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한 근
황보영락
우리 마을은 일곱 가구가 사는 작은 동네였다. 1961년부터 2년 동안, 일곱 가구가 사는 음지마을의 여섯 집의 대문에는 새끼줄로 만든 금줄(금삭줄)이 걸렸다. 약속한 듯이 모든 줄에 커다랗고 빨강 고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이 금줄을 걸었다. 지나다니던 이웃사람들은 스무하루(삼칠일) 동안 아무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행상들이나 걸인들도 금줄이 쳐져 있으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있을 때여서 우리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기쁜 마음으로 제일 잘생긴 고추를 골라서 달았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친구들은 여자아이는 없고, 남자아이들만 여섯 명이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무렵 학교 운동장에서는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고무공으로 축구를 했다. 4~5학년 즈음에 ‘바우제’ 동네 친구들이 가죽 축구공을 가지고 왔다. 손으로 꿰맨 오 각형 가죽 조각 안에 고무 튜브가 있는 공이었다. 한번 차보고 싶었다. 그러나 공 주인에게 간택(揀擇)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회를 달라고 신청하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가 읊조리던 노래는 '비행기' 동요에 맞춘 노래였다.
“찼다 찼다 차범근, 날아라 이회택, 헤딩슛 골인”
그 공은 당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던 차범근 선수가 차고 있는 바로 그 공이라고 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서 공을 차면 공보다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가는 시절이었다. 친구들이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많은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든지, 맨발로 하든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무신을 신었을 때는 고무신 가운데를 끈으로 질끈 묶어서 차면 되고, 맨 발로도 축구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초겨울 무렵이었다. 부러워하면서 바라본 그 가죽공은 당시 2,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것이라 했다. 동네의 친구들이 모여 우리도 공동소유의 축구공을 구매하자는 회의가 열렸다. 한 친구가 대담한 제안을 했다.
“축구공이 2,000원이니, 우리 다섯 명이 500원씩만 모으면 살 수 있잖아?”
“각자 고추 한 근씩 부모님 몰래 훔쳐서 예안장에 내다 팔자.”
모두가 “맞다.”라고 맞장구쳤다. 당시에는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한 주 동안의 실행시간을 두었다. 바로 다음 날, 저녁을 먹고 식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봄에만 울던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였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니 고추 한 근이라며 자신의 전리품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들어보니 제법 무거웠다. 두 근도 넘을 것 같았다. 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고추 포대가 있는 곳은 알지만, 아버지의 호통이 걱정되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열쇠를 감춰놔서 찾을 수가 없었다.”라는 핑계를 댔다. 결국, 약속한 1주일이 지나도 약속한 고추 한 근을 준비하지 못했다. 나처럼 고추 한 근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가 두 명이 더 있었으니, 우리의 축구공 구매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 원인의 1/3은 나의 책임이었다.
고추 한 근의 약속을 제안하고 제일 먼저 실행에 옮겼던 친구는 혼자의 힘으로 학사 장교를 거쳐서 명문고의 교장을 거치고, 교육청 고위공직자로 퇴직을 했다.
약속을 지킨 또 한 명, 공부를 싫어했던 그 친구는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택시 운전사, 도배사를 성실하게 일을 한 결과 많은 돈을 모았다. 지금은 삼천여 평 사과 과수원의 농장주가 되어 수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착하고 말 잘 듣고, 바른생활을 하는 아이를 부모님과 선생님은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성공한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장애물을 마주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중요한 세상인 것 같다. 소설가 이외수 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모든 성공은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고추 한 근을 훔쳐오지 못했다. 이렇게 순하고 착한 보통성격의 아이들이 40% 정도 된다고 한다. 나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 장애물을 피해 갔을 뿐이다.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태도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에게 속 좁은 쫌상이라는 인상만 심어주었다. 헛발질만 했고, 허공에다 검정 고무신만 날려 보냈다.
고추가 매우 중요한 양념이 된 지 오래다. 예전의 고추는 풋고추용으로 먹다가 남는 고추는 말려서 고춧가루용으로 사용하는 다용도 품종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고추는 풋고추용 고추와 고춧가루용 고추는 품종 자체가 다르다. 풋고추는 껍질이 부드러워서 생식(生食)하기가 좋고, 고춧가루용 고추는 표피가 두꺼워서 고춧가루를 만들기에 유리한 품종이다. 우리가 글쓰기를 할 때 독자의 특성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처럼 고추도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서 재배하는 시대이다.
금줄에 달려있던 그 고추의 품종은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볼품없는 조그마한 고추였을 것이다. 더 굵고 멋진 고추가 생산되지만 금줄에 달릴 기회가 없는 세상이 되었버렸다.
이제 몇 달 후면 2026 월드컵이 열린다. 2026 월드컵 공인구 ‘트리온다’’ 축구공이 공개되었다. 지금도 고추 한 근을 갹출하면 웬만한 축구공 하나는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고춧가루를 뿌려지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텃밭에서 키운 고춧가루 1근을 나눔했다. 그랬더니 다시 찹쌀 한 되를 답례로 받았다. 우리 친구들끼리는 고춧가루 뿌리는 일 없이 찰떡처럼 붙어서 다녀야 할 것 같다.
2026.4.4
첫댓글 지난날 옛 이야기 축구공 뿐만 아니라 특히 시골에는 마땅한 놀이기구가 없었지만 지금은 차고 넘칩니다. 추억은 지나도 나면 아름답게 남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 오릅니다. 한편의 동화책을 읽듯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추가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부터 우정어린 친구들 많은 추억속에서 이제 머리 희긋희긋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추가루 뿌리지 않는 찰떡 우정을 이세상 끝날때까지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