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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49 6월 9일 목요일
법화경 제12.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교재 39쪽
안녕하십니까? 6월 9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세월은 빨라서 이 방송법문을 시작 한지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해가 지고 한창 밤이 였어요. 그래서 아주 캄캄 한데서 불을 키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물론 불을 켰습니다. 아직은 바깥이 환 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지인데, 요즈음 아주 낮이 가장 긴 그런 계절이라서 그렇습니다. 초 여름이라고 해서 문을 열고 아직도 훤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런 시간을 여러분들과 갖습니다.
오늘 불교 신문을 배달된 것을 이렇게 뒤적 뒤적 하다 보니까, 우리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을 하게 해준, 지금도 철저히 차질 없이 잘 관리 하고 계시는, 날마다 좋은 날님, 이름이 박금표지요. 뭐 학교에 나가서 강의 하시고 하는 분인데, 우리나라 불교계의 유일한 오케스트라를 살려야 한다고 즉, 말하자면 이름이 니르바나 필 하모니인데 후원회를 이제 만들고 그 회장이 되었어요.
후원회 회장이 되가지고서 참으로 좋은 일을 하십니다. 저기 불교음악 방송을 오래 전부터 운영을 해오고 있지요. 스스로 음악방송을 운영도 하고 불교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또 불교 유일의 오케스트라를 살려야 된다고 하는, 그런 마음에서 후원회 회장까지 맡아 가지고 이렇게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불교 신문에 기사로 이렇게 실렸어요.
사실 염화실 방송 국장인데 이렇게 나도 신문보고 이렇게 알았습니다. 참으로 불교 음악 발전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지금 염화실 방송은 정말 전적으로 이 박금표씨 날마다 좋은 날님의 노력에 의해서, 그 성의에 의해서. 열의에 의해서 시작 되었고 지금도 사실은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사지 만은 또 염화실 방송국과는 너무 인연이 깊은 분이라서, 이렇게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내가 어지간한 작은 기사는 안 보는데 사진도 꽤 크게 나고, 그래도 눈에 띄는 기사였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반갑기도 하고 참 불교음악단체를 살려야 된다고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법화경 39쪽에 있는 제바달다 품인데, 이제 제바달다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요. 부처님의 종제라고. 사촌동생이라고 그렇게 알려져 있고 부처님 출가 이전에도, 늘 세속적인 학문이나 무예 같은 것을 서로 겨루는 라이벌로, 쭉 이렇게 성장해오다가 부처님이 출가해서 수행하고 또 이제 성도하신 뒤에, 교단을 이루고 나니까 역시 이분도 출가를 하기는 했는데, 부처님이 교단을 잘 운영해 가지고 많은 제자들이 이렇게 모이고 그렇게 하니까, 그것이 이제 좀 시기심이 나서 그 교단을 자기가 빼앗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아주 복잡한 사연이 있는 그런 분이지요. 그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이켜 보면은 석가세존의 일생에 있어서, 제가 이제 생각 하기에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이렇게 이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는 이 제바달다의 반역, 우리가 이제 그렇게 종제이면서 제자인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반역을 하고, 자신은 부처님을 죽이고 그 부처님의 교단을 자기가 빼앗아서, 좌지우지 하고 그 영수가 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에서, 여러 번 죽이려고 시도했던 그런 사건, 그 부처님 같이 그렇게 덕이 참 높으시고 지혜가 있으시고. 만덕존상을 갖추신 그런 분에게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생각만 해도 뼈아픈 일이고. 슬픈일이고 유감스러운 일이고 그렇습니다.
그런 제바달다는 우리 부처님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어떻게 소화했는가? 또 우리 불자들은 정말 부처님의 사상에 의해서 그런 제바달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는가? 그를 어떻게 수용해야 정말 제바달다는 참 역사적으로 드러난 그런 사실을 가지고 본다면은, 참 우리 불교계에 영원한 원수지요.
불교에는 뭐 원수라는 말을 안 씁니다. 부처님 사상에는 원수란 없으니까, 그렇지 만은 우리 범인의 마음으로는 참 불교계의 영원한 원수다. 내가 자주 말씀 드리지만 종이에 부처 불자를 한자 써놓고도, 그 종이를 함부로 하지 못하고 땅에다가 부처 불자를 이렇게 낙서를 해놓고 그것을 발로도 지우지 못하고 손으로 곱게 지워야만 하는 그 정도로, 부처 불자만 보면은 본능적으로 존경심이 우러나고 한편 두렵기도 하고, 또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런 글자지만 비록 낙서지만, 흙에 써진 또는 모래에 써진 그런 흔적에 불과 하지만은, 그것은 우리가 함부로 못하는 우리들 마음에 제바달다 같은 이는,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 했다고 하는 사실 이런 것들이, 참 우리 불자에게 유감스러운 일이고 부처님인들 좀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그 사건이 하나가 이제 참으로 세존의 일생 중에서 뼈아픈 그런 사건이고, 하나는 이제 코살라국 부처님이 탄생하신 가비라국의 이웃나라 코살라국 이라고 하는 아주 강대한 나라지요. 무력은 아주 강하고 영토도 넓고 그러나, 이제 부처님이 탄생하신 가비라국은 조그마한 도시 국가 같은 그런 나라고, 그런 양반의 나라고 무력은 행사할 줄 모르는 그런 나라였지요.
그런데 그 코살라국의 유리왕이, 부처님의 살아 생전에 한창 그것도 교화가 정말 잘 이루어지고 있는 그 무렵에, 유리왕이 석가족을 멸망을 하고 카비라국을 침범을 해서, 자기 영토와 병합을 시켜버리는 그런 사건, 부처님이 뻔히 눈을 뜨시고 그런 유리왕의 고국 침법을 그대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이것이 또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부처님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어떻게 수용했는가? 부처님은 또 우리가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또 불교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또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 나아가서 부처님 삶을 우리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우리 불자들로서 그런 일들을 어떻게 우리가 수용해야 하는가?
그것은 부처님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했을 경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소화를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은 큰 문제지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 우리가 열심히 독송하고 있는 그런 금강경 십사분, 상권의 마지막 분이 십사분인데, 십사분 이름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이라 그렇게 되었어요. 상을 떠나서 적멸한 그런 존재의 모습을 여기서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상을 떠나서 적멸한다고 하면은, 또 우리들 마음도 역시 그런 존재의 원리에 입각해서 우리들도 역시 상을 떠나서 적멸해야 된다 하는, 그런 뜻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되지요. 금강경은 ‘무상위종(無相爲宗)’ 이라고 그러지요. 상을 없애는 것으로서 그 종지를 삼는다. 그렇게 봅니다. 근본 취지를 삼는다.
마침 상권의 마지막 분이 십사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인데, 그 안에 그 유리왕의 이야기가 있지요. 두 가지 이야기를 쭉 소개를 했는데, 나는 이러 이러한 경우에 이렇게 상이 없는 상황을 이렇게 이제 경전에 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설사 부처님당시 때 이 법화경이나 금강경이 부처님당시 때 설해진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마음을 부처님이 이러한 사건을 수용하고, 이런 일을 대하는 그런 부처님의 정신을 후대에 금강경이라고 하는 경을 편찬하면서 그러한 그것을 집어 넣어서 이러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건을 소화하였다.
또 법화경 제바달다품을 편찬을 하면서 부처님은 제바달다를 이렇게 소화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제 하나의 참 멋진 본보기로 그려보였습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직접 쓰신 것도 아니고.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그런 초기경전의 내용도 사실은 없지요. 그런데 이제 대승적인 불교가 한창 꽃필 무렵 대승불교 경전에서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 여러분들이 잘 아는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할절 신체를 당했다 그랬어요. 여기에는 이제 역사상에는 연제되기를 유리왕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금강경에는 살짝 그것을 변형시켜서 가리왕에게 할절신체, 신체를 할절 당했다 그러니까 몸을 사정없이 베이였다 그랬습니다. 무단히 왜 이렇게 몸을 베이였어요? 왜 이렇게 무단히 몸이 베이였어요?
그러니까 자기 종족을 멸망시키고 가비라 성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말하자 면은 그 부처님의 아픈 마음을 이 신체를 칼로 살점을 도려내는듯한 그런 아픔을 느꼈다 하는 그런 표현일 것입니다. 잘 아시지 만은 처음 유리왕이 가비라국을 쳐들어갈 때, 강가에 바싹 마른 나무 숲에 서있으면서 그 유리왕을 설득을 시켰지요.그렇게 이제 군대를 돌려보냈습니다.
두 번째로 설득을 시켜서 돌렸는데, 세 번째 쳐들어 올 때는 도저히 내 말고 들을 것 같지가 않고,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날뛰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는 부처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해서, 군대가 지나가는 길에서 그만 피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당시 이제 가비라국 왕이 마하남 이라고 하는 왕이 였었는데, 결국은 가비라국이 멸망하게 되니까 유리왕에게 그런 소원을 했지요. 말하자 면은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나올 때 까지만 우리 백성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그렇게 시간을 달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유리왕이 뭐 사람이 아무리 들어가서 오래 있은 들 얼마나 있겠는가 그것 하나만은 마지막으로 청을 들어주겠다 그랬어요.
그래서 마하남 이라고 하는 왕이 계획 적으로 물속에 이제 들어가 가지고는, 자기 몸을 끈으로 바위에 묵고는 끝내 물속에서 죽고, 자기 시체가 떠오르지 않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유리왕은 아무리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서 1분을 견디기가 어려운 것 아니 예요? 그런데 일분이 지나고. 이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부하를 시켜서 들어가보게 하니까, 그렇게 자기의 허리띠를 풀어서 바위에다가 이렇게 묶어서, 몸이 물로 떠오르지 않도록 하고서 돌아가셨다는 것이지요. 그 동안에 석가족은 말하자 면은 뿔뿔이 멀리 잡히지 아니하고, 도망을 가서 한 사람이라도 백성을 살릴 수 있게 까지 했다. 정말 이렇게 애절한 그런 역사가 있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사건을 부처님이 직접 다 겪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가리왕에게 할절신체(割截身體) 당했다. 아어이시(我於爾時)에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 이라. 나는 그 때 아상(我相)도 없고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도 없었다 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다. 나다 하는 ‘아我’는 ‘나’라는 것이고. ‘인人’은 ‘너’라는 뜻이고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나니, 너니 은혜니 .원수니 이런 것들은 다 없었다. 그저 왕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인간의 그 존중함을 깨닫고 정말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그런 이치를 알기를 바랄 뿐인 그런 마음이지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아어왕석(我於往昔)에 내가 절절지해시(節節支解時) 마디마디 도려내는 이 살점을 저며내는, 그 때 만약 내가 아상 . 인상 .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더라 면은, 화를 내가지고 신도들을 동원하고. 자기 제자들을 동원해 가지고 전쟁을 치루었을 것이다. 되지도 안 할 전쟁이고, 무모한 일이지만 그랬을 것이다.
‘응생진한(應生瞋恨)’ 그랬지요.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지요. 또 한가지 그 사건은 그것을 뒷받침 하면서 이제 우념과거(又念過去) 어오백세(於五百世) 과거에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었을 때, 이것은 이제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 어떤 왕이 이제 궁녀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와서, 낮잠을 자고 있다가 궁녀들이 전부 이제 인욕선인에게 가서, 법문을 듣고 있는 사이에 왕은 잠에서 깨었는데 찾아보니까, 전부 어떤 인욕선인에게 법문을 듣더라.
그래서 이제 “너는 누구냐?” 하니까, “인욕을 닦는 사람이다.” 그러면은 “정말 잘 참느냐?” 잘 참습니다. 그럼 내가 어디 한번 시험해 보겠다. 해서 칼로 또 이 사람을 마디마디 인욕선인을 또 그렇게 해체를 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두 가지 이야기가 분명히 그렇게 나눠져 있는데, 경전에는 수보리야 여아석위(如我昔爲) 옛날에 이렇게 하고, 우념과거(又念過去) 어오백세(於五百世) 또 생각해 보니까, 기억해 보니까 과거오백세 중에 이러이러한 사건이 나에게 있었다
그러면은 처음에 이야기는 현세의 이야기고, 그 나머지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 오백세중에 있었던 그런 이야기입니다.이것을 뒤섞여 가지고서 절절지해(節節支解) 마디마디 잘라 냈다 하는 것은, 인욕선인 때 잘라 낸 것처럼 물론, 그 때도 잘라 냈지 만은 거기에는 그런 말은 표현이 안돼 있어요.
이것을 이제 뒤섞어서 이야기 하는데 뭐 상관없습니다. 뒤섞어서 이야기 해도 뜻을 잘 드러내자고 한 것이니까, 분명히 하나는 이웃나라 코살라국의 유리왕에게 당한 이야기고, 하나는 그야말로 하나의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할까? 아니면 지어 내어서 좀 보완하고자 하는, 그런 뜻이라고 할까? 이런 이야기로서 그 유리왕 과의 그 원한 관계를 금강경에서 이렇게 풀었어요.
이렇게 수용하고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또 모든 불자들은 또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이해해라. 그런 뜻으로 받아 들여야 됩니다. 법망경에도 보면은 부모를 죽인 원수까지도 용서를 해야 된다. 이런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참 너무 어려운 주문이지요. 어려운 당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부처님의 마음인데 어쩌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정말 차라리 백 근짜리 돌을 지고 하늘을 날아라 하는 것이 쉽지,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실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이해하라고 하는, 그런 어떤 말은 참 받아들이기가 어렵거든요. 그러나 이제 여기에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 유리왕과의 석가족 멸망과의 관계는 그렇게 금강경에 와서 풀어버리지요.
원 결 관계를 풀어버리고 불교인의 자세. 부처님 마음으로서는 그런 관계를 이렇게 수용한다. 이렇게 이제 해답이 나왔고, 그 다음에 제바달다 하고는 그러면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 세상에 극악무도한 제바달다, 부처님을 그렇게 여러 번 죽이려고 했던 제바달다 이것은, 이제 법화경에서 이렇게 풀어요.
부처님 마음을 그 법화경을 편찬하는 사람이 제바달다품이라고 하는 품을 편찬을 하면서, 이렇게 부처님 마음을 이러한 자세히 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들은 이렇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원수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 결국 이렇게 해야 행복이 오고. 이렇게 해야 평화가 오고 . 이렇게 해야 세계평화가 오지, 그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리왕과의 관계도 그렇고 이것이 이제 영원히 인류에게, 평화의 그 열쇠를 던져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면은 도대체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불자들은 물론 어렵습니다.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 만은, 그러나 결국은 답은 이것 뿐 이예요.
해결책은 이것뿐이고. 열쇠는 이것뿐이다 라는 것, 금강경에서 자기의 종족과 자기의 고국을 멸망시킨, 그런 유리왕을 그렇게 수용하고 받아들였지요. 또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극악무도한 제바달다를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여기에 뭐라고 합니까? 나는 제바달다 때문에 부처님이 되었다. 이랬어요
그리고 나아가서 제바달다도 부처님이다 라고, 이렇게 수기 하는 제바달다가 수기를 받는 그런 대목이, 제바달다품에 그렇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바달다품이야 말로 부처님의 마음의 극치를 잘 표현한 그런 품이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법화경을 만난 사람은 참 행운아다. 그 중에서도 제바달다품을 만난 사람은 훨씬 더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이렇게 까지 극찬을 합니다.
이것이 여기서 부처님 마음의 극한 경지를 우리가 읽게 되고. 이해를 하게 되고 또 언젠가 우리도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그 때 참으로 불교를 실천하는 사람. 불교를 아는 사람. 부처님 마음을 아는 사람. 비로소 이제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저는 저 나름대로 제바달다품과 금강경의 십사분에 나오는 그런 가리왕의 이야기를, 그렇게 저 나름대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뭐 마치 그 당시 사건들을 보고 겪은 것처럼 말씀을 드리고 있지 만은,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라서 누구나 다 아는 일이고, 그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차마 풀 수 없는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그런 인간관계를 부처님은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풀었고 .어떻게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가? 이것이 이제 여기 법화경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하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1. 제바달다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스승
제목이 제바달다는 석모니의 스승, 첫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1)제바달다와 석가모니불의 과거
1 이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과 천신과 인간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구하기에 게으르지 아니 하였으며, 여러 겁 동안에항상 국왕(國王)이 되어 가장 높은 깨달음을 발원하고 구하는 데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였느니라.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만족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보시를 행하되, 코끼리. 말 . 칠보. 나라. 도성. 처자. 노비. 심부름꾼. 머리. 눈. 골수. 몸. 살. 손. 발을 아끼지 아니 하였고 생명도 아끼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거 다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이 코살라국 유리왕이 쳐들어 왔을 때 다 빼앗겼지만, 빼앗겼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또 제바달다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을 때, 그 때 어떤 그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표현한 그대로지요. 의미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때 세상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었지마는, 법을 위하여서 국왕의 자리를 버려 태자에게 위임하고, 북을 쳐서 명령을 내리고 사방으로 법을 구하되, ‘누구든지 나에게 대승법을 말하여 주는 이가 있으면 내가 마땅히 종신토록 받들어 드리고 시중 들리라.’ 고 하였느니라.
2 그 때에 한 선인이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대승경이 있으니 이름은 묘법연화경이라, 만일 내 뜻을 어기지 않으면 마땅히 말하여주리라.’ 고 하였느니라.
왕은 선인의 말을 듣고 뛸듯이 기뻐하며 곧 선인을 따라가서 모든 것을 시중 드는데, 과실을 따고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며, 내지 몸으로 상(狀)도 되고 앉는자리(座)가 되었지마는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게 받들어 섬기기를 일천년이 지나도록 하였으니, 법을 위하여 지성으로 시중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였느니라.”
여기에 보면은 법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서 자기 희생을 치루는 이야기를 몸으로 상(狀)이 되고, 앉은자리(座)가 되었지만 하는 것은 전법게, 법을 전하는 게송이 있는데 그 흔히 잘 알고 계시는 “가사정대 경진급 신위상자 변삼천 약불법전 도중생 필경무능 보은자” 이런 말이 있지요. “가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한량없는 세월동안 섬긴다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몸이 세계와 같이 넓은 평상과 의자가 되어 부처님을 안고 눕게 하여 받든다 하더라도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리라.” 그랬습니다.
이런 법화경의 이야기를 뒷사람들이 법을 전하는데, 법을 소중히 여기고 소중한 법이니 만치 그 전하는데, 그 어떤 희생까지도 치루어 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도록 하자 하는, 그런 취지에서 전법게라고 합니다. 법을 전하는 게송이다. 그렇게 표현 하는데 거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만나기가 어렵지요. 정말 자기가 육신을 보시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법으로 중생을 제도해야 그것이 제대로 부처님께 은혜를 갚는 길이다 그랬습니다. 여기는 법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보시를 하고, 지성으로 시중하여 부족함이 없게 했다. 하는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속되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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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성 | 1) 제바달다의 반역에 대해 부처님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가? 2)코살라국 유리왕의 고국침범과 석가족의 멸망을 어떻게 이해 하고 수용해야 하는가?유리왕과 석가족의 관계를 금강경에서는 원결관계를 무상유종으로 풀어버리고 법화경에서 "나는 제바달다 때문에 부처가 되었다"며 부처님 마음의 극치를 보인다. |
첫댓글 6월9일 방송 입니다 수정부탁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1) 제바달다의 반역에 대해 부처님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가? 2)코살라국 유리왕의 고국침범과 석가족의 멸망을 어떻게 이해 하고 수용해야 하는가?유리왕과 석가족의 관계를 금강경에서는 원결관계를 無想爲宗으로 풀어버리고 법화경에서 "나는 제바달다 때문에 부처가 되었다"며 부처님 마음의 극치를 보인다
무상위종無相爲宗? 관음성님의 요약을 내것으로 하면 큰스님의 하루 법문을 모두 신.해.수지.할수있게 된다는 생각을 매일하게 됩니다._()_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고 큰스님의 넓은 그림자안에서는 고해란 허?상 조차도 소멸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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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니라
큰스님께서 강의해주신 금강경 귀절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님께 진심으로 간사믜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 강의 잘 들었습니다...큰스님의 명강의와 방송 관계자 법우님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날마다 행복한 날 되세요...^*^...()()()
제바달다품을 만나게 되어 환희심이 샘솟습니다.무한한 부처님의 자비...중생심이 발동할 때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감동의 법문...감사합니다_()()()_
假使頂戴經塵劫(가사정대경진겁) 身爲床座遍三千(신위상좌변삼천) 若不傳法度衆生(약불전법도중생) 畢竟無能報恩者(필경무능보은자)라! 가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한량없는 세월동안 섬긴다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몸이 세계와 같이 넓은 평상과 의자가 되어 부처님을 앉고 눕게 하여 받든다 하더라도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사람으로써 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리라. 새겨 들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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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
감사드립니다._()()()_
원효스님의 책속에 나오던 제바달다 이야기 너무 반갑습니다. 이제껏 풀리지 못한 숙제를 꼭 풀겠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멉연화경._()()()_
감사합니다._()()()_
나는 제바달다 때문에 부처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제바달다도 부처님이다....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제바달다품이야 말로 부처님의 마음의 극치를 잘 표현한 그런 품이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법화경을 만난 사람은 참 행운아다. 그 중에서도 제바달다품을 만난 사람은 훨씬 더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이렇게 까지 극찬을 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