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 누리당과 민주 통합당이 4.11 총선에 나설 공천자 명단을 속속 발표하면서 공천에서 탈락한 소속 정당인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조직적인 반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권력의 주변에서 의기양양하게 다른 사람을 탈락 시키던 핵심세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탈락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공천심사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으니 새삼 인생무상을 느낀다.
이번에 공천 탈락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 이상 개인적 위기에 직면하여말 못 할 고통을 겪은 경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충격적인 경험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면 새롭게 출발 할 수 있는 도약의 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불란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에 의하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선생님을 통하여 고통 없이 얻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통하여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라고 구별 지어면서 후자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수용하고 탐구하면 인격성장의 길이 열린다는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데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의 삶과 작품을 통하여 살면서 부딪히는 인생의 여러 난해한 문제를 조언해주고 있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축복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무지한채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이리라. 가령 자동차가 잘 움직인다면, 우리는 무슨 이득을 바라고 굳이 기계의 복잡한 내부 작동에 대해서 배워야 할까? 연인이 충성을 맹세하다면 우리가 왜 굳이 인간의 배신행위의 역학에 관해서 숙고해야 할까? 우리의 모든 만남을 존중해야 한다면, 왜 우리가 사회생활의 굴욕에 관해서 조사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될까? 오직 슬픔 속에 빠졌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맞서고자 하는 프루스트 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불 밑에서 울부짖을 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도 같을 때에만 비로소.”
공천탈락의 고배를 마신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 정신적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 해석에 주목하고 인생 제2막 설계를 위한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으로 삼았으면 한다.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활동이건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규칙적으로 나가던 직장생활 이건 그만두게 되면 일시적이나마 텅 빈 몸 만 남게 되어 삶이 공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텅 빈 몸과 마음을 긍정적인 행동으로 채워 넣어 새로운 일에 착수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슬퍼해야 할 이유는 너무 많다.
날로 줄어드는 예금 잔고, 사라진 평생직장의 꿈, 지루하고 변함없는 일상, 사무적이고 감동 없는 인간관계, 가정의 해체와 핵가족화,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 늙어가는 육체, 질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 세대 간 다른 가치관으로 인한 갈등,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생활의 노출위험, 등.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인간은 슬픔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생각이 지혜를 만들고 그리고 지혜는 인생을 견딜 만 하게 만드는 완충제의 역할을 촉진하는 조절 기능을 발휘 한다는 점이다.
강산에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마음이 얼어붙어 봄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간의 고통 속에서 솟아나는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 속에서” 생존의 힘을 구해야 한 다는 윌리엄 워즈 의 시 일부를 함께 감상해 봅니다.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William Wordsworth(1770-1850) 윌리엄 워즈워드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한때 찬란했던 광채가
be forever taken away from my sight, 나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랴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초원의 빛, 꽃의 영광이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다시 올수 없은들 어떠랴
Grief not, rather find,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구하라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뒤에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In the primal sympathy 지금까지도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원초적인 연민 속에서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인간의 고통 속에서 솟아나
OUT OF HUMAN SUFFERING, 마음을 달래 주는 생각 속에서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죽음너머 바라보는 믿음 안에서
In the years that bring philosophic mind.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주는 세월 속에서
“끝”
익히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아스피린의 주성분은 버드나무 추출물로서 바이엘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살리실산을 1897년에 안정화 시키는데 성공하여 제품화의 길이 열렸다. 1899년부터 아스피린이라는 상품명으로 제품화 된 후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해열진통제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 아스필린의 아세탈살리실산 성분이 혈소판 응집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1980년대부터 심혈관질환예방목적으로 아스피린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슬픔의 주성분이 무엇인지 필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프루스트적 해석에 의하면 슬픔 속에는 인간의 정신력을 무너트리는 독성 이외에 불행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불가사의한 성분이 숨어 있음을 이해 할 수 있다. 마치 아스피린이 최초 해열진통제로 개발되었으나 후일 연구와 임상실험을 통하여 심혈관질환 예방목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듯이.
There is an alchemy in sorrow. It can be transmuted into wisdom, which, if it does not bring joy, can yet bring happiness. Pearl Buck(1892-1973)
슬픔에는 비술이 존재한다. 슬픔을 지혜로 승화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로 인하여 반드시 기쁨이 따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행복은 동반 한다. 펄벅
아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영국의 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Alfred Russel1 Wallace)는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황제나비의 투쟁을 돕기 위해 칼로 고치의 옆 부분을 살짝 그어 주었다. 그러나 고치를 빠져나온 나비는 곧 죽고 말았다.
사람도 고통의 험난한 투쟁을 스스로 이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주말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정 해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