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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의 재회를 꿈꾸다. -코류지 미륵보살반가사유상
20년 전이다. 아내와 함께 서유럽배낭여행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베르시이유 궁전의 크기와 웅장함에 넋이 빠져라 감탄하고 있었다. '남의 나라는 국력을 키우고 이렇게 화려한 궁전을 올릴 때 우린 도대체 뭐했어?', "맨날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제대로 내세울 만한 궁전이라도 있나?" 분노 서린 불평만 마구 늘어 놓았다. 아마 무지가 편견을 낳은 모양이다. '그래도 내 눈으로 우리 문화재를 확인하고 욕을 하자.' 일말의 양심일지 아니면 오기였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당시에는 경복궁 옆에 옹색하게 세들어 있었는데, 미술책에 등장한 서화와 고려 청자를 둘러 보니 나름 우리 문화도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충격이랄까. 온몸을 전율로 사로잡은 미술품이 있었으니 바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었다. 실물로 본 모습은 국사책에서 본 사진과는 전혀 딴 판이다. 생각보다 훨씬 컸으며 미끄러지는 옷주름에 손가락 마디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무아지경의 표정이 내 천박한 사대주의를 한방에 깨트린 것이다. 다음날에는 창덕궁을 찾아 궁궐 구석구석을 거닐며 내가 얼마나 한심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우아한 건물은 둘째치고라도 자연을 끌어들이는 한국 정원의 오묘한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손목시계가 벽시계보다 비싸다는 것을 여기서 깨달았다.
그 후로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차츰 안목을 높혔다. 하나를 보면 두 개가 궁금했고 관련 책을 뒤져보고, 훌륭한 스승님까지 만나게 되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욕심이 생겼고 결국 우리 국토는 물론 세계를 유랑하는 여행작가가 되었으니 미술품 하나가 헌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역할을 한다. 전무후무할 줄 알았던 이 명작에게 이란성 쌍둥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늘 마음속에 코류지 반가사유상을 꿈꾸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푼 것이다.
만화에 나옴직한 한 칸짜리 전철을 타고 교토 서쪽에 자리한 광륭사 앞에 섰다.
광륭사라는 멋진 글씨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입구에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금강역사상이 절을 호위하고 있었다. 우리네 금강역사상은 다사 해학적 얼굴을 하고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데 반해 일본의 금강역사상은 매우 무섭고 사실적이어서 들어가기에 부담이 된다.
일본에서는 太秦寺로 알려져 있다. 4세기경 신라에서 넘어간 秦씨들이 살았던 장소로 그 후손들이 쇼토쿠 태자를 위해 코류지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태자의 태와 진씨의 진이 합쳐져 태진사가 된 것이다. 그 의미있는 땅에 삼국시대 불상이 있다는 것은 묘한 인연이 아닐까?
코류사는 쇼코쿠 태자가 건립한 일본의 7대 사찰중에 하나다. 603년 쇼토쿠 태자의 명으로 세웠다고 하니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일본의 고찰 답게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종 모양의 창문이 이색적이다.
쇼코쿠 태자때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인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상궁원원 태자전은 쇼토쿠 태자를 모신 본당이다. 벽면에는 쇼토쿠 태자와 대승 일본이란 글자가 보인다. 습기가 많아서 인지 지면에서 한참 떠 있다.
奉納~성덕태자. 바로 이곳이 성덕태자가 세운 절임을 말해주고 있다. 태자전이 자리하고 있다.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보려면 입장료만 700엔 8천원이 훌쩍 넘는다. 불상 사진 한 컷도 5천원이 넘는다. 좀더 저렴했다면 많은 한국인들이 친견했을 터인데 좀 안타깝다.
불상은 '영혼의 보물이 모셔진 곳' 즉 영보전에 모셔져 있다. 내부는 어둡고 고요하다. 관람객의 발자국 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사진을 찍을 까봐 눈을 부라리는 관리인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불상은 난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 어둡기 때문에 눈을 부라리며 봐야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980년 대 초, 이 불상의 미소에 반한 대학생이 자신도 모르게 불상으로 접근하다가 실수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부러 뜨렸다. 그때 그 재질이 한국산 적송임이 밝혀진 것이다. 아스카 시대 목상들은 거의 녹나무인데 반해 적송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하니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측은 한국산 적송을 가져다가 일본인이 조각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금동 미륵반가사유상과 닮은 것을 보면 한국에서 완성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가방을 바닥에 둔 채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면서 명품과 교감을 나눈다. 앉은 키가 123.5cm 라니 사람키와 거의 흡사하다.한쪽 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는 품새며, 지긋하게 감은 눈, 오똑한 코, 잔잔한 미소, 튕기는 듯한 수인까지 나무조각상이 아니라 1500년 동안 숨쉬고 있는 부처같다. 근심 한 점 없는 무아지경의 표정은 내가 믿는 신을 마주한 기분이다.
가까이 다가서니 나무결이 보인다. 인간의 피부를 새겨놓은 것 같다. 1500년을 묵힌 나무향이 풀풀 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세월 탓인가 오른 발 무릎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이 못내 아쉬었다. 아니 그런 고통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더 경외롭지 않는가.
암만 봐도 경주 오릉 부근에서 발견된 국보 83호 금봉미륵반가사유상과 거의 흡사하다. 금동이란 재질 때문에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면 역시 나무라서 그런지 온화하고 따뜻하다.
지난번 선암사 고매화 기행할 때 700년 매화가 지금도 꽃을 피운 것을 보고 무척이나 감동 받았는데 이 나무역시 선암매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수많은 중생들은 이 미소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독일의 실존주의자 야스퍼스는 1945년 이 불상을 친견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예술품은 아직 완전히 인간적인 냄새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불상은 모든 시간을 초월해 인간의 존재 중 가장 정화되고 영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고 극찬했다. 가히 일본 국보 1호임을 말해주는 명품이다.
갑자기 국보 83호 청동불과 이 목불상을 나란히 놓았다면 얼마나 황홀한 전시회가 될까 상상해본다. 25년전 프랑프 파리와 미국 뉴저지로 입양된 한국계 쌍둥이가 유튜브를 통해 기적적인 만남을 가졌던 그 감동이 밀려 오지 않을까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유리관에 모셔져 있어 360도 자태를 볼 수 있도록 했다. |
첫댓글 아는만큼 보인다! 설명과 함께 명품 보물을 보니 더욱 훌륭함을 새삼 느낍니다.
초등 5학년 사회에 요즘 배우는 겁니다..ㅎ
삼국시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했다는 증거라고 ..나와요..
삼국시대보면 일본에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아이들이 그래요..
일본은 배은 망덕 이라고...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중에 유일하게 마음에 남는 사진이 미륵반가사유상인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대장님 설명 들으며 보니 더 감동스럽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