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 그 오해는 때로 불신앙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좀 더 잘 설명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빗나간 것이기도 했다. 신앙고백이 하나로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 교회들은 통일된 신앙고백을 작성하기 위해 모였고, 이 과정에서 교회 이외의 세력들이 침투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예수의 신성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셋째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왜곡하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은 유대교 전통에서 나온 신관이었다. 유일신관에 익숙해있던 유대전통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또 다른 하나님이 될 수 없었고, 적어도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는 아니어야 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별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비온주의
에비온주의(Ebionism)는 본래 히브리어 “가난한 사람”(ebion)이란 말에서 파생된 것인데, 대개 기독교로 개종한 일부 유대인들이 이 사상을 주장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유대교적 전통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일신 하나님 사상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은 오직 한 분 여호와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탄생을 부인하고 예수의 인성만을 인정했다. 그 결과 예수의 메시아성은 인정하지만,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림7] 참조). 이레네우스는 “이단적인 유대계 분파”(heretical judiizzing sect)를 설명하기 위해 에비온주의자(Ebionites)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에비온주의와 비슷한 견해가 군주신론적 기독론(Monarchian Christology)이다. 이 입장도 기본적으로 신은 오직 한 분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군주처럼 다스리신다고 믿는다. 이들은 예수가 신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말씀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사람만 잉태했을 뿐 말씀은 잉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시대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의 요소는 외부로부터 예수 안에 임재했지만, 그것이 인격적인 존재는 아니다. 당연히 그들은 예수에게서 신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의 명령을 수행한 분으로서, 다만 그의 신적 재능과 기능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군주신론주의자들이 초기 로고스기독론을 양신론(bitheism)이라고 비난했던 것도 유일신론의 유대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우스주의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4세기 초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Arius)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더(Alexander) 감독이 삼위 하나님의 통일성(unity)에 대해 언급하자, 그것이 유일신사상에 위배되는 비성경적 진술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그리고 그는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본질상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다.
알렉산더 감독은 성부와 성자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일본질”(homoousios)을 사용했고, 아리우스는 이 교리가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 흐른다고 비판하면서 그 둘의 관계를 “유사본질”(homoiousios)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만일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면 난 자(예수)는 존재의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는 비존재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 동방의 사상을 주도했던 오리겐(Origen)의 성자종속설(subordinationism)을 계승한 것이었다. 이로써 성자는 피조물로서 “제2의 하나님” 혹은 “중간적 존재”로 이해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알렉산더는 예수는 본질상 하나님이며 참된 신성을 가진 “영원한 아들”이라고 응수했다. 이 역시 오리겐의 “영원출생설”(eternal generation theory)을 수용한 것이었다. 영원 전부터 아들로 출생하신 성자는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며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주의는 결국 [그림8]과 같은 형태로 예수의 신성을 온전하게 인정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왜 아리우스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거부했을까? 밀리오리에 따르면, 곤잘레스는 아리우스가 “성경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싶은 유혹, 권력과 영광의 구성 요소만을 다루는 ‘현상 유지 신학’(theology of the status quo)에 안주하고 싶은 심각한 유혹에 빠졌다”고 해석했다. 아리우스는 “복음의 하나님을 그리스 정신과 그리스 세계에 익숙한 하나님 이해로 재단하여 맞추는,” 즉 하나님을 “콘스탄티누스화”(Constantinization)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참 신성과 참 인성을 확증한 칼케돈신조는 이런 “콘스탄티누스화”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평가했다. 밀리로리는 이런 콘스탄티누스화에 대한 유혹은 오늘날에게 강력하게 계속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두 천한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부와 ‘동일본질’이라고 확증하는 행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강력한 절대 군조로 여기는 자들에게는 큰 걸림돌인 것이다.”
결국 이 둘의 기독론 논쟁은 통일 로마제국의 교회를 분열시킬 위기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이에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통일을 위해 니케아에서 최초로 세계기독교공의회를 소집하게 되었고(325년), 여기서 아리우스의 사상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마침내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부와 하나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았다”고 선언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만들어지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무(無)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하거나 혹은 그가 다른 본체 또는 본질이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이 창조되었다거나 변화 혹은 대체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는 저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