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요일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메리 파이퍼 지음 / 김정희 옮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언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숙제로 써낸 일기 한쪽에 댓글을 달아주시곤 했다. ‘글솜씨가 좋아요. 꾸준히 글을 써보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었군요. 그런 생각을 했군요.’ 그게 그렇게 좋았다. 흔한 칭찬과는 달리 느껴졌나 보다. 관심받고 싶었던 아이에게 다가온 적절한 관심.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따스한 시선과 반응. 아마도 나는 거기에 마음을 확 열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일기를 썼다. 더 잘 쓰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가 쓴 글에 줄곧 관심을 가져주셨고, 나는 신이 나서 글짓기반 활동도 시작했다. 내 기억 속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어졌다. 이후에도 글을 쓸 때는 정성을 쏟았고, 국어 시간이 좋았고, 좋은 글을 읽을 때면 행복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읽었을 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그런 글.
사춘기를 지나며 나의 글쓰기는 철저히 나를 위한 것이 되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고 곱씹어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곤 했다. 찰나를 놓친 말들은 두고두고 생각났고, 불쑥 튀어나와 버린 말들로 조마조마했다.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편했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글쓰기는 생각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방법이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담을 수 있었다.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 날 글을 썼다. 누가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외로웠던 날, 아이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힌 날, 가장 소중한 이에게 악하디악한 나의 밑바닥을 보인 날,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실망이 더해졌던 날…. 그런 날이면 뭉그러진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글을 썼다. 전혀 다듬어지지도 다듬으려 하지도 않은 글은 나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글. 꽤 오랜 시간 나의 글은 그랬다. 지금도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그렇다. 그렇게 쓰다 보면 “진짜 내 생각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71쪽)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을 다시 붙잡고, 흘려보내야 할 것을 흘려보내며 나를 다독이게 된다. 그러면 조금 차분해지고, 갇혀 있던 내 안에서 나와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2023년 2월 노워리 기자단을 만났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기자단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게 되었다. ‘조금 더 공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도전해 보세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재구성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 공동체의 문제까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실 거예요.’ 그래. 이걸 해 봐야겠다. 조금 더 공적인 글쓰기. 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닿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나도, 나의 글도 조금 더 확장되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합평하는 첫 시간이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단체 블로그에 처음 올라온 내 글을 봤을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일기장을 벗어난 내 글을 만나는 느낌이란. 몇 명이나 이 글을 볼까. 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긴장감은 이내 사라지고 궁금함과 설렘이 더했다.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글을 쓰는 날도 있고,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나 싶어 못마땅해지는 날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나의 글을 함께 읽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져 왔던 글쓰기가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느낌. 돌아보니 그것은 연대였고 확장이었다. 그런 경험이 올해도 기자단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올해 나는, 나의 글은 어디를 향해 얼마나 확장될까. 내가 쓰고 읽는 글이 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바꾸고, 변화된 내가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그거면 됐다. “모든 글은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탠다. 비록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 혹은 글을 읽는 사람의 기분이나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를 바꾸는 정도의 미미한 역할을 할지라도 말이다.”(38-39쪽)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첫댓글 혜화샘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썼고, 힘든 순간마다 꾸준히 글 쓰고 계셨군요. 이 글을 통해 샘의 글이 좋은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인용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나 사례가 조금더 구체적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앞에서는 이야기가 풍부하고 구체적인데 결론부분에서는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있어요.
완전 예리한 미소쌤~
제 옆에 계셨나 싶을 정도예요ㅎㅎ
마지막 부분 심히 급마무리했어요.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하는데 잘 풀리지가 않더라구요;;;
혜화샘 글을 보니 첫 합평 시간이 저도 떨리네요.
'진짜 내 생각이 무엇일까요? 내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아직 못쓰고 선생님들 글 보고 있는데요...샘 고민, 백배 공감이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편했고 안전하게 느껴졌다."는 것에 깊이 공감합니다. ^^
역시 늘 믿고 보는 울 혜화쌤 글! 너무 좋아요. 이 내공이 어디서부터 왔나 했더니 초등학교 4학년이군요. 노워리 기자단 1년 활동을 "돌아보니 그것은 연대였고, 확장이었다."에 소름 쫙! 올해는 블로그나 브런치 하나 팝시다! ^^ 혜화쌤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
담임 선생님의 작은 코멘트 글이 혜화 쌤께 영향을 미쳤군요!
어려서부터 글을 잘 쓰셨다니 완전 부러운데요~^^
혜화쌤 글 읽을 때마다 글 참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쓰는 줄 몰랐어요^^;; 올 해도 기대됩니다!!
'나는 한참 생각하고 곱씹어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곤 했다. 찰나를 놓친 말들은 두고두고 생각났고, 불쑥 튀어나와 버린 말들로 조마조마했다' 이 부분 완전 저랑 똑같으셔요ㅜㅜ 다른 점이 있다면, 전 말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거.. '누가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외로웠던 날, 아이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힌 날'이 요즘 저의 상황이라 어제는 침대 속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는데, 저도 혜화쌤처럼 글로 써봐야겠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아나네요^^
샘의 마음과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서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샘을 사랑하게 될 거 같아요.... 뜬금없는 사랑고백^^
사실 전 아직도 숙제라고 생각하고 마감만 맞추자라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샘은 덜어내고 고민하고 다시 쓰고. 머리도 쥐어짜고..그래서 글이 생동감있고 진실한 거 같아요. 저도 앞으로 어떻게 쓰고 잘 전달할지 좀 더 고민하고 성찰해 볼께요. ^^
나두 나두 하고 공감하면서, 그런데 그 점을머쩜 이리 잔잔하게 마음에 닿게 쓰시는지...그건 이런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