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5장 27-28절『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을 말씀하시면서 14절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에 따라 간음을 했을 때, 신명기 22장 22-24절에는『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이 내용을 근거로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와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다. 예수님은 음욕을 마음에 품는 것이 간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음욕을 마음에 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마음 가운데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탐욕을 우상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골로새서 3장 5절『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탐심은 옛사람 안에 죄로 자리잡고 있다. 옛사람은 죄의 몸이지만, 탐욕은 죄의 몸에 거하는 죄라는 말이다. 그래서 옛사람을 제거해야만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 옛사람이 죽어야만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가 된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는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자가 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두번째로, 신명기 5장 18절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러 갔는데, 40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아서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경배했다. 이 사실을 안 모세는 두 돌판을 깨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판을 다듬어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았는데, 이게 신명기 5장 18절의 내용이다. 이 때의 간음에 대한 심판으로 돌로 치라는 것은 신명기 17장 2-7절에서 정한 대로 하는 것이다.
신명기 17장 2-7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악을 행한 남자와 여자는 우상숭배를 하는 과정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 것을 두고 말을 한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라고 말한다. 행악자를 돌로 쳐 죽이되, 2~3인의 증언으로 죽이라는 것이다. 1명의 증언은 고의나 실수 등에 의해 잘못된 증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악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조그만 누룩이 빵덩이 전체에 퍼지듯, 한 사람에서 시작된 악행이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간음을 말하지만, 우상숭배와 관련있는 행음자들은 영적 간음을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율법의 적용을 받던 죄인이 성령의 법으로 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율법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영적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자는 남편이 평생 율법이었다가,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므로 남편이 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이 바뀌는 것이다. 새 남편이 부활하신 예수다. 이게 거듭남이다. 많은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으면서 다 영접해서 자기 안에 예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을 따른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로마서 7장 6절에서『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구원이 된다. 율법은 절대 놓아주지 않는 남편이다. 그런데, 율법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단계가 있다가『율법이 선한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단계가 온다. 율법으로 인해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율법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생각한다. 노력하면 할수록 율법에 매여있게 된다.『내가 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할 때까지 율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으로 인해서 그것을 깨닫고,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신 이에게로 간다는 것이 선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성도가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자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께 간 적이 없는 것이다. 나의 노력, 나의 의, 나의 선한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이 율법적이기 때문이다.『나는 도무지 나의 의로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죽어야 할 존재구나』라고 회개해야만, 율법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 전적인 타락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갈 수 없다. 전적 타락의 존재를 깨닫기 전에는 내 남편이 율법이라는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전적 타락한 존재는 남편인 율법이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자기를 부인함은 율법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회개를 통한 자기를 부인함은 예수의 십자가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여 자기의 부인함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남편이 율법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그 굴레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자기의 부인함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가 나의 남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의 남편이 되지 못하면 음부로 갈 수 밖에 없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간음이고 음녀다.
죽지 않은 자는 옛사람이다. 옛사람의 남편은 율법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다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부인함의 회개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기 의에 불과한 것이다. 주님은 말할 것이다.『너의 남편은 율법인데, 너의 남편을 부활하신 예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이 영적 간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는 남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성도 역시 현재적으로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으며, 영적 간음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의 남편은 여전히 율법이다. 그런데, 그는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심판 할 때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영적 간음으로부터 돌이켜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