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는 노래를 금지하기도한다 왜그럴까 ?
소설,시보다 노래가 가치관 형성에 미치는 정도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일거로 보인다
금지이유도 다양하다.
왜불러는 반말이라고,
길가에 앉아서는 열심히 일하지않고 할일없이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냐고,
기타 슬프다, 왜색조다는 이유로 기러기아빠 동백아가씨등이 금지되었다
일제강점기 기간에도 금지곡이 있었으니
그노래가 눈물젖은 두만강
만들어진 과정이 가 장미스테리한 노래
일설에 의하면 만주공연다니던 이시우가 두만강변 여관에서 하룻밤 자는데 옆방여인이 밤새흐느껴 다음날 주인에게 사연을 물은즉 독립운동하던 남편이 잡혀 사형되었다는 소식을듣고 밤새 울은것이라고 그여인은 두만강에 몸을던져 죽었다고한다.
이시우가 이사연을 바탕으로 1935년 1절을 쓰고 한양으로와서 다른사람이 2절 3절을 쓰고 이시우가 곡을 마무리해서
1938년 김정구가 부르게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후렴구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에서 내님은 독립운동하던 남편이기도하고 잃어버린 조국이기도 하다
내가 사탐 선생할때 모의고사에 가끔 지문으로 등장했던 눈물젖은두만강
수탈이 가장 심한 1930년대말부터 광복때까지 시대별 상황을 제시하는 예문으로 등장
님이 조국이라고 판단한 일제는 노래를 금지하여 크게 유행하지 못하다 해방후 유행하게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민족의 아픔을 대변한 대표적인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
김정구도 여러히트곡이 있지만 이노래를 가장좋아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