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중요한 것은 절대로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겁니다. 그 사람이 십일조 잘 내고
책임감 있게 충성 봉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동행할 수 없는 사람인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진리 안에서 주님의 사랑의 줄로 하나 되게 묶어 주시고 평강의 복이 있기를’하고요.
거창하게 ‘한국교회를 축복하시고, 대한민국을 축복하시고‘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에덴동산, 가나안 땅, 그리고 성전에 내리시는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된 성도들의 심령에 하나님은 복을 내리십니다.
아무데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받을 그릇이 된 자들에게 복이 되십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곧 햇빛과 비는 악인과 선인에게 공평하게 내리시는
일반은총이기에 성실하고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에게 주시는 상식적인 복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령한 복은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에만 내립니다.
그를 사모하는 자에게 내립니다. 맞습니까? 따라서 욥처럼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요한 복음적으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특징은 언제나
장군 멍군입니다. 항상 스트레스가 가득해서 손해 본 장사를 한 얼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긍휼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장군 멍군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변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 잠겨 있는 내게 그의 긍휼이
계속 공급되는데 사람들과 무슨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헛된 변론에 열중하거나 토론하지 말라
부지런히 너 자신을 가르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네 자신을 철저하게 가르쳐라. 그래서 디모데는 하나님의 가치를
창출하라는 뜻입니다.(티모데오) 그리고 난 다음에 창출된 그 가치로 복음과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디모데후서)는 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그래서 이를 목회서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가 잘못하면 욥을 뒤따라
갈 수 있어요. 물론 욥 같은 신자가 교회에 있으면 참 잘 할 겁니다. 욥 같은 신자가
지금 나오면 어느 성직자라도 이 욥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를 이런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이런 사람들이
망가뜨리고 있는 걸 아무도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의를 자랑하느라고 하나님의
긍휼을 도무지 원하지 않아요. 업무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지 않아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일은 열심히 하고, 사역에는 열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그 긍휼하심을 표현하는 데는 완전히 꽝입니다. 이게 참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한계가 어디냐? 또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딘가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 자신도 늘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제사로서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배가 불렀다는 말씀이지요.
'너희들이 항상 갔다 줬고 너희들이 안 갖다 준다 할지라도 천하의 수양이 다 내 것이
아니냐 내가 주려 죽을 지라도 너희들한테 제사 드리라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 제사로 너희와 내가 다른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냐 그 약속이 중요한 것이지
그 제사를 내가 받아먹기 위해서 내가 너희 앞에 좌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읺느냐
다만 너희가 날 잊어버리고 나를 기억함이 없고 감사가 없는 것 그것 때문에 내가
속상해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잘못하면 욥처럼 명분은
잘 세우면서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맹물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나중에 껍데기만 남는 갈라디아교회와
같이 되고 맙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자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고 맙니다.
이 말씀은 참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이 복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굉장한 복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욥처럼 충실한 자를 왜 잘못되었다고
하느냐?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왜 나쁘냐는 겁니다.
심지어 유대교가 무엇이 그리 잘못 되었냐는 겁니다.
바로 십자가의 원수가 되기 때문에 유대교가 나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현저하게 짓밟아버리는 겁니다. 사람들 보기에 나쁜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흠을
잡을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그들을 비판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그 놀라운 대속의 은총을
무용지물로 밟아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현저하게
짓밟아버리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53장은 금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무서운 죄가 뭡니까? 율법을 범한 죄입니까?
물론 그것도 심판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죄는 ‘모든 인간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은총을 입지 않고는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아무리 욥처럼 깨끗해도 모자라느니라
내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므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구속의 길을 너희가 믿고 세례로 합하는 곧 참 회개만 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길로 오게 하겠다 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이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긍휼을 거부하고 차버리는 것입니다.
교만이 뭐냐면 하나님의 긍휼을 차버리는 것입니다. 긍휼이 스며들 틈이 없는
것이 교만입니다. 욥을 보세요. 욥은 하나님의 긍휼이 스며들 틈이 도무지 없어요.
지금 21세기 욥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바닷가의 조약돌 같아서 하나님의 긍휼이
스며들 틈이 없어요. 똑똑하기는 말할 수 없고, 아는 것도 많고, 또 지금까지
행한 것도 많은데 문제는 흘려간 옛 노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 타령만 부릅니다.
내가 이래 뵈도 어떤 교회나 어느 기관에 얼마나 많은 헌금을 했고, 교회의 사역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밥도 퍼 줬고, 전도에도 남의 뒤에 서지 않았노라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지금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정당한 보상을
안 하신다는 은근한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
보상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무도 이 땅에서 보상 받을 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상이 너무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래요. 목사님은 뿌려 놓은 것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거두는 아닙니까?
그런 말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은 아무리 놀부 같은 주인이라 할지라도
머슴한테 양식과 씨를 주지 않고 밭에 나가서 일하라고 하는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농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는 분명히 농부가 일꾼에게 일을 시킬 때
씨와 양식을 준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주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일꾼이라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이미 복음이란
씨도 주셨고, 말씀으로 먹을 양식도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관념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3년 동안 십일조 하고 나니까
아무 쓸모없는 하천부지 3,000평을 사 둔 것이 도시계획에 들어가서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는 식의 말이 있습니다. 저는 사업하다 어려울 때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주님 제가 낸 십일조에 30배는 고사하고 원금이라도 잠깐 빌려 주십시오'
하고 기도한 적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까 돈을 불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내게 심겨져 그 말씀이 30배, 60배, 100배가 되는 것이
나의 복이었습니다. 마땅히 신자의 행동은 욥처럼 의롭게 나타나야 하지만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셔야 됩니다. 성령님이셔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욥기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입니다.
첫댓글 내 속에서 역사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아멘!
할럴루야!
8월의 끝자락 입니다.
참 인생을 사는것이 쉽지 않고, 정말 연약하다는것을 실감합니다.
말씀을 듣는중에 제가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더라도 주님께서 아버지께 나아갈수 있도록 복원하신 그 시온의 길을 생각하면 소망과 힘이 납니다.
목사님 올 여름도 잘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늘 함께 주께 더 가까이 가시는 선배 동무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