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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잔금섭혼신편의 비밀 청풍검 선우철은 빙그레 웃으며 반문하였다. “애원석 한원한이 어느 문파에 속한 인물인지 비형은 아십니까?” 비류신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모릅니다.” “그럼 천하 무림 인물들로 하여금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욕심을 내게 한 잔금섭혼신편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십니까?” 비류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문하였다. “그럼 잔금섭혼신편을 만든 사람이 바로 애원석 한원한이란 말인가요?” 선우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신비한 채찍을 만든 사람은 바로 애원석 한원한이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한원한은 바로 흑룡강 일파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오. 아울러 제가 말한 두 번째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흑룡강 인물이라는 것이오. 그런 까닭에 그들 역시 잔금섭혼신편 때문에 나타났던 강호 무림은 온통 떠들썩할 뿐 아니라 도저히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리라고 내다보고 있소.” 비류신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선우형의 견해에 의하면 흑룡강 일파가 중원 무림을 침입하리라는 예측이구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일을 진행시켜 무림을 격동시킬 필요도 없지 않소?” “하나 비형은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모르고 있소. 천하의 군웅이 지령보 부근으로 모여드는 것은 결국 모두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리사욕이라고요? 그럼 흑룡강 일파가 무슨 진귀한 보물이라도 가지고 온단 말이오?” 선우철은 여전히 담담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이 아무리 진귀한 보물을 가져온다 하여도 천하 무림의 일류 고수들이 천리 길이 멀다 않고 달려오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흑룡강 일파는 보검(寶劍)이나 권경(券經) 따위의 신비한 것들을 가지고 올 가능성이 많겠구려. 그런 병기라면 무림 인물들은 누구나 욕심을 낼 테니까 말이오.” “비형의 짐작이 맞았소. 사실 무림 인물들은 그런 사리사욕 때문에 혈안이 되어 몰려온 것이오. 하나 그 이외에도 또 한 가지 원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림의 존망에 관한 이해관계요.” “이해관계라니? 설마하니 흑룡강 일파가 무림을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이라도 품고 있단 말인가요?” 선우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중원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겠다고 했소.” 비류신은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여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들이 오면 도대체 몇 사람이나 오기에 그처럼 기고만장한 소리를 거침없이 한단 말이오?” “내가 암암리에 수소문해 보았더니 그들은 모두 일곱 명인데 그 중 네 명은 여자랍니다. 늙은 노인 두 명과 청년 한 명에 노부인(老婦人) 한 명과 소녀 세 명이랍니다.” “그들은 중원 무림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을 텐데 어찌하여 무림의 인물을 헤치려 드는 것이오?” “나도 그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소. 그들은 중윈 무림에 와서 두 가지 물건을 찾겠다고 했소. 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에게 무림을 충분히 격동시킬 만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선우형은 그들이 무림에 와서 찾으려는 세 가지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믿는 데요?” 선우철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 나서 대답하였다. ” 내가 생각하기로 그들이 찾으려는 물건 중 한 가지는 잔금섭혼신편일 것 같소.잔금섭혼신편을 만든 사람은 그들의 대선배인 애원석 한원한일 뿐 아니라 채찍에는 한 가지 비밀이 감추어져… …” 선우철은 돌연 말끝을 흐려 버렸다. 비류신이 섬뜩 놀라 선우철을 바라보며 무언중에 다음 말을 재촉하자 선우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 잔금섭혼신편에는 몇 가지 피맺힌 사건 이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답니다. 나는 아버님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비밀을 누설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한 바 있소… …” 선우철은 난처한 듯 망설이자 비류신은 재촉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선우형은 아버님께 맹세한 바 있으니 그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으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딴 생각에 골몰하였다. ‘소대호 노 선배님께서 이 잔금섭혼신편을 내게 주실 때 이 채찍이 신묘한 효력보다 몇 백 갑절 더 귀한 비보(秘寶)가 숨겨져 있다고 하였다. 선우철의 말투로 보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믿어도 좋다. 그런데 나는 이 채찍을 면밀히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틈이 있으면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아야지… …’ 결국 비류신은 선우철의 말을 통하여 소대호와 선우휘, 그리고 황천선구 세 사람 사이에 얽힌 십팔 년 전 은원 관계는 잔금섭혼신편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마도 소대호 노 선배님과 선우철의 부친 선우휘 사이의 원한은 무척 처절한 모양이다. 선우철은 소대호가 바로 나의 스승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까지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온 태도를 일변하여 당장 원수로 여길 것이다. 소대호 노 선배님은 나에게 너무도 넓고 깊은 온정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그분의 억울한 사인(死因)을 규명하여 기필코 원수를 갚겠노라 맹세한 바 있다.만약 선우휘가 그분을 살해한 원흉임이 분명하다면 기어이 그를 죽여 원수를 갚아드리고 말겠다. 그런데 나는 그들 사이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규명할 재간이 없구나. 선우철은 알고 있는 터인즉 슬며시 유도해서 그의 입을 통하여 실마리를 잡아 보자… …’ 비류신은 이런 생각을 하고서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선우형의 아버님은 잔금섭혼신편이 누구의 손에 떨어진 줄 알고 있소?” 그 질문에 선우철은 섬뜩 놀랐다. ‘이 사람은 몹시 호탕한 것 같지만 때에 따라서 매우 세심하여 내가 충분히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구나. 만약 이 자가 채찍의 행방을 알게 되면 나보다 한 발 앞서 선수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 선우철은 잔금섭혼신편을 비류신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한 터라 이런 생각을 하였고, 비류신은 선우철이 침묵을 지키자 넌지시 떠보았다. “나는 지난번 월광검 소대풍이 한 말을 엿들은 적 있었는데 잔금섭혼신편은 지신도 소대천의 수중에 있는 것 같더군요.내 추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 선우철은 그 말을 듣고 섬뜩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주위를 한 번 살피고 나서 나직이 말했다. “절대로 그 문제를 소문내서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신(殺身)의 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채찍은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의 수중에 있소.” 선우철의 대답에 비류신은 내심 무척 기뻐하면서 캐물었다. “그런데 지난번 선우형의 얘기에 의하면 선우형의 부친과 소대호 노 선배님 사이에 서로 풀지 못할 원한이 있다고 했는데 잔금섭혼신편 때문에 그런 일이 야기된 것이 아니요?” 이때 선우철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는 음험한 냉소를 머금은 채 서서히 입을 열었다. “지난번 우리는 파정에서 나의 아버님과 소대호, 황천선구 등의 일신 무공의 높고 낮음에 관하여 서로 토론한 바 있었소.그때 비형은 소대호를 몹시 두둔하였소. 이제 숨김없이 털어 놓아보시오. 비형은 혹시 소대호의 제자가 아니오?” 이렇게 물으면서 그는 신속하게 손을 내뻗쳐 비류신의 왼쪽 팔목 맥혈을 거머쥐었다. 비류신은 자신의 신분 내력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급습을 피하지 않고 일부러 팔목을 잡혀주고서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선우형, 왜 갑자기 이러시오? 아마 무슨 오해를 하신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소. 나의 스승님은 무림칠절 중 한 분인 진편독자(眞鞭獨子) 탁성군(卓聖君)이오. 나는 무예를 연마할 때 스승님께 소대호 노 선배님에 관한 얘기를 하신 것을 들은 적 있소. 그런 까닭에 나는 무의식 중 그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오. 하나 그분의 됨됨이나 성격에 관해서는 아는 바 없소. 나는 지난번 지령보에 침입했을 때 그곳은 잔악무도 한 마두들의 소굴임을 알고 소대풍을 죽이려 하였소. 설마 선우형이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으리라 믿는 데요?” 진편독자 탁성군과 소대호는 서로 배반할 수 없는 막역지우였다는 사실은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비류신은 임기응변으로 그런 거짓말을 날조했으나 그의 말이 논리 정연하여 모순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총명하고 심기가 뛰어난 선우철이라 할지라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선우철은 거머쥐었던 그의 팔목을 슬며시 풀어주고서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비형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진편독자 탁성군의 무공은 어떤 고수들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구려.” 선우철은 진편독자 탁성군의 일신 무공으로 비류신 같이 훌륭한 제자를 배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비꼬아 말했다. 비류신은 선우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처량하게 탄식하여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불행하게도 일 년 전 무예를 전수하실 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눈을 감고 돌아가셨소. 아마 그분은 제자에게 무공을 전수하시던 도중 돌아가시리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고 계신 듯했소. 그래서인지 그분은 미리 권보(拳譜) 한 권을 내주시면서 끊임 없이 무공을 연마하라고 당부하셨지요. 이제 생각하니 그분은 엄중한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비류신은 짐짓 처량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바다보다 넓고 깊은 은혜를 베푸셨소. 그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으시고 나를 이만큼 키워주셨지요. 나는 언제 그분의 은혜에 만 분지 일이나마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선우철은 비류신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하여 애당초 의문을 지워버림은 물론 그의 말을 곧이 듣고 탁성군으로부터 전수받은 절세적인 무공의 정원(情元)을 지닌 대로 이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하여 선우철은 포권을 하고 정중히 말했다. “비형, 제가 조금 전 일시적인 충동으로 한 언행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비류신은 빙그레 웃으며 답례하였다. “무슨 겸손의 말씀을… 선우형의 부친과 소대호 노 선배님 사이에 깊은 원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선우형께서 나에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오.” 선우철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소대호에게 무척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오. 그 원한은 잔금섭혼신편 때문에 야기된 것이오. 그러나 아버님께서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자세히 얘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도 깊게 아는 바 없소이다.” 비류신은 선우철이 사실대로 술술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고 또 물었다. “흑룡강 일파들이 찾으려 하는 두 번째 물건이란 무엇인지요?”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오. 최근 강호에서 명망이 높은 대협(大俠) 한 분이 그들에게 사로잡혀 간 바 있는데 그 문제는 의외로 엉뚱하게 번져간 듯했소.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 무림의 구대문파와 흑룡강 일파 간에는 한 가닥 원한이 맺혔지요.” 비류신은 그의 말이 아리송하여 재빨리 캐물었다. “강호 무림에서 명망이 높은 대협이 사로잡혀 갔다고 하는데 그분은 누굽니까?” “그분은 바로 비형도 잘 아시는 풍운류랑인 고화룡 노 선배님이오.” 비류신의 놀라움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고화룡 선배님이라고요?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분을 잡아갔단 말이오? 그분은 지금 어느 곳에 감금되어 계십니까?” “그분은 이미 자유의 몸이 되었소. 하나 그분의 목숨은 흑룡강 일파에게 완전히 공제당하고 있는 실정이오. 고화룡 노 선배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물건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불원간 참형을 받고 말 것이오.” 비류신의 의혹은 점점 짙어만 갔다. “그 문제에 관하여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소.” “나는 고화룡 노 선배님과 만나서 이야기한 적 있었소. 그런데 그분은 비형더러 자기를 대신하여 그 물건을 찾아달라고 요구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오.” 비류신은 더욱 어리둥절하였다. ‘그분은 나더러 무엇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일까? 나는 힘이 닿기만 하면 기어이 그분 부탁대로 들어줄 테다… …’ 그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선우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분이 비형더러 무엇을 찾아달라고 한지 알 수 없소. 하나 비형을 위하여 한 가지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소. 그분이 무슨 물건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비형은 절대로 승낙하지 말아야 되오. 왜냐하면 그분이 찾으려는 물건은 바로 비형의 생사와 크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 오.” “그래요? 그럼 선우형이 말한 그 물건이란 도대체 무엇이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종(某種)의 기서(奇書) 한 권이오.” “기서라고요?” “그렇소. 그 기서에 관한 설명을 하려면 이백 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 소림파(少林派)에 무학대사(無學大師)라는 기승(奇僧)이 있었소. 그분은 달마조사(澾麾租師)의 후예라고 불리는 기인이었소. 그는 천성적인 총명함을 십분 발휘하여 절세적인 무공을 정연(精硏)한 바 있었는데 소림의 칠십이(七十二) 절기(絶技) 중 오십칠(五十七)종이나 통달하였지요.” 그 당시 강호 무림의 각 파에서는 모두 독특한 절기를 지니고 있었던 바 그 중에서 소림파의 무공이 가장 절대적이었다. 당시 소림사에는 뛰어난 인재가 드물었으며, 절세적인 비급인 권경(券經) 및 칠십이 종이나 되는 절기를 통달한 자는 없었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기재라 하더라도 무공이란 본래 범위가 넓은데 반해 사람의 일평생은 한도가 있기 때문에 각종의 무예를 겸비하기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학대사만은 짧은 평생을 통하여 오십칠 종이나 되는 절학을 통달하였으니 천하에서 보기 드문 기재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처럼 보기 드문 천재인 무학대사도 자기 여생에 한도가 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무궁무진한 무예를 다 통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단시일 내 각종 무예를 통달하기 위하여 각종 비법을 연구하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중원 무림 각 문파의 무예를 두루 연구하였으나 속성의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흑룡강 일파와 만나게 되었다. 흑룡강 일파는 정파와 거리가 먼 방문(旁門)으로서 무공을 속성으로 성취하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문파였다. 그 당시 무학대사는 흑룡강 문파의 장문인(掌門人)인 시공무인(是空無人) 지음(地音)을 만나 흑룡강 문파의 무학속성법(武學速成法)을 연구하러 왔노라고 했다. 본래 어느 문파든 자기 문파의 독특한 무공을 타인에게 가르쳐 주기를 꺼려하였으나 시공무인은 무학대사의 인품에 반해 그의 요구에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마침내 승낙하고 말았는데 그 대신 한 가지 약속을 하자는 조건을 내세웠다. 선우철이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비류신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성급하게 물었다. “무슨 약속을 조건부로 내걸었습니까?” 선우철은 빙그레 웃으면서 설명을 계속하였다. “시공무인은 무학대사에게 흑룡강 문파의 독특한 무학 속성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 무학대사로 하여금 그 속성법을 연구하여 소림비학속성기서(少林秘學速成奇書)라는 책을 만들도록 했답니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격투를 하여 승리를 거둔 쪽이 그 책을 소유하기로 약속했던 것이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류신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묻자 선우철은 적이 만족스런 모양이었다. 자기의 견식이 무척 넓고 풍부하다는 점을 이런 기회에 충분히 과시하고 싶었다. “무학대사는 타고난 총명함과 박식함을 십분 발휘하여 그 속성법을 통달했음은 물론 소림 칠십이 종의 절기(絶技)인[속성비법]이란 책을 썼답니다. 그 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무학(武學)의 보전(寶典)으로써 이름 하여 정사무학(正邪武學) 비록이라 하였답니다. 기서의 저술을 끝낸 직후 무학대사와 시공무인은 약속대로 격투를 벌였는데 무학대사가 승리를 거두어 그분이 기서를 소림사로 가지고 왔었지요. 그 당시 무학대사는 시공무인에게 흑룡강 문파의 제자 중에서 누구든지 능력이 있어서 공정하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둔다면 기꺼이 기서를 돌려주겠다고 공언한 바였소. 그러나 소림사로 돌아온 무학대사는 천만 뜻밖에도 급사(急死)하였으며 그의 죽음을 전후하여 시공무인도 죽고 말았다오. 그런데 정사무학비록이라는 기서 한 권은 영영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답니다. 당시 무림 인물들은 기서를 욕심내어 모두들 혈안이 되었었지요.그들이 기서를 훔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심지어 소림사의 중들조차 그 기서가 어디 있는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였답니다. 그로부터 소림사의 무공은 차즘 쇠약해졌고,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에 중원 무림 구대문파 장문인들이 모두 실종되어 오늘에 이르렀답니다.” 비류신은 구대문파 장문인들이 실종된 원인을 비로소 깨닫고 가벼운 탄식을 하며 말하였다. “선우형의 넓은 견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오늘밤 선우형으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 나는 강호 무림에서 십 년 이상 경험을 쌓은 것보다 훨씬 교훈을 얻은 셈입니다.” 청풍검 선우철은 더욱 득의만만하여 다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하여 풍운류랑인 고화룡은 흑룡강 일파에게 잡혀간 후, 그들로 부터 정사무학비록을 찾아내지 않으면 죽인다는 협박을 받았던 것이오. 왜냐하면 그 당시 구대문파 장문인들과 가장 친분이 두터운 사람은 풍운류랑인 고화룡 뿐이기 때문이었소. 그래서 흑룡강 일파는 고화룡으로 하여금 자기들을 대신하여 그 기서를 찾게끔 갖은 협박을 다하고 있는 것이오.” “흑룡강 일파는 너무도 비열한 방법으로 억지를 쓰는구려. 그들은 만일 자기네 요구대로 기서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필경 인정사정 보지 않고 사람을 죽이겠구려.” 선우철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고화룡 노 선배는 아무래도 흑룡강 일파와 암암리에 내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오. 그렇지 않다면 고대협 같은 분이 어찌 그들의 요구에 승낙하겠소.” 이때 비류신은 고화룡이 구대문파 장문인들의 신물(信物)과 구대문파의 독특한 무학절기를 베낀 초서(抄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였다. 만약 그것을 흑룡강 일파에게 빼앗기는 날엔 문제가 매우 복잡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구대문파 장문인들을 대신하는 그 신물에는 수많은 무림 인물들의 생명이 달려있으니 비류신은 점점 더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황망히 물었다. “선우형, 지금 고대협은 어디 계신지 아시요?” 선우철은 고개를 쳐들고 밤하늘을 살펴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아직 초경(初更)인데 삼 경(三更)이 지나면 나는 비형을 모시고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드리려 합니다. 그때 비형은 자동적으로 고 대협을 만나게 될 것인즉 너무 조급할 필요 없소이다. 우리는 서서히 운기조식하여 무림의 일류 고수들과 맞설 준비나 합시다.” 이때였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엉뚱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하다! 장하다… 선우휘는 저렇듯 훌륭한 아들을 두었구나.… 정말 견식이 넓고 총명한 선우휘의 이세로구나. 좋다! 빈도(貧道)는 너의 무공을 한 번 시험해 보고자 한다. 너의 입을 놀리는 재주만큼 무공도 훌륭한지 한 번 보고 싶단 말이다.” 비류신은 흠칫 놀랐다. 누군가 주변에 숨어서 자기들의 대화를 엿들으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자기들이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으므로 상대방의 무공이 그만큼 절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철은 그 사나이의 말을 듣더니 곧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사나운 소리로 외쳤다. “귀하는 무림칠절 중 익공관주(勿空觀主)인 순천진인(純天眞人) 노 선배가 아니시오?” 비류신은 또 한 번 놀랐다. 상대방 음성만 듣고도 대뜸 정체를 알아내는 선우철의 재기야말로 절대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일순 우렁찬 폭소가 들려왔다. “으하하핫… 과연 총명한 청년이로구나! 놀랐다. 놀랐어.… 그대는 빈도의 음성만 듣고도 대뜸 알아보는구나. 과연 훌륭하다… …”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 수장 밖 숲속에서 인영이 번쩍하더니 등에 장검을 꽂고, 한 손에 불진을 든 도복 차림의 도인(道人) 한 명이 나타났다. 선우철은 곧 그 도인에게 허리를 굽혀 정중히 예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순천 노 선배님,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후배는 노 선배님께 문안드리옵니다. 그런데 노 선배님께서 언제 여기 오셨는지 밝혀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선우철은 순천진인이 자기가 털어놓은 비밀을 엿들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순천진인은 헛기침을 두어 차례하고 나서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제 보니 무척 겸손하구나. 네가 언제부터 무림의 선배를 알아보고 그처럼 깍듯이 예의를 차릴 줄 알게 되었느냐? 허허헛… 아까 내가 여기 왔을 때 너는 잔금섭혼신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일순, 선우철의 안색이 돌변하였다. 그는 곧 이래서 안 된다 싶어서 즉시 평정을 되찾았지만 순천진인은 곧 선우철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눈치 챘다. 순천진인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잔금섭혼신편이 현재 누구 수중에 있다는 얘기는 빈도가 듣지 못하였다. 내친 김에 묻겠으니 그 신비한 채찍은 지금 누구 손에 있느냐? 너처럼 선배를 알아보고 깍듯이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젊은이는 반드시 숨김없이 대답해 주리라 믿는다.” 비류신은 순천진인의 수단이 보통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슬그머니 상대방을 추켜 세우면서 자기가 알고자 하는 바를 캐내려는 능구렁이 같은 수단은 교활하고 영악하기 짝이 없었다. 선우철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노 선배님께서 이미 다 들어 아시면서 굳이 또 물으실 게 뭐 있습니까?” 순천진인의 낯빛이 무겁게 굳어졌다. “듣자하니 선우휘에게 기지가 뛰어나고 술책을 잘 쓰는 자식이 하나 있다더군. 그런데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시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헤아려 알 수 없다. 그러니 어서 빈도에게 덤벼 보아라!” 선우철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노 선배님께서 지나친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후배가 어떻게 감히 노 선배님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 노 선배님은 강호 경험이 풍부하실 뿐 아니라 견문이 넓으시고, 무공 또한 절대적이라 무림 천하에서 노 선배님과 겨룰 인물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천진인은 앙천일소하며 말을 받았다. “으하하핫… 이제 보니 말재주가 보통 아니구나. 하나 네가 아무리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이려 해도 빈도는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밤 빈도는 기어이 너로 하여금 나의 몇 초를 맛보게 하고 말 테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비류신은 순천진인의 안하무인격인 언행이 아니꼬워 참지 못하고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귀하는 불도를 닦은 몸으로 어찌 그처럼 잘난 척하며 호전적이시오?” 선우철은 비류신이 참견하자 무척 낭패한 생각이 들었다. 순천진인은 싸늘한 눈초리로 비류신을 노려보더니 선우철에게 물었다. “이 건방진 녀석이 바로 진편독자 탁성군이 길러낸 제자인가?” 비류신은 순천진인의 말투가 너무도 불쾌하여 이를 갈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귀하는 어찌하여 그처럼 천한 말투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거요? 내가 무엇이 건방지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냔 말이오!” 순천진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비류신을 주시하였다. 이 나이 먹도록 무림을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녔지만 자기 앞에서 이처럼 당돌하고 무례한 말을 한 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생전 이름 석 자 들어보지 못한 애송이가 감히 정면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항변을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는 비위가 거슬려 얼굴 가득히 분노에 찬 냉소를 지은 채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빈도가 누구인 줄이나 알고 감히 대드는 것이냐? 만약 모르고 그랬다면 결코 고이 돌려보내지 않겠으니 그리 알아라.” 비류신은 천성이 절대로 남에게 굽히지 않는 성미였다. 그러한 그가 어찌 순천진인의 오만불손한 태도 앞에서 고개를 숙이겠는가. “뭐라고요? 귀하가 무림칠절 중 익공관주 순천진인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도 그랬다면 귀하는 내 목숨을 빼앗겠단 말이오?” 순천진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노발대발하여 뚜벅뚜벅 비류신 곁으로 다가갔다. |
첫댓글 질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