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사람들은 흔히 집착을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문이란 좋아함으로 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좋아하는
극치가 바로 집착인 것이다.
예(*羿)는 활 쏘는 것에 집착하였고,
요(*遼)는 선술(仙術)에 집착했으며,
연(*連)은 거문고에 집착하였다.
심지어 바둑에 집착하는 자는 병풍이나 장막, 담,
창문 등이 모두 흑백이 널려 있는 것같이 보이며,
독서에 집착하는 자는 산중의 나무나 바위가 모두
검은 글자로 보이며, 말 그림을 배우는 자는
말이 평상이나 침대에서 금방 뛰쳐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후에야 그의 예술이 천하에 울리고
후세에까지 명성이 남게 되는 것이다.
어찌 도를 배우는 일이 예외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선하는 자는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며
걸어가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은 줄 모르며,
설합을 열었다가도 문 닫는 것을 잊어버리며,
변소에 갔다가도 바지를 올리는 것을 잊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러야 하며,
염불하는 자는 눈을 감거나 뜨거나 간에 관하는 것이
눈앞에 있어야 하며, 마음을 거두거나 흩거나 간에
생각하는 것이 항일(恒一)한 지경에 이르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며 의심치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되는 것이 집착인 것이다.
만약 뜻이 지극하고, 공력이 깊어지면 부지불식 간에
홀연히 삼매에 들게 되는 것이니,
마치 나무를 비벼불을 일으키는 자가
비비는 작업을 그만 두지 않아야만 불꽃이 일어나며,
쇠를 단련하는 자가 담금질을 쉬지 않아야만
강철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만 집착에 유의할 점은,
만법이 모두 환(幻)인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이루려는
마음이 너무 급하거나 일체가 모두 식(識) 뿐인 줄을
알지 못하고 모양을 탐하는 마음이 깊은 경우로서,
이는 다만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러나 집착을 두려워하여 그럭저럭 물이 바위를
깎듯이 한다면, 몇 겁을 지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집체(執滯)하는 집착은 가져서는 안될 것이지만,
집지(執持)의 집착은 꼭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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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羿); 하(夏)나라 유궁씨(有窮氏)의 이금으로 궁술의 명인,
또는 요임금 때의 사관(射官)
*요(遼); 전설에 요동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호산(靈虎山)에
가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다가 천년 후에 학을 타고
요동으로 돌아왔다 한다.
*연(蓮);미상
_ 운서주굉 스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