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의 공직생활과 3년10개월의 준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늦둥이와 아이 엄마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퇴임기념여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가 5월초에 봄방학(저는 봄방학이란 2월중에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을 하니까 놀러가자고 졸라서 추진한 일이었지요.
2년전 가을에 바르셀로나에 살던 처제가 귀국을 한다고 그 전에 놀러 오라고 해서 저는 10일, 아이와 엄마는 20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을 돌아 보았는데 아이에게는 그게 강렬한 인상이었나 봅니다.
아빠 주머니 사정을 헤아릴 나이가 아니니 외국여행을 졸라댈만 하지요.
아이를 달래 제주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까지 여행을 꿈꿀 정도이니 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비행기표가 이미 매진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럼 작년 여름에 전주 한옥마을 갔던 것 처럼 한옥 펜션에 가서 하루밤이라도 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여년전 잘 아는 분이 봉화 부군수로 계실 때 그 사모님 안내로 고택순례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인터넷을 뒤져 겨우 여행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러한 까페가 개설된지도 모르고 봉화군 싸이트를 통해 알게된 토향고택이 아이에게 낙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제가 몸 담았던 감독기관으로부터 갑작스런 해임통보를 받았고 퇴임일 다음날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참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떠난 여행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토향고택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종구 형님(이렇게 부르겠다고 말씀드렸지요)과 형수님을 뵙게 되었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시는 모습에서 제 평생에 느끼지 못했던 평안함을 읽었습니다.
물론 두분과 같은 삶 흔한 것은 아니고 어쩌면 상당히 선택받은 삶일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환갑을 지난 분들이 손수 장작불을 피우고 너른 고택의 마루며 마당을 쓸고 닦고 하시면서 여행객들 이불 수발 등까지도 남의 손 안 빌리고 해 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잘 쓰진 못해도 제가 가끔 끌적거리는 시(시조)의 수준을 보여주신 마리아 형수님과 아무리 배우려 해도 되지 않던 서예의 경지를 이루신데다 도자기도 정말 이쁘게 잘 구워 내시는 형님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하마트면 좀 풀이 죽었을 여행길이 새로운 생기를 얻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의 마음 보내 드립니다.
저에게만 좋은 기억을 남긴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제 늦둥이 보물도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기분이 좋답니다.
왜냐고요?
형님이 소개해 주신 이하원에 가서 난생 처음 먹어본 송이버섯에 아이가 홀랑 빠졌고 또 둘째날 점심으로 먹은 도산서원 부근의 간고등이구이에 아이가 반했으며 그날 간식거리로 먹은 닭실마을 한과와 저녁으로 삼은 돼지숯불구이도 아이 입맛에 맞았나 봅니다.
그리고 봉화를 떠나 영월 청량포에서 단종을 그리며 시킨 쏘가리매운탕에 제 늦둥이 콧등에 땀을 송송 흘리면서 정말 맛있게 먹더군요.
이번 여행을 겪고 나니 당분간 외국 여행은 안 가도 되겠답니다.
완전 먹방인 셈이었나 보죠.
그리고 제 사랑하는 아내 역시 운전하느라 지칠만도 한데 같은 코스로 다시 여행을 하겠다는 걸 보면 많이 만족한 모양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초입을 참 기분좋게 시작하였으니 앞으로의 삶도 멋진 일만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첫댓글 여행 후기를 쓰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앞으로의 삶도 틀림없이 멋진 일만 이어지시리라고 생각됩니다.
귀염둥이 늦둥이와 멋진 사모님,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학부를 졸업하신 상엽님의 소탈하신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답니다
이번 여행이 새로운 활력소가 되셨다니 저도 기뻐요.
무엇보다 이렇게 토향방에 생기를 넣어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종구 형님도 자주 세 분 가족 얘기를 하시네요. 좋은 분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