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집사님이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지난 해까지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시던 집사님,
새벽마다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시던 집사님이
석달 동안의 투병 끝에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최성수 집사님은…
예배당이 늘 가득 차기를 바라셨지요.
교회 차를 타고 오시면서 늘 미안해하시고 고마워하셨지요.
갈색 가방을 손에 들고서 예배당에 오시던 집사님을
이제 다시 뵐 수 없습니다.
그 전에 최집사님은 행당동 일대를 두루 다니시면서
두부장사를 하셨지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나누시고
그렇게 행당동 일대의 터줏대감이 되셨던 집사님.
더 젊어서는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가평으로 다니셨지요.
영화관에도 즐겨 다니셨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멋들어지게 사셨답니다.
고향 후배들이 서울로 올라올 때는
언제나 집사님을 찾았답니다.
그렇게 집사님은 동향인들이
서울생활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이모저모로 도와주셨지요.
시골에서 농사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아직도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꿰고 계셨고요,
소한과 대한, 입춘과 경칩이 언제였는지
늘 가르쳐 주셨지요.
가끔은 비가 너무 안 온다고 걱정을 하셨지요.
비가 오는 어떤 날에는
‘이 비는 아무 쓸모 짝에 없는 비여~!’ 하면서
날씨평을 하기도 하셨답니다.
어떤 날에는 정치인에 대한 세평을 하시고
어떤 날에는 행당시장의 지인들에 대해
한마디씩 들려주셨지요.
집사님이 교회차에 오르시면 지루하지 않았고요,
카페에 가든지 어디서든지 말씀에 막힘이 없으셨답니다.
어린 시절에 여순반란사건을
목격하신 이야기를 하실 때는
그 살벌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한가 봅니다.
그 때는 아직 대여섯 살 되셨을 때 일텐데
그렇게 격동의 시절을 지나오셨습니다.
걸걸한 목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 가득한 웃음,
최성수 집사님에 대한 추억입니다.
함께 하던 시간을 다시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쉬워하면서
하지만 이제는 고통 없는 쉼을 누리시라고 바라면서
그렇게 최성수 집사님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명절이 목전이라 찾는 이가 적어도
주님이 천군천사들과 모세나 아브라함 같은 이들에게
최성수 집사님을 소개해 주신다면
외롭지는 않으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부디 편안히 쉬소서.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기쁘고 건강한 낯으로
우리 다시 만나요.
2022년 1월 30일 주일 오후에
새소망교회 담임목사
조해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