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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건물(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상가 등)과 같은 대형건물의 경우 시행사(=건축주=분양회사)는 금융조달 및 담보, 시행사의 채권자에 의한 권리행사(압류, 가압류, 가처분 등) 회피 등을 위해 토지 및 신축건물에 대하여 신탁회사에 신탁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통상 시행사는 자기자본이 적은 상태에서 막대한 사업자금이 소요되는 개발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금융권에 의한 프로젝트 파이낸싱 이외에도 많은 사채를 조달하게 되고 사업과 관련하여 많은 채무를 지게 된다.
금융권 대주단 및 시공회사의 경우에는 신탁계약상의 우선수익권 약정 및 대물변제 및 근저당권설정약정, 유치권 행사 등을 통해 그 자금회수의 방법이 안정적으로 보장된 반면, 나머지 일반채권자(자금대여자, 투자자, 수분양자, 건축설계업자, 조경업자 등)들로서는 채권회수를 위한 권리행사방법이 쉽지 않다.
원칙적으로 우리 신탁법 제21조 제1항은 신탁재산에 대하여는 강제집행 또는 경매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채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첫째, 위탁자(=시행사)와 수탁자(=신탁회사) 사이의 표준 신탁계약서(‘신탁원부’)를 보면 신탁종료시 신탁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위탁자에게 이전하기로 약정되어 있는바, 위탁자의 채권자인 일반채권자들로서는 위탁자가 수탁자에 대하여 신탁종료시 가지는 신탁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압류할 수 있다(예외적으로 부동산개발신탁 내지 처분신탁의 경우 수탁자는 막바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제3자에게 이전해 주거나 공매처분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위 가압류의 실익은 없게 된다).
둘째, 마찬가지로 신탁계약서에 의하면 위탁자는 수탁자에 대한 신탁수익채권을 가지는바 이를 채권(가)압류할 수 있다.
셋째,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신탁행위가 일반채권자의 채권을 해하는 사해행위 내지 사해신탁에 해당됨을 주장하여 그 신탁계약을 취소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제소기간의 제한도 있지만 실무상 빈번히 쟁점이 되는 것은, 채권자취소권에 의하여 보호될 수 있는 채권은 원칙적으로 사해행위라고 볼 수 있는 행위가 행하여지기 전에 발생된 것임을 요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로 문제가 되는 국면은 부동산개발사업의 경우 통상 토지를 매입한 뒤 이를 먼저 신탁(제1차 신탁)하고 그 지상에 건축물을 신축한 뒤 그 준공을 거쳐 보존등기 및 건물신탁등기(제2차 신탁)를 하게 되는데 제1차 토지신탁 후 그리고 제2차 신축건물 신탁 전에 발생한 채권의 경우 그 채권자는 위 건물신탁행위에 대해 사해행위취소를 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시간적, 논리적으로 보면 비록 토지신탁 후에 발생하였으나 건물신탁 전에 발생한 채권의 경우(가령 건축비 대여, 건축행위 관련 설계용역비, 조경비 채권 등) 토지신탁에 대해서는 사해행위취소를 구할 수 없을지라도 건물신탁에 대하여는 채무자, 즉 위탁자의 무자력 등 다른 요건을 구비하면 그 취소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무상 위탁자, 수탁자, 시공자, 대주단 등 주요 이해관계자는 바로 이러한 우려를 회피하기 위해 토지신탁계약시 별도의 사업약정서를 통해 ‘장차 건물 보존등기시 대출원리금 및 공사대금 미지급금이 잔존하는 경우 보존등기함과 동시에 담보신탁(또는 처분신탁)을 경료키로 한다’는 취지의 약정을 미리 해둔뒤 이후 건물신탁의 취소청구가 제기되면 건물신탁은 채권이 발생하기 이전인 제1차 토지신탁시 약정한 내용의 이행에 불과한 것이어서 채권자취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실제 법원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제1차 신탁계약은 상가부지가 될 토지에 대한 부동산관리신탁에 지나지 않으며, 변경약정과 사업약정서에서 상가 신축건물의 보존등기시까지 시행사의 대주단에 대한 채무가 완제되지 않았을 경우라는 조건부로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할 의무를 부과하는 약정에 불과하여 향후 체결할 건축물 담보신탁계약의 신탁재산, 신탁기간, 수익자 등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전혀 정함이 없으므로, 제2차 신탁계약과 종전의 일련의 위와 같은 약정은 동일한 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비롯하여 사해의사 등 사해행위에 대한 판단은 종전의 일련의 약정과는 별도로 상가 신축건물 점포에 대한 신탁등기의 원인이 된 법률행위인 제2차 신탁계약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바 있다. 물론 위 대법원 판결이 제1차 토지신탁과 제2차 건물신탁은 항상 동일한 법률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나, 적어도 주된 신탁관계인들이 사업약정을 통하여 제2차 신탁계약은 제1차 신탁계약의 이행에 불과하므로 제1차 신탁계약 후에 발생된 채권을 가지고 제2차 신탁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법무법인 한반도 이원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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