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크기나 사연보다는 아름다운 생김새가 탁월한 느티나무
강원도 치악산은 아직 겨울입니다. 산 그늘 뿐 아니라, 원주 지역의 마을 곳곳에 쌓인 눈은 채 녹지 않았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채 그대로입니다. 입춘 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지났지만, 동장군은 그냥 물러 갈 태세가 아닙니다. 찬 바람 맞으며 원주 지역의 나무들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원주를 대표하는 나무는 아무래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이겠지요. 이번 답사도 반계리 은행나무의 봄마중 채비 안부가 궁금해 떠난 길이었습니다. 기왕에 떠나는 길에 원주 지역에 서 있는 다른 큰 나무들을 여러 그루 더 찾아볼 요량으로 요령껏 길머리를 잡고 길 위에 올랐습니다.
원주 지역에 서 있는 큰 나무로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나무라고 하면, 시무나무 정도가 있습니다만, 대개는 느티나무였고 다문다문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정도입니다. 하루 답사 길에 그 모든 나무들을 볼 수는 없으니 선택을 하는 수밖에요. 그 가운데 반드시 보아야 할 나무로 먼저 꼽은 나무는 앞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와 원주의 나무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나무인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입니다. 원주를 대표하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기준 삼고, 그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나무들을 함께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지도를 꼼꼼히 살펴 이동 거리를 짧게 잡고 떠났습니다.
짬이 된다면, 원주에 사는 도반 한 명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도반이라 하니 좀 어색하긴 한데, 이 친구는 제가 대학에서 글쓰기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던 저의 학생이었던 젊은이입니다. 십 년도 더 지난 때의 만남이었습니다. ‘제자’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제게는 도반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한때 제주도에서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고향인 원주에 돌아와서 중국요리점을 개점한 참 좋은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제주에 있을 때에는 올레 길을 걷다가 지칠 즈음의 저녁에 만나 좋은 시간을 나누기도 했지요.
이동 거리를 최대한 짧게 잡은 덕에 생각보다 많은 나무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뿐 아니라 앞에 이야기한 친구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수도 있는 여유로운 답사 길이었습니다. 바람이 차서 돌아와서는 약간의 감기 기운으로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답사였습니다. 원주에서 만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짬 되는 대로 소개하겠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늘 소개하는 나무는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입니다. 1982년 11월에 천연기념물 제279호로 지정한 나무입니다. 원주 흥업면 대안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인데, 원주의 옛 이름인 원성을 제 이름으로 가진 나무이지요.
느티나무 가운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보아 그 많은 천연기념물 느티나무들에 비해 별다른 특징 없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나무입니다. 규모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또 수령이 350년이라고 하니, 특별히 오래 살아온 나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남다른 문화적 사연이 담긴 나무도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제 답사 길에서 항상 뒤로 밀리곤 하는 나무예요. 어쩌면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느티나무 가운데에 ‘막내 느티나무’라고 별명을 붙여줘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주시에는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 못지 않게 좋은 느티나무들이 몇 그루 더 있습니다. 물론 주변 환경의 차이도 있고 해서, 절대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얼핏 보기에 이 느티나무의 위용에 버금가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또 정확히 측정한 결과라 할 수는 없지만, 나무의 나이도 350년은 훨씬 더 된 것으로 알려진 나무들이 몇 그루 더 있습니다. 이를테면 원주 행구동 느티나무는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 수령을 1천 년으로 표기했고, 나무의 키도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보다 10미터 이상 큽니다. 생김새도 무척 장하고요. 이 원주 행구동 느티나무는 다음 기회에 보여드리기로 하고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만 보여드리려 합니다. 비슷한 느티나무여서 헷갈리실까봐요.
특별한 게 별로 없다 했지만,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를 오래 바라보면 분명 이 나무만의 남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마을 어귀에 서있는 이 느티나무의 생김새와 주변 풍광이 한눈에도 무척 아름답다는 게 그것입니다. 마을 정자나무로서의 전형적인 생김새입니다. 나무 앞으로 펼쳐진 논밭의 규모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시골 마을 정자나무 풍광으로는 더 없이 알맞춤합니다. 나무 앞 쪽에는 한 채의 살림집이 있을 뿐이어서, 나무 곁은 언제라도 한적합니다. 날씨 따뜻해지면 마을 농부들이 자연스레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들어 땀을 식히기에 아주 좋은 풍경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저마다의 바탕이 따로 있게 마련인 거죠.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은 마을 어귀, 마치 느티나무를 위해 조성한 화계처럼 이뤄진 낮은 동산 위에 나무가 서 있습니다. 원래부터 나무를 위해 마련한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바로 이 나무 옆으로 길을 내는 참에 나무가 서 있는 부분만 온전히 유지하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동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두 번째 이유가 맞지 싶습니다. 작지만 〈느티나무 동산〉이라고 불러도 될 듯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동산 뒤편으로는 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젊은 나무여서인지, 몇 해만에 부쩍 크게 자랐습니다. 얼마 안 지나서 이 젊은 느티나무가 오래 된 느티나무의 키를 훌쩍 넘게 자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늙은 느티나무와 젊은 나무, 두 그루 사이의 거리를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을 정자나무 동산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느티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골 마을 한낮의 풍경입니다.
나무 앞으로 이어진 오르막의 마을길에 쌓인 눈은 그대로 얼어붙어 걷기에 위험할 만큼 미끄럽습니다. 찬 겨울바람 맞으며 나무 곁에 한참 머무르며, 나무가 지켜준 이 아늑한 마을의 평안을 그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