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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고래 꼭 찾아드릴게요”
◇고래사랑·연구 부경대 김현우씨 “고래 공부하면 니 딱 굶어죽는다!”
친구들이 걱정 반 농담 반으로 자주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고래 사랑에 빠진 부경대 김현우씨(24·자원생물학과)는 한 귀로 흘려보낸다. 누가 뭐라든 고래 연구에 청춘을 던져볼 작정이다. 저 깊은 바닷속에서 100년을 산다는 고래. 정말 알고 싶다. 지키고 싶다.
바다를 보며 자라 어려서부터 고래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TV방송의 해외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나라 국명이 붙은 유일한 고래인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를 처음 봤다. 그 후로 더욱 고래에 흥미를 갖게 됐다. 자료를 모으고 책을 읽었다. 그러나 자료가 너무 빈약했다. 당시 박구병 교수(부경대)가 쓴 ‘한국 연근해 포경사’와 프랑스 작가의
에세이 ‘고래의 삶과 죽음’ 등 국내에 나와있는 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대학 전공으로 자원생물학을 선택했다. 길이 없으면 직접 뚫겠다는 오기가 생겨서이다.
본격적인 고래 연구는 2002년 4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작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1998년부터 봄(동해)과 가을(서해) 1년에 두차례 고래를 탐사하고 있다. 선원, 연구원, 그리고 옛 바다를 주름잡던 포경선의 포수 등 25명이 500t짜리 탐사선에 오른다. 연구보조원 자격으로 탐사에 참가했다.
“25일간 동해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고래를 찾았어요. 일출 30분 후부터 일몰 30분 전까지 밥먹는 시간을 빼고는 조타실 위에 올라서서 먼 바다만을 쳐다봤죠. 지루하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제 눈으로 꼭 보고 싶었어요.”
울산과 포항 앞바다 사이에서 큰머리돌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 수십마리를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그해 가을 서해에서는 번식기에 접어든 상괭이를 봤다. 포경선을 추억하는 80대 노장들이 들려준 대왕고래 얘기는 흥미진진했다. 공룡보다 크다는 대왕고래는 지구상에 출현한 동물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한다. 최대 몸무게 179t, 몸길이 33m에 이르며 100년 이상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새끼를 70년대 초반 동해에서 봤다는 것이다.
2003년 5월 포항 근해에서는 ‘대어’를 낚았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쉽게 배에 접근하지 않아 근접촬영이 힘든 밍크고래를 가까이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날따라 바다는 바람 한점 없이 쾌청했다. 이른 아침부터 6시간째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쉬익~’ 하는 물보라 소리가 났다. 귀를 의심하고 다시 바다를 보려는 순간 배 옆에서 길이 3m짜리 밍크고래 새끼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침 수심과 수온을 측정하려고 배가 정지해 있었어요. 본능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죠. 배가 어미인 줄 알았는지 10여분간을 배 밑으로 왔다갔다 하며 놀더라구요. 미끈한 모습을 잘 담을 수 있었습니다.”
밍크고래 사진은 다음날 방송과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그는 지난해 8월 한국·미국·러시아 3개국의 ‘귀신고래 공동탐사’ 프로젝트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일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97년부터 한국계 귀신고래를 연구하기 위해 사할린에서 탐사선을 동원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구에 참가했다.
“사할린 북동부의 작은 도시 오하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필툰 앞바다에서 탐사활동을 했어요. 귀신고래가 많이 출현한다고 알려진 곳이죠. 미국, 러시아 연구자 6명과 탐사에 들어갔어요. 석탄으로 빵을 굽고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얻는 오지였죠.”
그곳에서 한국계 귀신고래를 처음 봤다. 60년대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귀신고래를 사할린 바다에서나마 실물로 본 이는 한국인 중 그가 유일하다. 해안 가까이에서 물을 뿜는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연구가 진행된 25일 중 맑은 날이면 길이 5m짜리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 사진을 찍고, 마릿수를 세고, 해안에서의 움직임을 살폈다. 외국 연구자에게서 우리 귀신고래 얘기를 들을 때는 부끄러움과 함께 오기가 발동했다.
99년부터 인터넷 다음카페에서 ‘고래와 돌고래’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요즘 더욱 바빠졌다. 지난 3월 동해 구룡포 앞바다에서 70여년만에 향고래가 발견된 후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2,000여명의 회원이 모인 카페에 쉴새없이 자료를 올리고 답변을 단다. 카페에는 지난해 초 40일 동안 혼자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 기록도 정리해뒀다. 역시 고래에 관한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3백만원으로 노르웨이·스페인·이탈리아·영국 등 유럽 각국의 해양박물관을 찾아다녔다. 포경의 역사가 긴 만큼 연구자료가 많은 나라들이다.
“고래 뱃속에 있던 기생충까지 전시해둔 것을 보고 놀랐어요. 19세기 유럽 열강이 우리 바다에서 마구잡이로 포경한 사실을 떠올리면 정말 화가 나죠. 하지만 지금 그들이 고래 보존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카페를 통해 고래 이름부터 바로잡고 있다. 해외 자료가 잘못 전해져 ‘엉터리 이름’이 자리잡은 예가 많다. 얼마전까지 ‘큰돌고래’는 영명(Bottlenose dolphin)이 직역돼 ‘병코고래’로 불렸을 정도다.
지난 1월 국립수산과학원은 ‘한국계 귀신고래 동해안 회유 여부 조사’ 10년 연구에 착수했다. 그도 포항 호미곶 등대에서 2주간 관찰에 나섰지만 결국 고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고래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에서 이제 막 고래 연구에 첫발을 내디딘 초보 연구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지지만 욕심내지 않고 하나하나 알아내며 기록하고 연구할 것이다. 새끼를 낳고 먹이를 찾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고래. 선사시대 때 우리 바다는 고래 천지였다. 맑은 바다를 만든다면 고래떼는 다시 올 것이다. 귀신고래도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부산/글 김희연기자 egghee@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놀라운 이유-김장근박사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바다로부터 약 20㎞나 떨어진 심산 계곡, 그곳에 가면 북방긴수염고래가 물을 뿜고 혹등고래와 귀신고래가 있고 새끼를 거느린 모자(母子) 고래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향고래, 범고래, 들쇠고래, 돌고래들도 있다.
그곳에는 한반도 바다 고래의 오늘과 3,000~5,000년 전을 연결하는 뿌리가 있다. 단순한 고래들의 그림이 아니라 과학적 관찰 기록으로 후세 고래 연구자들에게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마저 느끼게 한다.
고래류와 돌고래류의 식별을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몸체의 생긴 모습과 채색이다. 좀더 자세히는 고래수염과 이빨의 유·무, 분기공의 수(수염고래류 2개, 이빨고래류 1개), 머리와 주둥이의 모습, 등지느러미의 유·무와
위치 등이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고래류와 돌고래류들이 있지만 대형 수염고래류들은 등의 후방에 등지느러미가 있다. 범고래류는 등의 전방 부근에, 돌고래류들은 등의 중앙에 등지느러미가 위치하고 낫모양으로 크게 휘어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돌이나 청동기로 추정되는 연장으로 바위 면에 선으로만 고래와 돌고래들을 그렸다. 같은 시대 고래 그림은 노르웨이, 일본, 멕시코 등지의 암각화에도 여럿 있지만 고래의 종류를 알 수 있는 그림은 이것이 유일하다. 고래류와 돌고래류의 분류기준이 명확하고 특히 가장 특징적인 부분을 부각시켜 한 눈에 고래의 종류를 알 수 있도록 그렸다.
고래의 분류학적 연구가 1776년 스웨덴 자연학자 린네우스에 의해 고래를 해양포유류로 분류한 이후였던 것에 비춰볼 때 우리 선인들의 과학적 관찰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귀신고래는 목 아래 부위에 깊고 짧은 홈이 25개 있는 특징을 그렸다. 혹등고래는 아래턱으로부터 항문까지 줄지어 있는 폭이 넓은 주름을 그렸다. 다른 부류의 수염고래들은 주름이 없거나 주로 배꼽을 전후로 줄지어 있고 폭이 좁다. 북방긴수염고래는 아래턱이 큰 아치형이고 수증기를 뿜는 모습을 그렸다. 이 고래의 가장 큰 특징은 큰 아치형의 아래턱과 수증기를 가장 높이 뿜는 것이다.
향고래는 사각형의 머리와 가늘고 긴 아래턱의 특징을 그렸다. 범고래는 등과 배를 흑백으로 뚜렷이 구분하고 등지느러미의 위치가 약간 전방에 위치하도록 그렸다. 들쇠고래는 고래류 중 등지느러미가 가장 앞쪽에 위치한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등의 정 중앙에 큰 등지느러미와 낫처럼 크게 휜 그림이 돌고래류이다.
일반적으로 고래류들은 갓 태어난 새끼를 머리 위의 분기공 부근에 데리고 다닌다. 이런 모습은 선박으로도 관찰이 쉽지 않다.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모자의 유영 모습은 높은 언덕 위에서 관찰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작은 배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고 창을 던져 고래를 잡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그물에 고래가 걸린 모습도 있다. 수천년 전 고래생태관이자 발달한 해양활동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닐 수 없다.
반구대 암각화는 위로는 돌출된 바위 지붕이 있고 좌우로 약간 돌출된 부분이 있어 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돼왔다. 그러나 1966년 용수확보를 위한 사연댐 건설 후 30년 이상 물속에 잠기어 있다. 매년 갈수기인 4월경 그 모습을 물밖으로 드러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외국 해양생태학자들도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들을 수천년전 해양생태계 연구자료로 귀중히 활용하고 있다.
고래도감 편찬 국립수산과학원 김장근박사
부산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서 만난 김장근 박사(47)는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고래 연구가 그만큼 바쁜 일이기 때문이다. 젊은 연구자 서너명과 고래조사 스케줄을 짜고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며 해외 고래 연구자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등 분주했다.
그는 부경대 박구병 명예교수의 뒤를 잇는 ‘고래박사’로 손꼽힌다. 국제포경위원회(IWC) 과학위원으로 한국 고래의 현황 조사와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외의 굵직한 고래 관련 행사와 세미나도 자연 그의 몫이다. 그물에 걸렸거나 좌초된 고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1년 중 두세달은 ‘해상 고래연구소’인 탐사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다.
“최근 고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됩니다. 고래는 단순히 흥미거리가 아니라 신중히 접근해야 할 대상이죠. 고래
를 두고 세계 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어요. 더 이상 포경 여부로 가치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수산자원학을 전공했지만 처음부터 고래연구에 매달린 것은 아니다. 정부 대표로 98년 IWC총회에 참석하며 고래연구의 중요성에 눈떴다. 당시 총회에서는 ‘한국계 귀신고래의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뜨거운 토론까지 벌어졌다.
“정작 국내에선 귀신고래란 이름조차 생소한 때였죠. 국제 사회는 미래 해양자원인 고래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바삐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만 손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뒤 고래연구에 열을 올리게 됐다. 연안 어장에서 그물에 걸려 죽었거나 해안에 떼밀려 온 고래를 추적하기 위해 혼자서 국내 해안을 누볐다. 자료를 수집하고 자원량을 추정하는 데이터 만들기에 애썼다. 당시만 해도 고래연구의 정책적 뒷받침이 부족한 때였다.
그러나 올해 고래연구센터가 생겨날 만큼 국내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그는 특히 멸종위기에 놓인 한국계 귀신고래를 알리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0년 국내 처음으로 그가 주도해 만든 고래도감 ‘한반도 연안 고래류’의 표지도 귀신고래가 장식하고 있다. 그는 “해양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가 우리 바다에 돌아오도록 환경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고래의 회유는 풍부한 해양생태계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글 김희연기자 egghee@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한국계 귀신고래’란
귀신고래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포경선이 추적하면 수중에서 귀신같이 진행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는 미국 탐험가이자 고래 연구자인 로이 챔프맨 앤드루(Roy Champman Andrew)가 1912년 울산에서 조사하며 이름 붙였다. 그는 1914년 논문을 통해 한국계 귀신고래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귀신고래는 오호츠크해와 한반도 해안을 회유하는 한국계, 북극해와 멕시코를 오가는 캘리포니아계로 나뉜다. 캘리포니아계는 20세기 초반 수천마리까지 줄었다가 적극적인 보호로 2만여 마리로 불어났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동해북부와 오호츠크해의 수심 얕은 연안에서 번식을 위해 늦가을 남쪽으로 이동한다. 11~12월 울산 앞바다를 지나 남해, 서해 및 동쪽 중국해에서 번식하고 다시 3~5월 울산 앞바다를 지나 북상 회유한다고 알려졌다. 몸 전체가 회색이며 복부는 약간 엷은 회색이다. 어린 것은 짙은 회색이나 거의 모든 개체가 흰색의 상처 모양이 있으며 굴껍데기, 조개삿갓, 따개비 등이 붙어있다. 이것은 수심 얕은 해안선을 따라 회유하며 주변 환경에 따라 적응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대 길이는 약 16m, 몸무게는 45t, 임신기간은 13.5개월이다. 출생 직후의 길이는 4.5~5m. 약 2~3년에 1회 출산하고 수유기간은 약 7개월이다. 최대 수명은 약 70세다.
한국계 귀신고래와 우리 민족의 친밀성은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3마리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또 ‘연오랑 세오녀’ 등 각종 설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등 수천년동안 연관을 맺어왔다.
그러나 우리 귀신고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외국의 포경에 의해 남획되며 멸종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1965년 5마리가 포획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관찰된 적이 없다. 이후 1974년 멸종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지만 한국·미국·러시아 등이 벌이고 있는 사할린 연안 조사를 통해 현재 100여마리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울산 장생포 해역은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뻘을 삼켜 갑각류 등을 먹는 귀신고래의 ‘바다 밑 경작’은 해류에 비해 3배 가량 효율이 높다. 비옥한 바다를 만드는 농사꾼인 셈이다. 귀신고래의 회유는 한반도 연안생태계가 되살아난다는 의미를 지녔다.
〈김희연기자〉 21일부터 울산고래축제
경남 울산에서는 오는 21~23일 3일간 ‘선사의 꿈! 고래와 함께!’를 내건 제10회 울산고래축제가 열린다.
장생포 해상공원에서 열리는 축제는 세계적 문화유산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고래잡이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1995년부터 해마다 열리며 울산을 세계적인 고래축제 명소로 키운다는 야심이 담겨있다. 울산에서 세계 50여국이 참가하는 2005년 국제포경위원회(IWC) 연차총회가 열리는 만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가장 큰 볼거리는 21일 시민 3,000여명이 직접 참가하는 가운데 울산 시내 한복판에서 열리는 초대형 모형고래 퍼레이드다. 반구대 암각화의 대형 고래가 살아난 듯 길이 35m, 가로 27m의 모형고래가 등장할 예정이다.
축제기간 동안 고래잡이 재현행사를 비롯해 고래마을 풍류한마당, 울산고래마라톤, 고래얼음조각대회, 고래퀴즈왕 선발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또 어린이들에게 고래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고래연날리기, 지점토로 고래만들기, 고래로봇체험 등이 마련된다.
울산고래축제 추진위원회 박정호 행사감독은 “고래축제는 우리 바다의 환경·문화적 가치를 더욱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일본포경협회 관계자를 비롯해 해외 인사들도 많이 참가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얼마전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귀신 고래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종인지 궁금했었는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