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佛 心 이 가득합니다 ⊙
아름다운 동행!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사계절 등산 코스로 이름이 높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깎아지른 암벽이 노송과 어울려 금세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물과 어울린 무릉계곡의 절경
골짜기는 비경이다.
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들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산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오십정 등이 있으며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단석이 많아 별유천지를 이루고 있다.
두타산의 중심계곡인 무릉반석을 비롯
금란정, 삼화사, 광음사, 학소대, 광음폭포, 옥류동, 두타산성, 쌍폭, 용추폭포 등의
아름다운 명소와 유서어린 고적이 많다.
동북능 하산길 678고지 부분에 있는 이 오십정은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를 쉰우물, 오십정이라 한다.
두타산(1,352)과 4km 거리를 두고 청옥산(1,404)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합쳐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주변 볼거리
무릉반석, 삼화사, 두타산성, 학소대, 쌍폭포, 용추폭포, 추암해수욕장, 천곡천연동굴
인기명산 [22위]
두타산은 무릉계곡의 쌍폭, 광음폭포, 용추폭포, 무릉반석 등의 아름다운 절경으로
7-8월에 많이 찾는 여름 산행지이다. 무릉계곡의 계곡산행과 주변의
동해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다산행으로 인기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무릉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삼화사(三和寺), 관음암(觀音庵),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다
바위에 50여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패여 산이름이 붙여졌으며,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의 기도처인 쉰움산(五十井山)이 유명하다
https://youtu.be/FIJ6b8Sc3z0?si=F6m_8wJZviijheBJ
천상의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두타산 골짜기에 내려와 비단 세필을 짜며
죄를 뉘우친 뒤에야 다시 승천 할 수 있었다는 두타산 베틀바위
해발 550m높이의 베틀바위는 기암절벽이 비경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
미륵바위는 허묵(1595~1682)의 두타산기, 김효원(1532~1590)의 두타산일기
김득신(1604-1684)의 두타산에 기록되어 있는 산봉우리가 미륵봉이며,
이 바위는 미륵봉 능선에 위치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미륵불
선비,부엉이의 모습을 닮았다는데 ...
산성 12폭포 흘러애린다
무릉반석
학소대
쌍폭포(두타산 폭포 - 청옥산 폭포)
용추폭포
청옥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침식과 마식작용을 통해 항아리 모양의 상ㆍ중ㆍ하 3단의 바위용소(Pothole)를 형성하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제일 아래 계단을 밟으면 전체 암석이 동요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동석(動石)이라 불리며, 이 일대를 폭포골 또는 용추동이라 부른다. 상단ㆍ중단ㆍ하단 등 3단으로 연결되는 폭포는 전국에서 이 곳 뿐이며, 폭포들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형상과 주위 무릉계곡의 뛰어난 경관과의 조화는 매우 아름답다.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계곡을 꺾여 내려오던 계곡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장관은 무릉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거북바위
하늘문 ~~저곳을 오르면 천국으로 갈수 있을까요~~??
도전 하늘 문 이번 산행 에 올라가 봅시다~!
https://youtu.be/187xZ8gCC_k?si=pVWGrhzP60wCK1DB
두타산 삼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옛날에는 삼공사(三公寺) 또는 흑련대(黑蓮臺)라고도 하였다.
석식영암(釋息影庵)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에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많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지금의 삼화사 자리에서 모의(謀議)를 하였다.
그들이 가버리자 그 지방 사람들은 그곳을 ‘삼공(三公)’이라 하였으며,
얼마 뒤 사굴산(闍堀山)의 품일(品日)이 이곳에다 절을 짓고 삼공사(三公寺)라 하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1393년(태조 2) 조선의 태조가 칙령을 내려
이 절의 이름을 문안(文案)에 기록하고 후사(後嗣)에 전하게 하면서,
신인(神人)이 절터를 알려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 옛날 삼국을 통일한 것은 부처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절 이름을 삼화사(三和寺:삼국이 화합하여 통일이 되었다는 뜻)로 고쳤다고 한다.
한편, 읍지(邑誌)에 의하면, 옛 사적(史蹟)에 이르기를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오대산을 돌면서 성적(聖蹟)을 두루 거쳐 돌아다니다가 두타산에 와서 흑련대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삼화사라고 하였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1년(642)의 일로 적혀 있다.
또, 고적(古蹟)에 의하면, 약사삼불(藥師三佛)인 백(伯)·중(仲)·계(季) 삼형제가
처음 서역에서 동해로 돌배[石舟]를 타고 유력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와서 맏형은 흑련(黑蓮)을 가지고 흑련대(黑蓮臺)에,
둘째는 청련(靑蓮)을 손에 가지고 청련대(靑蓮臺)에,
막내는 금련(金蓮)을 가지고 금련대(金蓮臺)에 각각 머물렀다고 하며,
이곳이 지금의 삼화사·지상사·영은사라고 전한다.
또, 약사삼불은 용을 타고 왔는데 그 용이 변하여 바위로 되었으며,
바위 뒤쪽에는 약사삼불이 앉았던 자리가 완연한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하며,
약사삼불의 손은 외적(外賊)이 잘라 땅 속에 묻었다고도 한다.
이 절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1747년(영조 23) 홍수와 사태로 인하여 무너지자 옛터에서 조금 위로 옮겨 지었고,
1820년(순조 20) 화재가 나서 1824년에 중건하였으며,
1829년 다시 불타자 정원용(鄭元容)·이기연(李紀淵)·이광도(李廣度)·윤청(尹晴) 등이 서로 협력하여 중건하였다.
1869년(고종 6) 화운(華雲)덕추(德秋)가 단청을 하였고,
1873년(고종 10) 선당(禪堂)을 세웠으며, 1896년학송(鶴松)·창명(彰明) 등이 승당(僧堂)을 지었다.
이처럼 수차례의 화재와 중건을 거쳐오다가 1907년에는 의병(義兵)이 숙박하였다는 이유로
왜병(倭兵)들이 방화하여 대웅전·선당 등 200여 칸이 소실되었다.
그 이듬해 이 중 일부를 건축하였으며, 1979년 8월에 무릉계반(武陵溪盤) 위쪽으로 절을 옮겨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요사채·삼성각·육화료(六和寮)·큰방·천왕문·일주문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삼층석탑 1기를 비롯하여 운암당상준대사부도(雲巖堂尙俊大師浮屠)와
원곡당대선사부도(元谷堂大禪師浮屠) 및 비(碑)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 안에 안치된 철불은 창건설화와 관련된 약사삼불 가운데 맏형의 불상이라고 전해지며,
삼층석탑은 높이 4.95m로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한편 삼성각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철불(鐵佛) 한 구가 있었는데,
1997년 이 철불 뒷면에서 조성 당시에 새겨진 명문(銘文) 150여 자가 발견되었다.
명문의 판독 결과 이 철불이 9세기 중엽에 조성된 노사나불(盧舍那佛)임이 밝혀졌다.
명문 가운데는 이두(吏讀)가 포함되어 있으며,
불상 조성에 관계되었던 결언(決言) 등의 승려와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등,
당시의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1998년 12월 보물 제1277호로 지정되었으며, 절에서는 대적광전을 지어서 이 철불을 봉안하고 있다.
특히, 고려 말의 이승휴(李承休)는 이 절 가까이에 객안당(客安堂)을 짓고 이곳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으며,
10여 년 동안 불경을 독파하다가 객안당을 삼화사에 희사하고 간장암(看藏庵)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대승암(大乘庵)·성도암(成道庵)·은선암(隱仙庵)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
리고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명승지인 두타산성(頭陀山城)·오십정(五十井)·용추폭포·학소대(鶴沼臺)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