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 대전일보 한밭춘추(3.24)

[박은숙]

그곳에 가면

살다 보면 문득 지치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동료의 죽음을 접할 날일 수도 있고, 그저 꽃 피고 지는 것이 서러운 시시한 날일 수도 있다. 심장이 아릿한 신호를 보내오는 그런 날이면 나는 대전 동구 마산동 대청호변에 있는 미륵원에 찾아가곤 한다.

미륵원은 600여 년 전 우리 지역을 거쳐 삼남을 오가는 길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던 곳이다. 험난한 산길을 걷다가 해질녘 만나게 되는 따뜻한 불빛 하나, 지친 길손들에게 미륵원은 언제나 따뜻한 밥과 국이 되어주던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미륵원을 운영했던 회덕황씨 집안에 재산이 많아서였을까? 물론 회덕의 토착세력으로서 그에 합당한 재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3대에 걸쳐 50년 이상 베풀어진 나눔의 정신을 그 한 가지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더불어 나누는 일에 인색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건대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현재 미륵원에 가면 진짜 미륵원은 만날 수 없다. 한때는 수많은 선비들을 맞이했을 건물마저 대청호 물결에 내어주고 제자리를 잃은 초라한 남루만이 길손을 맞아줄 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마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근심하곤 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최근 종중에서 미륵원 정비복원계획이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3년여의 기간 동안 진행될 정비복원공사가 단순히 건물을 몇 채 짓는 공사가 아니라 대전 정신의 뿌리를 되찾는 공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일상의 삶에서 지친 날엔 계족산 너머 대청호 물결 따라 미륵원을 찾아가보자. 그곳에 가면 언제나 넉넉한 품을 가진 할머니와 착한 눈망울을 한 누렁이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구멍 난 우리의 심장이 따뜻한 미륵원의 마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박은숙 <대전시문화관광해설사>

[서구문화원]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