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 날씨로는 너무 미지근하다.
눈은 고사하고 말간 홍시처럼 투명한 하늘에 걸린 오전의 태양이 그렇다.
자주 출몰함이 신선함을 반감시킬까. 모임의 성격 때문에 고민하고 무거운 컨디션 때문에 망설인 출발이다.
그나마 핑계가 있다면 아들놈하고 점심 한 끼 같이하고 안부나 엿볼 요량이었다.
겨울을 향한 고속도로변 들판은 꽉 들어찬 햇살에 더 넓어 보인다.
무엇이라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이 커 보인다. 복잡한 생각을 접어보려고 신문을 펼쳤다.
세상사 어지럽기는 그곳에도 마찬가지다.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빈 공간까지 눈길을 보탠다.
1:30 훨씬 넘어서야 도착했다. 서두를 것 없다. 돌아갈 차편 시간도 확인하고 전철을 탓다.
한 두 명의 전화와 메시지가 울린다.
물어물어 찾아간 강남역 3번 출구에서 만나는 아이는 말쑥함 모습에 생기가 돈다.
걱정했던 마음이 놓인다. 제 자식 찐 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노력이 보이니 마음이 뿌듯하다. 이런저런 애기도 잘 주워섬기고 간단한 설렁탕도 맛있게 먹었다.
저녁 숙소 안부까지 챙겨주니 녀석이 대견하다.
성수역이 어디쯤인가.
서울 떠난지 15년 세월에 지하철 타는 것도 어줍고 동네도 생소하기만하다.
이제 서울도 또 다른 모습의 제2의 고향이 될 듯도 싶다.
전화속의 "영화"의 음성이 한 번 쯤 더 울렸을까.
이름도 그럴듯한 카페 ‘동창생’에 둘러앉은 대여섯 명의 중간치기 장면이 있다.
이미 얼굴이 익은 '날씬감자'와 '영화'는 그렇다 쳐도, 덕촌리 딱따구리의 모습은 퍽이나 생소하다. 우리의 벌어진 기억속으로 세월이 많이도 지나간 모양이다. 야윈 내 빰을 타고 지나간 바람결의 세월이나, 당신들 성성한 머리결에 스민 무서리나 시간 앞에 장사는 없구다.
들쭉날쭉 생경한 이바구에도 아련한 기억은 불쑥불쑥 뭍어 난다.
골목 안 ‘먹자집’은 이미 흥에 취해있다. 어느 모임에서(초등학교)선점한 건물은 쟁쟁한 마이크 소리에 젖어 있다. 하나 둘 눈에 익었던 얼굴이 모여 든다. 고향 언저리에서, 고향을 등진 주변에서 널려있던 이들을 만난다. 너무 먼 시간이 흐른 뒤라 몰라보게 변한 얼굴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현리 '새침이'가 그렇다. 말투 속에 석인 억양을 듣고서야 알겠구나.
형식은 필요불가한 허식인가.
허우대 회장의 바리톤 음성, 위엄있는 진행이 있어 자리가 다져지는 것 같구나.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추억의 고배로 목을 축인다.
밤은 슬며시 기울어져가고 어둠의 빛이 가려진 공간에는 아련한 추억의 향기가 그윽한 잔 속으로 차츰 녹아 들어간다. 모두의 가슴에 같은 비중의 농도는 아닐지라도 마음을 정하고 온 당신들에게 그 마음은 동질 이었으리라.
어떤 이들은 조금 머슥한 느낌이지만 이내 마음이 열리리라. 너무 오랜 시간의 벽이 머뭇거림일 뿐이다. 세월은 아무 댓가 없이 주저없이 가는데 변방에서 머뭇거리기에는 너무 야속타.
저물녁, 밤배를 탄 무리들은 잠깐 반짝이는 야성 일지라도 얄굿던 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으로 만져 보아야 하리다.
그냥 잊어 묻어 버리기에는 기억이 거부한다. 흙벽돌 담 사이에 뭍었던 기억이 말이다.
자리는 이리저리, 이바구는 주저리 없이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계속되었다.
기억의 한계는 너무 짧아서 거기 어디쯤 이었다.
악다구니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깨를 걸친 그들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변방에서 상경한 나그네가 쉴 곳은 따근한 물이 연실 되새김질하는 ‘대중의 방’이 제격이다.
밤새도록 몇 마리의 알을 품고 또 산란을 했는지 모르겠다. 끓어 오르는 속을 뒤집고 까발리고 아무리 가슴을 열어도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다. 내어줄 것도 없어도 바라는 이들의 소원을 다 채워주지 못한 원망인가 보다.
밤새도록 뒤집어진 속을 보듬어준 동지들이 있어서 고마운 성수동의 찜질이다.
이름 그대로 물이 많은 동네의 인심 속에는 정도 많았다.
빈속을 채울 때는 함께한 이들의 속을 가늠하며 해장을 해야 한다. 골목길 콩나물은 광재의 그것보다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속을 다스리려고 억지로 밀어 넣는다.
밤새 고생한 '수원댁'을 보내고 성수동 '아짐씨'를 들여 보내고 전철을 탄다. 이미 오랜 지기였던 그들중에 꺼벙이만 서울역으로 향한다.
첫댓글 성수동 그찜질방 불났슈.지금 수리중 6개월후에나 ... 올연말 모임에는 갈수 있겄다 그치? 근데 자네는 뭔 생각을 그리도 잘허냐. 참말 신퉁하다.
그정도도 기억못하면 어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