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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불을 올린 뒤, 혜담스님을 모시고 포살법회를 진행합니다
보살계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참회한 즉 안락하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기는 어렵고, 착한 마음을 내기는 더욱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작은 죄라고 재앙이 없다고 가벼이 여기지 말라. 방울 물이 적으나 끝내는 큰 그릇에 찬다'고 하였나니 잠깐 지은 죄로도 무간지옥에 빠지게 되느니라.~~~
불광법회의 핵심적인 사상은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뭡니까? 마하반야바라밀 아닌 사람 나와보세요. 마하반야바라밀이야 말로 부처님 깨침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그것을 교지로 삼고 광덕큰스님께서 48년 전에 월간 불광을 발행하고 1년 되던 해 10월 16일 목요일 종로구 용성 스님이 창건하신 대각사에서 첫법회를 했습니다. 절이 없으니까 한 달에 한 번씩 시내 절을 정해놓고 순례법회를 다녔는데 집전을 했습니다. 남의 절에서 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6시 반에 대각사 법당에 가면 제사를 지내고 있어서 들어갈 데가 없고 혹 비라도 오면 처마 밑에서 기다렸습니다. 큰스님은 산 사람 가르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지 죽은 사람 가르치는 거냐고 걱정하셨습니다. 법회를 통해서 자기의 자성을 회복하면 내가 부처님이고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자성을 모르기 때문에 복만 빌고 다니는데 그것은 방편입니다.
저의 일기를 보니까 1977년 추운 12월 둘째 토요일에 갈매리 보현사에서 구도법회를 했습니다. 매월 하는 건데 밤새 참배하고 금강경 읽고 보현행자의 서원 읽고 기도하면 새벽 4시반에 스님과 둘러앉아서 교리문답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잘 모르겠으니 자세히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관, 참으로 만물을 봤더니 공임을 깨달아서 반야바라밀을 얻고, 청정관을 해서 모두 가짜임을 알아 속지말고 해탈법을 얻고, 가짜가 진짜이고 진짜가 가짜임을 보는 중도실상관을 합니다. 너는 나의 다른 이름으로 둘은 서로 상대가 아닙니다. 중도실상관으로 무명을 벗어나서 법신력을 성취하면 일체종지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일체종지를 얻으면 자비관을 실천해야 합니다. 자비행에는 10바라밀을 비롯해서 4섭법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비관 진관 청정관 중도실상관을 다 알면 구경원성, 살바야가 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너와 나가 둘이라 생각하니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큰스님 23번째 추모법회를 맞이하여 알아야 할 것은 큰스님 법문만 듣고 갈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뭐하는 사람인가 하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배워서 아는 게 아닙니다. 나의 세계가 열리려면 남의 것, 배운 건 다 버려야 합니다. 배운 것(소지)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서 내 내면의 세계(능지), 반야가 안 나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배우는 게 아니고 실천하는 겁니다. 실천하는 사람이면 토요법회가 생길 수 있습니까? 마하는 무한이고 반야는 지식이 아니라 남의 건 다 버리고 내 속에서 나오는 세계입니다. 철저하게 무식해야만 반야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는 건 다 지식이어서 반야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반야행자가 되려면 청정하게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 쓸 줄 알아야 됩니다. 배우는 게 아니라 맛보는 것이고 실천하는 겁니다. 바라밀은 일체국토라서 바라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정토와 예토가 따로 있는 것은 변견으로 중도가 아닙니다.
광덕스님의 법문 듣고 공부하면서 지금도 내 마음 세계를 보려고 몇 시간씩 참선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선방에 못 들어가 혼자 합니다. 현진거사가 하는 길은 바라밀길입니다. 정말로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힘을 합쳐야지 조그만 소리에 눈이 어두워 대의를 잃으면 안됩니다. 불광법회 법당 지을 때 돈 안 낸 사람 있습니까? 모두 냈습니다. 승복 입은 사람은 혜담스님만 큰돈 냈습니다. 내가 봉불사에 기도 가서 스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열반하신 큰스님 대신 불광법회 법주로 살다가 봉불사로 올 때 10년 되면 1억 주기로 했는데 이번에 가니 5천만원밖에 안 주더라고 말했습니다. 그걸 왜 받아오는지 문장으로 할 일이 아니라 못난 짓입니다. 스님이 무슨 돈이 필요하느냐는 건 광덕스님 말씀입니다.
큰스님 23주기를 맞이해서 다짐하고 싶은 말은 흩어지지 말고 단결해야 합니다. 단결하지 않으면 이 불사는 못합니다. 이 불사는 불광만의 불사가 아닌 것이 어떤 절이나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절에 들어온 돈이 사업해서 번 돈은 아닙니다. 포교해서 들어온 돈은 부처님 돈이라 함부로 쓰면 안되는 무서운 돈입니다. 불교를 모르는 제3자인 판사는 옳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스님은 상구보리하고 우리 불자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하화중생해야 합니다. 우리 혜담스님이 가는 길, 현진 법회장이 가는 길 밀어야 합니다. 반드시 멀지 않은 장래에 불광법회가 참으로 세상을 밝히는 불교가 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큰스님 육성법문 내용>
부처님의 법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가까운 일상생활을 통해서 여러 어려움이나 장애를 만나서 그런 어려움이나 장애를 극복하거나 아니면 지혜가 없는 상태에서 지내다가 지혜 있게 바르게 참되게 자기를 가꾸어가려 하는 노력 가운데 알 수 있습니다. 불법 믿는 사람 중에도 여러 계층이 있어서 자기를 참되게 가꾸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자기 주변의 어려움을 이겨서 뜻을 이루자는 것도 있고 더 나아가서 깊이 진리를 배워 진리를 깨닫고 이웃에게 진리를 전하고 세상에 진리의 빛으로 채워지도록 원을 늘 가져서 불법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일시적으로 사람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소원을 채워준다거나. 잠시 지나가는 바람같은 재난을 피한다거나, 지옥을 치우는 그런 데 참으로 있지 않습니다. 생과 사, 나고 죽음이라는 우리에게 깔려있는 마지막 가는 불안을 깨버려서 나고 죽음이 없는 참된 평화, 안녕, 기쁨을 주자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법화경』에 보면 화성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이 길을 나서서 출발할 때 예를 들어 천릿길을 갈 때 천리라고 말하면 아무도 용기낼 사람이 없을 겁니다. 소수의 사람이 극진한 마음을 내겠지만 대개는 그 마음을 못내다가 300리 아니면 500리라고 일러주면 마음을 내서 걸어가게 됩니다. 그대신 300리나 500리가 다는 아니고 천리까지 가기 위한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라고 알려주면 출발점에 갖고 있던 불안과 고통도 그만큼 감했고 마침내 생사가 없다는 궁극적인 땅에 가려면 좀더 가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방편이 중간에 베풀어져서 부처님의 교법이 설해지지만 마침내는 생사가 없는 큰 도를 목표로 하는 겁니다.
생사가 없는 큰 도를 마침내 완성시키는 것이 불법의 뜻인데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꺼내면 그런 얘기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합니다. 깨치든 말든 내 알 길이 아니고 세상에 왔으면 가는 것이라고 오히려 첢은 사람은 말합니다. 생사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 절실합니다. 잠시 지나갔다가 또 닥쳐오는 문제이지만 역시 그런 문제를 절실하게 생각하는데 부처님은 그 모두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받아들여서 필경에는 생사 없는 저 언덕으로 인도하시려고 합니다. 생사 고통의 바다를 넘어서 열반 안락의 땅에 이르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본 원입니다.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은 부처님의 법을 배우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는 측면보다 호법이라는 큰 원을 세워서 호법의 원을 다지고 호법의 원을 부처님 앞에서 다시 새롭게 하는 의미의 모임이라고 생각해서 부처님이 전하고자 하시는 참으로 원하시는 큰 뜻은 호법, 부처님의 정법이 이 땅에 빛나고 이 땅에 영원히 미래로 전해지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면서 여기 모인 대중이 지금 사람들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제 마음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에 보면 과거 많은 성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스스로 닦았을 뿐 아니라 이 법이 영원하고 이 땅의 온천지에 전해지고 이 법이 영원한 시간으로 오래오래 퍼져서 필경 모든 중생이 생사가 없는 저 언덕에 이르게 되어지이다 하는 호법발원을 합니다.
말하자면 정법호지, 호법의 발원을 과거에 세워서 그 분들이 정진하셔서 두 가지를 성취했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성불하시고 혹은 당신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대승보살이 되셨으며 또 한 가지는 그렇게 힘써서 전하시는 그 분들의 노력으로 부처님의 법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과거의 성자와 불보살이 불법을 향해서 하시는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던들 우리 앞에 불법이 전해지겠습니까? 오늘도 세상에 부처님의 법이 이렇게 전해져서 여기 계시는 형제들과 같이 이 정법이 나혼자만의 행복, 나혼자만의 깨달음, 나혼자만의 안녕을 위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법이 오래가고 이 법이 영원하고 이 법이 긴 미래로 밝게 전해지길 바라는 호법발원하는 사람이 오늘 있기 때문에 내일에 다시 불법이 있게 되고 그 다음 세대까지 불법이 전해져서 이 땅에 태어나는 중생들이 불법인연을 만나서 마침내는 생사없는 언덕으로 해탈함을 얻게 되는 겁니다.
과거의 성자들이 성불하시고 호법하시고 해탈하신 것처럼 오늘의 여기모인 형제들이 호법을 행해서 과거 성자들이 행한 길을 우리가 지금 함께 가고 있습니다. 저는 과장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을 대하면서도 혹은 눈을 감고라도 큰 물줄기가 흘러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 큰 조류는 불법의 물줄기입니다. 이 물줄기의 인연을 만나서 발을 담근 사람, 물을 축인 사람, 물을 마신 사람 강 물줄기에 뛰어 든 사람 모두가 그 물의 인연으로 인해서 해탈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강물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과거의 불보살이었고 오늘 여기 불광 형제들이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 불교가 여러 말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래도 불광의 호법발원이 있어서 줄기차게 이 호법정진을 계속 함으로서 오늘의 불법을 지켜갈 뿐만 아니라 긴 미래로 이 법이 전해져서 긴 미래로 부처님의 광명국토가 실현하는 인연이 널리 퍼져진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부처님께 다시 감사하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와 같은 원을 세우신 분들이 불법을 지키고 역사를 지키고 일체중생을 지키고 불국토를 건설하는 불국토의 건설꾼 불국토의 건설자로 생각합니다. 형제여러분 호법발원한 일이 적은 일이라고 혹 어떤 분이 생각하신다면 바로 그 생각을 고쳐주십시요. 바로 불국토의 역군이다. 내가 이와 같이 해서 과거제불이 성불하신 것처럼 나도 성불할 것이며 과거제불이 이 법을 전하여 이 국토에 부처님법이 전해지신 것처럼 오늘과 미래에 부처님법이 전해질 것이다.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호법형제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서로 다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금주의 법어--불광법회의 순수불교운동의 사회적 전개
금주의 법사--주지 혜담 스님
오늘 불광법회 광덕대선사 23주기 추모법회를 맞이해서 불광법회 법등가족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금일 법회에 동참하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입춘이 지났습니다만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다들 건강에 조심하시고 집안 편안하시고 모두가 성취하는 올해가 되었으면 하는 발원을 합니다. 엊그제가 입춘이었는데 입춘법회를 못했기 때문에 입춘의 의미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법회 제목을 '불광법회의 순수불교운동의 사회적 전개'라고 했습니다만 시간이 많이 간 관계로 이를 셋째 일요일에 하는 걸로 하고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광법회란 불교의 사상운동입니다. 사상운동이란 종교개혁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기를 서양에서만 종교개혁이 있어서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카톨릭과 개신교가 나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불교는 끊임없는 종교개혁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대승불교의 시대에 태어났고 대승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란 근본불교, 부파불교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겁니다. 그 종교개혁은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대승불교이고 그때 스님과 재가법사들이 들고나온 경전이 반야경입니다. 반야경을 들고 부파불교의 잘못된 스님들을 꾸짖으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던 것이 대승불교 운동이고 그것이 지금 현재 우리가 믿는 불교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퇴락이 되었고 스님들이 수행을 잘못 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1973년도에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끝으로 조계사에는 다시 발걸음도 안 할 정도로 종단에 몸담고 있는 스님들에 대해 좋지 못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가한 스님만 가지고는 한국불교를 이끌 수 없어서 출가스님과 재가신도와 뜻을 합해서 새로운 불교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불광법회 불광운동입니다. 그런데 그 불광운동이 지금 현재 어떻게 됐느냐? 48년이 지났으면 2년만 있으면 반백년으로 50년이 되는데 불행스럽게도 우리가 처해있는 이 상황은 선사님께서 일구신 그 뜻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선사님의 48년 전 원이 새로운 불교운동,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운동임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불광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기도하면서 정진해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정정진을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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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라밀 보살님, 여러분들의 말씀을 법회일지에 작성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이크 사정이 안 좋아서인지 제 자리에서는 법문 내용을 숙지하기가 어려웠었는데
법회일지를 읽고서야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라밀 보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법회날은 분주하기만 하지 무엇하나
만족함이 없이 어수선 하게 흘렀는데
법문일지를 보니 대충 알겠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고 감사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__
바라밀 보살님^^
매번 느끼는 맘이 지만 오늘 새삼 더~~
정리된 내용으로 정확히 인지하였네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