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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마지막 저력
대륙마황 육공부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으며, 바로 앞에 나타난 자를 향해 휘황
찬란한 눈빛을 폭사해 내기 시작했다.
"네가…… 왔느냐?"
그의 손은 천천히 쳐들려졌다.
"그렇습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본시 봄에 와야 했는데, 그만 늦고
말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좌옥린은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대부를 죽이기 위해 단장애에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 사이,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녀석, 네가 살아 있으리라 여기기는 하였으되…… 네가 이렇듯 건강
하게 돌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체 모를 일들의 연속이었다. 대륙마황 육공부의 눈에서 뜨거운 눈
물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가 울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좌옥린 앞에서!
"너를 믿고 네 말대로 한 것을 후회했었다."
"……."
"너는 마검회 내부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제거하는 척하며
죽련의 반도들을 준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었다."
청천벽력(淸天霹靂).
비밀의 막 뒤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진실이 머물러 있었다.
― 낭야일접을 제거하라!
과거 대륙마황은 감히 그러한 명을 내린 바 있었다. 한데, 그러한 명
을 내리게 된 이유가 바로 좌옥린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는 순찰부주(巡察府主)와 원로원주(元老院主)의 말을 믿고서 낭야
일접을 제거했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철무옥의
반역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가.
한데, 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낭야일접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한 사람은 바로 낭야일접 자신이었
던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을 이동의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죽련
의 기생충들의 마각(馬脚)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너는 네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으며, 내가 마황군도를 얻기 위해 너를 제거하는 척 조
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녀석, 너는 뛰어난 병법가였다. 너는 사해유림 출신답게 병법에 능
통하였으며, 너의 선친 좌천군(左天君) 제독(提督)에게서 무장혈(武
將血)을 이어받았다. 너는 천하 정세를 읽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 너
는 천하무림을 평정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을 치기 이전, 내부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던 것이다!"
좌옥린의 과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단지 낭야일접으로 불
릴 뿐이다. 철무옥이 수천의 밀정을 파견해도 알지 못했던 그의 과거
를 대륙마황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륙마황은 감격에 겨워 말했으며, 그의 주름진 손아귀에 좌옥린의
손이 덥석 쥐어졌다.
"너의 말을 듣고 너를 제거하라 한 것을 후회했었다. 한데, 네가 약
속대로 내 앞에 돌아왔구나."
"예. 제가…… 돌아왔습니다."
"헛헛……, 너는 나의 양자(養子)다웠다. 헛헛……."
양자.
대륙마황과 좌옥린의 사이는 양부양자의 사이였단 말인가!
그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좌옥린은 그의 형 좌옥룡을 베고 가문을 멸망시킨 원수를 갚고자 대
륙마검화의 무사가 되었다. 그는 패검십팔관을 거치는 와중에 대륙마
황의 눈에 들었으며,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그의 후계자가 될 수 있
었다.
좌옥린은 복수를 마친 후 무림계를 떠나고자 했으나 대륙마황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좌옥린은 그에게 진 무공의 빚을 갚는 길이 대륙
마검회를 좀먹는 죽련을 없애는 것임을 알고 마도의 도살자 노릇을
수행했던 것이다. 대륙마황이 그의 제거를 명한 것은 모두 병법에 따
른 것이었다.
좌옥린은 죽련의 거마들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위해 자신과 대륙마황
의 반목을 위장하였으며, 스스로 표적이 되어 죽련에 포위, 공격당하
게 된 것이다. 당시 목비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좌옥린은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며, 마검막부로 유유히 돌아와서 죽련을 일망타진하게 되
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진실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밀, 대륙마황과 좌옥린만이 알고 있었던 무림
의 가장 어둡고도 깊은 비밀의 막 뒤에는 그러한 내력이 머물러 있었
던 것이다.
"나는 쭈욱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러지들 같은 반역자들의 눈을
속여 가면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십 일만 늦게 나타
났었더라면,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력을 일으켜 죽련을 파멸시
켰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서둘러 온 것입니다. 천하대란(天下大亂)을 막기 위해
서!"
좌옥린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맑고 순수했다. 지금 보이는 눈빛이야말로 그
의 본연적인 눈빛이라 할 수 있었다.
"하여간 제가 여기 왔습니다, 약속대로!"
"늦었다. 고약한 녀석!"
"늦다니요?"
"중원 쪽에서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되, 해외에서는 이미 복수가 시
작되고 있다."
"아……."
"마지막 안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네가 죽었다 여기고 너
를 벤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십 일 후에
는 중원천하의 반도를 손수 처단할 작정이었다."
단장애는 돌연한 풍운에 휘말리고 있었다. 팔로(八路)에 흩어져 있던
죽련의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대륙마황 육공부의 홀연한
증발이 상부자들에게 알려지며 소란이 가중되었다.
가히 기변(奇變).
반년 넘게 중인들의 시야 안에서 오락가락하던 대륙마황 육공부와 타
배노인이 홀연 진세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초막 일대는 검은 안개에 가려졌으며,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진세를
뚫을 수 없었다. 황급히 쫓아온 유성마혼(流星魔魂)이 내공을 발휘해
진무(陣霧)를 뚫고자 하였으나 역시 허사였다.
"빌어먹을!"
유성마혼의 머리카락은 일순 백발로 화하고 말았다.
만에 하나, 대륙마황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의 구족은 처참하게 살해
당하고 말 것이다.
"그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성마혼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기문진세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였
다.
진세의 내부, 노소(老少)는 차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마치 아버지
와 아들이 오랜만에 함께 대화를 하는 듯한 정겨운 분위기였다. 천하
를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 대륙마황과 낭야일접은 꽤나 오랜만에 만
나는 셈이었다.
"커졌다."
대륙마황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좌옥린의 눈빛을 보고 매우 흡
족해 하고 있었다. 좌옥린은 싱긋 미소를 짓기만 했다.
"더 커져야만 한다. 너의 내공이 완성된 듯하나, 너의 기도에는 아직
도 모자람이 있다."
"제게 모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빈틈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
"완벽한 인간은 살수(殺手)가 될 수 있을지언정, 우두머리가 되지 못
한다.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다분히 둔(鈍)해야 한다. 그리고 후
(厚)하고, 흑(黑)해야 한다. 한데, 너는 너무나도 광명정대하다. 너
같이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는 일개 문사밖에 되지 못한다."
역시 제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부라 할 수 있었다.
대륙마황은 타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좌옥린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좌옥린의 무공은 이미 대륙마황을 능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경륜에 있어서는 대륙마황이 좌옥린을 능가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옥린!"
"예."
"아직도 무림계(武林界)를 떠나겠다는 마음이냐?"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마무리지어지는 날, 미련 없이 검을 놓을 작
정입니다."
"어리석은 녀석. 네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자 하는 데에도 무림계를
떠나고자 하다니! 무옥이라는 놈은 너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을 훔치
고자 하거늘, 어이해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느냐?"
"양부 때문입니다."
"나 때문이라고?"
"훗훗……, 저는 양부에 비해 이기적입니다. 저는 천하를 위해 이백
년 간 독신으로 검박하게 지낼 자신이 없습니다."
좌옥린은 빙그레 웃었다.
차는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아마도 진세는 찻물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지속이 될 것이다. 대륙마황은 몰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몰락한 척하고 있을 뿐이지, 그가 이백 년 간 이룩한 힘은 남아 있었
다.
좌옥린이라 하더라도 그 힘의 실체를 아직 모조리 알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힘은 거대했다.
"어리석은 녀석, 고생을 한 이상 뭔가 깨달았으리라 여겼는데! 처음
에 필을 꺾고 무사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시절과 마찬가지로구나
."
대륙마황은 절대자다운 면모를 보이기보다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을 마중하는 늙은 아버지 같았다.
"네가 또다시 고집을 부리다니……. 천하의 육공부이거늘, 네놈의 고
집은 절대 꺾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대륙마황은 그렇게 말한 다음 타배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기도는 여전했다. 죽련의 무리들이 지금 그의 눈을 본다면 아마
도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만 리 밖으로 도망치고 말 것이다. 그의 눈
은 용의 눈이었으며 완전히 살아 있었다.
"그것을 갖고 오게!"
"예!"
타배노인은 허리를 꺾었으며, 뒷걸음질쳐서 걸어갔다.
그 직후, 대륙마황은 찻잔을 손아귀에 거머쥐듯 쥐고 있다가 힐끗 좌
옥린을 바라봤다.
"한 가지 묻겠다. 대답하기 싫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
"혹, 소림에 갔었느냐?"
"그것은 어찌 아십니까?"
좌옥린의 표정에 동요가 일어났다.
"역시 소림에 갔었군. 하긴 소림사 이외의 어떠한 장소가 너를 또다
시 탈태환골(脫胎換骨)시키겠는가. 너의 기도는 장대하며, 살기는 이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너의 눈빛은 깊이를 모를 정도로 유연해졌다.
너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장소는 천하에 오직 한 곳, 바로 소림사
뿐이리라. 그래서 나는 네가 소림사에 갔다 왔다 느낀 것이다."
실로 대단한 통찰이었다.
대륙마황은 아무도 모르는 좌옥린의 무공 비밀을 간단히 알아냈음에
도 불구하고 상당히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무공일맥은 대천마성(大天魔城)에서 유래된다.
대천마성은 사실 천외천전(天外天殿)의 마맥(魔脈)에서 시작이 되었
으며, 대륙마황은 대천마성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좌옥린이 자신의 뒤를 이어 패도절학을 연구하여 과거 대천마성과 천
외천전의 무공을 능가하는 무공을 창안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심정을 말하지 않았으며, 좌옥린은 그가 설사 그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속 밀어를 능히 읽을 수 있었
다.
'양부는 제가 패자(覇者)의 맥(脈)을 이어받기 바라십니다.'
패자의 맥은 소림의 맥 이상으로 역사가 깊다.
문하 제자는 극소이며, 뛰어난 후계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단맥(斷脈)을 시킬지언정 그릇된 자를 제자로 삼아서는 아니 될 정도
로 문규가 엄격하다.
대륙마황은 패자의 맥의 후예였으며, 내심 좌옥린을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고 있었다. 좌옥린은 은원을 해결한 후 무림계를 떠나려
하였으며, 대륙마검회에 진 빚을 갚을 작정으로 죽련과의 대접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두 사람 사이에 복잡한 연관성이 생기게 된 이유였다.
타배노인은 뒤뚱거리며 다가섰다. 그는 십여 권의 서적을 두 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서적의 숫자는 도합 십오 책(冊). 그것은 차 탁자 위에 한 줄로 쌓이
게 되었다.
"네놈이 뭐라 하든 이제 이것은 네놈이 정리해야 할 목록(目錄)이다.
"
"이것이 무엇입니까?"
"노부가 지난 이백 년 간 이룩한 모든 것이라 할 수가 있다."
대륙마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 보이는 그의 미소는 다분히
천진스러울 정도였다.
"대륙마검회의 기반이 여기에 다 적혀 있다."
"아……."
"너는 노부가 죽련에 빼앗긴 부분이 어느 정도라 여기느냐?"
"글쎄요, 저는 칠 성 정도라 여깁니다."
"틀렸다."
"그럼……."
"철무옥이 갖고 간 것, 얻은 것은…… 단 일 성에 불과하다."
너무나도 엄청난 말이었다. 대륙마검회의 기반은 초토화되었다고 알
려져 있었다. 한데 대륙마황이 잃은 것은 십분지일(十分之一)에 불과
했던 것이다.
"죽련의 놈들은 마검회의 진짜 저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다만
마검막부의 붕괴에만 관심을 썼던 것이다."
"아……."
"노부는 언제고 내란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천하십오방(天下十五方
)에 십오 개 세력을 일으켜 두었다. 그 내력이 모두 여기에 적혀져
있다. 훗훗……, 그것이 바로 너도 몰랐던 대륙마검회의 진짜 힘이다
."
대륙마황은 서적을 좌옥린 쪽으로 떠밀었다.
서적 위에는 각기 다른 표지가 붙어 있었다.
< 동영(東瀛) 천일무가(天日武家) >
< 서천축(西天竺) 향지법사(香至法寺) >
< 납살(拉薩) 복룡장불원(伏龍藏佛院) >
< 운남(雲南) 대리상행(大理商行) >
< 기련산(祁連山) 철마대성(鐵魔大城) >
…….
천하 십오 개 세력이 표지에 적혀 있었다.
풍운에 휩싸이지 않은 채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방파들, 그
들의 힘은 구파일방을 능가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로 합친다면 죽련
을 압도하는 거대세력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노부는 이백 년 내내 십오 인의 무기명전인(無記名傳人)과 두 명의
기명전인(記名傳人)을 두었다. 십오 인의 무기명전인은 대난세(大亂
世)를 예견한 노부의 안배에 따라 천하 십오 처(處)로 흩어져 나가
각기 거대한 기반을 이룩하였다."
"아……."
"두 명의 기명전인 중 한 사람이 너다. 또 한 사람은……, 훗훗! 산(
山)이라는 녀석이다."
"산이오?"
"그렇다. 산이라는 녀석이다. 너보다 미련하기는 하나, 가히 천하의
이인자가 될 만한 녀석이다. 그는 대해를 떠돌며 패왕(覇王) 십오번(
十五幡)을 총관장하고 있지. 노부의 하명을 기다린 채로."
십오번.
일컬어 대륙십오번(大陸十五幡)이다.
그들이야말로 대륙마검회의 진정한 힘이었다. 그들은 천하각처에 흩
어져 세력을 길렀으며, 마검막부가 반역자들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중원으로 들어서지 않고 묵묵히 저력을 기르고 있었다
.
그들의 우두머리는 산(山), 그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대륙마황의 마
지막 병기였다.
"설마 천룡산(天龍山)이라는 분은 아니겠지요? 양부에 의해 제거되었
다던?"
"훗훗……."
대륙마황은 웃기만 하였으며, 좌옥린은 그제서야 대륙마황이 암시하
는 자가 바로 반역자로 낙인찍힌 천룡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룡마협(天龍魔俠) 천룡산.
한때 대륙마황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반검(反劍)하
다가 실패하고 떠났으며, 대륙마검회의 기반은 그때부터 위축되었다
고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대한 위장에 불과했다.
천룡산은 대륙마황의 좌옥린과 더불어 대륙마검회의 두 기둥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존재였다.
"천룡산은 지금 천룡번을 거느리고 있지. 얼마 전 노부가 마황군도
쪽으로 가라 했으니,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마, 마황군도로요?"
"그들을 도륙내기 위해서이다!"
"……."
좌옥린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몰락했다 여겨졌던 대륙마황은
배후에서 천하 정세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 일은 좌옥린도 지금에야
처음으로 알게 된 일이었다.
"화(花)가 이미 그곳으로 들어갔다."
"화요? 그럼…… 몽유화?"
"그렇다. 그 귀여운 아이는 내심 노부를 증오하며 마황군도로 갔다.
아마도 천룡산과 힘을 합해 마황군도를 격파할 것이며, 중원으로 돌
아오게 될 것이다. 훗훗! 너는 모를 것이나, 화는 산아의 여식이다."
몽유화는 대륙마검회를 떠난 상태였다.
그녀는 좌옥린의 복수를 할 작정으로 해외로 떠나간 것이다. 대륙마
황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하면서 배후에서 모든 것을 치밀하고 철
저하게 조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무옥, 그 놈은 상당한 놈이다. 그 놈은 여섯 개의 인간병기(人間兵
器)를 만들고 있다."
"인간병기요?"
"노부가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점에 대해 모
조리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부는 중원에 남은 비찰들을 이용
해 그 놈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내는 데 지난 반년을 썼다. 결
국 놈이 여섯 인간병기를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 넷을 알
아냈을 뿐인데, 하나같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놈을 직접 처단하지 못
하고 우회책을 써서 놈을 교란하고자 하는 것이다. 놈은 방탕과 환락
에 취해 있는 듯하나, 사실 속으로는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대륙마황은 책갈피에서 하나의 서찰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초막 아래
에 만들어진 비밀 통로를 통해 전달이 된 것이었다.
"봐라."
"……."
좌옥린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서찰을 건네받았다.
두 번 접은 서찰을 펴자 글씨가 드러났다.
< 죽련의 최후책(最後策)은 육대마인(六大魔人)의 창조에 있음을 밝
혀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세세한 것을 알아내고자 백방으로 조사했
는바, 하기(下記)한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첫째 대상, 살인천자(殺人天子).
북풍살막(北風殺幕)의 수좌(首座).
백칠십 세의 노마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철무옥의 오른팔.
살인의 대명사이며 반시반인체(半屍半人體).
둘째 인물, 동영(東瀛) 금검무가주(金劍武家主) 월하혈랑(月下血狼).
인술(忍術)을 터득한 자이며, 철무옥의 왼팔.
셋째 인물, 혈왕혼(血王魂).
넷째 인물, 혈옥혼(血玉魂).
그들은 마관(魔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악마신체(惡魔神體)들이며,
그들이 나타나는 날 철무옥은 악마의 날개(魔翼)라는 계획을 시작할
듯 여겨짐. 그 점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을 알아내지 못하는 상황임.
다섯째 대상과 여섯째 대상은 미지수이되, 그들이야말로 철무옥이 가
장 믿는 존재인 듯함.
그들은 쌍천(雙天)이라는 암호로 불리며, 무수한 마의(魔醫)들이 그
들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음. 둘 다 전대거마로 여겨지며, 이미 시
체인 듯…….
악마대법(惡魔大法)에 의해 부활된다면, 혈왕혼과 혈옥혼을 오히려
능가할 듯함! ……후략. >
실로 무시무시한 글귀였다.
대륙마황도 놀랍거니와 죽련의 철무옥도 애송이는 아니었다. 그는 모
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안배해 둔 상황이었다. 대륙마황은 그의 마지
막 부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정면으로 나서기를 단념하고 몰락한
척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살인천자(殺人天子), 금검무가주(金劍武家主) 월하혈랑(月下血狼),혈
왕혼(血王魂), 혈옥혼(血玉魂), 쌍천(雙天).
여섯 개 모두 죽음의 이름들이다. 그들이 나타나는 날, 철무옥의 천
하가 시작될 것이다. 대륙마황은 절대적인 저력을 지니고 있으되, 철
무옥의 모든 것을 간파하지 못했기에 단장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놈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네가 소란을 부렸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렇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타초경사(打草驚蛇)의 누를 범한 대실수이며, 어찌
여긴다면 놈을 궁지로 몰아넣은 쾌거이다."
"……."
"놈은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으며, 놈의 배후에 있는 마계무사(魔界武
士)들은 설사 놈이 쓰러진다 하더라도 준비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놈을 암살한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럼……."
"즉시 가야 할 데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해외(海外)로."
"아……."
"마황군도로 떠나가라. 가서 몽유화를 찾고 천룡산을 만나 너의 휘하
로 끌어들여라."
대륙마황의 눈빛이 점점 엄숙해졌다.
좌옥린의 무공이 그의 무공을 능가하고 있기는 하되, 대륙마황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절대적이었다.
"지하에 거조(巨鳥)가 마련되어 있는 동굴까지 이어지는 암도(暗道)
가 있다. 거조는 그곳으로 날아갈 것이다. 지금 즉시 떠나야 한다."
"으음……."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 또다시 네녀석을 기다려 주겠다. 한 달
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천하는 피에 씻길 것이다. 피를 흘리는
것은 네가 가장 잘하는 것이며, 또한 가장 싫어하는 것임을 안다. 그
것을 막기 위해 너는 마지막 무사가 되어야만 한다. 가서…… 마황군
도의 진군을 멈추게 해라."
대륙마황의 소매가 떨치어졌으며.
팟―!
차 탁자 가운데 하나의 삼각기(三角旗)가 꽂혔다.
― 대륙마번(大陸魔幡).
힘의 상징이며 대륙마황검(大陸魔皇劍)과 더불어 대륙마검회의 신표
가 된다. 지난 이백 년 간 한 번도 대륙마황의 품을 떠나지 않았던
물건이며, 철무옥이 꿈에서조차 갖고자 했던 물건이었다.
"이것을 갖고 가라는 것은 마지막 명령이다!"
진세는 언제 나타났더냐 싶게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유성마혼은 기절초풍 놀란 표정을 지으며 초막으로 날아들었으며, 그
뒤를 이어서 수천 무사들이 검을 빼어든 채 초막으로 난입해 들어왔
다.
초막 뒤뜰, 한 명의 늙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는 꼽추 노인이 뒤따라 다니고 있었으며, 하늘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
었다.
어느새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된 것이다.
"젊은 녀석들이 할 일이 없군. 칼을 차고 왔다 갔다 하느니보다 노부
를 도와 밭을 가는 것이 어떠하냐? 보아하니 힘을 쓸 듯한데."
대륙마황은 밭을 갈고 있다가 문득 손짓을 했다.
그는 유성마혼을 불렀으며, 유성마혼은 얼떨떨해하면서도 그의 손짓
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춤주춤 다가섰으며, 대륙마황
은 그에게 꽤나 귀중한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저것을 메거라."
그것은 밭에 뿌릴 거름을 나르는 거름통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우라질! 거름통이라니…….'
유성마혼은 속으로 거듭 욕설을 토해냈으나 꼼짝도 못하고 거름통을
멜 수밖에 없었다. 대륙마황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은 바로 철무옥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일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유성마혼은 거름통
가득히 거름을 퍼서 나르면서 대륙마황의 눈치만 힐끔힐끔 살필 뿐이
었다.
대륙마황은 한가로운 시선으로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꽤
높고 머나먼 하늘 위로 한 마리 기조(奇鳥)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먼 곳인지라 새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 뿐이다.
'녀석, 언제 봐도 믿음직스럽다.'
그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새의 그림자는 구름 속으로 날아
들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새 등에 한 청년이 타고 있으며,
그와 대륙마황 사이에 천리전어(千里傳語)로 대화가 오고갔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타배노인뿐일 것이다.
하여간 칠야의 풍운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했다.
사흘 후, 좌옥린은 낙일대붕(落日大鵬)이라는 신조를 탄 채 군옥산(
群玉山) 아래에 내리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대해를 볼 수 있었다.
가히 망망대해, 어디를 봐도 검푸른 물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부터 배로 가야 한다. 낙일대붕을 타고 갈 경우에는 그곳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천룡의 세력은 늘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은 북해(北海)였다.
빙해(氷海)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바다. 허공에서는 흰 눈이 펄펄 날
리고 있었다. 삭북(朔北)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흰 눈은
북해 일대를 설국(雪國)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히 만년빙원(萬年氷原)이다. 죽음의 설원지대에는 이끼조차 자라나
지 않았다.
좌옥린이 찾아가는 곳은 북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오해무림계
(五海武林界)를 장악하고 있는 악마의 집단이었다.
일컬어 마황군도(魔皇群島).
외부인으로 그들의 세계로 찾아들었다가 무사히 살아나온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휘리리링― 휘리리리링―!
죽음의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좌옥린의 어깨 위에는 어느 틈엔가
눈이 수북히 쌓이고 있었다.
"척발유성, 그 또한 나를 꼭 만나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와
는 공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사적으로도 사연이 있지."
그는 메마른 나무로 목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북해 바다를 가로지르기에는 너무나도 엉성한 일엽편주(一葉片舟)이
다. 제아무리 노련한 사공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배를 몰고 북해를 항
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노도 없고 닻도 없었다. 좌옥린은 일엽편주를 만들어 오른쪽 어깨에
떠멘 채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의 무사들로 인해 무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피비린내 나는 무림계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
휘리리링― 휘리리링―!
쉬지 않고 몰아치는 눈보라가 그의 동체를 묻어 버릴 듯하다. 그는
북해로 접어들었으며, 어느 틈엔가 일엽편주 위에 몸을 싣고 북해 안
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쏴아아― 쏴아아―!
배는 내공의 힘에 의해 차디찬 바닷물을 가르며 준마처럼 빠르게 질
주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는 흰 눈이 퍼부어지고, 검푸른 바닷물에서 솟아 나오는 자
욱한 해무(海霧)는 삽시간에 그의 신형을 파묻어 버렸다. 들리는 것
은 천지를 허물어뜨릴 듯한 웃음소리뿐, 그 웃음소리에는 장한(長恨)
이 서려 있다.
첫댓글 굿,,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