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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현의 노래>, (생각의 나무 : 2004)
아름다운 선율이 마음을 튕기며,
깊은 파장을 남기며 가슴을 팽창시켰다.
12줄의 잘 꼬아 만든 명주실이 마치 기러기 떼를 연상시키는
안족(가운데 실 받침)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서로 줄다리기를 하듯 줄을 힘 있게 당겨 고운소리를
내게 해주는 가야금 왼쪽의 12개의 홈과 12개의 줄을 고정시키기 위해
만든 오른편의 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야금은 윗판과 아랫판 나무가 다른데 윗판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아랫판은 밤나무로 소리를 울리도록 하였다.
오직 가야금의 줄로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랫판 부분의 작은 구멍으로 인해 소리는 울려퍼지게 된다.
그 가녀린 여인의 손가락과 같고,
마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여인의 마음과 같은 명주실은 잘도 소리를 낸다.
가야금 소리 또한 처량하고 가슴을 애처롭게 만든다.
마치 내가 떠나는 임을 그리는 마음처럼 간절해지는 것이다.
“금은 길이가 다섯 자 다섯 치에 폭이 한 자 세 치로,
사람의 키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았다.
굵고 가는 줄들이 가지런히 들어섰고,
버팀목들이 들어선 모양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대열과 같았다.”
200페이지 속에 있던 우륵의 말이다. 말 속에서 가야금의 구조를 알 수가 있었다.
현의 노래는 김 훈이 가르치는 가야금 수업이었다.
주인공 우륵이 점점 망하여지는 가야의 악사로써,
왕들이 죽음을 맞고 순장을 행할 때,
하나의 의식으로 춤과 아울러 음악을 하였다.
그래야 비로소 왕의 죽음을 알리고, 하늘에 알리는 것이었다.
가야가 비로소 신라와 백제 고구려가 서로 나라를 빼앗기 바쁠 때,
삼한이라는 제각기 좁은 땅덩어리를 나누어 왕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그러한 나라였기에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륵은 살아남기를 바랐다.
살아남아서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을 알리고 싶었다.
“살아 있는 동안만 소리인 것이다.”
그 말은 가야가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우륵은 시급히 신라의 병부령 이사부를 찾아갔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서 가야금을 알려야 했다.
우륵의 가야금은 가야 다로지역에서 찾은 금을 본을 따 만들었다.
우륵은 그 가야금 속에서 깊은 울림을 발견하고 그것을 찾으려 애썼다.
그는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의 땅에서 살아있는 소리를 울리고 싶었다.
그 곳에서 우륵은 가야금을 지니고 신라의 젊은 진흥왕이 낭성에 행차했을 때,
국원에서 우륵을 만났다.
다행히 진흥왕은 우륵의 가야금 소리에 신라의 소리라 하며,
그를 반갑게 여겼다.
신라의 왕은 우륵이 신라를 위해,
신라만을 위한 소리를 하기를 바랐지만,
우륵의 마음은 이미 나라가 없었다.
오직 살아있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그는 제자 니문을 데리고 다녔다.
니문은 그의 분신이었다.
금을 켤 때도,
니문과 함께였고,
가야에서 신라로 떠날 때도 니문이 진 지게 위에 가야금과 늙은 우륵과 함께였다.
둘은 마치 한 몸이었다.
소리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 된 것이다.
아름답다.
모든 인연에는 그에 맞는 끈이 있다.
부모 형제도 연인들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연결시킨다.
소설 속 우륵과 니문도 마찬가지로 금의 소리로 서로를 모르게 연결 시켰다.
가야는 김수로왕이 세웠다.
김수로왕은 나의 선조이다.
중학교 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난 가야의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 때는 그것이 엄청나게 뿌듯했다.
出자로 번쩍이는 가야금관을 본 뒤에 난 그 화려함에 반했었던 기억이 난다.
가야의 백성이었던 우륵은 결국엔 나라를 배신한 격이지만 그것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책 속의 가야는 약소국이었다.
가야의 왕들은 약하고 힘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주변 국가에 이리 저리 이익을 따져 붙었지만 효력이 없었다.
결국 522년 3월에 대가야의 이뇌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여 ,
신라에서는 이찬 비조부의 딸을 보냈다. 그 사이에 월광태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전쟁은 끊어지지 않고,
누가 강하고 약한지는 순식간에 계속 바뀌어 나갔다.
그러므로 가야왕은 다시 힘을 얻게 된 백제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신라를 치기 위해 백제와 손을 잡았다.
대가야가 백제와 함께 신라의 관상성을 공격하다가 대패하였다.
이것을 끝으로 대가야는 신라에 정복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륵은 오직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들어갔다.
신라를 위해 소리를 내며 지냈다.
“ 가야왕이 음란하여 스스로 멸망한 것이지 음악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개 성인이 음악을 재정함은 인정에 연유하여 법도를 따르도록 한 것이니,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음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글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가야는 비로소 사라지고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남았고,
그 속에서 우륵은 신라를 택하였다.
우륵은 결국 신라의 땅에 묻혔다.
마침내 쓸쓸한 가을날에 객혈을 하다가 죽었다.
“살아 있는 동안만 소리이다..”
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제 그의 소리는 끝이 난 것일까?
삼국사기에 신라의 진흥왕이 계고, 법지, 만덕 등 3인으로
하여금 우륵에게서 음악을 배우게 하였다 한다.
그들이 가야금을 알린 사람인 것이다.
우륵이 가르친 소리에서 가야의 고을들의 모습을 담아놓은 소리의 빛을
신라인들이 알 수가 있었을까?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다.
아무래도 “현의 노래”를 읽고,
가야금의 구조와 소리를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퓨전음악이라고 해서 음악이 기존의 음악을 리메이크를 해서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난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았다.
가야금은 오직 고전음악을 고수해야한다는 것은 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행동일지 모르지만,
난 고전음악을 연주하더라도 오케스트라 연주하는 새로움 보다
대금소리, 가야금, 거문고, 북, 징.. 소리가 어우러진 것이 좋았다.
그 속에서는 민족을 느낄 수가 있었고, 나라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훈의 소설 속에 우륵은 적어도 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악사였다.
가야를 생각나게 하는 가야금... 그것만이 그의 소임이었을 지도 모른다.
김 훈은 나에게 새삼스럽게 이순신과 우륵 이라는
시대적 인물을 나에게 알려주면서 나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일천 오백년 전의 인물을 내가 떠올려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일까?
피어나는 꽃도 금세 져버리지만
그 때 맡았던 향기가 코의 후각에 깊이 박혀있는 것처럼
우륵의 가야금 또한 그 가녀린 음향이 나의 귀에 깊이 박혀 청각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애절하고도 간절한 울음 속에서 난 우륵의 가슴을 생각해 본다.
나라를 잃었을 무렵, 오직 소리를 내고 싶은 열정 하나로 그는 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가 떠날 당시에도 소설에서는 자신의 나라 가야에 대해
애절함은 애석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소리뿐이었다.
살아 있을 동안만은 소리를 실컷해보고 싶었음이라...
애끓는 마음이야 어찌 없었을까?
하지만 내가 살아서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두다 살아있을 때에 가치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야만 모든 것이 가치가 있듯이 난 우륵처럼 빛이 되고 싶다.
가야금이라는 우륵의 귀중한 산물이 탄생 했듯이,
나에게도 무언가를 탄생시키고 싶다. 내 손으로..
그리고 내 혼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허망하게 그냥 손을 놓고 멍하니 허공을 헤집을 수만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난 해야 한다.
우륵처럼.. 이순신처럼...
나라의 빛과 희망이 되고 싶다.
우륵이 바라본 가야 하늘엔 별비가 떨어지는 곳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곳은 어두컴컴한 암흑 뿐이다.
그것은 우륵에겐 이뤄야할 소리가 있지만,
나에겐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어둠 뿐이라는 것이다.
그 우륵이 바라 본 하늘을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꿈의 숨결을 내가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눈을 부산히 돌리고,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부산물을 마음의 체로 걸러내고,
맑고 깨끗한 깨달음이 온전한 보석으로 빛이 나면
난 다시 손가락을 키보드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나누고픈 생각으로 글을 쓴다.
난 그 일이 너무나 기쁘다.
어제 내린 비의 비릿한 냄새가 밤의 어둠을 타고 열어진 창문으로 세어 나왔다.
그 공기가 일천 오백년 전에도 흘렀을 풀내음일 것만 같다.
그 비릿함이 난 언제나 좋았다.
마치 엄마의 푸근한 젖내음 같기도 한 그 냄새는 언제나 푸근하다.
코가 아닌 피부가 느끼는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으며, 우륵의 생애를 다시 생각해 본다.
앞 건물 아파트가 수십 창의 눈빛을 어둠의 눈두덩에 감기고,
몇 개의 눈빛만 또렷인 체,
가물거린다. 그 눈빛을 느끼며,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으로 일기처럼 글을 써나간다.
우륵이라는 인물은 김 훈의 글이 아니었다면, 제가 돌아보았을까 생각됩니다.
이순신이야 워낙 유명하기에, 알고 있는 위대한 분이었지만,
우륵은 가야금의 창시자라는 것도 몰랐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랬습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허구의 내용도 있겠지만,
우륵이라는 인물의 사실적 배경과 현실적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현의 노래”는 허구였지만 우륵의 생애를 함께 걸어온 듯합니다.
김 훈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속에 우륵의 생애를 조금 건져내고,
그의 천년동안 잠든 가야금에게 물었습니다.
“가야금아.. 가야금아.. 그 살육과 유혈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는지...
어서 그 긴 잠을 깨어 나에게 지난 이야기를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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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선희 부처님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아미타불!
김선희님,우륵이 본 하늘을 꼭 찾으실겁니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김선희님!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이 여름에 김선희님은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가는 것 같군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고맙고...
가야금을 만든 우륵 ㅋㅋ 책에서도 봤지만 독후감으로 보니 색다른 느낌~
시대를 넘어 인간이 추구한 순수한 그 정신은 우주에 남아 영원한 것임을 새삼 확인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