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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쟁패 제3권 사마달 지음 - 차 례 - ◈ 第 二十一 章 아버지와 아들 ◈ 第 二十二 章 연해월의 위기 ◈ 第 二十三 章 용도폐기 ◈ 第 二十四 章 살부지한(殺父之恨) ◈ 第 二十五 章 애증의 끝 ◈ 第 二十六 章 사마군의 도움 ◈ 第 二十七 章 드러나는 신주제일청의 정체 ◈ 第 二十八 章 철륭의 몰락 ◈ 第 二十九 章 아들과의 대결 ◈ 第 三十 章 돌아갈 길 ◈ 第 二十一 章 아버지와 아들 까악! 까악! 까악! 여기저기 부서지고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폐허의 성문 위를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과거에 이곳은 북파무림맹이 웅지를 틀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 명성과 영화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불타고 남은 시커먼 잔재와 해골들만 널려 있는 폐허로 변해버렸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자 시커먼 잔재들이 먼지와 함께 날아올랐다. 그 속에서 삐죽이 편액의 한 모서리가 드러났다. 시커먼 먼지바람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편액을 집어들었다. 남궁사! 그였다. 그가 잡은 것은 북파무림맹을 상징하는 편액이었다. 과거 그 이름만으로도 무림의 최고에 도달해 있던 한 맹의 편액이 지금은 타다 남은 반 토막으로 이 잿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남궁사는 두 손으로 편액을 집어들고 먼지를 털어 냈다. 마치 그 영광과 영화의 덧없음으로 인해 무상을 느끼는 사람처럼 우울한 시선이었다. 그의 뒤에는 수많은 무적검맹의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무사들의 손에 들린 깃발들이 먼지 바람 속에 위세 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마침내 남궁사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일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와자작! 편액을 잡은 손에 힘이 가해지자 편액의 조각들이 그의 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숙인 남궁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발 밑에 떨어져 흩어지는 편액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말아 쥐었다. '이따위 꼴이나 보려고 지난 일년 간 뼈를 깎는 고통과 싸운 건 절대로 아니었다!' 이때 남궁사의 곁으로 뇌광이 다가왔다. 남궁사는 뇌광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찌 되었는가?" 뇌광은 둘둘 말린 종이를 공손히 건넸다. "여기에……. 목격자들은 많았지만 그를 제대로 본 사람은 드물어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남궁사는 종이를 펼쳐들었다. 순간 남궁사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펼친 종이에는 마도수의 진면목이 그려져 있었다. '이 사람은 위지강!' 남궁사는 놀라 뇌광에게 확인했다. "이자가! 이자가 정말 마도수이란 말인가?" 뇌광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틀림없습니다. 제가 직접 사람들과 만나 확인을 한 것입니다." 날벼락을 맞은 사람의 얼굴이 이러할까. 남궁사는 충격에 휩싸여 잠시 말을 잃었다. 툭!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발 밑으로 떨구었다. '위지강!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단 말인가?' *** 이때 또 다른 무리가 북파무림맹의 폐허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저 멀리 북산의 정상에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사마군과 눈구멍만 드러낸 채 죽립을 깊숙이 눌러쓴 냉혹한 분위기의 사내 일곱이었다. 사내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서는 살수들이 분명했다. 사마군은 남궁사 등이 있는 북파무림맹의 폐허를 묵묵히 내려다보더니 죽립을 벗어 옆에 있던 수하에게 주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폐허 쪽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사마군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삼가 아버님의 영전에 고하나니…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죄를 부디 용서하소서." 사마군의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두 뺨을 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불충불효는 훗날 은하에서 재회하여 백 배 사죄 드리리다." 휘이이잉! 삭막한 바람이 고봉을 훑고 지났다. 사마군은 시간을 잊은 듯 마냥 그렇게 엎드려 있었다. *** 남극벌. 짙은 어둠이 거대한 남극벌의 웅자를 내리덮고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수많은 고루거각들, 그 가운데 호위무사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유난히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오 층 높이의 웅장한 거각이 있었다. 때마침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달빛이 하늘을 날 듯 치켜선 처마 밑을 비추었다. 월영각(月影閣). 거대한 대전 안에는 장방형의 긴 탁자가 놓여 있었고 상석에는 개벽신수 철륭이, 그의 좌우에는 위지강과 염서시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또한 남극벌의 핵심고수들도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탁자에는 중원전체를 실물처럼 압축시켜 놓은 모형도가 꾸며져 있었고, 동서남북으로 구분되어 조그만 삼각기가 꽂혀 있었다. 지금 철륭의 안색은 굳어 있었고 염서시를 위시한 남극벌의 고수들은 모두 무거운 분위기였다. 철륭은 앞에 놓인 보석함처럼 생긴 상자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남극벌, 무적검맹 등의 글씨가 새겨진 삼각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무적검맹이라 써진 삼각기 하나를 집어들었다. 슉! 철륭은 삼각기를 모형도의 정면으로 쏘아보냈다. 그러자 남쪽에 꽂혀 있던 남극벌의 기가 부러지며 대신 그 자리에 무적검맹의 삼각기가 꽂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극벌의 고수들은 모두 흠칫하고 말았다. 단, 위지강만은 담담하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철륭은 좌중을 향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북파무림맹 자리에 무적검맹의 깃발이 꽂히고 남부무림이 고스란히 그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때 염서시의 차가운 눈빛은 위지강을 쏘아보고 있었다. "북파무림맹과 남궁세가를 제거함으로써, 욱일승천하던 남극벌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철륭의 어투는 더욱 무겁게 가라 않았고 음성에선 냉기가 돌았다. "한마디로 어부지리가 된 꼴이다." 그의 질타에 남극벌의 고수들은 굳은 얼굴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거기다 남부와 서부를 일통하여 이미 공룡처럼 거대해진 무적검맹이 내친김에 천하를 얻으려고 덤벼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철륭의 시선은 위지강을 향했다. "어찌 생각하는가? 마도수!" 그는 연거푸 위지강의 의사를 물었다. "반격을 가한다면 아직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어수선한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본좌의 생각이네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위지강에게 향했다. 위지강은 잠시 침묵만을 지켰다. 팟! 이윽고 그는 모형도에 손을 뻗어 남쪽에 꽂혀 있던 무적검맹의 삼각기를 손에 쥐었다. 그런 연후 위지강은 철륭과 자신을 향한 좌중을 쳐다본 후 담담하게 말했다. "무적검맹을 이끄는 자가 풍류일공(風流一公) 남궁사라 했소?" "그렇다네!" 피윳! 위지강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삼각기가 염서시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남극벌의 고수들이 모두 놀라 흠칫한 순간 정작 당사자인 염서시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삼각기는 염서시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버팀에 있던 작은 벌레에 격중했다. 위지강이 무심하나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그 친구와 나는 청산할 빚이 있소." 거목의 가지 위로 둥근 만월이 걸려 있었다. 월광은 아담하게 꾸며진 후원의 별채전각 지붕 위에도 쏟아져 내렸다. 챠르륵! 챠르륵! 작고 아담한 욕실이었다.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욕실의 천장에는 연꽃 모양의 등롱이 걸려 있었고 그 등롱 아래 욕조에는 연해월이 알몸을 담그고 있었고 애향이 등을 씻어주고 있었다. 연해월은 뽀얀 젖가슴을 반쯤 드러낸 채 물 속에 가만히 앉아 애향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애향은 연해월의 백옥 같은 몸을 씻어주며 연신 쫑알거렸다. "마님은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고우세요?" 그녀의 호들갑에 연해월은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네가 또 나를 놀려주고 싶은 게로구나." 애향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아니라는 듯 도리질을 쳤다. "놀리는 거 아녜요. 진짜라니까요?" 그녀는 탄복의 눈길로 연해월의 나신을 연신 바라보며 주절거렸다. "군살 한 점 없는 완벽한 몸매에 누르면 튀어나올 듯 탄력 있는 살결, 거기다 만지면 은가루라도 묻어날 듯 뽀얗게 빛나는 백옥과 같은 피부……." 연해월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얘가 점점……!" 그녀 또한 여인, 자신을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결코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애향은 연해월의 몸매에 도취된 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서른이 다 되가는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여자인 제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에요?" 연해월은 빙그레 웃으며 욕조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안되겠구나. 수건을 이리 다오." 욕조에서 일어서는 연해월의 화려한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어 대리석같이 미끈한 다리가 욕조 밖으로 나오며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젖가슴의 유실에서는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애향은 연해월에게 커다란 수건을 걸쳐주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전 태어나서 마님처럼 아름다우신 분은 처음 봤어요." 연해월은 수건으로 앞가슴 부위를 동여매면서 다소 우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봐야 새장 속에 갇혀 날지도 못하는 신세, 부러울 것 하나도 없다." 이때 문득 어디선가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들렸다. 삘리리… 삘릴릴리……. 들려오는 음률은 연해월을 전율하게 했다. 그녀의 눈은 조금 놀란 듯 커졌고, 애향은 아름다운 운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향은 음률에 도취된 듯 지그시 눈을 감고 감상에 빠져들었다. "어쩜,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피리가락을……." 그러나 연해월은 내심 놀라 안색이 급변하였다. '무정유(無情遊)?' 쾅! 연해월은 그대로 창 쪽으로 뛰어가 문을 젖혔다. 그런 연해월의 행동에 애향이 다소 아연해졌다. "마, 마님!" 밖을 내다본 연해월이 그 자리에 얼어붙듯 굳어지고 말았다. 삘릴릴리… 삘릴릴리……! 담 너머의 달빛이 쏟아지는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사나이! 전신에서는 사나이의 절대고독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우수 어린 분위기를 지닌 사나이, 위지강이다. 위지강을 바라보는 연해월의 표정은 망연자실했고, 그녀의 뒤에서 바라보는 애향은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애향은 반쯤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어쩜……. 무쇠 같은 심장과 얼음처럼 차가운 피를 가졌다는 마도수에게 저렇게 낭만적인 면이 있을 줄이야!" 그녀는 연해월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죠, 마님?" 순간 애향의 눈이 어리둥절하여 동그랗게 떠졌다. 울고 있었다. 연해월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마… 님……?" 연해월의 입에서 슬픔이 가득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바람이 차갑구나. 창을 닫거라." "예? 예. 마님!" 애향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았다. 삘릴릴리… 삘릴릴리……. 고독한 사나이의 애련한 피리 소리는 달빛을 따라 한없이 흐르고 있었다. ― 해는 지고 바람 잔잔하니, 산은 고요하고 꽃만 붉어라. 얼굴을 감싸쥔 채 가늘게 오열하며 울고 있는 연해월의 귀에 그 소리는 더욱 구슬프게 들려왔다. ― 임께선 늙기도 전에 세상을 버리셨나니, 우리 사랑 끝을 맺지 못하네. 마도수, 냉혈한이라 불리는 위지강의 눈가에도 축축한 습막이 어린 것을 누가 알겠는가. ― 한번 죽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임 없는 남은 생애 어이 살아갈거나. 삘릴릴리… 삘릴릴리! 이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또 한 여인이 있었다. 자나깨나 위지강만을 바라보는 여인, 바로 염서시이다.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인을 위해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심정은 연해월을 질시하는 마음이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한편, 일편단심 위지강의 사랑을 받는 그녀를 한없이 부러운 마음이 동시에 일고 있었다. 어느새 질투는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이 숲의 그림자만큼이나 큰 분노를 일게 했다. 잠시 후 염서시의 눈초리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 마음은 영웅에게 났으나 부질없는 것이 눈물이라……. 침상에 엎드린 채 이불자락을 움켜쥐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연해월의 심정이 그러했다. ― 하릴없이 떠도는 부초 같은 인생 부러진 칼처럼 쓸모 없는 내 신세여……. ***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하게 치솟아 있는 수림 꼭대기에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고 걸려 있었다. "하앗! 탓!" 아직은 앳된 목소리의 기합이 수림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차앗! 하앗!" 남궁진성이 목검을 휘두르며 검법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파파팍! "천마용등보!" 남궁진성은 어지럽게 보법을 밟았다. 아직은 매우 미숙한 몸놀림이나 그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솟아나고 있었다. 남궁진성은 이번에는 허리를 틀어 목검을 휘둘러댔다. "천마검법 제일초 용형뢰(龍形雷)!" 파파팟! 파파파팟! 근처의 잡초들이 마구 베어져 나갔다. 잎사귀 조각들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사이에서 남궁진성은 연속, 목검을 뻗고 거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겁륜풍(劫輪風)! 초영비(初影飛)! 만화폭(萬花爆)!" 남궁진성은 지친 듯 숨을 헐떡였다. 그의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천마검법은 아직 어린 그가 초식만 익히기에도 터무니없이 어렵고 가공무쌍한 절학이었다. 그러나 남궁진성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한시도 무예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슉! 찰나지간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공음에 남궁진성은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신형을 빙글 돌리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팍! 그의 발 밑으로 두 쪽으로 쪼개진 사과가 떨어져 내렸다. 남궁진성은 목검을 비스듬히 내리친 자세로 잠시 서 있었다. "수련 중에는 장난 걸지 말랬잖아, 이화!" 남궁진성은 환하게 웃으며 뒤 돌아섰다. 저쪽에서 뒷짐을 지고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허나 그 사람은 이화가 아닌 제중인이었다. 그때 제중인은 무엇인가를 남궁진성을 향해 던졌다. "이화 타령 그만하고 이거나 먹어, 임마!" 텁!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궁진성의 입 속으로 이상한 것이 날아왔다. 아, 맛있는 냄새! 그것은 잘 구워진 멧돼지 뒷다리였다. 남궁진성은 제중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그 자리에 퍼지고 앉아 허겁지겁 멧돼지 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체할 정도로 맛있게 먹고 있는 남궁진성을 제중인은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끄윽!" 남궁진성은 순식간에 멧돼지 다리를 다 먹어치우고 볼록해진 올챙이배를 쓰다듬으며 제중인을 보고 씨익 웃었다. "덕분에 모처럼 포식했습니다, 사형!" "제법 열심이던데. 잘돼 가느냐?" 남궁진성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구결은 대충 이해가 가는데 연결 동작이 도무지……." 남궁진성은 말꼬리를 흘렸지만 제중인은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용의 아들이로군. 남들은 깨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린다는 구결을 벌써 터득했단 말인가!' 제중인은 놀란 내심과는 달리 남궁진성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일찌감치 관둬, 임마! 그렇게 느려 터져서 복수는 무슨 얼어죽을 복수야?" 남궁진성이 가만있지 못하고 발끈했다. "그런 소리 말아요,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초식을 모두 터득하고 말겠어요." "그러다 평생 동안 터득하지 못한다면?" 남궁진성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렇지 않아요. 빠른 시일 안에 초식을 모두 터득하고 말 거예요. 두고 보세요." 이때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위지강의 음성이 두 사람의 대화를 잘랐다. "무공이란 말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궁진성과 제중인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예의 파면괴인의 모습을 한 위지강이 장내에 나타나 있었다. "목검을 들고 가까이 오너라." 위지강은 담담하게 말했다. 남궁진성은 목검을 들고 쭈뼛 다가섰다. "발군의 성취를 자부하지 않고서야 천금같은 시간을 잡담으로 소모할 리 만무한 터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꾸나." "사부님, 무슨 말씀인지……?" "나를 마도수라 생각하고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아라." 갑작스런 명령에 남궁진성은 잠시 당황했으나 곧 목검을 바로 잡았다. "사부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척! 목검이 중단세를 취했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대치해 있는 두 사람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내심을 알 수 없는 무심한 눈길의 위지강, 진지한 표정으로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남궁진성. 남궁진성은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위지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공격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목검을 움켜쥔 그의 손이 가늘게 경련했다. 이때 위지강의 노기 띤 음성이 남궁진성을 질타했다. "어째서 시작하지도 않고 먼저 떨기만 하는 것이냐?" 남궁진성은 비오듯 땀을 흘리며 곤혹스런 얼굴이 되었다. "그건……." 위지강의 냉랭한 목소리가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너는 지금 무서운 게냐?" 남궁진성은 부끄러웠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이다. "싸움을 하기 전엔 누구나 무서운 법!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면 오직 하나만 생각하라. 무섭기 때문에 떨리는 것이 아니라 떨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남궁진성을 내려다보는 위지강 전신에서 중후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무사는 이겨야 산다!" 그 말을 들은 남궁진성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래, 이겨야 산다.' 일순 남궁진성은 힘차게 도약하면서 낭랑한 기합성을 토했다. "타앗!" 단숨에 지척지간을 날아온 남궁진성은 목검으로 위지강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조심하십시오, 사부!" 탁! 힘차게 내리치는 목검을 위지강은 가는 나뭇가지로 가볍게 막아냈다. "차앗! 하앗!" 타타탁! 탁탁탁탁! 남궁진성의 목검은 정신없이 위지강의 전신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허나, 가는 나뭇가지를 쥔 위지강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남궁진성의 검세는 모조리 무위가 되어버렸다. 슈슈슈슈슉! 남궁진성의 목검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며 현란한 검영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천마검법 제일초 용형뢰!" 남궁진성의 공격은 쉴새없이 휘몰아쳤다. 아들의 공격을 봉쇄하면서 위지강의 눈빛이 이채롭게 빛났다. '이 녀석, 이제 제법인걸!' 생각만큼 대단했다. 허공에 떠 공격을 펼치는 남궁진성의 신법은 자유자재, 검로 역시 막힘이 없었다. 한순간 검극이 삼백육십도로 회전했다. "천마검법 제이초 겁륜풍!" 아들이라 하나 남궁진성이 펼치는 천마검법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담고 있었다. 찰나간 방위를 이동한 위지강조차 매서운 검기에 흠칫 놀랄 정도였다. 쾅! 목검이 뿜은 검기에 맞은 나무가 반으로 잘라졌다. 남궁진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 앞에 있던 사부의 모습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질문을 던지던 남궁진성의 안색이 다급하게 변했다. 정수리가 쭈뼛할 정도로 가공할 기운이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고 있었다. 급히 천마용등보를 펼쳤지만 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따악! 가공할 충격이었다. 어찌나 그 충격이 강렬했는지 남궁진성의 두 발이 무릎까지 땅속으로 파고들 정도였다. "계속 간다." 쾅! 가슴이었다. 인정사정없는 손속에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지면에 박혔던 두 발이 뽑힌 남궁진성은 실 끊긴 연처럼 뒤를 향해 날아갔다. 지면에 고꾸라진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지독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였다. 사색이 된 남궁진성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위지강이 천천히 다가왔다. "방자한 놈! 네놈이 펼친 검법에서는 명가의 기풍은 도대체가 찾아볼 수 없다. 검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네 교만을 자랑하려 함이니 어찌 그걸 무예라 할 수 있겠느냐! 실망이다." "……!" 대답할 말이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부." 남궁진성은 사력을 다해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위지강이 가한 타격은 능히 바위도 관통할 위력이 담겨 있었다. 의지 하나도 극복할 수 없는 힘인 것이다. 쿵! 남궁진성이 다시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럼에도 그의 눈길은 위지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남궁진성은 정작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지독하군요!" 제중인의 말에 위지강은 씁쓸하게 웃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제중인. 이 아이를 부둥켜안고 싶은 내 심정을 네놈도 알지 않느냐?" 위지강은 품안에서 수건을 꺼내 남궁진성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아들아!' 입 안에서만 빙빙 맴도는 그 단어. 위지강은 축 늘어진 아들을 양팔로 안아들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동굴 쪽으로 멀어지는 위지강을 바라보는 제중인의 표정은 극히 어두웠다. '그렇군! 어쩌면 대형은 지금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