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 절 ①
팔레스타인과 유구왕국: 역사의 그림자도 화석으로 남는다
심의섭(명지대 명예교수)
세월이 덧없이 흐르면서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았다. 내가 1987년 요르단의 이르비드에 있는 야르모우크 대학에서 개최된 이슬람경제에 대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를 마치고 귀국 전야에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재무장관이(?) 발표자 중에서 나 만을 초대하여 자택에서 베풀어준 만찬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는 뉴욕에 살고 있다고 했으며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여 나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는 분위기 속에서 만찬이 이어졌고, 팔레스타인(PLO) 사람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과 국토회복의 투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어스름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대장소는 암만의 외곽이었던 곳으로 짐작되고 4층 짜리의 네모 번듯한 빌딩으로 생각된다. 모두 그의 가족들과 사돈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 하였다. 주변에는 집을 지으려고 암반을 깎아서 지반을 고르는 중이었고, 군데군데 생긴 암반의 조그마한 웅덩이에 고인 석수(石水)는 암반의 고름같이 흘러 괴어 었어도 푸른 하늘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마치 팔레스타인의 꿈을 상징하는 듯 쪽빛 색갈이었다. 그가 나에게는 베풀어준 환대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PLO에 대한 이해를 더욱 새롭게 하였다. 내가 선물로 받은 팔레스타인 판각 지도를 볼 때마다 팔레스타인 역사의 그림자가 화석이 되는 것 같다. 우리도 잃어버린 고구려와 배달의 강역을 생각하니 동변상련(同病相燐)으로 다가왔다. 오늘날 진행중인 하마스(팔레스타인)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양측은 물론 세상의 모두가 평화와 공존을 원하지만, 현실은 치킨게임의 세습인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GG(Good Game)선언같은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토변화는 이스라엘의 영토확장이다
옛 일을 회상하다 보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이것은 PLO 만찬에 잇대는 사족(蛇足)이다. 내가 1996년 2월, 오끼나와를 방문했을 때이다. 동행한 홍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유구국(琉球國, 오끼나와) 독립운동 본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다소 복잡한 것 같은 어줍쟎은 신원화인(?) 같은 절차를 밟고서 보안이 철저한 본부(지하실)로 들어갔다. 물론 음식점이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형식은 갖추어져 있어서 유구왕국의 여권을 받고, 비자까지 받고서야 입국(식당 들어감) 절차를 마무리하고 방문과 회담절차(식탁에서의 식사)가 이루어졌다. 우리 방문자들에 대한 친한의 배려인지, 옛날 조공을 받치던 조선의 후손들인 대표단으로 보는지 엄중한 환영 절차와 연희가 베풀어졌다. 독립운동 행동가(식당 종업원)가 식당 청소와 설거지를 하면서 아리랑을 구슬프게 불러주고 춤사위도 보여주는 끔찍한 환대를 받고보니 가슴이 찡하였다. 사실 유구국(오끼나와)은 동경보다는 서울이 가깝다. 비록 일본의 땅이지만 그들은 일본을 침략군으로 보는지 친일(親日)보다는 친한(親韓)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지금은 그들이 유구국의 후손으로서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이 만용(曼容)으로 보일 지라도 그들 스스로 조상의 얼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202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