량문 속에서 그 애절한 심정들을 읽을 수 있다.
棋鋪江山誰復黃鶴之敵手. 珠亡滄海忽歎 老驪之空頤. 不幸傾頹之適在我時 其復修葺之果云誰責. 堂燭無寐 正固方寸之思 豈敢曰百療具興. 案膝有暇 博詢短長之謀 何幸見衆心協舉
바둑판처럼 펼쳐진 강산에서 누가 다시 황학(黃鶴)의 적수될까. 창해에서 구슬을 잃고 홀연히 탄식하며, 늙은이는 헛된 입맛을 다셨다.
불행하게도 무너진 것이 내가 이곳에 있을 때인데,
그것을 다시 고치는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방에 불을 밝혀도 잠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참으로 괴로운데,
어찌 감히 백 가지를 치료하고 모두 일으켰다고 말하겠는가.
책상에 앉아있는 여가에 널리 장단기 계획을 물으니,
다행히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협력할 것을 보였다.
이능연의 책임감과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어떠할까.
1838년에 봉황대를 중수한 김산군수 이능연(李能淵,1782~)은 세종대왕의 5자 광평대군의 후손이다. 김산군수 시절 그에 대한 포폄은 다음과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춘하등포폄방목(戊戌七月日春夏等褒貶榜目)
金山郡守 李能淵 柔以愛本 惠爲治先 上
김산군수(金山郡守) 이능연(李能淵)은 너그러움으로써 백성을 사랑하였고, 은혜를 베푸는 것을 다스림의 우선으로 삼았다.
화재로 한 차례 소실되자 김산객관과 함께 웅장하고 화려하게 중건하였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해로 소실되자 지역민들은 전보다 좀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짓고 싶은 열망을 가지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지역민의 열망에 대해 새로 부임한 군수는 어떠한 자세로 임했을까. 연이어 발생한 김산의 재해로 피폐해진 지역 살림, 도로변에 위치하는 문제점 등을 다각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認故址之不可復用 嫌彼大道傍撲近閭閻. 占新築而蔑以為加 好是兮池中別立島嶼. 乃命四方三間之劃作 重揭千仞九苞之文章.
옛터를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니,
큰길 옆은 마을과 너무 가까운 것이 싫었다.
새로 지을 곳을 정하니 더 크게 하는 것을 버리고,
못 가운데 별도로 세운 섬이 좋았다.
이에 사방 3칸으로 제작하도록 명하고 천길 봉황의 문장을 다시 걸었다.
더 크고 화려한 것을 지양하는 이능연(李能淵)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면모를 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옛터에 복구하기에는 많은 공력이 들었을 것이고, 큰 길 옆 마을 가까이에 세우면 마을 사람들이 불편 했을 것이고, 땅을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건립하는 방안으로 연화지 가운데의 인공섬에 사방 세칸의 시설물로 설계한다.
즉, 현재의 봉황대의 원형인 인공섬 가운데에 이전보다 규모를 축소하여 사방 3칸의 건물로 재건하게 된 것이다.
○ 봉황대에 깃든 정신
봉황대는 김산군에 어떠한 의미를 가졌기에, 무너지면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김산은 금릉이라는 별칭에서 다시 파생된 삼산이수의 고장으로 소개되고 알려져 왔다. 금릉과 삼산이수라는 별칭에는 문화의 고을이자 문예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녹아있다. 금릉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봉황대라면, 금릉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 이백의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시(詩)이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에 금릉이란 지명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구해준 명(明)나라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연호를 무너진 나라 명(明)나라의 숭정(崇禎) 연호를 사용할 정도로 숭명의식이 강하던 시기였으니, 명나라가 나라를 일으켰던 금릉이 갖는 지명은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18세기 조선은 인구 증가와 농민의 계층분화로 상품의 유통이 더욱 활발해졌다.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김산은 상업적으로 어느 지역보다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바탕에는 지리적 이점도 있을 것이고, 문화적 역사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김산의 도시 위상에 걸맞는 문화시설로서 봉황대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부터 김산군에서 연이은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그 와중에 봉황대가 무너지는 재난이 거듭 발생한다. 그 상황 배경과 함께 연화지와 봉황대를 대하면 또 다른 서사로 다가온다.
재난 속에서 무너져도 일어서는 불굴의 정신, 그것을 극복한 백성과 목민관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문화를 교류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연화지와 봉황대에 깃들어 있다.
김산군수 이능연은 그 정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文章諸士替主 張風月之光, 搢紳君牧與民 同池臺之樂
金邑以是有言 豈屬於等閒樓臺 鏡水也自無風 永保于悠久歲月.
문장하는 선비들은 바뀐 사또와 풍월의 빛을 펼치게 하고,
백관인 지방관은 백성과 연화지와 봉황대의 즐거움을
함께 하게 하소서.
김산읍에 이렇게 말을 남기는데 어찌 누대에 등한하겠는가.
경수는 저절로 바람이 없어 유구한 세월 동안 영원히 보전되리라
보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천향토사연구회에서 간행한 <김천 루정의 편액>에 수록된 봉황대중수상량문을 고전번역원DB의 주석을 참고하여 번역한 내용을 첨부한다.
鳳凰臺重修記上樑文(봉황대중수상량문)
戊戌(1838년) 仲春知郡 이능연(李能淵) 撰
述夫 以麕爲身 以蛇爲頭 認最靈於三千羽族, 如翬斯飛 如鳥斯革 覿重新於十二欄干. 窈窕風煙 薈菀文彩
서술하면 노루의 몸이고 뱀이 머리가 되어 삼천의 날짐승 중에 가장 신령스럽고, 꿩이 날아가듯 새가 날개를 펼친 듯, 열두 난간을 거듭 새로 보게 되니, 그윽하고 조용한 풍경이며, 울창한 문채라네.
*여조사혁 여비이사(如鳥斯革 如翬斯飛) : 건물이 웅장한 모습을 표현. 《시경》 〈사간(斯干)〉에, 추녀의 위용을 “새가 날개를 펼친 듯, 꿩이 날아가는 듯.〔如鳥斯革 如翬斯飛〕”이라고 표현한 데서 나왔다. *회몽(薈蒙) :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초료부(鷦鷯賦)〉에 “무성한 숲 수북한 곳 여기서 모이도다. 날아도 펄펄 드날리지 않으며 비상해도 함께 모이지 않도다.……숲 속에 깃들어도 한 가지에 불과하고 매번 먹을 때마다 몇 개의 쌀알에 불과하다.[翳薈蒙籠, 是焉游集, 飛不飄揚, 翔不翕集.……巢林不過一枝, 每食不過數粒.]”라고 하였다.
蓋玆金陵爲邑 分符浙郡 勢鎭嶠州. 曰高城黃嶽 錢塘鏡湖 山川之形勝無比 若湧金拱星風月 琴簫樓閤之壯麗可觀. 按八域之椉圖 寔爲大海東別業, 玩百里之風景 無愧小江南嘉稱
대저 이곳 금릉(金陵邑)은 읍이 되어, 절군(浙郡)의 부절을 나누어 교주(嶠州)를 진압하는 형세이다. 고성산과 황악산 전당과 경호라 말하는 산천의 형승은 비할 곳이 없고, 마치 금이 솟아나듯 뭇별과 풍월에 거문고 퉁소 울리는 누대의 장려함은 볼만하다. 팔도의 승람을 살펴보면 이것은 대 해동의 별업이요, 백리(百里)의 풍경을 완상하면 작은 강남의 아름다움이라 칭함에 부끄럽지 않다.
*분부(分符) : 부절(符節)을 나누어 받음. 즉 지방 수령에 임명됨.
矧乎追臺之名鳳兮 猗歟古人之取象者. 出於東方君子之國 知所止焉 儀于南薰聖人之時 宜其祥也. 越百年創建之謀畫卓爾而後人嘉尙何如. 歷二公重繕之名蹟 韙然於是邑 光色不少
더군다나 대(臺)를 이루는 이름이 봉(鳳)이라 하니, 아름다운 게 고인이 취한 형상이다.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멈출 곳을 알았고, 훈훈한 바람 부는 성인(聖人)의 시대를 본받으니 마땅히 그 상서로움이 있다.
백 년을 넘어서 창건할 계획이 뛰어나니 후인들이 가상하지 않은가. 과거 두 분께서 중수하여 드러난 자취가 이 고을에 우뚝하니 모양이 초라하지 않았다.
*남훈(南薰) : 훈훈한 남쪽 바람이라는 뜻으로, 성군(聖君)의 덕정(德政)을 비유하는 말이다.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禮記集說 卷94》
嗟八角之歲久腐爛, 奄一瞬之風吹倒顪. 神鞭鬼斧 造物之壞斯 倏然蜃樓虛影, 天旋地斡 氣數之變易 浩乎桑溟劫塵
아! 팔각정이 세월이 오래되어 썩어 문드러지더니, 문득 일순간에 바람이 불어 넘어졌네. 신이 힘쓰고 귀신이 만든 것 같은 건물이 이처럼 무너지니 홀연 신루(蜃樓)의 허영과 같고, 하늘과 땅이 돌며 기수(氣數)가 변하니 넘실거리는 동쪽 바다의 겁진이었다.
*신루(蜃樓) : 바닷가에 살면서 신선술을 터득한 개씨(介氏 갑각류(甲殼類)의 족속이 만든 상상의 누각. *기수(氣數) : 길흉(吉凶)ㆍ화복(禍福)의 운수. *상명(桑溟) : 동쪽 바다. 조선을 칭함 *겁진(劫塵) : 불교 용어로, 말세에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겁화(劫火)를 말한다.
棋鋪江山誰復黃鶴之敵手. 珠亡滄海忽歎 老驪之空頤. 不幸傾頹之適在我時 其復修葺之果云誰責. 堂燭無寐 正固方寸之思 豈敢曰百療具興. 案膝有暇 博詢短長之謀 何幸見衆心協舉
바둑판처럼 펼쳐진 강산에서 누가 다시 황학(黃鶴)의 적수될까. 창해에서 구슬을 잃고 홀연히 탄식하며, 늙은이는 헛된 입맛을 다셨다. 불행하게도 무너진 것이 내가 이곳에 있을 때인데, 그것을 다시 고치는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방에 불을 밝혀도 잠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참으로 괴로운데, 어찌 감히 백 가지를 치료하고 모두 일으켰다고 말하겠는가. 책상에 앉아있는 여가에 널리 장단기 계획을 물으니, 다행히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협력할 것을 보였다.
認故址之不可復用 嫌彼大道傍撲近閭閻. 占新築而蔑以為加 好是兮池中別立島嶼. 乃命四方三間之劃作 重揭千仞九苞之文章. 梗楠櫲樟杞櫚之材 輸斤逞智, 練錦葡萄玻璨之像 顧廚施工.
옛터를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니, 큰길 옆은 마을과 너무 가까운 것이 싫었다. 새로 지을 곳을 정하니 더 크게 하는 것을 버리고, 못 가운데 별도로 세운 섬이 좋았다. 이에 사방 3칸으로 제작하도록 명하고 천길 봉황의 문장을 다시 걸었다. 경남(梗楠), 예장檬樟, 기려(杞櫚)의 재목들은 수입하거나 베는 지혜를 부리고, 연금(練錦), 포도(葡萄) 파려(玻璨)의 모습은 덕행과 재물로 시공하였다.
*구포(九苞) : 봉황이 가지고 있는 아홉 가지 특징을 말한다. 봉황의 특징에는 육상(六象), 칠덕(七德), 구포(九苞)가 있는데, 그중 구포는 구포명(口包命), 심합도(心合度), 이청달(耳聽達), 설굴신(舌詘伸), 채색광(彩色光), 관구주(冠矩州), 거예구(距銳鉤), 음격양(音激揚), 복문호(腹文戶)이다. 《山堂肆考 卷211 羽蟲 鳳》 *파려(玻瓈) : 칠보(七寶)의 한 가지로서 수정류(水晶類)임. *고주(顧廚) : 《후한서》 권67 당고열전 서(黨錮列傳序)에 “세상에서 그 풍도를 흠모하는 자들이 마침내 서로 표방(標榜)하면서 천하의 명사들을 지목한 호칭. 팔고(八顧)는 덕행(德行)으로써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분 8명이니, 동한 때의 곽태(郭泰)ㆍ종자(宗慈)ㆍ파숙(巴肅)ㆍ하복(夏馥)ㆍ범방(范滂)ㆍ윤훈(尹勳)ㆍ채연(蔡衍)ㆍ양척(羊陟)이다. 8주(廚)는 재물로써 남의 급한 일을 구출할 수 있는 분 8명이니, 동한 때의 도상(度尙)ㆍ장막(張邈)ㆍ왕고(王考)ㆍ유유(劉儒)ㆍ호모반(胡母班)ㆍ진주(秦周)ㆍ번무(蕃撫)ㆍ왕장(王章)이다.
闢一鑑半畝方塘 洞徹天光上下, 起百尺層楹疊榭 迴挹地勢東西. 不徒爲東邦擅聲 殆將與西湖捋美. 泓崢繞檻 髣髴 中分白鷺 半落靑天. 花卉媚軒 隱映 十里碧荷 三秋紅桂
반묘방당 열리어 한번 성찰하니 하늘빛 상하로 통철하고, 층진 지붕과 겹친 누대 높게 일어서니 지세가 동서로 돌아 떠 있네. 동방에서만 명성을 차지할 뿐이 아니라, 장차 서호(西湖)와 아름다움을 다투리라
높은 산이 난간을 두르니, 백로주가 가운데를 나누고 푸른 하늘에 반이 떨어진 것을 방불하네.
화훼(花卉)가 처마에서 뽐내니, 십리의 푸른 연과 늦가을 붉은 계수나무 은은히 비쳐오네.
*이백의 등금릉봉황대시(登金陵鳳凰臺詩)에 “三山半落靑天外 一水中分白鷺洲”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遺老言, 凌虛址是已 古蹟益奇. 衆賓曰, 擇勝亭如之 新景隨好. 此無乃神功所助 亦莫非民力有爲. 椉暇登臨 豈自擬於風流太守. 因廢治葺 欲無負於經理前人. 白首叨恩 愧未效夔龍協贊, 彤毫載積 足可謂鳳凰來儀. 遂爲六郎之謠 爱助百夫之役
남은 노인들이 말씀하기를. “빈터를 능가하여 이같이 이루니 고적보다 기이하다.”하고, 손님들이 이르기를, “훌륭한 정자 택하여 이와 같으니 새로운 경치가 따라와 좋다.” 하였다.
이것에 어찌 신공의 도움이 없었겠는가. 역시 백성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을 내어 올라서 어찌 스스로 풍류 태수를 흉내 내겠는가. 무너졌기에 중수하여 전인들이 경영한 것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하였을 뿐이다. 늙어서 은혜를 입어 기룡(夔龍)의 협찬을 펴보지 못함이 부끄러웠는데, 동호(彤毫)를 쌓으니 참으로 봉황이 찾아와서 춤춘다. 드디어 육랑(六郎)의 노래를 지어 사람들의 일을 돕노라.
*기룡(蘷龍) : 순(舜) 임금 시대에 각각 악관(樂官)과 간관(諫官)을 지낸 두 신하의 이름 *동호(彤毫) : 붉은색 자루의 붓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붓을 뜻함. *봉황래의(鳳凰來儀) : 《서경》〈익직(益稷)〉에 “순 임금이 창작한 음악인 소소 음악 아홉 악장을 연주하자, 봉황이 듣고 찾아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는 내용이 나온다.
兒郎偉抛樑東(아랑위포량동)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올리니
九華升日曙曈曨(구화승일서동롱) 구화산에 뜨는 해 어슴푸레 밝아오네.
幾千里遠扶桑界(기천리원부상계) 몇 천리 머나먼 부상의 경계에서
直欲刻山納眼中(직욕각산납안중) 곧장 산에 새기며 안중에 들어오네.
兒郎偉抛樑南(아랑위포량남)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올리니
燧臺的歷霽蒼嵐(수대적역제창람) 봉수대 선명하고 푸른 안개 걷히네.
翁頭白盡昇平世(옹두백진승평세) 호호백발 늙은이 승평(昇平)의 세상에서
月夕凭欄樂笑談(월석빙란락소담) 달밤에 난간에 기대 담소를 즐기네.
*승평(昇平) :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이 없고 평안함
兒郞偉抛樑西(아랑위포량서)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올리니
鶴峀孱顔與累齊(학수잔안여누제) 황학산 험한 모습 겹겹이 가지런하네.
坐得楓林無限景(좌득풍림무한경) 단풍 숲 무한한 경치 앉아서 얻는데
何須勞力踏山磎(하수노력답산계) 어찌 노력하며 산 계곡 밟겠는가.
兒郞偉抛樑北(아랑위포량북) 어영차 들보를 북쪽으로 올리니
九鳳翩翩展兩翼(구봉편편전양익) 구봉이 훻훨 날며 두 날개 펼치네
大野逶迤精彩凝(대야위이정채응) 큰 들녂 구불구불 맑은 기상 엉겨있고
臺名認是不虛得(대명인시불허득) 누대 이름 헛되지 않은 걸 바로 알겠네.
*정채(精彩) : 정묘하고 뛰어난 기상.
兒郞偉抛樑上(아랑위포량상) 어영차 들보를 위쪽으로 올리니
驂雲仙子欲誰訪(참운선자욕수방) 신선은 구름 수레 타고서 누구를 방문하나.
新臺迢遞無塵埃(신대초체무진애) 새 대(臺)가 아득하여 티끌조차 없기에
請抱瑤琴共和唱(청포요금공화창) 거문고 청하여 함께 부르네.
兒郎偉抛樑下(아랑위포량하) 어영차 들보를 아랫쪽으로 올리니
魚遊鱉泳方塘瀉(어유별영방당사) 물고기 자라 노니는 방당(方塘)에 물이 흐르네.
秋來小艇荷花穿(추래소정하화천) 가을날 쪽배로 연꽃을 뚫고 나가니
檻外團團璧露灑(함외단단벽로쇄) 난간 밖에 알알이 옥이슬 뿌려졌네.
伏願上樑之後 狂瀾退而石礎無傾 遥雨捲而粉牆不添. 文章諸士替主 張風月之光, 搢紳君牧與民 同池臺之樂
金邑以是有言 豈屬於等閒樓臺 鏡水也自無風 永保于悠久歲月. 戊戌 仲春 知郡 李能淵撰
엎드려 원하오니 상량한 후에는, 거친 물결 물러나 초석이 기울지 않고, 장마 비 그쳐 회칠한 담장 더럽혀지지 않게 하소서. 문장하는 선비들은 바뀐 사또와 풍월의 빛을 펼치게 하고, 백관인 지방관은 백성과 연화지와 봉황대의 즐거움을 함께 하게 하소서.
김산읍에 이렇게 말을 남기는데 어찌 누대에 등한하겠는가. 경수(鏡水)는 저절로 바람이 없어 유구한 세월 동안 영원히 보전되리라.
무술(1838년) 4월 군수 이능연(李能淵)짓다
*진신(搢紳) : 백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