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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71주년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잊을 수 없는 날이기에 그날의 감격을 뒤돌아보는 광복절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박권사님 회중기도담당이시기에 전화 드린적이 있습니다. 권사님이 지금90세이시니까 815 광복 때는 19살 꽃다운 나이 이셨겠네요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더라구요 어찌 됐든 세월이 지날수록 광복의 기쁨을 경험한 우리 부모님들이 점점 생존해 계시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날의 생생함을 들을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저 또한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늘 지도를 보지만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맑은 날에는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나라입니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간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한 마디로 남의 집에 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짓밟은 것입니다.
일본의 잔악상은 우리가 먹는 숟가락까지 뺏어 갔다고 합니다. 이유는 숟가락을 녹여 가지고 군함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교회를 향한 핍박도 있었습니다. 교회 종을 가져 갔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일본 말로 찬송을 부르게 했고 찬송가를 조사하여 “하나님” 가사가 있으면 몇 장은 부르지 말라고 하고 찬송가에서 아예! 떼어 버렸고 만약 조사해서 찢어버리지 않았다면 찬송가를 들고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공출이라 해서 쌀을 다 빼앗아 가고, 젊은 사람들을 전부 끌어내다가 군대에 내보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자유가 없는 36년 일본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한마디로 노예생활입니다. 일본은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발판으로 삼고 대륙으로 뻣어 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살길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민족을 영원히 지배할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 마음대로 됩니까?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은 1945년 815 해방의 기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해방의 감격 만세소리 그날의 함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교회는 공출하느라 쌀들을 모아 놓았던 것을 가지고 매일 잔치하고 해방되어 성도들이 교회를 나가는데 주일날만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모였다고 합니다. 부르지 말라고 했던 찬송을 목이 터져 나가도록 불렀답니다. 광복의 기쁨 앞에는 뭐! 원수도 없고, 적도 없고 모든 것이 좋으니 오직 기쁜 뿐이 었다고 합니다. 이런 해방의 기쁨은 곧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해방의 기쁨을 2016년 71년째를 맞이 했습니다. 광복절 행사는 일본으로부터 고난당했던 아픔들을 함께 나누며 기념행사가 곳곳마다 열리게 됩니다.
광주에서는 내일 시청 회의실에서 윤장현 시장을 비롯 600명이 모여 경축행사가 있고 광주에 살고 계시는 애국지사 노동훈(89)옹이 계시는데 시장님이 대표로 찾아가 인사드리고 경축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광복의 기쁨과 나라사랑을 되새기는 의미로 ‘태극기 포토존’을 마련하여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가는 뜻 깊은 행사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광복절 그 날의 함성과 기쁨 다채로운 행사를 하게 되는데 우리 국민이 참여하든 하지 않든 우리 민족 모두가 진정한 광복과 자유의 소중함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아야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자유의 소중함을 깊이 알고 있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탐험가 봅 바틀렛이 여행하는 중 아주 희귀한 새 몇 마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는 그 새들을 새장에 넣어서 배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항해하는 중에 새 한 마리가 유난히도 시끄럽게 합니다. 그래서 새장에서 발톱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머리를 찧는 등 몸부림을 칩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틀렛 탐험가는 요란한 새 만 놓아 주었습니다.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새는 새 장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를 만끽하며 배를 떠나 훌훌 날아가 버렸습니다. 신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입니까? 몇 시간 후 요란한 새가 배로 돌아오더니 지쳐서 푹 쓰러졌습니다. 사방이 바다라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앉을 곳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픈 데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새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배를 향하여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지쳐 쓰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탐험가는 안쓰러워 지처 있는 새를 다시 새 장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새는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새 장 안이 가장 행복한 곳임을 알았습니다. 새 장만큼 편안한 안식처가 없는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새가 새 장 밖에 나가 자유를 얻었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자유 민주국가에서 자유롭게 산다고 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봅니까?
오늘 본문 예수님과 유대인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이 진정 원하시는 자유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아주 직선적으로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습니다.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노예 상태에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아주 불쌍한 정도로 노예의 모습인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예수님께 말합니다,
33절 다 같이 다시 읽습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다른 사람들에게 노예 된 적이 없는데 우리가 어째서 자유케 한다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정말! 유대인들이 노예 된 적이 없었습니까? 구약 성경에 출애굽기의 역사가 곧 노예 생활 했던 기록입니다. 노예생활을 얼마나 했습니까?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나라에 70년동안 포로생활도 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유대인들의 현실은 로마의 식민지이니까 종 생활입니다. 이처럼 기가막힌 역사 속에 노예생활을 해 왔었는데 노예생활 한 적이 없다며 무식한 막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 유대인들이 몰라서 정말 그렇까요?...... 진짜로 430년 동안 애굽 노예 생활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아브라함의 종이지 우리가 무슨 종이냐 자기 민족에 대한 우월감에 빠져 현실적으로는 종노릇하면서도 우리는 종이 아니다며 가면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이후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도 많은 종교 예식, 거짓, 위선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도 성전에 우상단지를 갖다 놓고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기며 나는 하나님의 선민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종이지 우상의 종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내용이 없어요 다 형식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매여서 벌벌 떨고, 그 많은 규례에 노예가 되어 사는 강팍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일을 저 지르고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자기 고집, 자기라고 하는 그런 집착성에 유대인들이 매여 있는 겁니다. 이런 강팍한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건지 자기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진정한 자유에 대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예수님께서 대단히 중요한 전제를 내 놓습니다...... "진정한 자유 문제는 죄 문제다" 이렇게 결론을 짖습니다.
34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다시 말씀드리면 진정한 자유란 정치·경제를 잘못해서 교육의 잘못한 것 때문에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에 대해 유대인들이 모르는 것은 바로 죄 문제라는 겁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보면 죄가 무섭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찌듯이 찢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습니다. 또 나귀 턱뼈 하나 달랑 들고 블레셋 사람 천 명과 맞짱 뜰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과 들릴라>라는 영화에 보면, 삼손이 이방 여자 들릴라에게 가면 죄가 된줄 줄 알면서도 그의 집으로 갑니다. 그 때 자막에 뭐라고 나오는 줄 아십니까? "안 된다, 안 된다" 삼손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가서는 안 되는 줄 압니다. 그런데도 들릴라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힘이 근원이 되는 머리털을 깎이는 바람에 힘을 잃어버리고 블레셋 군사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두 눈이 뽑혀지고 쇠줄에 매여 맷돌을 돌리다가, 나중에는 다곤 신전에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이것이 죄의 종 노릇하는 인간입니다.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끊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죄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서커스단에서 아기 코끼리를 훈련시킬 때, 처음에는 단단한 말뚝에 튼튼한 쇠줄로 묶어 둡니다. 아기 코끼리가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코끼리는 ‘나는 쇠사슬에 묶이면 꼼짝할 수 없구나. 몸부림 쳐봐야 소용없구나. 아예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아기 코끼리가 점점 자라 어른 코끼리가 되면, 코 하나로 1톤 정도를 들어 올릴 수가 있는 엄청난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성냥 개비만한 말뚝에 가느다란 실로 그 큰 코끼리를 묶어놓아도 코끼리는 도망치거나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줄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죄에 묶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어, 마귀의 포로가 되어 끌려 다니게 됩니다. 분명히 몸은 해방되었지만, 죄의 사슬에 얽매여 삽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로부터 자유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같이 3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여기 ‘아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참 자유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선지자로 통해 오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만이 포로 된 자에게 자유 함을 허락하신다고 했습니다.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 내 말은 곧 무엇입니까? 32절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는 곧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곧 내가 진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영접 하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을 수용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면 이제는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받아 들여야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있는데 어찌 예수님 진리 말씀을 자기 안에 모셔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대통령 이 분은 대통령 임기후 더 유명해지신분입니다. 지미 카터입니다. 그분이 썻던 책 나이 드는 것이 미덕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 내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자가 지미카터 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대통령도 했고, 세계를 호령하면서 여기저기 큰 일도 많이 하고 했는데 참 많이 행복한 날, 가장 즐거웠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평생 지내오면서 최고의 때가 언제였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지미 카터의 유명한 말은 이렇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다 그만두고, 다 은퇴하고, 지금 농촌에 있지마는 바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왜? 가장 자유로우니까. 이제 아무 걱정도 없어요. 아무 미련도 없어요. 내 영혼이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내 노력...... 내 수고....... 내 의지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요.......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 나와 함께 하는 길 외에 자유케 되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다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36절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오직 예수님 통해서 만이 진정한 자유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