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데이터 표준과 국가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으면 안전도 연결될 수 없다."
디지털 화약류 안전관리의 핵심은 데이터를 많이 수집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시스템이 같은 의미를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에 안전하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 데이터 표준과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필요한 이유다.
앞선 연재에서 국제표준의 필요성과 대한민국형 디지털 안전관리 법·제도, 국가 통합 플랫폼, 인공지능 기반 위험예측, 국가 안전관제센터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시스템도 서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디지털 안전관리는 완성될 수 없다.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서로 다른 형식으로 저장하고, 다른 용어를 사용하며, 다른 기준으로 관리한다면 정보는 연결되지 못한다.
결국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안전은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산업용 화약류는 제조에서 시작하여 운송, 저장, 사용, 회수와 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와 다양한 기관이 함께 관리하는 고위험 물질이다.
각 단계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는 있지만, 안전은 독립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정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이미 상호운용성을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항공은 국가가 달라도 같은 운항 원칙 아래 운영되고, 국제무역은 공통된 전자문서 체계를 활용하며, 금융은 국제적인 데이터 표준을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통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국가와 기관이 달라도 협력이 가능하다.
화약류 안전관리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국가가 동일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마다 법과 행정체계, 산업 환경은 서로 다르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 정보시스템도 다를 수 있다.
국제 데이터 표준의 목적은 이러한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스템이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국가에서 생산된 화약류가 다른 국가의 기업과 공동사업에 활용되거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안전관리 데이터를 분석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때 데이터의 구조와 의미가 서로 다르다면 위험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어렵고, 경험을 공유하는 데에도 한계가 생긴다.
반대로 기본적인 데이터 구조와 용어, 관리 원칙이 조화를 이룬다면 국가와 기관이 달라도 보다 효과적인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국제표준은 단순히 기술 규격을 제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공통 원칙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통 데이터 정의이다.
화약류의 종류, 제조일자, 운송 상태, 저장 위치, 사용 이력 등 핵심 정보는 국가가 달라도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도록 정의되어야 한다.
둘째, 표준화된 데이터 구조이다.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저장하고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시스템도 필요한 정보를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다.
셋째, **추적 가능성(Traceability)**이다.
화약류의 전 생애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여 관리 이력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고 예방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기반이 된다.
넷째, 데이터 신뢰성과 무결성이다.
안전은 정확한 정보에서 시작된다.
잘못된 데이터는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데이터의 정확성과 변경 이력, 접근 권한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다섯째, 정보보호와 국가 주권의 존중이다.
상호운용성은 모든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안보와 산업기밀,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필요한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협력할 수 있는 원칙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오늘의 데이터 구조가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제 데이터 표준은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개방형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지난 18년 동안 산업용 화약류의 저장과 운송 현장에서 근무하며 나는 하나의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현장의 위험은 정보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서로 연결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정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면 판단도 달라지고, 대응도 늦어질 수 있다.
결국 데이터의 연결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변화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과 전자정부 경험, 디지털 행정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 데이터 표준과 상호운용성 모델을 연구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검증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여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산업계, 연구기관, 국제기구, 그리고 각국의 현장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공통의 원칙을 만들어 가는 국제적 협력 과정이어야 한다.
국제 데이터 표준은 단순한 기술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고, 경험과 경험을 연결하며, 과거의 사고와 미래의 예방을 연결하는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다.
18년의 현장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겼다.
"사람은 언어가 달라도 협력할 수 있다. 시스템도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함께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미래의 화약류 안전관리는 어느 한 나라의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마다 다른 경험이 하나의 지식으로 연결되고, 서로 다른 시스템이 하나의 안전 원칙 아래 협력할 때 비로소 국제사회는 더 높은 수준의 예방 중심 안전관리로 나아갈 수 있다.
국제 데이터 표준과 상호운용성은 디지털 기술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