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핀크스 골프장이 최근 미국의 권위있는 골프잡지 ‘골프다이제스트’로부터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골프장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골프 전문가들은 “예상했던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핀크스는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가 2년마다 선정하는 베스트10에 2003년에 이어 올해도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 핀크스는 제주도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국내 200여개 골프장 중에서 회원권이 핀크스보다 비싼 곳이 많고, 더 멋진 골프장이 잇따라 개장되고 있는 마당에 핀크스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100대 골프장 중 72위에 오른 이유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 비결이 있을까?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 이선근 국장은 “세계 100대 골프장 선정 기준 등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는 제주도 골프장이 유리하다”며 “제주도 골프장이 가장 자연친화적으로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이 회원권이 비싼 골프장이 좋은 골프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가의 회원권이나 호화로운 클럽하우스 등은 골프다이제스트가 평가하는 명문의 조건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골프다이제스트가 세계 100대 골프장을 선정한 과정은 좀 복잡하다. 우선 세계 각국의 골프다이제스트 자매사(affiliate)가 자국의 베스트 코스를 선정한다. 기준은 8가지로 요약된다. ▲샷의 가치(Shot value) ▲ 경기성(Playability) ▲ 코스 난이도(Resistance to scoring) ▲ 코스관리 상태(Conditionning) ▲ 기억성(Memorability) ▲ 심미성(Esthetics) ▲ 디자인 다양성(Design variety) ▲ 보너스(Bonus) 등이다.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의 골프장 평가 패널은 세 그룹이다. 첫째 신문·방송의 골프전문기자, 둘째 100여명에 이르는 클럽챔피언, 셋째 골프 칼럼니스트들이다. 이들은 투표로 베스트10을 뽑는다.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는 세계 각국의 골프협회와 연맹 등으로부터 자국의 골프장 현황과 베스트10 등을 제출받아 이를 800여명에 이르는 골프코스 평가단과 22명의 골프 다이제스트 편집장 등에게 다시 보내주고 평가하게 한다.
핀크스 스스로는 뭐가 비결이었다고 평가할까? 강영삼 이사는 “‘샷의 가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쉬워보이면서도 어렵고, 14개 클럽을 대부분 사용해야 하고, 단조롭지 않은 게 핀크스 코스의 특징이라고 강 이사는 말했다. 그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가장 제주도적인 분위기를 살려 레이아웃을 했고, 억새를 그대로 살린 조경, 한라산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억새·한라산 살려 조경 꾸며
-> ▲ 핀크스의 자연친화적인 풍경
1999년 개장한 핀크스 골프장은 역사는 긴 편이 아니지만 국내에서 선구적인 골프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양잔디를 페어웨이와 러프에 모두 심은 것은 국내 처음이었다. 요즘 문을 여는 제주도 골프장은 대부분 양잔디를 심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엄두를 못냈다고 한다. 양잔디는 높은 습도와 무더위에 약해 제주도의 기후에 맞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었지만 핀크스는 이를 보기좋게 깨버렸다.
한·일 여자 프로골프 대항전도 핀크스가 자부담으로 시작, 골프 발전과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제주도적인 분위기도 핀크스가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다. 제주도의 전통 가옥, 돌담 등은 관광객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를 골프장 설계에 이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핀크스가 이를 처음 시도했다. 골프장 곳곳에 정낭(제주도의 전통 대문) 올레(독특한 골목길) 등을 만들어놓아 골퍼들이 라운딩하면서 제주의 정취를 맛볼 수 있게 했다.
이런 것은 제주가 고향인 재일동포 김홍주(60) 회장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그는 간사이 가쿠인대학을 다닐 때 대학 골프선수를 지냈다. 1979년 ‘혼게 가마도야’란 도시락업체를 창업, 지금은 일본 전역에 2500여개 체인점을 운영하는 업체로 키웠다.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성공하면 언젠가 고향에다 투자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1990년대에 60여만평의 땅을 매입해 이 중 38만평에 핀크스 골프장을 만들었다. 골프장 옆 부지 22만평은 현재 ‘비오토피아(Biotopia)’란 이름의 휴양단지로 개발 중이다.
핀크스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은 바하 또는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이다. 로비 왼쪽 벽에 걸린 큰 그림도 눈길을 잡는다. 이왈종 화백의 그림이다. 클럽하우스에 흐르는 음악과 이왈종 화백의 그림은 김홍주 회장이 직접 고른 것이다. 김 회장은 1억원이 넘는 고가장비 구입은 임원에게 맡기면서도 음악을 고르고, 식탁 위 화병의 문양을 정하는 것은 직접 챙긴다고 한다.
핀크스(PINX)의 어원은 라틴어로 ‘그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핀크스 골프장을 세계 100대 골프장으로 키운 김홍주 회장이 앞으로 제주도에 뭘 그릴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다.
⊙ 이영덕 핀크스 골프장 사장
“골프장을 평가하는 골프다이제스트 측의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언제 골프장을 다녀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설계 때부터 세계적 수준에 맞추겠다는 목표를 정했는데, 이를 제대로 평가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이영덕(57) 핀크스 골프장 사장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1973년 졸업했다. 관광호텔업과 무역업을 하다 1999년 제주 핀크스 골프장이 개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오너인 재일동포 김흥주 회장과 각별한 인연으로 사장을 맡게 됐다. 이 사장은 김 회장이 일본에서 경영하는 도시락체인 혼게 가마도야의 제조·경영 기술을 들여와 국내에서 ㈜한솥도시락을 경영하고 있다.
“세계 100대 골프장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것은 핀크스만의 자랑이 아니라 제주도와 한국 골프계 전체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은 “많은 골프장이 인공의 미(美)에 의존하고 있는데, 핀크스는 앞으로 거칠지는 않지만 좀더 도전적인 코스로 만들어 다음 평가에서는 30위권 안에 들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