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첼로만을 연구하고 사랑했던 첼로의 성인이었던 파블로 카잘스.
그는 예술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실천했던
한 사람의 훌륭한 인격자이자 양심의 소리에 따르는
강하고 의연한 생활 자체로서 그대로 더없이 훌륭한 예술의 경지와 결부된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카잘스는 잔인한 대학살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인류의 20세기를 인간이 견뎌낼
수 있도록 신이 내려준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파블로 카잘스와 첼로의 성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첼리스트 카잘스를 말할 때 그가 첼로의 새로운 운지법을 고안해냈다는 것 말고,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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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풀사이즈의 첼로를 사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부둣가의 오래된 악보 상점에 들렀다. 많은 스코어(score: 악보)들을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우연히 낡고 색이 바랜 한 묶음의 스코어를 발견했다. 아, 그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나는 마치 왕관에 달린 보석들처럼
그 악보를 품고서 돌아와 방에 처박혔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계속 탐독했다. 그때
내 나이 열세 살이었지만 그후 80년 동안 그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라움은 항상
생생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12년간 매일 밤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지만 그 중 한 곡이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알버트 칸,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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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0여 년간이나 먼지 속에 잠들어 있던 바흐의 걸작『무반주 첼로 모음곡』악보를 거리의 헌책방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둘은 항상 붙어 다녔고 이 곡으로 인해 카잘스는 첼로의 마에스트로가
되었지만 카잘스로 인해 이 곡은 첼로의 성서가 되었다.
첼로가 지니고 있는 깊은 표현력을 최대한 활용한 바로크 음악의 정수인 이 곡에
대한 카잘스의 열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카잘스는 이 곡을 발굴한 지 47년, 공개로 연주한 지 35년이 지난 1936년, 그의 나이 6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음을 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래서 1936년부터 39년까지 3년 동안에 녹음되어 전
3매 전집으로 발매되었다.
1876년 12월 29일 스페인 카탈로니아에서 출생.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오르간,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움
1886년 열살 때부터 첼로 시작,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원의 호세 가르시아에게 배움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 발견
1893년 스페인 왕실장학금으로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 작곡과 실내악 배움
1895년 파리 데뷔
1905년 코르토 - 티보와 트리오 결성
1920년 바르셀로나 카잘스 관현악단 조직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로 카잘스 관현악단 해산
1939년 프랑스의 프라데로 이주하여 <프랑코 정권이 존속하는 한 조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
1950년 바흐 사망 200주기를 맞아 프라데 음악제 개최
1956년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로 이주, 푸에르토리코 카잘스 페스티벌 시작
1957년 방년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
1973년 10월 23일 푸에르토리코 아우크시료 무토오 병원에서 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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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 J. S. Bach -
좌로부터 카잘스(이때부터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자크 티보(Jacques Thibaud),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 미국 순회연주
동안, 거의 모든 음악가들이 머리를 길렀던 반면에 대머리였던 카잘스로 인해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비평가들은 카잘스의 대머리를 두고, 카잘스가 자신의 여성 숭배자들에게 머리카락을 너무 많이
선물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우스개소리를 해댔다. 그가 순회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의 미국인 매니저는 그에게 ‘만일 카잘스가 가발을
쓴다면, 더 많은 사례를 지급할 수 있다’고 편지를 쓴 일도 있었다.
파블로 카잘스의 백악관 연주 모습(케네디 대통령 재임 당시) - 미국과 케네디의 비밀에 대해서 파블로 카잘스가 좀더 많이 알 수 있었다면 백악관 연주도 거부했을 지 모른다. 당시의 기록필름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이 카잘스 앞에서 얼마나 예의바르게 굴려고 애썼는지 볼
수 있다.
자료출처:http://windshoes.new21.org |
첫댓글 카페를 통해 풍만함을 얻게 하심에 감사. 자주 접하지 못했던 깊이 있는 음악으로 제 마음도 깊어질것 같으오이다
지금연주되는 1번 프렐류드(전주곡)부분은 특유의 전아함과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가깝다는 첼로의 독주만으로 연주되는 노래하는듯한 선율로 한국인의 정서에 잘맞는곡이지요
우리가 하루세끼의 밥을먹듯이, 바흐의 이곡은 일상의 양식이지요, 한끼의 밥처럼 양식이란 단어는 근원적이고 결코 물릴수없는 신비한 공복감이 하루가 채 지나기도전에 일상의 유혹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97세의 천수를누린 그는 죽기전 , 수제자인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에게 제자였던 젊은아내 마르타와 결혼하라는 유언을 남긴 일화는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