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
[l]둔재이기보다는 천재이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천재가 행복한 것도 장성해서 그에 걸맞는 업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천재 집안으로 유명한 성호 이익은 <인사문(人事門)> 신동(神童)조에서 “오랫동안 증험한 결과 어려서 총명하고 영리했던 수재가 차츰 장성해서는 도로 그 빛나던 재질이 줄어든 것을 보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익은 “공명과 사업이 반드시 이 런 사람들에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어려서는 천재였지만 커서 는 범재도 못되었던 인물은 수두룩하다.
천재성이 빛나기 위해서는 시대가 도와줘야 한다. 그 어느 천재도 시대를 이길 수는 없다.
천채로 유명했던 매월당 김시습은 태어난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웃에살던 최치운(崔致雲)이 그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배우면 곧 익힌다’’며 이름을 시습時習’ 이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다섯 살 때 세종이 비단 50필을 내리며 혼자 가져가라고 하자 비단의 끝 과 끝을 이어 끌고 나갔다는 일화로 유명한 김시습은 이 때문에 ‘김오세(金五歲)란 별명으로 불렸다.그러나 김시습은 세조의 즉위를 부인한 끝에 승려로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최치원 역시 당 나라에서 조기에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문명을 떨쳤으나 골품제의 나라 신라에서 용납되지 못한 끝에 불우하게 인생을 마쳤다. 매천 황현 역시 부패한 시대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자결!’로 생을 마쳐야 했다.정약용에게 ‘사람이 아니라 신’ 이라는 평을 받았던 이가환 역시 노론의 나라 조선에서 용납되지 못해 사형으로 일생을 마쳐야 했다.이들은 모두 시대와 불화했던 불우한 천재 였다.
[2]진정한 천재는 머리 좋은 시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의 <날개> 서두처럼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무수히 많다.
좋은 머리로 자신과 가문을 윤택하게 만든 사람도 셀 수 없이 많다.
시대와 불화할 줄 모르는 천재는 역사의 천재는 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좋은 머리로 남들보다 앞서나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범재일 뿐이다.
시대의 천재,곧 역사의 천재는 최치원이나 김시습처럼 시대와 불화하거나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들을 뜻한다.
시대를 뛰어 넘었다는 밀은 곧 시대를 앞서 갔다는 뜻이다.
신분제가 하늘의 법칙이던 시대에 뛰어난 과학기술능력 하나로 신분을 뛰어넘은 장영실은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거란에게 땅을 떼어주자는 할지론이 대세일 때 거란으로부터 오히려 땅을 늘려 받은 서희도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신라만을 우리 민족의 정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한 유득공 역시 그런 의미의 천재이다.
성리학만이 정학(正학)이고, 다른 모든 것은 사학(邪學)으로 공격 받던 시절에 자생적으로 천주교 조직을 만든 이벽 역시 천재가 아닐
수 없다.
교종이 불교의 주류이던 시절에 선종으로 교종을 통합했던 지눌 역시 이런 의미의 천재이며, 주희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만든
율곡 이이 역시 이런 의미의 천재이다.그 좋은 머리로 시대를 건지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상설 역시 천재가 아닐 수 없다.
[3]이들 중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세계관과 천재정을 당대에 구현한 행복했던 천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죽어간 비운의 천재
들이 더 많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과 좌절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시대의 상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럼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가 된 것이다.
[4]김시습(金時習)이나 이이(李珥), 이가환(李家煥), 이상설(李相卨) 같은 이들은 고전적 의미의 천재이다.
이 책은 이런 천재들의 일생도 다루었다. 뛰이난 머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들의 일생을 살피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서희(徐熙), 지눌(知訥), 유득공(柳得恭), 이벽(李檗) 같은 이들은 시대의 흐름을 바꾼 천재들이다.
이들의 일생을 통해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천재는 시대의 상식과 맞서 싸우기에 개인적 일생은 그다지 행복히지 못했다.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의 일생은 반 고흐가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불행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궤테와 베티나>라는 글에서 “천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류의 꽃’ 이라는 인정 을 받으면서도 도처에서 고난
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그래서 천재는 항상 고립된 상태로 생활하고 고독한 운명을지닌다!" 라고 말했던 것 이다.
뛰어난 머리로 세상의 앞길을 먼저 갈파했기 때문에 불행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피하지 않고 마심으로써, 끝내
는 후세 사람들에게 상식 이 되었던 그런 모든 천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5]이상설]
이상설은 고종에 의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불우한 독립열사 3인 중 한 명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신구학문에 통달한 희대의
천재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한 일제하 독립운동계의 마당발이었다. 어려서 배운 유학의 경지는 넓고 깊어 구한말의 대유학자
이건창은 그를 “율곡을 이을 대학자”로 인정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이미 성균관의 교수 겸 관장에 등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 법률, 정치, 경제, 사회, 수학, 과학,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어,
러시아어, 영어, 불어에 능통한 언어의 천재였다. 하지만 나라 잃은 슬픔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한
다.
만주, 러시아, 유럽과 미주 지역을 넘나들며 교육기관 설립, 망명정부 수립,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게릴라식 외교,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화에 힘쓰지만, 조국의 독립을 너무나 멀리 둔 1917년 차가운 시베리아 땅에서 운명을 다한다.
김시습(金時習) | 이이(李珥) | 이상설(李相卨) |
지눌(知訥) | 이벽(李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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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한가람이 내려다 뵈는 서실에서
병술년 사월 김병기, 신정일,이덕일 드림
출처 : 한국사의 천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